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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 마가복음 12:13-17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도 평안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님들에게 육신의 건강과 마음의 평안과 영혼의 위로와 은혜를 더하여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삶의 소소한 즐거움을 잃고 필수적인 일상의 일들 외에는 다 정지되어 버린 삶을 살아가시느라 여러 가지로 답답하신 심정이실 것입니다. 저도 누굴 좀 만나고 어딜 좀 다녀오려고 해도 어느 교회 목사가 확진자가 되었다는 기사라도 나올까봐 꼼짝을 못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한 가지 기쁜 소식을 드리자면 교회 앞마당에 벚꽃이 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봄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좀 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년 같으면 벚꽃 축제가 시작이 되는 시즌이 찾아오고 있지만 올해는 오히려 벚꽃이 피는 기간 동안 전국적인 벚꽃놀이의 명소들이 다 폐쇄된다고 하니까 올해는 동네를 오가며 보는 꽃들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됩니다. 

맨날 바이러스 이야기만 할 수도 없고 뭔가 좀 답답한 마음을 해소해 드리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 제가 여러분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에 뭔가 좀 기여를 해야 할 텐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뻔하니까 오늘은 성경 공부를 겸한 역사 공부를 잠시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오늘 설교의 제목이기도 한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가이사는 라틴어 카이사르를 우리말로 순화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카이사르는 오늘 본문에서 로마 황제를 뜻하는 말이지만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한 사람의 이름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사람입니다. 원래 그의 정식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이지만 대게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율리우스가 이름이고 카이사르가 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사람의 이름은 가이우스이고 율리우스가 성입니다. 카이사르는 율리우스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구분하기 위해 붙인 것인데 굳이 비교를 하자면 이씨 중에 전주 이씨, 박씨 중에 밀양 박씨 같이 같은 성을 가진 사람들을 구분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명은 아니고 대개 그 집안의 특징이나 전통을 상징하는 말을 덧붙인 것입니다. 카이사르라는 말의 어원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는데 그 중에 제일 잘 알려진 것이 caesarean section, 즉 제왕절개하고 연결을 시키는 것입니다. 제왕이라는 말 자체가 카이사르라는 말을 번역한 것인데 카이사르가 제왕절개로 태어났다는 설이 있어서 그렇게 번역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카이사르라는 말에 원래 자르다는 뜻이 있기 때문에 거꾸로 그 집안에 제왕절개로 태어난 조상이 있어서 그 집안에 카이사르라는 말이 이름에 덧붙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에 가깝습니다.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그야말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이탈리아의 교과서에는 이런 글이 있다고 합니다.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 다섯 가지다. 지성, 설득력, 지구력, 자제력, 지속적인 의지. 카이사르만이 이 모든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다." 

카이사르에게는 수 많은 일화가 따라다니는데 그 중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에 유학길을 떠났다가 해적들에게 납치가 되었습니다. 해적들인 이 사람이 부잣집 귀공자인 것을 알고 몸값을 20달란트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이것만 해도 당시에는 엄청나게 큰 돈이었는데 카이사르는 자기 몸값이 그것밖에 안되냐고 50달란트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들을 집으로 보내서 몸값을 받아오게 하고 종들이 돌아오기까지 해적들과 스스럼 없이 여유를 부리며 오히려 자기가 대장 노릇을 합니다. 그리고는 내가 풀려나면 너희들은 다 십자가에 매달아 버릴 것이라고 말을 하는데 해적들은 농담으로 여기고 낄낄거렸습니다. 그런데 그는 종들이 돌아와서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한 후에 군대를 모아서 해적들을 쫓아가서 해적들을 소탕하고 실제로 십자가에 다 매달아 버리고 몸값을 다시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대단한 인물은 대단한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카이사르는  후대의 역사에 끼친 영향으로 보면 세계의 역사상 몇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의 이름이 그렇습니다. 

그의 이름인 율리우스에서 7월을 뜻하는 줄라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카이사르의 시대에는 로마의 달력이 1년이 355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윤달을 2월과 3월 사이에 넣어서 태양의 주기에 맡도록 조정을 했습니다. 가끔씩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당시에 윤달을 넣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로마의 대제사장이 맡았는데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윤달을 넣다가 뺐다가 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자기가 맘에 드는 집정관, 즉 최고 통치자가 다스릴 때에는 윤달을 넣어서 임기를 길게 해주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집정관이 되면 윤달을 빼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매우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카이사르는 윤달을 통째로 4년에 한번 하루를 더하는 방식으로 일년을 365일과 4분의 1일로 개정하는 달력을 만들게 됩니다. 그 달력의 이름을 그의 이름을 따서 율리우스력이라고 하는데 16세기까지 사용이 되었고 그 후에 조금 수정이 되었지만 사실상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카이사르가 죽은 후에 그를 기념해서 그가 태어난 달인 7월의 이름을 율리우스의 달이라고 해서 줄라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인 카이사르에서 황제를 뜻하는 영어의 씨저, 독일어의 카이저, 러시아어의 짜르가 나왔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카이사르의 이름이 황제라는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카이사르가 사실상 로마의 공화정을 폐지하고 황제가 다스리는 제정의 시대를 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카이사르 자신은 스스로를 황제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민중들의 인기를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사실상 로마 역사의 첫 번째 황제라고 불릴만한 일인 독제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공화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 암살을 당했고 그를 암살한 사람들 중의 하나인 브루투스가 나는 카이사르를 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해서 그를 죽였다는 유명한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죽은 후에 그의 양자이자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가 다시 권력을 장악하고 제정을 확립을 합니다. 이 사람이 누가복음의 첫 머리에 나오는 가이사 아구스도, 즉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입니다. 옥타이바누스는 자기가 카이사르의 후계자라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 자기 이름 대신에 카이사르의 이름을 사용한 것이고 아우구스투스는 존엄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로마의 원로원에서 바친 칭호입니다. 이때로부터 카이사르라는 말이 황제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가이사라는 말에 대한 설명은 마치고 오늘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이사, 즉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교의 전통을 준수하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들이고 헤롯당원들은 로마제국을 등에 업고 유대 땅을 통치하는 헤롯 가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원래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껄끄럽게 생각하는 예수님에게 올무를 놓기 위해 서로 협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찾아와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세금을 로마제국에 바치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는 이야기는 앞에서 말씀드린 가이사 아우구스도, 즉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인구조사를 명령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렇게 파악된 인구를 바탕으로 로마는 로마가 지배하는 모든 지역에서 세금을 걷기 시작합니다. 로마에 바치는 세금은 로마에서 주조하여 유통하는 주화로 바치게 되어 있었는데 유대인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세금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그 주화에 로마 황제의 형상이 그려져 있을 뿐만아니라 로마 황제를 신성화하는 문구까지 같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우상숭배의 문제로까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기원후 6년에 세금 징수를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세금 문제는 로마제국의 입장에서도 매우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만일 예수님이 세금을 내지 말라고 말씀하시면 로마 제국에게 위험한 인물이 되고 만일 예수님이 세금을 내라고 말씀하시면 로마 제국으로부터 자유를 얻기를 갈망하여 예수님을 그들의 구원자가 되실 분이라고 믿고 있는 백성들이 예수님을 우상숭배자라고 여기며 실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하시든, 저렇게 대답을 하시든 다 예수님을 곤경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잘 알고 계셨지만 당시에 통용되어 세금을 내는데 사용되던 데나리온이라는 주화를 가져오게 하시고 그 주화에 새겨진 형상과 이름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십니다. 로마제국에서 통용되던 주화에는 로마제국의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데 당시에는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때의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가 죽고 그의 아들인 티베리우스가 황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드린 데나리온에는 티베리우스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 티베리우스라는 글이 같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황제의 형상과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대답을 들으시고 그렇다면 이 주화는 로마 황제의 것이니 로마 황제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나 명료한 대답에 대적자들은 놀라서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이사, 즉 로마 황제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것은 이 세상의 권세를 로마 황제와 하나님이 나누어 가지신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권세자들에게도 허락하신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일하시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권세자들의 손을 통해서도 역사하십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특히 세상의 권세자들이 악한 자들을 심판하는 것과 세금을 걷는 것을 긍정적인 기능으로 예시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이 비교적 단기간에 지중해 세계의 여러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전 지역을 로마 제국이 정치적으로 통합하고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또 세금을 걷어서 도로를 건설해서 교통망을 구성해놓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바울이 주로 사역했던 소아시아 지역과 그리스 지역은 모두 헬라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있어서 헬라어에 능통한 바울이 곳곳에서 효과적으로 선교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이미 로마제국 이전에 알렉산더 대왕이 마케도니아 제국을 세우고 헬라어를 전역에 전파를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권세자들은 물론 자신들의 야망을 위해 권력을 얻고 백성들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도 복음의 길을 예비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종교개혁을 시작한 독일의 마틴 루터는 두 왕국론이라고 불리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지만 또한 세속 국가의 국민으로 살아가며 하나님께서는 복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리시만 또한 세속 국가의 군주의 칼을 통해서도 이 세상의 악을 제어하시며 통치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교회와 국가를 하나님의 두 팔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지금 우리는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성찰을 하는 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와 모임을 자제하고 바이러스의 퇴치에 협력해 달라는 국가의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요구에 따르는 것은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의 사회적인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될 것이고 이웃들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도 순종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실제적인 훈련의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이렇게 공예배와 교회 공동체의 모임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각각의 개인의 삶을 통해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서 내 자신의 경건의 삶을 지키며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과 싸우는데 있어서 최전선에 있는 것은 의료진들과 방역당국입니다. 교회는 후방에서 기도하며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협력하는 것이 오늘날로 말하자면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돌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교회들이 예배와 모임을 자제하고 정부에서 제시한 방역의 기준을 준수해 오고 있고 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러한 노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도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로마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주화를 로마 황제에게 바치라고 하신 것을 구약성경 창세기의 맥락에서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그러나 또한 대한민국의 국민임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저는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처음에는 이번 사태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와 전염병들에 대해 잘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서적들을 여러 권을 탐독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드는 것은 지금 상황에서 핵심은 오히려 예배의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이 매우 우리를 혼란스럽고 힙겹게 하지만 사실 이 세상에는 혼란스럽고 어려운 일들이 늘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은혜와 도움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지금껏 우리가 생각해 온 예배는 교회가는 것과 동일어였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척도는 얼마나 교회를 자주 가느냐와 결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신앙의 척도는 어떻게 우리의 일상의 삶의 공간을 예배의 공간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우리의 개인의 삶 속에서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기도하는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에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이지 않으며 온라인에서, 어떻게 신앙 공동체를 유지하며 공동체의 유익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실험적으로 도전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 있습니다. 

이번 주에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성경퀴즈인데 한번 들어보시기바랍니다. 

1.- 세 천사가 아브라함을 방문하였을 때 그는 어디있었나요?  집에 

2.- 두천사가 소돔과 고모라에 왔을 때 롯은 어디에 있었나요?  집에

3.- 예수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았을 때 어디에 있었나요?  집에

4.- 아나니아가 바울을 보러 왔을 때 바울은 어디있었나요?  집에

5. 이집트에서 10번째 재앙이 내렸을때  이스라엘 백성은 어디에 있었나요?!  집에!

6. 지금처럼 역병이 창궐할때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하나요?  집에

집에 있어야 할 때에는 집에 있어야 하겠지만 또한 우리는 성도로서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하는 찬양과 경배를 결코 소홀히 여겨서는 안됩니다. 예배의 장소와 방법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에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로마시대를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따라 누구보다도 모범적인 시민으로서 시민의 의무를 다하며 국가의 권세에 순복했지만 그러나 로마 황제를 하나님처럼 섬기라는 명령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저항을 했습니다. 가이사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이 있지만 바칠 수 없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과 성경의 교훈을 따라서 국가에 협력할 수 있는 것은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국가와 지역사회의 안전과 성공적인 방역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경건과 믿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경건의 시간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매일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기도의 시간을 갖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훈련을 하고 가족들이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리는 것도 좋습니다. 매일 일정한 분량을 정해서 성경을 통독하고 경건 서적을 읽고 여러 가지 온라인과 방송에서 제공되는 은혜로운 설교나 강의 들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합니다. 카톡방이나 SNS상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요즘 불확실한 정보들도 함께 돌아다니기 때문에 무언가를 퍼 나르는 것 보다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나누고 개인의 신앙의 고백이 담긴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 더 유익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는데 매우 중요한 도전과 훈련을 시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교회의 공적인 사명을 다시 회복하는 시간을 갖고 있으며 또한 개인의 경건과 삶의 현장에서의 예배를 연습하고 훈련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찰과 훈련과 도전의 시기에 모든 성도님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올바르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더욱 신실하게 드릴 수 있는 귀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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