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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거듭날 수 있습니까 / 요한복음 3:1-8

1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새해 첫주를 보냈습니다. 새해라고는 하지만 무엇이 새로워졌습니까? 새해가 왔다고 저절로 새로워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또한 많은 것이 새로워지기고 많은 사람들이 변화된 삶을 경험합니다. 그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은 새해뿐만이 아니라 늘 새 일을 행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응답하는 사람들을 통해 새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리새인은 “구분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경건한 삶을 추구하던 종교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강했던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은 스스로 과거의 삶을 회상할 때에 율법으로는 흠이 없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니고데모는 바리새인들 중에서도 지도자였고 산헤드린 공회 의원,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국회의원 정도의 지위를 가진 사회적으로도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정도의 삶이라면 니고데모는 완전한 사람아닙니까? 도무지 왜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을까요? 당시에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옳음을 드러내고 예수님에게 시비를 걸기 위하여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자신의 결핍을 알고 진리를 알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해 그가 왜 예수님을 찾아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먼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신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여기서 우리는 표적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표적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도록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입니다. 불타는 떨기나무가 모세의 주목을 끌게 되었고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듯이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들이 니고데모의 주의를 끌고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음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적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적인 갈망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그의 마음속에 무슨 질문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는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기다리시지 않고 직접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다시 말하면 “네가 나를 찾아온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입니다.

니고데모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은 절망 그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인의 지배아래에 신음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은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주목받은 것은 아무도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율법대로 살아가지 않는 이유는 율법을 지킨다고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는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건 아닌데, 이 세상이 이렇게 되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아무리 사람들을 가르쳐도 사람들은 변하지 않고,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 지고, 내 스스로 깨끗하게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쳐도 희망은 찾아오지 않고 나날이 지쳐가는 모습, 그것이 니고데모의 고민이었습니다. 자신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는데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데 신앙은 점점 더 의무가 되고 형식이 되고 위선이 되어버립니다. 도무지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 오는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은 이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가? 하나님이 진정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시고 회복하실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니고데모의 갈망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실마리를 찾게 됩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 하나님의 역사가 이 세상에 나타나는구나, 분명이 이 세상에 희망이 있구나, 하는 희망과 기대를 안고 예수님께로 나아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지 말씀해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 뿐 아니라 위로부터 태어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 탄생이 아래로부터, 땅으로부터의 탄생이며 육신의 생명의 탄생이라면 두 번째 탄생은 하늘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오는 탄생이고 영적인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거듭남에 대해 아기의 탄생의 과정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아기는 모태에서도 분명히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움직여서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심장의 박동을 들려줍니다. 그러나 코가 있어도 숨을 쉬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못합니다. 분명한 지각이 없고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기관이 온전히 활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주고 사랑해주는 어머니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 나를 사랑하시는 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분과 사랑을 나누고 교제하지 못합니다.

한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산고의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 고통이 한 아이의 생명이 온전하게 하고 그 아이의 지음바된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합니다. 이제 그 아이는 비로소 어머니를 바라보고 어머니와 사랑을 나눕니다. 코로 진정한 생명의 호흡을 하고 입을 열어 한마디 두마디 교제와 소통의 언어를 배워갑니다.

육신의 생명은 불완전합니다. 그것은 언젠가는 끝날 수 밖에 없는 유한한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은 죄로 물들어있습니다. 죄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고 구조화된 죄악의 세계 속에서 수많은 핑계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갈 뿐입니다. 무엇보다도 육신의 생명은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오직 생존 그자체가 목적일 뿐입니다. 육신의 생명의 목적은 “적자생존(適者生存)”에 있습니다. 말로는 부인을 해도 우리의 몸은 벌써 이러한 가치관을 몸으로 따라가며 살아갑니다. 육신의 생명과 영적인 생명의 차이는 생존을 위한 삶인가 아니면 사랑을 위한 삶인가의 차이에 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나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 내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람의 대상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을 보여주셔서 우리 안에 있는 영적인 생명을 깨어나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그 분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습니다. 죽음과 같은 어머니의 고통을 통해 한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눈물의 기도와 십자가의 고통을 통해 한 생명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의 증거는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느끼며, 하나님과 생명을 교제를 하면서 살아가는가에 있습니다. 그리고 거듭남의 증거는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며, 그 나라 안에 들어가서 살아가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했고, 교회의 문화와 언어에 익숙하더라도, 내 눈에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보이지 않으면, 그 나라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진정한 거듭남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영적인 태만입니다. 모든 기대를 포기하는 것이고 영적인 갈망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채워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갈망, 정의에 대한 갈망, 더 온전한 삶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러나 갈망만으로는 안됩니다. 갈증은 있지만 그 갈증이 해소될 희망을 잃은 사람은 삶의 짐 위에 더 큰 신앙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모든 사람들을 비판하기만 할 뿐 그 안에 은혜의 근원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갈증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에 진정한 영적인 생명이 시작되고 진정한 거듭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갈증은 어떻게 해소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그 방법을 8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바로 바람과 같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의 인생에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의 바람에 거르스지 말고 자신을 내어맡기는 삶을 살아갈 때에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바람은 강풍으로, 마치 바울과 같이 그를 뒤집어엎을 만큼 불어오기도하지만, 성령의 바람은 대부분 먼저 미풍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립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영적인 갈증을 느끼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을 보게 하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게 합니다. 그 작은 발걸음 발걸음 하나 하나가 우리을 진정한 생명의 역사로 이끄는 것입니다.

지난 주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참여하신 분들도 있고 참여하기를 원하셨지만 여러 가지 여건이 어려우셨던 분도 계실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기대가 약해지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변화하고 우리가 거듭나고 우리가 영원한 생명의 기쁨을 누리려면 뭔가 조금이라고 하나님의 은혜의 표지를 보게 되면, 그 표적에 반응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미풍을 불어주실 때에, 뭔가 조금이라도 내 영에 움직임이 있을 때에, 두드리심이 있을 때에, 그것에 반응을 해야 합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직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지도, 부활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바리새인들도 예수님의 이적을 보았지만 그들은 또 한사람의 선동가를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괜히 로마인들의 주목을 받고 더 위험해질 뿐이니 그래서 예수를 제거해야 이 땅에 평화가 온다고 생각했을 때에 그들과는 달리 니고데모는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성령의 바람을 거부할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버티고 저항하고 받아들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조금이라도 움직일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의 굳은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할 이유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니고데모에게는 그의 동료 바리새인들이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비난하는 예수늘 찾아간다는 것은 그의 명성에 흠집을 내고 그가 누리는 관계들을 깨뜨릴 수 있는 행위였습니다. 그에게도 예수님께 나아갈 것을 단념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장애물을 넘어서는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것은 밤이었습니다.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는 동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시간, 진정으로 예수가 구원자인지를 확인할 만한 충분한 시간, 나의 영혼의 무지를 깨울 빛을 찾아낼 수 있는 시간을 그는 발견했던 것입니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믿음 안에서 어떤 경험을 했든지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우리는 뭔가 안다고 생각하고 벌써 체념하고 벌써 믿음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큰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2017년 성령의 바람이 우리 개인의 삶에, 우리 교회의 삶에 불어올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통해 증거하셨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분명한 증인들을 우리는 알 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 바람이 강풍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곳으로 가게 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표적들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역사의 현장이 바로 우리의 삶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바람이 우리를 변화시키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가슴 벅차도록 느끼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2017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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