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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엔딩 / 시편 88:14-18


14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15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

16 주의 진노가 내게 넘치고 주의 두려움이 나를 끊었나이다

17 이런 일이 물 같이 종일 나를 에우며 함께 나를 둘러쌌나이다

18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오늘은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 세상 누구나 자신의 인생이 해피엔딩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바라던 것을 성취하고 기다리던 사람을 만나고 수고하고 애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결과물을 얻게 되기를 원합니다. 더 나은 삶을 꿈꾸고 내 수고가 헛되지 않는 삶에 대한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삶이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남들보다 더 수고한다고 해서 더 좋은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고 내가 꿈꾸고 바라는 바가 다 성취되는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참아주어도 노력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 관계들도 많습니다. 한번 기회를 놓쳐버리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면 그 상실감이 평생을 가기도 합니다. 과연 인생에 답이 있는지, 헤어나갈 구멍이 있기는 한 것인지, 이 어두운 터널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무한히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지쳐가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런 인생은 우리가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또한 그런 현실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영화를 볼지 선택하게 될 때에 가능하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를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감독들은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실력이 있는 감독들은 오히려 묵직한 삶의 이야기, 우리가 잊고 싶었던 삶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관객들 앞에 펼쳐놓는 것을 좋아합니다. 재미있고 가벼운 영화를 보고나면 복잡했던 현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고 영화가 끝나고 나면 아무 생각이 안나곤 하지만 현실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들, 슬프게 끝나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잊었던 우리의 현실에 직면하게 하고 그 현실의 의미와 마주 대하게 합니다.


예전에 전도사로 섬기던 교회에 어느 착하고 성실하고 봉사를 잘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늘 예배시간이면 방송실에서 봉사를 했는데 어느날 그 청년과 이야기를 하면서 “설교를 듣는 것이 무섭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은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는데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면 믿으면 다 잘되어야 하시고,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 인생은 오답인가, 나는 버림받은 인생인가 하는 두려운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교회를 안 올 수도 없어서 선택한 곳이 방송실이고 설교시간에 방송실에서 헤드폰을 쓰고 있지만 스위치를 끄고 설교를 안들을 수 있어서 방송실에 들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앙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막연히 잘 될 것이라는 기대,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믿음을 신앙으로부터 얻고자합니다. 긍정적인 사고가 바로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긍정적인 사고가 신앙의 본질일까요?


새벽 설교에서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스톡데일 패러독스”(The Stockdale Paradox)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임스 스톡데일은 월남전에서 포로로 잡혀서 모진 고난을 이겨내고 7년 반 만에 석방이 되었던 미군 장교의 이름입니다. 그는 포로생활을 통해 낙관주의자들이 오히려 포로생활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어가는 현실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지 못한 채 단순히 ‘곧 풀려나겠지’라고 기대만 하는 낙관주의자들은 그들의 기대가 이뤄지지 못하자 더 크게 상심을 하고 결국은 포로생활을 이겨내고 살아남는 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견뎌낸 사람들은 오히려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언젠가는 풀려날 것이라는 확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그 현실에 적응해나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를 할 때 늘 등장하는 구분이 성악설과 성선설의 구분입니다. 과연 기독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볼까요, 아니면 부정적으로 볼까요? 기독교 신앙의 특징은 성악설도, 성선설도 아니고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 아닌 일종의 현실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지으신 낙원이라는 곳에도 뱀이 있었고 유혹자가 있었다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무조건적인 낙관주의를 가르치지는 것도 아니고 인간의 운명이 깊은 수렁에 빠져 헤어나올 길이 없다는 비관주의를 가르치는 것도 아닙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의 가능성을 열어주지만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유혹, 우리의 길을 가로막는 고난의 세계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이 당했던 고난의 세월과 존경할 만한 믿음의 영웅들의 이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보여주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려줍니다. 성경은 결코 신앙을 가지면 만사가 형통하다는 자기 최면을 전파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88편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새드엔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탄식으로 시작하는 많은 시편들이 그래도 마지막에 가서는 찬양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의 마지막 구절은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입니다. 이렇게 끝이 납니다. 마지막에 어떤 은혜로운 반전도 없고 쓰라린 삶의 현실의 고백만이 담겨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시편이 소위 주류의 낙관적인 신앙에 저항하는 비주류의 작품도 아닙니다. 오늘 시편의 저자로 기록되어 있는 고라의 자손들과 헤만은 모두 다윗의 시대에 공식적인 찬양사역을 담당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런 시편이 성전의 예배를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오늘 시편이 만들어 진 것입니다.


이 시편 88편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 담겨있습니다. 저자는 질병과의 싸움을 통해 죽음의 문턱까지 내려갔던 두려움을 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세월을 통해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외로움을 겪었고 이런 경험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쌓여 갑니다. 이런 것을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 우리의 원망 속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라는 인정이 담겨 있기도 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재수나 운명의 탓으로 돌릴지는 몰라도 하나님을 원망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이고 자신의 억울함에 대한 탄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기쁨과 감사만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경한 원망과 탄식도 성경의 여러 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은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기대, 그리고 그 기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결국 그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의지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역설적 고백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야단맞고도 “엄마~”하고 울며 엄마에게 안깁니다. 물론 다 큰애들은 엄마와 싸우면 문닫고 방에 들어가 대화를 거부하지만 어린이가 어린이인 증거는 울면서 엄마를 찾을 때 나타납니다. 원망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표현이 되고 하나님을 향해 내 고민, 내 하소연, 내 상한 마음을 고백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속에 있는 생각들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지내는 사람들이 더 대하기 어렵습니다. 불만이 뭔지 문제가 뭔지 솔직하게 이야기함을 통해 관계가 발전하게 됩니다.


기도는 지금 내 안에 있는 가장 솔직한 감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구하는 기도입이다. 그러나 그런 기도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우리가 깊이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실한 감정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는 신뢰를 가지고, 또한 그 신뢰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가 우리 안에서 저절로 울려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세파 속에서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는 우리들을 비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상태를 받아주시고 그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시면서 우리와 깊은 연대를 보여주시고 그러시면서 서서히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가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기도할 때 요란하게 소리를 내면서 기도해야 하냐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늘 습관처럼 소리를 지를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 속은 지금 썩어가는 데,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데 언제까지 젊잖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만 하고 앉아 있어야 합니까? 그것이 더 이상한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에서도 마치 아무 일 없는 것이 멀쩡한 척 지내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다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 우리도 각자의 고민과 갈등과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굳이 아닌 척 하면서 살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서라도, 하나님의 집에서라도 나의 짐을 내려놓고 울 수 있고 하나님 앞에 나와 우리의 슬픔을 내어 놀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도하는 것은 탄식을 시작하는 하는 것, 눈물을 흘리는 것이고 이런 시간들은 우리의 인생이 아직 과정 중에 있으며 좀 더 먼 미래를 바라보며 우리의 호흡을 고르는 과정입니다. 격한 감정의 토로 뒤에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게 되고 그러면서 앞으로 남은 시간들을 견뎌낼 힘을 얻게 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이야기를 심각하게 다 벌여놓고는 갑자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다면 관객들로부터 욕을 먹을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피할 수 없는 단계가 있습니다. 신앙은 해피엔딩이라는 겉껍데기를 우리의 인생에 뒤집어 씌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현실은 현실이고 그 현실은 어디로 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현실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감정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현실을 부정하다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과정 속에서 우리의 현실 속에 담긴 의미의 실마리들을 찾아내게 되고, 그것을 붙들고 그 현실을 견뎌내며, 결국은 이겨내게 되는 과정은 우리의 인생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단축될 수 없고 건너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딘가에 지금 우리의 삶이 놓여 있습니다.


어느 인생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생의 길을 가는 것이고, 그 가운데 닥치는 문제들과 씨름하며 때로는 성취감에 기뻐하며, 때로는 패배감에 쓰라림을 안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새드앤딩으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아직 우리 인생의 최종적인 결말은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이 슬픈 인생의 한 순간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라고 단정짓지도 않습니다. 오직 이 길을 통해 우리를 만나주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우리는 내일 다시 새로운 출발, 도전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모든 생각, 우리의 모든 감정을 다 받아주십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상하고 지친 모습을 드러내고 위로받으며 이 긴 인생의 여정에 동반하시고 지켜주시는 그 은혜의 자리를 회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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