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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 마가복음 1:1-8

오늘은 사순절 첫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부활절 전에 주일을 제외하고 40일을 거꾸로 세어서 시작을 하는데 늘 수요일에 시작이 됩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수요일을 참회의 수요일, 혹은 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지난 수요일이었습니다.

올해 사순절은 매우 특별한 기간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이 사순절 첫주일이지만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대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오늘부터 많은 교회들이 예배를 드리지 않거나 대폭 축소하여 간소하게 드립니다. 일종의 자가격리를 하는 것인데 한편으로 좀 서글픈 마음이 들지만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이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나가야 한다는데에 있어서는 모두 다 한 마음일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격리 혹은 검역이라는 뜻의 quarantine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이탈리아어의 quaranta에서 왔는데 그 뜻이 40일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간에 읽은 글에서 당시 중세의 이탈리아에서 외부에서 들어오는 배들에게 40일의 격리를 시행한 이유가 사순절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40일간 자신의 죄를 생각하며 모든 오락과 육체를 즐겁게 하는 일들을 자제하고 경건하게 보낸 후에 부활절을 기쁘게 맞이하듯이 배 안에서 40일을 다른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고 격리하도록 한 것이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격리라는 것도 성경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의 레위기에 보면 오늘날로 보면 감염의 위험이 있는 환자들을 진 밖에 격리합니다. 그래서 증상이 사라질 때까지 그 곳에서 머물게 하였다가 증상이 사라지면 제사장의 확인을 받은 후에 다시 공동체로 복귀할 수가 있었습니다.

조금 지나치다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지난 주간에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코로나라는 말이 왕관을 의미한다는 이야기를 다들 들으셨을 것입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 주위에 둥글게 마치 왕관을 씌운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부르는데 코로나는 라틴어로 왕관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코로나는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는 코로나가 아니라 우리를 매우 고통스럽게 하는 그런 코로나입니다.

지난 주간에 사순절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문득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이 생각이 났습니다. 예수님이 가시관을 쓰신 성화들을 많이 보셨을텐데 가시관을 라틴어로 스피네아 코로나(spinea corona)라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로마 군병들이 네가 무슨 왕이냐고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가시로 관을 만들어서 예수님께 씌우면서 유대인의 왕 만세를 외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그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가시가 달린,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코로나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순절을 맞이하며 우리 연약한 인간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가시 면류관을 쓰셨던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수고하고 고통당하는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 동참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위로해주는 분이시고 우리를 이 세상의 모든 죄악과 고통과 근심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은 우리가 본의 아니게 매우 경건하게 보내게 되었습니다. 많은 모임들이 다 취소가 되었고 매우 간소한 일상들을 보내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의 측면에서도 공동체가 무엇인지, 예배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다시 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텔레비전과 뉴스를 보면서 너무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교회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이 나라를 당장 망하게 하는 일처럼 비난하는 소리들을 듣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나라가 위태롭게 되었는데 예배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예배드린다고 사람들을 모아서 바이러스를 확신시키려 하냐고, 니들이 신천지하고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예배가 그런 것일까? 괜한 짓 해서 사람들을 감염이나 시키는 그런 것인가? 그냥 안하면 되는 것을 우리가 이렇게 연연하는 것인가? 저는 이번 주에 모든 교회들이 내린 결정을 다 존중합니다. 그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오늘은 이렇게 간소하게라도 함께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유지를 해보지만 사실 앞으로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그냥 교회가 예배를 중단을 해야지 왜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고집을 부리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대형교회였다면 당연히 오늘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번 기회가 오히려 작은 교회들의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여러분들께 전해드린 당회 결정사항 안내문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저희 당회에서는 첫째는 과학적으로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인 사실들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무조건 된다 안된다로 갈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둘째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다 성숙하고 인격적이신 분들이시니까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실 수 있도록 신뢰를 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송한 말씀이지만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만 드리자면 여러분들 아시는대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형교회 중 하나인 명성교회 부목사님이 확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확진자인줄 모르고 이미 주일예배도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 목회 활동도 하셨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제 큰일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잘못하면 명성교회도 신천지처럼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 목사님과 밀접하게 접촉한 228명을 다 검진을 했는데 다 음성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누가 양성이 나왔냐 하면 그 목사님이 사시는 아파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던 동네 주민이 양성이 나왔습니다.

다른 말로 해볼까요? 예배를 드린다고 다 감염되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엘리베이터 같은 폐쇄된 공간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는 것이 예배당보다 더 위험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확증된 사례입니다. 물론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들을 통해 전염된 사례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 교회를 통해 발생한 사례가 그 정도에 그치는 것도 이미 많은 성도님들이 조심하시고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계시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회에서 결정을 내린 것은 지금 상황으로보면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이 있는 분들, 가능성이 높은 분들은 스스로 자제하시도록 안내를 하고, 다른 방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해서 성도님들이 선택을 하실 수 있도록 돕고 교회에 오시는 분들은 최대한 서로간의 접촉을 피하며 위생적인 조치를 취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여러분 아주 죄송하지만 목사인 저도 이 시대에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드리는 것이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인지, 신앙공동체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많이 혼란스럽고 좀 더 깊은 기도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동안 제가 생각하는 교회는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리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이미 오늘날 젊은 세대는 오프라인 보다는 온라인의 세계 속을 더 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와 멀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교회가 온라인 속에서 새롭게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하는 때가 온 것이지요.

사실 이미 이런 이야기들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별로 와닿지 않았고 아직 저도 익숙하지는 않지만 이제는 좀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준비를 해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가 교회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고 변화하는데 긍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여러분들이 어떤 선택을 하시더라도 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것이고 또 함께 새로운 도전 앞에서 새로운 믿음의 길을 개척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마가복음을 묵상합니다. 작년에는 주일에는 매일성경의 해당 본문과는 다른 본문으로 주제를 정하여 시리즈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올해도 3월부터는 그렇게 하려고 생각을 했었는데 현재의 상황이 몇 달에 걸친 설교 계획을 세워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매일성경의 본문을 그대로 따라서 당분간 주일에도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서는 가장 짧은 복음서이고 우리가 신약성경을 통독하게 되면 더 길고 내용이 많은 마태복음을 먼저 읽고 나서 읽게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내용이 중복이 되어서 별로 깊은 인상을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마가복음은 매우 심플하고 강렬한 복음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각각의 복음서를 계시록과 에스겔서에 나오는 네 생물에 비유를 하곤 했는데 마가복음은 대개 사자에 비유를 했습니다.

사자로 비유한 것은 먼저 마가복음의 전개가 매우 빠릅니다. 문체도 매우 간결합니다. 그리고 주된 내용 자체가 예수님이 권능을 나타내시고 이적을 행하시는 사건들입니다. 그래서 사자에 비유한 것입니다.

어쩌면 마가라는 사람 자체가 좀 성질이 급한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마가는 사도행전에도 등장하는 사람인데 좀 부잣집 도련님의 이미지가 있는 사람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강림사건이 일어난 곳을 마가 다락방이라고 부릅니다. 마가의 집의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있다가 성령을 받았기 때문인데 사실 집 주인은 마가가 아니라 마가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다락방에만 12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집에서 살았으니 큰 부자가 아니었겠습니까?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에 바나바가 마가를 데리고 갔었는데 그만 도중에 다시 돌아오고 말았지요. 그래서 2차선교여행 때 마가를 다시 데려가려는 바나바와 그럴 수 없다는 바울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소위 부잣집 도련님이라 해외선교가 너무 힘들어서 집에 돌아간 사람처럼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마가복음과 연관해서 생각해보면 어쩌면 마가라는 사람 자체가 화끈하고 성질이 있는 사람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마가가 먼저 돌아온 것에 대해서도 당시의 마가로서는 해외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 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해외의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그대로 따라다니지 않고 돌아온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제아무리 바울이나 바나바 같은 교회의 지도자들이라고 해도 그냥 좋게 좋게 따르는 지내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물론 마가도 나중에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헌신하게 되고 마가복음도 로마에서 기록했다고 전해집니다.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마가복음을 집중해서 읽게 되면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예수님의 이적, 그중에서도 치유의 이적들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는 치유에 대한 기록을 빼도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들이 비교적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마가복음의 경우에는 예수님의 설교에 비해서 이적의 비중이 훨씬 더 큽니다. 그렇게 보면 마가는 예수님을 더 뜨겁고 확실하게 믿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가가 믿고 우리에게 전해준 예수님은 한마디로 오늘 본문 1절에 기록되어 있듯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것같지만 각 복음서의 서두를 비교해보면 마가복음의 특징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매우 상식적으로 출발하는 것이지요. 반면에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너무 난해합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먼저 정의하지 않고 “우리 가운데 일어난 사실”을 알려주겠다고 말하면서 누가복음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은 화끈하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을 하면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탄생이나 다른 배경적인 이야기 없이 바로 세례요한이 등장하고 우리가 예수님의 공생애라고 부르는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말씀으로 넘어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하늘에서 오신 분, 하나님이 보내신 분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하시는 분, 그리고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하고서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다 하다가 16장에서야 베드로가 비로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마가는 그냥 처음부터 들이미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도 이와 같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무슨 다른 수식어를 붙이지 말고, 말을 돌리지 말고,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그렇게 믿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이 세상 사는데 도움이 되는 지혜로운 말씀을 전해 주신 인류의 스승 정도로 생각하면 마가복음을 읽어서는 별로 건질 것이 없습니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이 세상의 악한 권세와 한 판 승부를 벌리시며 치유와 이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창궐하는 바이러스의 두려움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사실 바이러스보다 더 염려되는 것은 점점 사람들이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타인은 언제든지 나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는 잠재적인 보균자들이 되어버립니다. 낯선 사람들은 더더욱 회피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정한 것이 옮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좀 더 양심적으로 말하지만 내가 부정한 존재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사람과 사람들의 사이를 점점 멀어지게 합니다. 아마도 이 난리가 지나가면 많은 관계들이 회복이 되겠지요.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예측하듯이 새로운 바이러스와 병원균과의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이 세상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개인주의적인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그러한 문화적인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자신의 방 안에, 정신적으로도, 또 문자 그대로도 그렇게 갇혀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외로워지고 사람들간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외부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질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21세기적인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보면 당시에도 서로 격리되며 서로 부정하다고 여기며 각자 자기 자신의 성 안에서 갇혀 살았던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이방인들과 접촉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들의 거룩함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지금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땅 전체가 더렵혀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누가 더 더러운가를 더 들추어내려고 합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성경 안에서 위생과 종교가 서로 뒤엉킨 정죄와 격리의 세계를 발견합니다. 사람들은 로마 사람들만 더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도 더럽게 생각하고 나병환자를 더럽게 생각하고 세리를 더럽게 생각하고 간음한 여인을 더럽게 생각하고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더럽게 생각합니다. 천지 사방에 부정한 사람들 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다 각자의 방 안에, 각자의 영역 안에 갇혀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타인에게 격리되어 또한 타인들로부터 스스로 격리하여 살아가던 세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더러운 세상 속으로, 이 오염되고 부정한 세상 속으로 들어온 분이 계셨습니다. 정결하고 거룩한 하늘을 떠나 이 부정하고 더럽고 오염되고 병든 세상 속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 분은 더럽고 부정한 우리들을 만져 주셨습니다. 격리되고 외로운 우리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위로하실 뿐 아니라 치유하시고, 건져주시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더럽다고 손가락질하고, 잠재적인 오염덩어리 취급을 하고,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저주 속에 갇혀 있는양 비난하고 조롱하는 저들, 그들, 그 악한 자들, 귀신들, 마귀들, 사탄의 아우성 속에서 우리를 건저주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그 분이 이 오염된 세상 속에 살아가는 부정한 우리들, 우리들의 이웃들조차도 멀리하는 우리를 찾아오셨기 때문이고,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치유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하늘에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시는 권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그 기쁜 소식,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오늘도 다시 듣기 원하고 다시 믿기 원하고 이 세상에 다시 전하기를 원합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 지쳐 가는 이 세상은,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 속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들은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오늘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만져 주시고 고쳐주시고 새 힘을 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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