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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 요한복음 5:1-9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교회는 무엇입니까? 교회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복음서를 통해 교회를 정의해보자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오늘날 성령의 능력 안에서 행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성령의 권능을 약속하시고 제자들은 그 권능을 받아서 예수님이 하셨던 그 일을 그들도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사도들의 시대가 가고 그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가 그 믿음의 역사를 이어가며 오늘 우리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6)고 가르칩니다. 즉 온전한 믿음이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믿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아도 유지될 수 있는 교회,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아도 유익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갑니다. 제법 괜찮은 사람들 모여서 그저 그런 세상 흘러가는 이야기 하며 교제하는 공동체에는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게 교회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없어도 유지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다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은 믿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살아계셔서 우리의 모든 잘못을 들춰내시고 벌주시는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믿음은 결국 두려움의 믿음이 됩니다. 교회 나오는 이유는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이고, 매 주일 우리는 성경이 그렇게 싫어하는 율법주의자, 바리새인이 되어 어떤 은혜의 사모함도 없이 습관적으로 믿음의 삶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결국 그런 두려운 하나님을 우리는 점점 멀리하게 되고 우리가 믿음의 길을 떠나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결국은 사라져 버립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모든 실수를 용납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가 구하는 것에 응답하시고 탕자와 같은 우리가 다시 돌이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시는 그 선하신 아버지가 우리에게 계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현장이 나옵니다. 그 곳은 베데스다 연못이었는데 예루살렘성 성전 북쪽, 가로 100미터, 세로 60미터 정도의 인공 연못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 밖에 샘이 있기 때문에 성안으로 그 샘물을 끌어들여 저장하는 연못들이 필요했습니다. 베데스다 연못 주위에는 비와 햇볕을 가리기 위한 주랑이 사면을 애워싸고 있었고 그 안에는 각종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천사가 물을 휘저어놓을 때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낳는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만나셨습니다.

성경은 이 사람이 38년 동안 병으로 고생한 사람이라고만 말합니다. 과연 이 사람은 몇 살이었을까요? 성경에는 이 사람의 병명이 구체적으로 나와있지 않지만 그 사람이 스스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대개 우리는 중풍병자라고 단정을 합니다. 중풍병이나 이와 유사한 병을 유아기에 걸리는 경우를 보기 어려우니까 그렇다면 적어도 50대 이상은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 로마시대의 평균수명 20대 중반인데, 그것은 유아사망율이 높기 때문이고 만일 10살을 넘기게 되면 기대수명은 약 47.5세가 됩니다. 그렇다면 38년동안 중풍병자로 살았다는 것은 그가 유년기에 그 병을 얻었다고 해도 이제 인생에 남은 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그는 병을 통해 건강을 잃었고 꿈을 잃었고 그렇게 삶을 잃어버린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는 언제 우리에게 찾아옵니까? 열루병 걸린 여인은 12년의 고통 끝에 치유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젊은 날의 자신의 지식과 열정을 잘못된 방향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데 허비한 후에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80세에 부름을 받았고 예수님 우편에 있던 강도는 자신의 모든 삶을 마치는 죽음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낙원으로 인도함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나사로는 예수님이 오셔서 치유해 주실 것을 기다리다가 먼저 죽게 되었고 죽음 이후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왜 하나님의 역사는 더디 이루어집니까?

오늘 본문인 요한복음은 다시 오시지 않는 예수님, 하나님의 부재를 경험하는 시대에 주신 믿음의 도전입니다. 요한복음은 가장 늦게 쓰인 복음서이고 요한복음이 쓰일 때에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한 세대가 지났을 때입니다. 오시리라 말씀하신 그분, 곧 오소서라고 기대하던 그분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은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고 성도들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간구하며 기다리고 있지만 예수님은 다시 오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처음 우리를 찾아오셨을 때 그분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셨다고 선언하셨습다.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희망을 보았고 기쁨을 보았고 다시 꿈을 꾸며 노래하게 되었습니다. 그 권위있는 가르침에 놀라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돌아보셨음에 기뻐하며 수천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다시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찾아올 때에 어떤 사람들은 믿음의 길을 떠났고 어떤 사람들은 고난과 박해를 이겨내며 믿음을 지키다가 한 사람 두 사람 세상을 떠납니다. 과연 예수님은 다시 오시는 것일까요?

고침을 받지 못한채 기다림으로 38년을 보낸 이 병자는 당시의 교회의 모습이고 또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교회는 예수님이 떠나시고 한 세대가 넘어 지나면서 과연 다시 희망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서서히 믿음이 흔들려가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오랜 세월의 연단 속에, 믿음을 잃은 곳에, 보이지 않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시며 우리의 믿음에 새로운 도전을 주는 책이습니다.

우리도 한 때는 큰 은혜를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신앙의 열정을 느끼고 예수님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해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곳에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안에 그때의 그 순전했던 믿음이 살아있습니까? 어느새 우리 안에 믿음이 사라지고 열정이 사라지고 소망이 사라지고 겉 껍데기만 남은 신앙의 외피 안에 상한 마음, 메마른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에게도 지나버린 38년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별 기대도 소망도 사라져버렸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지 내 기도에 응답하시는지, 과연 내 인생에 다른 무슨 소망이 있을지 우리는 어느새 다 포기해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직 우리의 삶의 최고의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38년된 그 사람을 찾아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그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낫고자 하느냐” 이미 그 곳에서 아무런 치유의 기대를 갖지 못하고 그저 버려져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대답합니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직 그 사람의 눈에는 희망이 살아있었습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 사람의 눈 만이 아직 빛나고 있었기에 예수님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을 찾아가신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 사람의 인생에서 최고의 날은 언제였을까요? 그의 인생의 과거의 날들, 아름다운 추억이 있었을지라도 지난 세월의 고통이 그 모든 이야기를 잊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신 바로 이 날, 평생을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았던 그 죽음의 자리에서 일어난 그 날이 그의 생애 최고의 날이 아니었겠습니까?

바로 하루 전까지만 해도 그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왕고참이었고 절대 고침을 받지 못하던 절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오늘 모든 이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오늘이 바로 모든 사람들의 경탄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 그날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오늘 이곳에 모였습니까? 우리가 다시 설레임을 가지고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며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온다면 오늘이 바로 우리 인생의 그날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직 우리의 인생의 최고의 날은 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인생을 경험했든지, 어떤 어려움이 있어서 미래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든지, 아니면 어떤 은혜가 있어서 제법 괜찮은 인생을 살았든지간에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우리의 인생을 위해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아직 우리의 믿음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좋은 선물을 준비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믿음의 눈을 들고 다시 손을 들어 기도하며 다시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면 오늘이 바로 우리 주님이 우리를 다시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날, 우리를 고쳐주시는 날, 우리의 믿음을, 우리의 삶을,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해 주시는 그 날, 이런 날이 우리에게 올지 꿈도 꾸지 않았던 그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이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주님의 앞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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