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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 요한복음 11:1-4

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지난 주일 본문에서 시각장애인을 고치신 이후의 이야기를 전해준 요한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이전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사건들의 이면에는 사람들 마다의 각자의 사연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삶이 있고 또 만남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이 있습니다. 그 삶의 현실 속에서 믿음의 사건들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살아갑니다. 요한복음은 우리가 믿음의 여정을 좀 더 긴 호흡으로 생각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 말에 “자초지종(自初至終)”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自)는 ~부터라는 뜻이고 지(至)는 ~까지라는 뜻입니다. 즉 자초지종이란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에는 자초지종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사정을 다 알아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야 하고 몰라도 될 것까지 알게 되는 정보, 지식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기에 한 가지 주제에 머물러 깊이 천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판단력은 제한이 되어있고 생각할 것은 많기에 점점 천박한 사고에 빠져 들어가기가 쉽습니다. 근거 없는 이야기들, 감정에 호소하고 편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 작은 스크린 안에서 모든 것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글들은 넘쳐나는데 긴 호흡을 가진 글, 깊은 사유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많은 정보를 접하며 살아간다고 하지만 또한 우리는 100세 시대를 맞이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조금 더 여유 있게 조금 더 깊이 있게 살아가는 것이 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또 다른 방법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나사로의 집의 식구들은 웬만한 제자들보다 더 자주 등장합니다. 마리아는 향유를 붓고 예수님의 발을 씻겼던 여인이고 마르다는 예수님께 식사를 대접하느라 바빴던 사람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사로는 그 들의 오라버니라고 소개됩니다. 나사로의 부활의 이적 이전의 이야기가 알려지게 된 이유는 다른 이적들과는 달리 예수님이 이미 이 사람들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사로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라고 불립니다.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신 이적이 몇 군데 기록되어 있지만 그들은 예수님께 요청한바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누구도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다고 믿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사로의 이야기도 나사로의 병을 고쳐달라는 요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나사로의 누이들은 예수님게 사람을 보내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전합니다. 이 말에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었는데도 병이 들었다는 의미가 담겨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던 가정의 소중한 사람이 심한 병, 어쩌면 곧 죽게 될지 모를 그런 중한 병에 걸린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예수님이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는 것이 고난을 피해가게 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또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는 말에는 병이 든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이므로 뭔가 특별한 대우를, 신속한 조치를 기대하는 했던 것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도 고쳐주시는 데 잘 알고 사랑하시는 사람이 병이 결렸으니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신속하게 찾아와 주실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전갈을 받으시고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와 달리 이틀을 더 머무셨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리다가 그 사이에 죽었습니다. 누이들이 급하게 전갈을 보낸 것을 보면 예수님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계셨을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다급하게 예수님을 찾았는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고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이것이 이 이야기의 배경입니다. 다른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이미 날 때부터 보지 못하던 사람, 듣지 못하던 사람, 중풍병과 여러 병에 걸린 사람들을 그날 처음 만나 고치셨지만 나사로의 죽음은 달랐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도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특별한 관계이기에 특별한 대우를 기대했던 믿음은 배신당하고 이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슬픔이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아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대우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기에 당연하게 편의를 봐주고 순서를 어겨서 급행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당연하게 요구하곤 합니다. 오늘날 그것이 우리나라의 여러 가지 문제의 기원이 아닙니까? 아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한 대우이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바로 부당한 특혜가 되는 것입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줄서기에서 나타납니다. 줄을 선다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어떤 특혜를 주셨습니까? 예수님에게 특혜를 요구하던 이야기는 예수님의 12 제자중 두명인 야고보와 요한, 즉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의 이야기에서도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까이 가실 때에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예상하고 계셨지만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큰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이제 그들은 그동안의 고생을 씻고 출세의 길이라도 열릴 듯이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이렇게 부탁합니다.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그런데 예수님이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로 알고 구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고난의 길을 가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마시려는 잔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가까이에, 예수님와 좌우편을 차지하려는 사람은 예수님이 마시시는 고난의 잔을 함께 마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치관이 우리와 다릅니다. 예수님은 세베대의 아들들에게 특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첫 번째 순교자가 되게 하셨고 요한도 모진 고초를 당했지만 그 고난의 삶을 견뎌내고 끝까지 남아서 바로 순교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영광을 받을 것임을 기록하여 증언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주시는 특혜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맡았다는 것은 더 예수님을 더 철저하게 따라서 살아갈 특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특권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실천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특별한 관심을 요구했습니다. 이들의 요구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나사로가 죽게 그대로 두시는 것, 그 가정이 절망의 슬픔을 견뎌내게 하시는 것, 그렇게 해서 부활이라는 충격적인 기쁨을 맛보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이야기의 전제는 그가 어떻게 죽었는가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부활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죽음이라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부활의 기쁨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됩니다. 주님은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그 사랑을 믿고 특별한 믿음의 응답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더 낮아질 수 있고 세상에 속한 것에서 만족을 구하지 않고 더 험한 길을 담대히 갈 수 있고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은 일을 기꺼이 해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믿음이란 그저 모든 것이 아무 문제없이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가 아니라 끝내 하나님의 선하심이 승리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심지어 죽음까지도 견뎌내는 힘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그 믿음의 자리로 초대하십니다.

요한복음을 기록하던 시대에는 죽어서 천국간다는 생각보다 예수님이 곧 다시 오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데 예수님은 다시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기다림 속에서, 박해 속에서 성도들은 믿음을 지키다가 세상을 떠나는데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애타게 간구합니다. “주여 사랑하시는 자들이 죽어가고 있나이다. 언제 오시는 것입니까? 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시지 않습니까?” 이러한 탄식과 기도에 대해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하며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나사로를 보라, 우리 주님은 나사로도 다시 살리시지 않았는가? 우리는 죽음의 이편과 저편을 절대적으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그 것을 뛰어넘으시는 분 아니신가? 예수님은 죽음의 심연에서도 우리를 다시 건져 내실 것이다.”

초대교회의 믿음에서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들에게는 순교의 열망있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인정된 사람들은 순교자들이었습니다. 얼마나 큰 사랑을 받았기에 죽음도 이겨낼 수 있었는가하는 경탄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인이라고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순교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을 기념하고 그들의 이름을 따서 세례명을 붙이는 것이 관례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린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천국에서 받을 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헐벗고 굶주리고 박해를 받았던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며 가장 큰 영광을 받을 사람들이라고 믿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 믿고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름을 먼저 기억하지만 초대교회에서 기억된 이름들은 다 순교자들의 이름이었습니다.

인도의 선교사였던 윌리엄 케리는 “침례교선교회”라는 선교단체를 만들고 그 단체의 1호 선교사로서 직접 인도로 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후원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위해 단단히 줄을 붙잡아준다면 나는 그 줄을 따라 아무리 깊은 구덩이라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단체이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이 1호 선교사로 나가는 특권과 명예를 얻었고 자신에 대한 그들의 사랑과 후원을 믿었기에 더 담대하게 험한 곳을 향해, 더 담대하게 고난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사람들이 더 큰 믿음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더 큰 고난을 이겨내기를 원하시고 더 큰 믿음의 본을 보이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도 끝까지 주님만을 사랑하고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끝까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의 능력을, 부활의 권능을 약속하십니다. 이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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