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6.25(주일) 주일설교 요약

by ADMIN on Jun 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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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금하신 것 / 열왕기상 21:1-6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산을 왕께 줄 수 없다 하므로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5 그의 아내 이세벨이 그에게 나아와 이르되 왕의 마음에 무엇을 근심하여 식사를 아니하나이까
6 왕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네 포도원을 내게 주되 돈으로 바꾸거나 만일 네가 좋아하면 내가 그 대신에 포도원을 네게 주리라 한즉 그가 대답하기를 내가 내 포도원을 네게 주지 아니하겠노라 하기 때문이로다

오늘은 6.25 전쟁발발 6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 공산군의 남침으로 전쟁이 시작되었고 국군은 북한군의 공세를 견뎌내지 못하고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전세를 뒤집고 결국 공산군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일까요? 많은 분들이 미국을 비롯한 유엔군의 참전과 인천상륙작전을 떠올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을 지적합니다. 그것이 바로 바로 6.25전쟁 발발 직전에 시행된 농지개혁입니다.

남로당의 박헌영은 김일성에게 남조선에는 사회적인 불만이 가득하기 때문에 남침하기만 하면 남쪽에서는 인민들의 봉기가 일어나 쉽게 전쟁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박헌영이 말한 것 같은 대규모의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고 초반의 일방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저항에 맞부딛히게 됩니다. 그 이유는 공산주의의 선전이 통하지 않는 사회개혁이 이미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방직후의 한국 사회는 사회적인 불평등이 심화되어 있는 상태였고 토지의 70%가 지주의 땅을 소작하는 형식으로 경작되었고 소작료는 적어도 50% 많게는 80%까지 내어야 했습니다. 해방이후 남북으로 분단된 후에 북한에서는 공산주의 이론에 따라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토지를 나눠주었고 이 소문이 남한에도 퍼지게 됩니다. 이 때 이승만 정부는 북한의 사회주의 농지개혁에 상응하는 적극적인 농지개혁법을 입안을 하게 되고 6.25전쟁 발발직전엔 3월에 법안이 통과되어 5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북한과는 달리 유상매입 유상분배의 방식을 따르고 있었지만 북한은 무상으로 분배하는 대신 생산물의 25%를 세금으로 징수했기에 사실상 무상분배가 아니라 국가지주제나 마찬가지였던 반면에 남한에서는 토지생산량의 150%를 지가로 상정해서, 한해의 생산물의 30%를 5년간 납부하면 자기 땅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공산주의 정책을 지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평생을 25%를 내는 것 보다는 5년만 30% 내면 자기 땅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한의 농지개혁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성공적인 개혁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농지개혁이 끝났을 때에 농지의 90%이상이 자작농으로 바뀌게 됩니다.

북한이 무력으로 침략을 했지만 농지개혁 때문에 남한 사회에서 공산주의는 환영받지 못했고 한국사회는 농지개혁에서 성공하면서 전근대적인 지주중심의 농업국가에서 산업화되고 민주화 될 수 있는 기반을 닦게 됩니다.

전근대 농경사회에서 땅은 가장 중요한 자원이며 사회질서의 기본이었습니다. 누가 땅을 소유하는가의 문제, 어떤 제도를 통해 구성원 모두가 토지에 기초한 삶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 줄 수 있을 것인가는 역사적으로 농경사회 어디에서나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오늘 본문도 땅의 소유권에 대한 갈등을 보여줍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이지만 북쪽의 이스르엘이라는 성읍에 겨울궁전이 있었고 그 인근에 나봇의 포도원이 있었습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나서 그에게 그 땅을 팔 것을 제안하고 값으로 나봇이 원하는 대로 다른 포도원을 대신 주거나 돈으로 값을 쳐주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봇은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나봇은 왜 거절했을까요? 물론 왕과 거래를 해서 쉽게 이익을 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었겠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나봇은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나봇은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파는 것을 하나님이 금하셨다고 말했을까요? 나봇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시대에 땅이 가지는 의미를 좀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땅은 하나님이 약속의 신실함의 상징이며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의 상징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역사는 약속의 땅을 향한 여정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가나안땅을 정복하고 나서 여호수아는 각 지파별로 땅을 나누어주었고, 또 각 지파는 각 가문별로 땅을 골고루 나누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면서 또 다른 지배자들, 또 다른 왕족들, 귀족들에 의해 자유와 풍요를 상실한 그런 백성들이 되기를 원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각 집안이 땀흘려 수고하여 결실을 얻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그런 삶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영적인 질서만을 가르치는 책이 아니라 어떻게 진정으로 모든 사람들이 어떤 사회질서를 이루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핵심적인 사회질서는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을 중심으로 한 성경에 등장하는 독특한 토지제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토지제도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모든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로 땅을 나눠주셨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각 지파와 각 가문들은 땅의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경작할 권리는 있지만 땅을 매매할 권리는 없었습니다.

성경의 규정은 땅을 매매할 수는 없지만 50년이라는 연한 안에서 원래의 주인으로부터 경작권을 양도받을 수는 있었습니다. 내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지만 성실하게 경작하지 못했거나 풍수해나 여러 가지 재난으로 인해 먹고살만한 충분한 소출을 거두지 못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땅을 누군가에게 넘겨야 했고 자신도 남의 밭에서 종으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또 더 탁월한 농사기술을 개발하거나, 또는 풍수해, 병충해 등을 빗겨갈 수 있어서 더 많은 재산을 모아 다른 사람의 땅을 살만한 재력을 가진 사람들도 등장하게 됩니다.

부유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과 땅에 대해 거래를 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토지 자체의 소유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50년마다 찾아오는 희년까지 한시적으로 그 땅을 임의로 경작하여 수확을 얻을 권리를 갖는 것입니다. 희년이 되면 모든 빚이 탕감되고 종들도 자유를 얻게 되고 조상들이 물려준 땅을 되찾게 되어 다시 새출발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당시에 토지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경제적인 기반이었음으로 희년이라는 제도를 통해 토지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지 못하게 하고 노예의 신분이 영속화되지 못하게 함으로 경제적인 양극화를 제도적으로 막아서 사회적인 활력이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성경은 우상숭배에 대해서도 경고하지만 가난한 사람의 땅을 빼앗는 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가옥에 가옥을 연하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서 홀로 거하려하는 그들을 화있을 진저”(사 5:8)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미 2:2)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신 19:14)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27:17)

오늘 본문은 나봇이 거래를 거절 한 후의 아합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아니하니” 아무리 왕이지만 토지의 소유를 자기 임의대로 할 수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토지를 사고파는 것은 단지 개인 간의 사적인 거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깨뜨리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합의 왕비인 이세벨을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세벨은 바알을 섬기는 시돈의 공주였고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이런 어의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당연히 왕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당연히 성취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는 것이고 왕의 제안을 거절한 나봇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거짓 증인을 내세워 나봇이 하나님을 저주했다고 고발을 하게 한 후에 나봇을 죽이고 땅을 빼앗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마지막 선을 넘은 행동이었습니다. 그전까지 하나님은 아합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나봇의 땅을 빼앗은 것은 아합이 행한 가장 악한 일이 되었기에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결정적인 심판을 아합의 가문에 선포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한 왕조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하나님이 정하진 영적인, 사회적인 질서를 지켜나가지 못할 때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부르며 나라를 위해 고귀한 희생을 한 분들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만약 왜 우리가 피를 흘리면서까지 나라를 지켜야 하는가라고 질문한다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애국심에 호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니까 당연한 것이라고 대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더 중요한 것은 이 나라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인가, 그리고 우리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를 세워가야 할 것인가, 우리가 목숨을 걸고라도 지킬 가치가 있는 그런 나라를 세워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에 6.25 전쟁 당시에 우리나라가 극단적인 사회적 불평등 속에 있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 나라의 체제 안에서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나라였다면 공산군의 침략을 이겨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중국의 국공내전에서도 더 많은 땅과 자원을 가지고 있었고 미국이 지원했던 국민당이 패하고 공산당이 이겼고 베트남 전쟁에서도 미군이 직접 참전했는데도 월맹군이 이겼습니다. 6.25 전쟁에서 공산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도와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 나라 대한민국이 나와 내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보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물론 강력한 군대, 우수한 무기도 있어야 하겠지만 안보의 기초는 진정으로 국민들의 마음속에 이 나라가 내가 목숨을 걸고라도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라는 확신을 갖게 하는 데 있습니다. 전방에서 나라를 지키는 젊은이들이 제대하면 먹고살 것이 없고 아무런 희망이 없고 이 나라가 자신들의 꿈과 미래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는 암울한 사회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사회를 위해 어떻게 그들이 목숨을 걸고 싸울 수 있겠습니까? 이 나라가 진정으로 각자의 몫을 찾아주는 정의로운 나라, 개인의 개성과 인격이 존중되는 자유로운 나라가 될 때에 진정한 애국심이 솟아나게 되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와 번영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더 이상 땅이 유일한 삶의 기반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문자 그대로 따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또한 성경은 물질세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이 영적인 질서만이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생명을 소중하게 창조하셨고 각 사람마다 행복한 삶을 영위할 기초적인 삶의 기반을 주셨다고 가르칩니다. 희년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주신 권리를 한 사회가 제도를 통해 함께 찾아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가치를 따라 국민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의 기반을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하고 어떤 권력자라 할지라도 그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신 것”이라는 인식을 확고하게 세워가야 합니다.

진정으로 정의롭고 자유로운 나라를 세워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을 꿈을 꾸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믿고 성경이 가르쳐 주는 가치를 이 세상가운데 이뤄가기 위한 헌신이 삶의 목적이 되는 그런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나라를 꿈꿉니까? 어떤 나라를 세워가야 할 것입니까? 그 사명을 위해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어떤 수고와 헌신을 감당할 것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하며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지켜나가는 그런 나라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며 함께 꿈을 꾸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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