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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 마가복음 6:30-44

여러분 모두 한 주간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아마도 다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발적 자가격리를 실천하시느라 답답하고 조금은 불안하기도 한 시간들을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이 됩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는데 봄 같지 않다는 말이 이때 하는 말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도 선뜻 약속을 잡기도 좀 미안하고 어디 좀 나가려고 해도 망설여지고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도 답답하고 무얼 좀 하자니 집중이 안 되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전세계적으로 더 많이 확산이 되는 것이 염려가 되고 그러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확진자의 증가폭이 확연히 감소를 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확진자 증가가 저절로 감소한 것이 아니라 길거리를 나가보면 어디를 가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고 다들 나름대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아서 감염의 위험이 많이 낮아진 것일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한 가지 우리나라 국민들에 대해 새롭게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인터넷의 댓글을 보면 당장이라도 나라가 망할 것 같이 문제도 많고 비판도 많고 격한 표현을 쓰는 사람들도 많은데 막상 드러나는 현상은 상당히 차분하고 성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다른 나라들 같으면 사재기도 심하고 마트에서 싹쓸이 하는 모습들도 많이 보도가 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는 것 같고 줄도 잘 서고 각자 그래도 여러 가지로 자발적으로 협조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말만 듣고 판단을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뭐라고 할까요, 말보다 행동이 더 성숙하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워낙 험한 일을 많이 당했던 나라고 수십년 동안 전쟁의 위험 속에서 살아와서 국난 극복의 훈련이 되어 있다고 할까요? 아무튼 저는 의식은 비판적이고 행동은 협조적이라면 이런 난국을 해쳐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금 제 나름대로 긍정적인 분석을 해보자면 전에 설교시간에도 한번 언급을 해드린 적이 있고 여러분들 최근에 많이 들으셨겠지만 지금부터 100년 전에 정확히 1918년에 스페인 독감이 그야말로 전세계적으로 유행을 해서 대략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감염이 되고 통계에 따라 좀 다르기는 한데 수천만 명이 사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난 재앙과 같은 대유행이었는데 예전에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에 그런 사건을 배운 기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워낙 1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사건의 와중에 있었기 때문에 전염병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1918년에는 1차 세계대전의 막바지라서 어떻게든 전쟁을 끝내려고 그야말로 총력전을 벌이던 때였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평가로는 당시에 전쟁터에서 죽은 사람보다 스페인 독감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하는데 전쟁터의 참혹함에 비하자면 독감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전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상대적으로 지금이 평화로운 시기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최근까지 세계의 평화를 위협했던 탈레반, 알카에다, IS 같은 이슬람 과격세력들도 지금은 그 힘을 많이 잃었습니다. 그래서 온 세계가 이 문제에 집중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 세계는 이 바이러스의 확산을 통해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고 있고 이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앞으로의 미래가 달려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바로 어떻게 이 인류 공통의 적에 대해 효과적으로 협력하며 대응할 수 있을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다행이라고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점점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고 앞으로 중국과 더불어 유럽, 이란, 미국 등이 주요 감염지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 나라들의 관계가 최근에 상당히 갈등이 많았습니다. 미국과 중국간의 무역갈등도 있었고 미국과 이란 간의 핵협상과 관련된 갈등도 있었고 중동국가들과 유럽 사이에 난민 문제로 한동안 매우 시끄러웠고 미국과 유럽도 최근에 매우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제 인류의 새로운 시험대는 과연 인류 공통의 적으로 등장한 바이러스의 퇴치를 위해 그동안 서로 적대적이고 갈등을 빚어왔던 나라들이 얼마나 협력을 할 수 있을 것이냐입니다.

여기에 일종의 모순적인 상황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바이러스란 외부에서부터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 지금 국가 간의 일상적인 교류가 중단되고 있고 낯선 외부세계와의 접촉에 대한 두려움이 커집니다. 그러나 또한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모든 나라들이 서로 협력을 해서 지식과 정보와 경험을 공유해야 합니다. 이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바이러스의 확산을 저지하고 퇴치에 협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과제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미래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우리나라도 참 어려운 난국 속에서도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대처를 해온 것으로 평가를 받고 우리보다 앞서있다고 생각했던 다른 나라들로부터 한국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어 이 지구 공동체에서 앞서가는 일원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이 상황 속에서의 다소간의 위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제는 국가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외부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을 극복하고 적극적인 사회적인 연대와 협력이 있어야 바이러스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행을 통해 새로운 도전과 과제를 주시고 또 해결해 가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봅니다.

오늘의 본문은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예수님의 여러 이적들 중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을 고치는 것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러나 우리의 주위에서 불치병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치유가 되었던 이야기들을 종종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이적도 오늘날에도 스스로 신들렸다고 하는 무당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설명을 어떻게 하는지의 여부와 상관없이 현상적으로는 귀신이 들리고 쫓겨나고 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관찰이 가능한 이적입니다. 그래서 대단한 믿음이 없어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병이어, 즉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셨다는 것은 소위 질량보존의 법칙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과학적으로도 완전히 불가능한 이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좀 더 객관적으로 관찰자의 입장에서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결코 비켜갈 수 없습니다. 네 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유일한 예수님의 기적이 오병이어의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들을 읽어가면 중복되는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지만 네 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들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에 대해 조금씩 다른 목록을 제시하고 있어서 4 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이적은 오병이어의 이적 단 하나입니다. 그만큼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이 모두 이 이적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꾸어서 생각하면 실제로 대단히 믿기 어렵고 일어나기 힘든 일이 있어났기 때문에 그만큼 관심을 받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름대로 설명을 해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들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실 사람들이 다 먹을 것을 가지고 왔지만 내놓지 않고 있었는데 한 어린아이가 자기가 가지고 온 것을 내놓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서 다들 자기가 가져온 것을 내놓아서 함께 먹게 되었다는 설명입니다. 그 자체로는 나름 의미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만일 원래의 사건이 그러했다면 그 사건으로 주목을 받게 되는 것은 그 어린아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은 후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하는 장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뭔가 그들에게 정말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격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에 대해 처음 설교를 할 때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예수님이 이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성경의 이적들 중에 믿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취사선택을 해서 이것도 빼고 저것도 빼고 하다 보면 성경은 누더기가 되어 버리고 성경이 성경으로서 가지고 있는 권위와 가치와 의미도 다 훼손이 되어 버리고 그냥 어디에나 있는 도덕적인 교훈집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이렇게 기독교를 2천년동안이나 믿어올 가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하는 것은 사건의 역사성과 해석의 조화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서를 보면 각 복음서마다 잘 짜여진 구조를 가지고 각 사건들을 배치하며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사건은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려주려는 중요한 의도 속에서 기록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을 넘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가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또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의미만을 강조하면서 사건의 역사성을 희석시킵니다.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꿈보다 해몽이라고 사건의 사실성, 역사성 여부와 상관없이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과장을 하고 조작을 하고 창작을 할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텍스트의 신뢰성이 떨어지게 되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 자체를 전달하기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누가복음의 서론에서 보는 것처럼 복음서의 저자들과 초대교회에서는 의식적으로 모든 사건들의 사실성을 검토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냥 주워 들은 이야기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일어난 일들 중에서 목격자들이 있고 검증이 가능한 이야기들을 정리해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오병이어의 이적을 살펴볼 때에도 이 사건의 역사성을 받아들이는 것과 함께 왜 예수님께서 이러한 이적을 행하셨는지, 그 이적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주목을 해야 합니다.

설교준비를 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을 읽어가는 중에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종의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바이러스가 유행하던 어느 날 예수님 앞으로 많은 무리들이 예배를 드리러 왔는데 그들에게 마스크가 없는지라.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짜오되 무리들을 가까운 마을로 돌려 보내셔서 약국에서 마스크를 사오게 하소서하더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마스크를 주어라 하신지라. 제자들이 예수님께 대답하여 이르되 지금 마스크 배급제가 실시되고 있사온데 우리가 어디에서 마스크를 구할 수 있겠나이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천 마스크 5개와 KN94 방역마스크 두 개뿐입니다. 예수께서 그 마스크들을 손에 드시고 축사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시니 마스크를 받은 사람이 오천명이나 되었고 다 받고 12박스가 남았더라.

제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아마도 여러분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짐작을 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마스크부족 사태 때문에 한동안 나라가 어지러웠다가 결국 전국적으로 마스크 배급제가 실시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이 이야기되었던 주제가 마스크 보급의 우선순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마스크가 시급히 필요한 의료진들, 그리고 감염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는 고위험군 및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공중보건과 지역사회 전파라는 관점에서 보면 나 혼자 몇 백 개의 마스크를 쌓아놓고 손소독제 수십 병을 가지고 있어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감염 예방조치를 잘 할 수 있지 않고 어느 한 곳에 취약한 곳이 방치가 되어서 그 곳에서 집중으로 발병하게 되면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사정을 살피는 것은 사랑의 의무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안위를 보장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의 현장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웃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촉구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파송하셨던 제자들이 돌아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그동안 훈련을 시키신 것에 대한 일종의 중간점검처럼 그들을 현장으로 보내십니다. 둘씩 짝을 지어서 유대 땅의 각 고을로 보내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권능을 행하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돈이나 먹을 양식이나 여벌의 옷을 가져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의지하며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그들이 은혜 가운데 사역을 마치고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보고합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사역하다 돌아왔으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참으로 기특하고 또 안스러우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그때에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고 덧붙여 기록합니다. 제자들이 힘든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니까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피해서 한적한 곳으로 가서 쉬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사람들을 피해서 갈릴리 호수 건너서 한적한 곳으로 이동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을 보고는 호숫가를 빙 둘러서 배가 내리는 곳에 먼저 와서 기다립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모든 고을로부터 도보로 그 곳에 달려와 그들보다 먼저 갔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이 파송되어 사역을 떠난 후에 예수님도 잠시 사역을 멈추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자들이 찾아오니까 소문이 돌아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몰려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려하니까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쫓아 온 것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배를 타고 건너가는 사람들보다 어떻게 호숫가를 돌아서 뛰어 온 사람들이 더 빠르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예수님이 배에서 내리실 때에 이미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을 보신 예수님의 마음은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생각은 좀 달랐을 수도 있겠죠. 지금 좀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 온 것인데 사람들이 참 징하다는 생각이 들고 우린 쉬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냐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시고 안스러우셨던 것 만큼이나 이렇게 예수님을 따라 온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그들을 위로하시며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날이 저물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들이 이제는 그만 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계속 있으려고 해도 이 저녁에 뭘 좀 먹어야 하니까 사람들을 보내서 먹을 것을 알아서 해결하고 그러면서 좀 사람들이 흩어지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에게 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지금 예수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사실 갈릴리에서도 가장 힘든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사실 제자들이 그렇게 말하기 전에도 이 사람들이 저녁이 되고 배가 고프면 알아서 집으로 가고 흩어졌겠지요. 그런데 지금 제자들이 보기에 사람들이 그대로 모여있고 집에 갈 생각을 안하니까 무리들을 좀 보내자는 말이 나온 것 아니겠습니가? 그 이야기는 다시 생각해보면 이 사람들이 어디 갈 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먹을 것 하나 구할 수 없었던 사람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아무 대책이 없이 따라온 사람들, 갈릴리에서도 가장 취약한 계층에 속한 사람들이 거기에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무 곳에서나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시는 이적을 베푸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여러 곳으로 초대를 받아 가셨고 그런 곳에서는 대접을 잘 받으셨습니다. 그곳에는 충분히 준비된 음식이 있었고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잔치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곳에 모인 이 사람들에게는 먹을 것이 필요했습니다. 제자들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의 배고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주려는 마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어디 마음 둘 곳이 없고 의지할 곳이 없어서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을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능력을 과시하시기 위해 이적을 베푸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기에 그들을 먹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갖게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야말로 각자 도생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낮선 말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지 않고 내 한 몸을 잘 돌보는 것이 최상의 대처방법이 됩니다. 그 가운데 사람들과의 물리적인 거리는 물론 정신적인 거리도 점점 멀어져 갑니다. 마땅히 관심과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도 어렵고 각자의 삶 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결하기도 어려운 마당에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신경을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한 제자들이 잘 쉬고 건강을 회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또한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자신들보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과 영적인 부담감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벌써 이렇게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여러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지쳐가고 더 답답하고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나려나 하는 근심이 점점 더 쌓여 갑니다. 결국은 지나가겠지요. 그러나 전문가들은 생각보다 오래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잠깐 모든 것을 멈추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사회적인 관계를 이어가야 하고 새로운 환경 속에 적응을 하면서 새로운 방법으로 서로를 돌보고 관계를 이어가는 지혜를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에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서 구분하여 교회의 사명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모이는 교회는 예배공동체입니다.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찬양하며 사랑으로 함께 교제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누리고 성령 안에서 하나된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흩어지는 교회는 선교공동체입니다. 세상 속에 흩어져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널리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모이기에 힘쓰는 것을 최상의 덕목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이기에 힘쓰기에는 여러 가지 위생적인, 사회적인, 심리적인 장애가 많습니다. 이때에 우리는 또한 그동안 게을리 했던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고립된 존재로서의 흩어지는 교회가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다른 이들과 삶을 공유하면서 은혜를 전하는 사람들로, 긍휼과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의 삶의 균형을 다시 잡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조금 정신을 차리고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서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배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좀 더 다가가며 살피고 도울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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