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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 신명기 5:12-15

얼마 전에 제가 처음으로 교육전도사로 사역을 할 때에 부목사로 계셨던 목사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지금은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계신데 노회 일로 저희 교회가 속해 있는 강남노회에 문의할 것이 있어서 아는 사람이 있나 찾아보다가 제 이름을 보시고는 전화를 주신 것입니다. 같은 교회에 있었던 것이 벌써 20년 전 일이었고 그 동안 우연한 기회에 한 두 번 뵈었던 적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도 기억해 주시고 전화를 주셔서 고맙고 반가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목사님과 통화를 하면서 제가 교역자로 처음으로 섬겼던 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 추억이 다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강서구 방화동에 있던 교회였는데 그때 저는 개포동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매주일 아침에 교역자 기도회가 6시 50분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주일 아침이면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때에 개포동에서 방화동으로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이 공항버스는 타는 것이었는데 공항버스가 바로 지금 우리 교회 건너편 라마다서울호텔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때에는 이름이 뉴월드호텔이었습니다만, 아무튼 집에서 버스를 타고 와서 바로 저 건너편에서 공항버스 600번으로 갈아타고 교회를 갔습니다. 그때는 아직 우리 교회가 압구정동에서 삼성동으로 이전하기 전이기는 했지만 매 주일 아침마다 이 동네에 와서 2년 동안 버스를 갈아탔던 것이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참 신기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도 제가 야행성이라 토요일에 주일 준비한다고 늦게 자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나와 버스를 타면 졸게 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면 공항버스인지라 교회 앞 정거장을 놓치면 바로 버스가 김포공항 안으로 들어가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그날은 지각하는 날이 되는 것이지요. 아무튼 그래서 6시 50분에 교회에 오면 그 시간이 상당히 이른 시간인데도 성도님들이 여러분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교회에는 주일에도 새벽기도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 시간에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남아계신 성도님들이 저를 맞아 주셨고 권사님들은 교역자들을 위해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시고 잠깐 집으로 가셨다가 다시 예배 시간에 맞춰서 오시곤 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교역자님들과 함께 잠시 기도회를 갖고 7시 30분에 시작되는 1부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 후에 부서 사역이 시작이 됩니다. 그리 작지 않은 한 500명 정도 되는 교회였는데도 교역자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한참 사역이 많았을 때는 저 혼자서 세 부서를 맡았습니다. 그때 제 스스로 제게 붙인 별명이 세파트였습니다. 세 부서(파트)를 맡았다고 해서 그렇게 붙여 본 것이었습니다. 그때에는 1부 예배 드리고는 유치부 예배에서 설교를 하고 간단히 교사회의를 마치고는 다시 소년부 예배에서 설교를 하고 교사회의를 하고 점심식사를 하고 2시에는 대학청년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청년들과 성경공부를 하고 잠시 쉬었다가 저녁을 먹고 7시 반에 저녁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교역자 회의를 합니다. 교역자 회의 때 때로는 분위기가 매우 엄숙한 날도 있어서 그런 날이면 교역자회의 끝나고 고참 전도사님이 교회 인근의 패스트푸드점에서 분위기를 풀어주시기 위해 한턱 내시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공항버스를 타면 공항버스에는 텔레비전이 있어서 그때 한창 유행하던 개그 콘서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버스 안에서 개그 콘서트를 보다가 다시 라마다서울호텔 앞에서 내려서 또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오면 빨라야 10시, 늦으면 11시가 되곤 했습니다. 

이런 주일의 일상은 그 교회 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나라의 많은 전통적인 교회에서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지금도 그런 교회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바로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도 아침 6시 50분에 교역자 기도회가 있었고 저녁예배 마치고 교역자회의 마치고 집에 오면 그때는 교회 가까운 교회 사택에서 살았는데도 10시는 넘어야 집에 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대교회에 와서 보니까, 물론 아시는 대로 저는 현대교회에 두 번 부임했기 때문에 말씀드리기가 조금 복잡하기는 한데 제가 2012년 10월에 담임목사로 왔던 때를 기준으로 말씀드리자면 그 당시에는 9시 예배가 없어서 11시에 예배가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9시에만 교회에 와도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오후 예배가 있었을 때였으니까 2시에 오후 예배를 드리고 교역자 회의를 해도 4시면 다 끝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느꼈던 생각이 “야 정말로 주일이 안식일이 되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교회에서 주일은 참 긴 하루를 보내는 날이었습니다. 교역자들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도님들도 아침 일찍 교회와서 예배 드리고 봉사하고 오후 예배 드리고 잠깐 집에 갔다가 또 저녁예배를 드리러 옵니다. 아니 제가 중고등부 학생일 때에도 그랬습니다. 제가 중등부를 다닐 때에 예배가 8시에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인데 그 때 다니던 교회는 대형교회였는데도 예배 공간이 부족해서 같은 예배실에서 중등부는 8시 고등부는 9시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중등부, 고등부때 계속 성가대를 했는데 중등부 성가대 연습은 아침 7시에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도 주일 아침 6시 반이면 집에서 나가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가대 연습하고 예배드리고 분반공부하고 또 성가대 연습을 하고 학생회 임원 모임을 합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는 오후에 회지를 만든다, 무슨 행사준비를 한다 하고 또 분주하게 보내다가, 뭐 물론 남녀 학생들이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느라 보새는 시간도 많았지만, 아무튼 저녁때가 돼서야 어른들 저녁예배 오시는 것을 보면서 집에 가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있었던 일인데 제 친구 중에 한 명이 그때 별다른 일이 없는 날이어서 일찍 집에 가서 오후에 집에 있었는데 그 친구의 아버지가 밖에 일을 보러 나가셨다가 집에 전화를 하셨답니다. 그런데 오후에 제 친구가 집에서 전화를 받는 것을 보시고는 “왜 네가 이 시간에 집에 있냐? 교회 불났냐?”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열심히 봉사하고 성도들과 교제하며 교회를 섬기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동안 우리나라 교회는 어떤 면에서 넘치는 열심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많은 교회들이 예전과는 같지 않지만 지금도 앞에서 말씀드린 것 같은 전설적인 교회생활을 이어오는 교회들도 있고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저녁 예배도 드리지 않고 열심이 줄었다고 섭섭해 하시면서 그 시절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번에 코로나19의 확산으로 교회가 대폭 예배와 모임을 축소하고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교회가 그야말로 집단적으로 안식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께서 그동안 우리의 열심과 섬김을 돌아보게 하시고 점검하게 하시고 예배가 무엇인지, 주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주신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목사님이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극복하게 되면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글을 쓰신 것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었고 인위적으로 만들수도 없었던 이런 상황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다 그냥 두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님들이 다시 모여야 하겠고 교회에서 아이들의 웃음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일을 삶의 여유를 되찾고 안식과 평화를 누리는 날이 아니라 또 긴장하고 뭔가 해내어 자신을 입증하는 날로 만들어가고 있었다면 또한 우리는 이번 기회를 통해 앞으로 우리의 주일은 어떠해야 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성찰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십계명의 제 4계명입니다. 십계명 강해 첫 시간에 십계명이 성경에 두 번 나온다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한 번 나오고 신명기에 또 한 번 나옵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 기록된 십계명은 그 내용이 거의 동일하고 공통적으로 제 4계명에 대한 말씀이 제일 깁니다. 그 이유는 다른 계명들과는 달리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지, 또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덧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제 4계명이 그렇게 강조되고 있는 것은 십계명의 구조상으로 볼 때에 4계명이 앞에 나온 계명들의 일종의 대답이며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앞에 나온 세 계명은 모두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들이 암송하고 계시는 대로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만 하시지 마시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세요. 그래서 제 4계명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만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름 그대로 안식일은 안식하는 날, 쉬는 날입니다. 그러나 이런 차원에서 볼 때에 안식일은 그냥 쉬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쉬는 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고 섬기기 위해서 쉬는 날입니다. 우리가 매여있던 다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만을 섬기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간구하며 은혜를 누리는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의 본문과 신명기의 본문을 비교해 보면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안식일이 다른 일을 쉬고 하나님을 섬기는 날이어야 하는데 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겨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데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 만물 모든 것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이 쉬셨기 때문에 우리도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으로 삼은 신명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애굽땅에서 종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안식일의 두 가지 의미를 알게 되는데 첫째는 이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날이고 둘째는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날입니다. 

먼저 창조와 관련하여 안식일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세상이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며 일상의 모든 일들을 내려놓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렇게 수고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므로 이 세상은 계속해서 돌아간다는 것을 느껴 보라는 것입니다.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은 미래가 되면 몇몇 작자들이 나타나 이 세상은 늘 존재했던 것이라고 헛소리를 할 것을 미리 내다보셨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을 부정하고 이 세상에서 주인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손을 놓는다고해서 이 세상이 멈추지는 않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미 잘 듣고 아시는 것처럼 지금 인간들이 손을 놓게 되니까 자연도 회복되고 동물들도 더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인간들에게 밀려났던 자연의 세계가 다시 활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온전함을 인간이 자기 욕심으로 해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우리가 무작정 다시 옛날로 돌아가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떻게 인간이 자기 손을 거두고 자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우리가 매사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나 아니면 안된다는 고집이 때로는 내 자신과 공동체에 해로울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 주신 일이기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연약하고 무익한 종이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 모든 것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다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에 다른 이들을 신뢰하고 동역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이제 하나님이 짐을 벗겨 주시면 그동안 섬김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쉼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쉼이라는 것을 단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면 안식이 가지는 의미를 바로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도 아닌데 이 복잡한 세상을 만드시느라 너무 피곤해서 아이고 이젠 좀 쉬어야겠다 하고 덜썩 주저앉으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이 쉬셨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늘 이 세상을 감싸고 있지만 또한 이 세상에 깃들인 법칙과 원리들을 주시고 또 이 세상 모든 피조물들에게 자유를 주셔서 이 세상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쉬셨다는 것의 의미는 “보시기 좋았더라”는 말씀과 연관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안식은 바로 창조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지으신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행복한 마음으로 바라보시고 복을 내리시기 위해 이 세상을 지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한 주간의 하루는 우리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베푸신 것을 느껴보며 또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이룰 수 있었던 것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리는 시간, 감사하는 시간, 찬양하는 시간이 없다면 그 모든 수고는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전 세계에서 한국 사람들은 일벌레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너무 부지런하게 삽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아주 부지런하게 쫓아 다니며 막습니다. 아마 바이러스도 놀랐을 것입니다. 뭐 이렇게 징한 사람들이 다 있나, 우리도 다 살자고 이러는 것인데 좀 살살 하자, 바이러스가 생각이 있다면 한국에서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부지런히 일하는데도 막상 그렇게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내가 수고한 보람을 느낄 시간도 없이 일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질 때에도, 생각하고, 느끼고, 감사하기 보다는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불안해합니다. 일 함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너무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에 고양이가 두 마리가 있는데 이 놈들은 하루종일 아무런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료만 제 때 주면 불만이 없습니다. 때로는 좀 우리가 집에 없을 때에 고양이들이 청소도 해놓고 밥도 해놓고 주인님 오셨습니까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이 놈들은 지가 주인인줄 알기 때문에 사람들 부려먹을 생각만 하지 아무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인에게 사랑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존재일까요? 뭔가 부지런히 하고 성취해서 하나님께 내놓아야만 하나님이 만족하실 까요? 이미 하나님이 다 창조해 놓으신 세상에서 태초에 아담과 하와가 그랬듯이 놀라고 감탄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 그것을 더 원하시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쉼이 필요하고 안식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시간,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올려 드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구원과 관련하여 안식일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로 쉼 없이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제 노역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고 이렇게 쉼을 얻고 안식일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마다 이렇게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일주일에 하루는 쉬게 한 것이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각 나라와 문화에 따라 전통적인 축제의 날들이 있었지만 그런 날들은 일년중에 며칠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언제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때에 쉴 수 있었지만 종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주인이 쉬는 날에도 주인의 시중을 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의 신화에서는 신들이 일하기 싫어서 신들의 노예로 삼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고 가르칩니다. 그런 신화는 사람들을 종처럼 부리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난 하나님은 애굽 왕의 종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빼앗와 와서 자신의 종으로 부리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애굽의 노역에서 건져내고 자유와 안식을 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말씀하시면서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심지어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까지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시고 다시 강조해서 “네 남종이나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은 내가 쉬는 날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쉼을 주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다른 피조물들에게도 쉼을 주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정신이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후대에 와서 일주일에 하루는 모든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휴일의 제정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 곤경에서 건져내고 안식을 주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수고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고 쉴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이 수고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함께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죄송하지만 저는 주인의식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인의식이라는 말은 주인은 아닌데 주인처럼 일하라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인처럼 일하려면 주인처럼 대접도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우하지는 않으면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안식을 빼앗는 결과만을 낳게 될 수 있습니다. 내 스스로 일에 보람을 느끼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주인의식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부당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일요일에 쉬는 것이 제도화된 것은 서기 321년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칙령을 내린 것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7일이라는 단위로 한 달을 구분하는 전통들이 여러 문화권에서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대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음력으로 한달이 대개 29일에서 30일 사이가 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데 29일 12시간 44분 3초라고 합니다. 한 달을 넷으로 나누면 대략 월삭에서 상현달, 상현달에서 보름, 보름에서 하현달, 하현달에서 다시 월삭으로 구분이 되는데 8로 나누면 넘치고 그래도 거의 7로 나누면 어느정도 들어맞게 됩니다. 그래서 한달을 7일 단위로 넷으로 나누는 전통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시대에 관리들은 음력으로 1일, 8일, 15일, 23일이 쉬는 날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천문학적으로 하늘에는 해와 달과 우리의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이렇게 5개의 행성만이 별자리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이 일곱 개의 천체는 다른 별들과는 달리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인간들의 삶에 영양을 미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곱 개의 천체 마다 각각 이 세상을 비추며 영향을 미치는 날들을 하나씩 정해서 기념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요일의 이름에 남아 있고 또 그래서 요일(曜日)이라고 할 때에 비칠 요(曜)자를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전통, 관행들은 일시적인 것이었고 또 일요일이 모든 사람들이 쉬는 날이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일요일이 모든 사람들이 쉬는 날이 된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4세기에 로마시대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박해받던 종교인 기독교를 공인해 주었을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이 자유롭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드리던 일요일을 아예 모든 관공서의 문을 닫고 모든 상인들도 장사를 하지 않는 날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일은 안식일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일요일이 쉬는 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과시간을 피해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던 날이 일요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로 주일이 안식일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개화기에 서양의 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일요일을 공휴일로 정해서 쉴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매주 일요일이 되면 예수믿는 사람들보고 왜 교회가느냐고 따질 것이 아니라 이 날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회갈 수 있도록 만든 날인데 예수 안믿는 우리도 덩달아 쉬게 되었다며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주일과 안식일의 관계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의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정확하게는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가 안식일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유학을 했던 어느 교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유대인들이 운영하는 병원을 가보니까 안식일에는 엘리베이터도 버튼을 누르지 않고 저절로 서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버튼을 누르는 것도 일하는 것이라고 그것도 안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대인들의 안식일인 토요일이 아닌 그 다음날, 일요일을 주일, 즉 주님의 날이라고 부르며 이날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은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입니다. 그 이유는 안식일 다음날이 바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이 안식 후 첫날 부활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토요일인 안식일은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하나님이 육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날 쉬셨다는 말씀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한 주간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러나 주일은 한 주간의 첫날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관습적으로 월화수목금토일이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을 보면 빨간 날이 맨 앞에 있어서 이 날이 한 주간의 첫째 날임을 보여줍니다. 

한 주간의 첫째 날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며 이 세상의 창조를 시작하신 날이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셔서 죽음의 어두운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비춰 주신 날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이날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경축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날로 삼아 왔습니다. 그래서 이 날을 우리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날이라고 주일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초기에는 대부분의 성도들이 유대인들이었기 때문이 안식일이 되면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모이고 또 그 다음날 주일에는 그리스도인들끼리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그렇게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점차 성장을 하면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모든 유대교의 회당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출교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더라도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회당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주일만이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드리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일이야말로 진정한 안식일의 의미를 발견하는 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안식일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어떤 종교적인 금기사항들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기뻐하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에서 밀을 까서 먹었다고 비난합니다. 일종의 추수를 한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셨다고 비난합니다. 일종의 의료행위를 했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전은 굶주린 사람을 배불리 먹여 주는 곳이 되어야 하고 안식일은 병든 사람들이 회복이 되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을 죽이는 날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날이 되는 것이 안식일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셔서 우리에게 진정한 안식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초대교회로부터 주일이 구약성경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안식의 성취라고 믿었고 그래서 주일을 진정한 안식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물론 초대교회의 교부들, 즉 교회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교회의 지도자들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에 있는 것이지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문자 그대로 구약성경에 기록된 대로 제물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지 않는 것처럼 유대인들처럼 안식일을 지킬 의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의미이고 은혜이고 자유이며 그 은혜와 자유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 졌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구약성경의 율법을 지키는 날로서 안식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고 기뻐하는 날로서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칼빈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신을 없앨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성일을 제쳐놓았고, 교회의 예절과 질서와 평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 목적을 위해서 다른 날을 제정한 것이다. 고대의 안식일이 대표한 저 진정한 안식은 주의 부활에서 그 목적이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그림자를 끝낸 그날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그림자였던 의식을 고수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가 된다.”

오늘 우리는 또 한번의 주일, 또 한번의 안식일을 맞이합니다. 이 날, 또 매 주일이 이 세상을 창조하셔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기억하고 누리며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의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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