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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씨앗 좋은 땅 / 마가복음 4:1-9

우리는 지금 바이러스와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스크 배급제가 실시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전쟁은 전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바이러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려고 하니 적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우리를 공격하는지 우리의 감각으로 잘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진짜 적이 아닌 우리의 눈에 보이는 다른 대상들을 적으로 여기게 되고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먼저 객관적으로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인간은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은 오염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을 사실로 보지 못합니다.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우리의 이해관계에 따라 변형시키고 곡해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보고 원하지 않는 것은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이 현실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부조리를 보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게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의지하며 과도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가도록 도우십니다.

지금 우리가 예배조차 제대로 드릴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이런 일들이 우리나라 교회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육이오사변 때도 예배는 중단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들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의 역사에서 적어도 두 번에 걸쳐서 예배가 중단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지난주일이 삼일절 101주년이 되는 날이었는데 당시에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교회들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쇄되어서 한 동안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게 되었을 때에도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교회들도 일제에 의해 문을 닫게 되어서 해방이 될 때까지 예배를 드리지 못했던 일들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이 세상의 일에 무관심하게 하늘의 일만을 추구했다면 그런 어려움을 겪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 땅에서 책임 있는 존재로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고자 하였기에 그런 어려움도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일제시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고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가 아니라 바이러스와 전염병이라는 새로운 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민과 갈등도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안고 한편으로는 예배자로서 또 한편으로는 책임 있는 사회적인 주체로서 어떻게 우리의 믿음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사명 속에서 겪게 되는 고민과 갈등인 것은 동일합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이전에도 여러 어려움들을 견뎌내었고 그러한 연단을 통해 새로운 부흥과 성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도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더욱 온전한 예배, 더욱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어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요즘 제 나름대로 틈틈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워낙 문외한이다보니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난감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지고는 있지만 어떤 것이 정말로 신뢰할 수 있는 이야기인지 어떤 것이 왜곡되고 과장된 것인지 분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도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많이 읽고 듣고 생각을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다고 갑자가 전문가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제가 아는 상식 안에서 이 바이러스라는 놈에 대해, 전염병에 대해, 그동안 사람들이 쌓아놓은 지식과 또 인간들이 싸워온 역사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관점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앞으로 이러한 일들은 반복이 될 것이기에 지금은 잘 몰라서 당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잘 몰랐던 이야기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를 여러분들에게 먼저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화가 진행이 되면서 인간들이 과거와는 달리 특정한 지역에 밀집해서 살아가게 되면서 전염병의 확산이라는 관점에서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문명화가 될수록 전염병이 더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킬 가능성이 오히려 더 커지게 된 것입니다.

1854년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콜레라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콜레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고 도시 전체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당시의 런던은 산업혁명으로 인해 공기의 오염이 매우 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오염된 공기가 질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사실상 콜레라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런던의 의사였던 존 스노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출산을 할 때에 마취하여 무통분만을 하게 할 정도로 마취의 전문가였기에 가스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것처럼 오염된 공기가 원인이라면 환자들의 호흡기에 문제가 생겨야 하는데 실제로 문제는 소화기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먹은 것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 먹었을까 연구를 하면서 환자들이 발생한 곳을 지도위에 표시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환자들이 브로드 스트리트라는 지역에 있는 수도 펌프의 주위에 밀집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펌프를 통해 나오는 오염된 물이 콜레라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환자들의 상태를 잘 알고 있는, 런던 교구를 담당하는 목사였던 헨리 화이트헤드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처음에는 화이트헤드 목사도 존 스노우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돌보는 성도들의 고난을 해결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직접 환자들을 만나서 설문지를 작성하고 조사를 해본 끝에 존 스노우의 주장대로 문제의 근원이 오염된 수돗물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조사를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서 런던시에 제출하게 되었고 결국 문제의 근원이 되었던 수도 펌프를 폐쇄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콜레라가 오염된 물을 통해 발생하는 수인성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콜레라는 영국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로 모든 도시들 마다 깨끗한 물의 공급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래서 오늘날과 같이 소독이 된 물을 공급하는 시설들을 도시들 마다 갖추게 되면서 대규모의 도시들이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전염병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존 스노우를 도왔던 헨리 화이트헤드 목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콜레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헌신은 그의 신앙이 제공한 것이었지만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게 된 것은 과학적인 지식과 합리적인 사고였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과학과 신앙이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생각하곤 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편견에서 벗어나 합리적으로 사고하면서 우리에게 맡겨진 사랑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1527년에 마틴 루터는 “치명적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것인가?”라는 글을 썼습니다. 유럽에서 흑사병은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여러 번 유행했었습니다. 마틴 루터 당시에도 흑사병이 대유행을 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어떤 사람들은 흑사병은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에 피해서 도망가는 것은 불신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물에 빠졌을 때 수영하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이라며 익사해만 하는가? 다리가 부러졌을 때 의사의 도움을 받지 말고 '이건 하나님의 심판이야, 저절로 나올 때까지 참고 버텨야 해'라고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배고프고 목마를 때 왜 당신은 먹고 마시는가? 이제 우리는 '우리를 악에서 구해주소서'라는 주기도문을 암송해서는 안 되는가?”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자비를 베푸셔서 우리를 지켜달라고 간구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소독하여 공기를 정화할 것이고, 약을 지어 먹을 것이다. 나는 내가 꼭 가야 할 장소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아니라면 피하며 나와 이웃 간의 감염을 예방할 것이다. 혹시라도 나의 무지와 태만으로 이웃이 죽임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기 원하시면, 나는 당연히 죽게 되겠지만 적어도 내가 내 자신의 죽음이나 이웃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웃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나는 누구든 어떤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이 글에도 신앙의 확신과 합리적인 사고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즘 생각이 많다보니 서론이 길어지게 되는데 이제 오늘 본문에 대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우리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라고 부르지만 여기서 사람은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이 사람은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씨앗이 아깝지도 않은지 아무데나 마구 뿌리면 어떡합니까? 여기서 사람의 역할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이 비유의 핵심이 뿌리는 사람에게 있다기 보다는 씨앗과 땅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제가 일종의 바이러스에 대한 노이로제에 걸렸는지 자주 보던 본문인데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생각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들어가려고 하는데 사람 몸 안으로 뚫고 들어가지 못하면 그대로 사멸하고, 뚫고 들어가더라도 인간의 면역 시스템에 의해 포위가 되면 그대로 죽게 되지만 그것을 다 뚫고 들어가 사람을 감염시키게 되면 그 사람은 30명, 60명, 100명에게 전파하는 슈퍼 전파자가 되느니라.

여러분 어떻습니까? 그럴듯한가요?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바이러스와 씨앗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성장과 변화가 있습니다. 바이러스도, 박테리아도, 세포, 씨앗도 다 성장하고 변화합니다. 아무리 예술가의 혼이 깃든 위대한 조각품이라도 무생물이기에 그저 돌덩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수백 년 동안 그냥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이란 아무리 작고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해도 성장하고 변화하고 번식하고 주변의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생명체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릅니다. 바이러스는 자기 스스로는 번식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세포에 기생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기생하는 생명체를 병들게 합니다. 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호흡기를 감염을 시키면서 증식을 하고 우리가 기침을 하게 될 때에 밖으로 빠져 나가서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가서 감염을 시키고 번식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바이러스와 미생물들이 인간의 몸을 다 병들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몸을 유익하게 하는 미생물들도 있고 우리와 함께 공존하며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에게 유익을 주는 미생물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기생을 하는 존재들도 있고 공생을 하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희생을 하는 존재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얼마 전에 우리가 기생충이라는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지만 사람들도 기생을 하기도 하고 공생을 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을 하기도 합니다.

씨앗과 바이러스는 다른 것이지만 그러나 씨앗도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땅으로부터 많은 것을 가져갑니다. 수분과 영양분을 빨아들이고 싹을 틔우고 자라나서 나무가 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므로 하나의 씨앗이 여러 개의 씨앗으로 번식을 하게 됩니다. 과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씨에서 거저 나오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뿌리를 통해 빨아들인 것으로 만들어 진 것입니다.

열대과일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두리안이라는 과일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쯤은 맛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냄새가 고약하기 때문에 싫어하시는 사람들도 있고 이것처럼 맛있는 게 없다고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캄보디아에 갔을 때에 한 번은 두리안 과수원을 하는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리안 나무는 물을 엄청나게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무 주위에 물을 가둬놓을 만하게 빙 둘러서 둔턱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계속해서 물을 채워놓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야 충분히 물이 공급이 되고 맛있는 과일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씨앗이 자라기 위해서 충분한 물이 있어야 하고 물과 함께 땅으로부터 많은 영양분을 흡수합니다. 그래서 한 곳에서 농사를 오래 짓게 되면 지력이 약해집니다.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비료도 뿌리고 새로운 땅을 개간하기도 합니다. 산술적으로는 들어간 것 보다 더 많은 것이 나올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들어간 것에 비해서 더 적은 것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병충해가 있고 가뭄과 한파가 몰려오면 아무리 좋은 땅에 심겨졌다고 해도 제대로 열매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내가 무언가 희생해야 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별로 가진 것이 없으면, 내가 내놓을 만한 것이 없으면, 내가 관심과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못하면 내가 무언가 성취하고 기여하고 결실을 맺는 것이 어렵습니다. 이런 생각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고 우리의 일상의 경험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순종과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우리가 드린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돌려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다 내가 수고하고 애써서 만들어가는 인생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눈으로 이 세상을 보고 내 인생을 보면 내가 많이 수고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결론은 좋은 땅에 씨가 뿌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또 내가 좋은 땅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좋은 땅이란 많은 영양분을 가진 비옥한 땅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씨가 뿌려졌을 때에 씨에다 좋은 영양분을 공급해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좋은 땅의 조건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좋은 땅은 어떤 다른 조건을 가진 땅이 아니라 좋은 씨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해석하시면서 좋은 땅에 뿌려진다는 것은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환영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 풍성한 생명을 받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의 씨앗은 희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씨앗은 땅을 좋은 땅으로 만드는 씨앗입니다. 악한 바이러스는 우리의 몸을 병들게 하고 우리의 생명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좋은 씨앗은 그 씨앗 속에 담긴 생명의 능력을 땅에게 베풀어 주어서 그 땅을 옥토로 만듭니다. 그 씨앗을 받아들여 마음에 품으면 거칠던 우리의 마음이 옥토가 됩니다. 내가 옥토가 되어야 좋은 씨가 심겨지는 것이 아니라 좋은 씨를 내가 품어야 내가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씨가 땅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땅이 씨를 통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신비이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씨앗은 씨앗이며 그 자체로 비료이며 영양제입니다. 자기가 살자고 흡수하고 해치고 병들게 하는 씨앗이 아니라 오히려 그 씨앗이 썩어지고 그 씨앗이 죽어서 우리에게 생명을 나누어주는 그러한 씨앗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저는 때때로 스스로 무능함과 무기력함을 느낍니다. 지난 한 주간도 계속 마가복음을 묵상하고 새벽에 말씀을 전하고 밴드에도 올려드렸는데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셔서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너무나 바쁘셨는데 목사가 능력이 없으니까 이 시국에 할 일이 없습니다. 특히나 이 전염병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 자체를 부담스럽게 만들다보니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시국에는 안 하는 게 돕는 것이고 안 만나는 게 잘하는 것이니 답답하기도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확진자가 되지 않으려다가 확 찐 자가 된다고 합니다.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먹기만 하다가 살만 찌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임도 줄고 일도 줄어서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닌데 뭔가 불안하고 여러 가지로 마음이 번잡하니까 그 시간들을 잘 활용을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때마침 이 기간이 사순절이라는 것에서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은혜를 느끼게 됩니다. 사순절은 예로부터 절제와 기도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부담도 내려놓고, 우리의 열심도 내려놓고, 오히려 우리 안에 있는 빈자리들을 느끼고 조용히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너무나 많은 빈수레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조용히 침잠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의 밭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뿌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묵상하고, 그 말씀으로 내 마음을 채우고, 그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는 데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지금도 매일 말씀묵상 밴드에 마가복음을 묵상하고 설교한 내용을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함께 묵상하고 받은 은혜를 간단하게라도 서로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오프라인에서 교제하는 것이 어려울 때에 온라인에서의 교제에 더 열심을 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좀 더 기도하는 시간, 성찰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내가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에 감사하고 부족한 우리를 받아주고 사랑해 주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감사하고 우리를 이 혼란 속에서 지켜주심에 감사하고 지금도 우리를 사랑해 주심에 감사하며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한다면 그 은혜가 우리도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통해서 조금씩 선한 열매들을 맺게 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의 씨앗을 우리의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믿음의 눈을 뜨고 사랑의 손길을 내어 밀며 소망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면 우리를 위협하는 어떤 바이러스도 이겨내며 승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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