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5.21(주일) 주일설교 요약

by ADMIN on May 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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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대로 이루시도다 / 열왕기상 8:15-21

15 왕이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16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17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18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19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20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이어서 일어나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21 내가 또 그 곳에 우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과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을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성 소피아 사원은 본래 동방정교회를 대표하는 성당으로 지어졌습니다. 이 성당을 지은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헌당식을 할 때 이 성당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솔로몬, 내가 그대를 이겼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솔로몬의 성전을 본적은 없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축물은 있을 수 없다는 감동의 외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솔로몬은 자신이 지은 성전을 보고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이야기에 빗대어 말해보자면 아마도 솔로몬이 하고 싶었던 말은 “내가 아버지를 이겼다”가 아니었을까요?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은 영웅이었고 모든 면에서 솔로몬보다 탁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왕이 되어 겸손하게 하나님께 나라를 다스릴 지혜를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루지 못한 것이 성전 건축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은 솔로론의 몫으로 돌아가게 되고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여 헌당하는 영예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자신이 드디어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룬 왕이 되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솔로몬의 보다 깊은 믿음의 고백을 들려줍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봉헌하면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솔로몬의 이 고백은 단지 의례적인 겸손의 고백만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놓을 성전을 짓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허락하지 않으셨고 그의 아들이 짓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성전을 짓지는 안았지만 성진을 지을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해놓았습니다. 돌을 다듬어놓고, 놋과 백향목을 준비했을 뿐아니라 성전의 설계도도 그려놓았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제사장, 찬양대, 문지기, 곳간지기까지 모든 조직을 다 준비해놓았습니다.

물론 사람들을 동원해서 성전을 직접 건축하며 수고한 것은 솔로몬이지만 솔로몬은 이것이 자기 스스로 이룬 일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충분히 하실 수 있던 일을 자신에게 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을 했기에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이 한 것 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내가 할 수 있도록 예비하시고 도우셨기에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성취한 일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갑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어떤 일들을 이루고 계십니까?

예전에 대학에서 역사학 개론을 배울 때, 첫시간에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서양의 역사학은 기독교의 시간관과 그리스철학의 비판정신의 결합되어 형성되었습니다.” 기독교의 시간관이란 어떤 시간관입니까?

이 세상에는 다양한 시간관, 세계관이 존재합니다. 순환적인 시간관도 있고 이 세계가 접차 퇴보한다는 퇴보하는 시간관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적인 시간관은 직선적, 진보적, 목적론적 시간관입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역사는 반복되고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이 펼쳐지는 과정입니다. 선이 악을 이기고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드라마이며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최후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기독교 신앙 가운데에서도 장로교신학이 가진 특징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강조입니다. 인간의 수고가 의미가 없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로교 신앙이란 내가 수고하고 애쓰며 성취한 모든 것을 돌아다보면서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며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 그런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인도하심, 도우심이 없다면 인간의 노력은 아무것도 아님을 알기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두가지 극단적인 사고방식이 있습니다. 먼저 비관적인 태도가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은 신앙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서 나의 운명은 나의 힘으로 개척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의 노력이 중요하지만 내가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그 노력의 근거를 잃게 됩니다. 오늘날 청년들의 삶에 대해 삼포세대, 오포세대, 칠보세대 하더니 이제는 끝도 없다며 N포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습니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도 희망이 있을 때에, 믿음이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 다른 극단은 지나친 낙관론입니다. 만일 어느 입시생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너는 이번에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게 될 것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학생이 그 말씀을 확실히 믿고 자신이 붙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긴장을 풀고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결국 그 학생은 진학에 실패하게 될 것입니다. 지나친 확신은 우리의 손을 느슨하게 하고 우리를 게으르게 하여 오히려 우리가 확신한 바를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건전한 신앙의 근본은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믿음에 대해 이렇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세상에 선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아무리 어둡고 부정적이고 또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라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가신다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주기도문을 정리해 보면 두가지 간구로 요약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실 것을 구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기 위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죄에서 건지지고 우리를 모든 시험에게 승리하게 하시며 모든 악에서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것을 믿고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며 그렇게 기도한 대로 살아가는 그런 삶을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영국인들은 전투에서는 지지만 끝내는 전쟁을 이긴다(England loses every battle except the last one)는 격언이 있습니다. 한번, 두 번 전투에서 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사명,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결국은 마지막 전투를 이기는 대반전을 이루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낸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로 끝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뒤돌아보면 눈앞에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선을 지키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여 대반전을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하루 하루의 삶에서 시험에 넘어질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뒤로 후퇴하는 삶을 살수도 있지만 결국 하나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고 나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나는 포기하지 않고 그 믿음이 있기에 나는 다시 도전하고 그 믿음이 있기에 오늘도 다시 일어나며 하루 하루를 헛되게 보내지 않고 나의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스스로 나의 계획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그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의 미래가 궁금하십니까? 그렇다면 성경을 읽으면 됩니다. 성경은 이미 하나님은 여러분의 미래를 위한 선한 계획을 세워놓으셨으며 지금도 그것을 이뤄가고 계신다고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로마서)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고 그래서 우리를 부르셨고 그래서 우리를 의롭게, 그리고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립보서) 우리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우리의 이웃들을 어떻게 바라보든지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선한 일을 계획하셨고 그 계획대로 이루실 것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데살로니가전서) 내가 할수 있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못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이 이루신다”라는 말씀에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게 되도록 하나님이 작정하셨기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우리의 미래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더 선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나쁜 습관들은 다 끊게 될 것이고 우리를 유혹하는 모든 유혹을 이겨낼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베푸는 사람이 될 것이고 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될 것이고 우리는 더 굳건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우리는 넘어지고 우리는 실패하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시고 우리가 이룰 수 있도록 도우시고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우리가 모든 유혹과 악에서 승리하게 하시고 우리를 거룩하고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솔로몬은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놓고 “여호화께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이라는 성전을 지어가며 하나님 앞에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오늘 말씀대로 이루어져 우리의 삶의 현장이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믿음의 현장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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