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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가는 길 / 사도행전 28:11-15

11 석 달 후에 우리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니 그 배의 머리 장식은 디오스구로라
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13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14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15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1세기 로마의 시인 마르티알리스(Martialis)는 자기 친구였던 푸블리우스(Publius)가 키우던 작고 귀여운 개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남겼습니다. 이 글은 당시에도 로마의 귀족들이 애완견을 키웠다는 증거로 인용되기도 합니다. 그 친구가 키우던 개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말티즈(Maltese)였습니다. 말티즈라는 이름은 몰타섬(Malta)이 원산지인 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몰타는 지중해에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섬인데 그의 친구 푸블리우스는 당시 몰타섬의 총독이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앞에는 바울이 멜리데(Melite)라는 섬에서 행한 이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멜리데섬이 바로 오늘날의 몰타섬입니다. 몰타섬에 바울이 도착했을 때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Poplios)의 환대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보블리오의 라틴어식 이름이 푸블리우스인데 바로 마르티알리스의 친구였던 사람입니다. 보블리오가 바울 일행을 대접하는 자리에 어쩌면 그의 강아지가 낯선 이들을 향해 짖어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에는 몰타섬에서 바울과 관련된 두 번의 이적을 기록되어 있습니다. 난파된 배에서 구조된 바울 일행을 위해 섬의 주민들이 불을 피웠는데 나무 속에 있던 독사가 튀어나와 바울을 물었습니다. 당시 몰타의 주민들은 정의의 여신(Dike)을 섬겼기 때문에 사람들이 바울이 풍랑에서는 살아남았지만 독사에 물린 것은 살인죄 같은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정의의 여신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의 표현으로는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하는도다”(4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바울이 곧 죽을 줄 알았는데 아무런 일이 없자 이제는 바울을 신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환대한 보불리오의 아버지가 병이 걸려 누워있었는데 바울이 안수하고 기도하여 그를 고쳤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바울은 왜 몰타섬에 가게 되었을까요? 본래 바울의 목적지는 로마였습니다. 바울 일행은 가이사랴를 떠나서 그레데(Crete)에서 도착했고 바다가 험한 겨울항해를 피하기 위해 그 곳에서 월동을 하려 했지만 별 일이 없을 것이라는 선박과 선주의 고집으로 로마로 출항하여 겨울바다를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여러 날을 풍랑 가운데 표류하다가 그레데에서 8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몰타섬 앞에서 배가 파선을 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생명을 건지고 몰타섬에 상륙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뒷부분은 바울이 로마에 가는 여정을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고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라고 감격적으로 로마에 도착하게 된 것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한 것은 사도행전 전체로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예수님의 선교명령에 대한 사도들의 응답의 절정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바울이 로마에 가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택하셨고 바울은 부르심에 순종하여 오늘날의 터키와 그리스를 중심으로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3차 선교여행을 마치게 되었을 때 그는 이제 헬라어를 사용하는 지중해 동부지역을 넘어 라틴어를 사용하는 또 다른 문화권인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믿음의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로마로 가게 되는 여정은 전혀 뜻밖의 길이었습니다. 그는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에 갔다가 바울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이 소란을 일으키고 바울을 로마의 평화를 깨뜨리는 사람으로 고발하였기 때문에 총독앞에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바울은 부당한 고발에 대해 총독이 올바른 재판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가진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사용해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상소하여 그렇게 로마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로 가는 항해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고 큰 풍랑을 만나 표류하다가 몰타섬을 거쳐 로마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드디어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에 이르는 바울의 여정을 보면 우리는 서로 모순이 되는 것 같은 두 가지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우리가 바울보다 더 예수를 잘 믿고 바울보다 더 많이 기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믿음이 좋고 그렇게 신실한 사람이라면 어떤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십니까? 아마도 아무런 문제없는 평탄한 인생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시지는 않습니까? 게다가 바울은 요나처럼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로마로 가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로마로 가는 길은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위태로운 여정이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바울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지내왔던 선교여행의 과정에서도 바울은 여러 번 대적자들에 의해 핍박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많은 환란을 당해야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서 바울은 자신의 선교여정 중의 고난에 대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린도후서 11:23-27)

이런 밖에서 찾아오는 고난뿐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금되어 있을 때에 로마 총독 벨릭스는 그가 로마시민으로서 유력한 가문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풀어주기 위해 그의 친지들이 뇌물을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2년이나 바울을 풀어주지 않았지만 가족 중 누구도 바울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가족들이 유대교를 떠나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바울과 모든 관계를 끊어버렸던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바울의 생애에는 이렇듯 안팎의 고난이 그치지 않는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또한 그의 선교여행에 동행했던 누가는 바울이 가는 곳마다 이적이 나타나고 교회가 세워지고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났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믿음의 여정에는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굴하지 않고 어디서나 복음을 전했고 하나님은 그 고난 속에서 바울을 승리하게 하시고 곳곳마다 믿음의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이 땅에서 평안과 안정과 번영을 누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인간이 낙원을 떠나는 순간부터 온갖 고통과 근심이 그치지 않는 곳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는 크고 작은 풍파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풍랑을 통해 우리 인생의 보잘것없음을 알게 하시고 더욱 간절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고 우리를 연단시키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담대하게 이 세상의 모든 풍랑을 맞서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십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사순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통을 당하셨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에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시는 고난이었고 우리의 모든 고난이 결코 헛되지 않으며 그 고난을 넘어 부활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였습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설교의 주제와 관련된 찬송을 찾던 중에 바울이 만났던 풍랑을 생각하며 찬송가 413장을 찾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찬송가의 악보 윗부분에 몇 가지 정보가 실려 있습니다. 왼쪽에 작사자가 있고 오른쪽에 작곡자가 있고 그 위에 이 곡의 원래의 제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413장의 제목이 좀 특이했습니다. 빌 뒤 아브르(Ville du Havre)라는 불어여서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아서 찾아보기 시작하다가 이 찬송시와 관련된 놀라운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찬송시의 작사가인 호레이시오 스패포드(Horatio Spafford)는 19세기 미국에서 살았던 사람인데 변호사로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었고 신앙도 좋아서 당시에 최고의 부흥사였던 D.L.무디의 가까운 친구이자 후원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 마치 욥과도 같은 고난이 찾아옵니다.

그는 많은 재산을 당시에 새롭게 개발되고 있던 시카고의 부동산에 투자했는데 시카고에 큰 화재가 나서, 그것도 그가 소유한 건물들이 있던 곳에서 일어난 화재로 투자한 대부분의 재산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일로 충격을 받고 가족들과 위안을 얻기 위해 영국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카고 화재로 인해 발생한 손실을 정리하기 위한 일들이 남아 있어서 그는 늦게 가게 되었고 그의 아내와 네 딸들을 먼저 보냈는데 그들이 타게 된 배의 이름이 바로 빌뒤아브르였습니다. 이 배는 프랑스의 배였는데 뉴욕에서 영국을 거쳐 프랑스를 오가는 배였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대서양을 가로질러 항해하던 중에 다른 배와 해상에서 충돌하여 침몰하게 되었고 그 배의 많은 승객들과 함께 그의 네 딸도 구조되지 못했고 오직 그의 아내만이 구조되어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미국에 있는 스패포드에게 “홀로 구조되었음”(Saved Alone)이라고 전보를 쳤습니다. 그는 아내의 전보를 받고 급히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게 되었는데 어느 해역을 지날 때 선장이 그에게 이곳이 빌뒤아브르가 침몰한 곳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그때의 심정을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지난 목요일에 우리는 그 배가 침몰한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바다 한복판이었고 깊이는 3마일이나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사랑하는 아이들이 이곳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평안하게 내가 사랑하는 어린 양 예수님의 품 안에 안겨있습니다.”

그는 그 배안에서 그의 딸들을 생각하며 찬송가 413장의 가사를 지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평안해

When peace like a river, attendeth my way,
When sorrows like sea billows roll
Whatever my lot, thou hast taught me to say
It is well, it is well, with my soul

그는 이렇게 그가 닥친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냈지만 그 뒤에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가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다니던 교회의 성도들은 그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마치 욥의 친구들처럼 그가 이 큰 고난을 당한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위로를 받지 못했고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그의 지인들과 함께 새로운 신앙공동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그의 여생을 보낼 것인가 고민하던 중에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여 그의 신앙의 근본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기 전이었고 예루살렘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함께 고아원과 병원을 세우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삶에 헌신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의 심판입니까? 그렇다면 바울의 인생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좋으면 어떤 고난도 당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해도 바울의 인생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잘못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의 여정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안식의 항구에 도착하기 까지 이제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크고 작은 풍랑이 그치지 않고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그 풍랑 앞에서 좌절하고 낙심하며 원망으로 인생을 허송할 것입니까? 아니면 풍랑을 뚫고 다시 일어서며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갈 것입니까?

우리와 함께 고난당하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일으켜주시고 담대하게 인생의 풍랑을 맞서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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