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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하지 말라 / 마태복음 5:27-30

우리 속담에 산 넘어 산,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십계명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매 주일 이 말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십계명 한 구절 한 구절은 매우 간결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씀이기 때문에 한 구절 한 구절이 성경 전체의 맥락 속에서 갖는 깊은 의미가 있어서 해석하고 설명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설교도 기술이라면 기술인데 시간이 지나면 좀 익숙해지고 준비하는 것이 쉬워져야 할 텐데 벌써 20년 넘게 설교를 하면서도 설교준비가 전혀 쉬워지지 않으니 도무지 제 스스로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설교의 내용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은 것도 고민입니다. 설교가 좀 쉽고 재미있어야 은혜롭고 기억도 더 잘 되고 삶에 적용하는 것도 쉬울텐데 설교가 어려우면 들어도 뭔 소린지 잘 모르겠고 기억도 잘 안나고 그러면 결국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삶이 별로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선배 목사님들이 쩍쩍쩍 하는 설교를 하지 말라는 말씀들을 하시곤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자꾸만 설교 중에 철학적, 신학적, 무슨적 하고 적, 적 하는 말이 많이 나올수록 설교가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적용과 예화 중심의 생활 설교가 좋다는 말씀들을 하시는 것을 여러번 들어 왔습니다. 

교리 중심의 사도신경과는 달리 십계명은 그야말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이기 때문에 구체적일수록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 십계명에 대한 설교를 구상하면서 가능하면 구체적인 상황, 사례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한 주 한 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점점 더 많이 드는 생각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오늘날 전통적인 가치관이 더 이상 설득력을 잃어가고 윤리적인 기초가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하면 기독교 신앙의 원리를 바탕으로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윤리적인 기초를 다시 세워갈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점점 머리가 커져가는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아이들이 쏟아내는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자주 느낍니다. 그냥 좀 시키는대로 해라고 하고 싶지는 않고 뭔가 좀 이유를 설명해주면서 설득을 하고 싶은데 제 스스로도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쉽지 않습니다. 

전에 한 번은 저희 둘째가 오늘 학교 가기가 너무 싫은데 선생님한테 아프다고 말하고 학교 안가면 안되냐고 말해서 거짓말 하면 안된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거짓말이 다 나쁜 거냐고, 그러면 왜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냐고, 뭔가 유익한 것이 있으면 거짓말도 할 수 있는 것 아니야고 되묻는데, 그냥 안되, 학교 가라는 말 외에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그럼 늘 정직하게, 진실하게 살아왔는가? 왜 거짓말을 하면 안되는 것일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윤리적인 삶의 근거와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각자 자기의 판단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맡겨져 있고 공통의 신념과 가치가 결여되어 간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우리가 왜 다른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과 인격을 존중해야 하는지, 우리가 왜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되게 살아야 하는지, 왜 부모님을 공경하고 왜 하나님을 믿고 섬겨야 하는지, 우리의 삶을 행복하고 충실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인생의 질문들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다시 정의하고 찾아가고 해답을 발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인 실천의 부분들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번 기회에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 우리가 십계명의 말씀들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좀 더 중점을 두어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도 우리가 우리의 삶의 윤리적인 기초를 어떻게 세워가야 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시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차원에서 앞에서 말씀드린 내용들을 잠깐 정리해 보자면, 첫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 궁극적인 진리는 하나이며 그 진리는 이 세상을 은혜와 사랑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있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상을 만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형상 뿐 아니라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 속에 광대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두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며 하나님은 우리가 날마다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안에서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하나님께 속한 은혜와 축복과 능력을 우리에게 나눠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리며 하나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살아가며 하나님을 더욱 친밀하게 사랑하고 의지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에 담긴 은혜와 능력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우리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이유는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심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창조의 은혜와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전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님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우리의 부모님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우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들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그분들의 신앙과 교훈을 통해 이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 번째로 우리가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들이며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한 형제자매들이므로 우리가 우리의 이웃들의 인격과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일곱 번째 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우리에게 온전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하며 결혼과 가정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우리를 교훈하시는 계명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은 이전에 살펴본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나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보다는 좀 더 제한적인 관계에 적용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녀간의 사랑과 결혼은 특히나 오늘날 필연적인 것이기 보다는 선택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근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의 기사를 통해 하나님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으로 연합하므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 부부 관계였을 뿐아니라 아담에게 하와는, 그리고 하와에게 아담은 그들이 만난 최초의 타자였고 최초의 이웃이었으며 최초의 친구였고 최초의 동역자였습니다. 이렇게 최초라는 의미에서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신 가장 근원적인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 못지 않게, 아니 어떤 면에서는 그 이상으로 남녀간의 관계에 대한 많은 계명들을 담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우리에게 친숙한 여러 가지 관계들에 비유하여 가르쳐 줍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물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되고 부모님을 공경함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과의 언약의 관계를 남녀 간의 사랑의 관계에 비유하는 말씀도 많습니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말을 주로 남녀간의 관계에 사용하듯이 성경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줄 때에 남녀간의 관계에서의 우리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그 사랑을 이해하게 합니다. 우리가 결혼이라는 언약으로 맺어진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신의를 지킬 때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간의 언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 다른 대상을 하나님 보다 사랑할 때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영적인 간음으로 표현합니다. 성경은 아가서에 나타난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고 호세아 선지자에게 부정한 여인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들을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성도들이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신부에 비유하고 사도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사랑에 대해 가르치면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심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최근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병원을 배경으로 서로 친구 사이인 5명의 의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인데 의료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여러 가지 사랑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를 구성합니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미국 드라마와 한국 드라마를 비교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미국 드라마에서 경찰이 나오면 수사를 하고 의사가 나오면 진료를 하는데 한국 드라마에서는 경찰이 나오면 경찰이 연애를 하고 의사가 나오면 의사가 연애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드라마를 많이 보는 것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맞는 말인 것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생각해보면 참 우리 나라는 사랑으로 충만한 나라인 것 같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경험하는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감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사랑이 늘 그렇게 아름다운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성과의 사랑을 통해 친밀감과 신뢰, 위로와 따뜻함, 설레임과 열정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또한 배신과 상처, 수치심과 모멸감, 열등감과 불결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면서 경험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데 서툴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우리의 사랑이 너무나 불완전하고 깨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기쁨보다 고통을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채울 때에 더 성숙하고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신약성경이 기록된 헬라어로는 사랑을 여러 가지 단어로 구분해서 표현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가페와 에로스입니다.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에 사용합니다. 에로스라는 말은 우리가 에로틱하다고 말 할 때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데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기 사랑을 말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적용한다면 아가페적인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랑이라면 에로스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지만 에로스적인 사랑은 욕망에 휘둘리고 감정적이고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랑이고 아가페적인 사랑은 이해하고 배려하며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의 근원은 하나님이고 에로스적인 사랑의 근원은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구분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당한 일을 저지르고서도 사랑해서 그랬다는 식의 변명과 핑계를 대곤 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모든 부당한 일들은 우리가 아직 아가페적인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가페적인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장 잘 가르쳐 주는 말씀이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하며 시작되는 노래로도 만들어져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전에 저 보다 먼저 결혼한 친구가 있었는데 교회 선후배 사이에서 서로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했기 때문에 신랑과 신부 모두 제가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결혼식 끝나고 웨딩카를 운전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웨딩카를 따로 준비한 것이 아니어서 저희 아버지 차를 제가 나름 꽃장식을 해서 꾸며서 웨딩카로 만들고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친 신랑신부를 태우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교회 선배가 결혼을 하고 첫날 밤에 함께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무리 그래도 그거 좀 너무 홀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저로서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결혼식에 깊이 관여해서 돕게 되니까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웨딩카를 준비하면서 고린도전서 13장 낭독 테이프를 준비해서 신랑신부가 차에 타자마자 틀어 주었습니다. 그것이 저로서는 두 사람을 위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두 사람은 내가 지금 운전석에 타고 있는지 없는지, 차 안에서 지금 무슨 말씀이 나오는지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실망을 해서 신랑신부에게 웨딩카 기사의 본연의 자세에서 벗어나서 지금 나오는 말씀이 고린도전서 13장이니까 좀 잘 들어보라고 약간 뿔따구가 나서 말을 해서 분위기 좋았던 신랑신부에게 찬물을 끼언졌던 부끄러운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사랑이란 사람에게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처럼 생각을 하고 그러다보니까 감정이 식으면 사랑도 식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은 불완전하고 부족하며 변덕이 심하고 탈선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사랑에 부어질 때에 우리는 감정의 기복과 환경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한결같은 사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우리의 부족한 사랑, 왜곡된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성간에 온전한 사랑을 경험하게 될 때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구체적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게 됩니다. 

오늘 본문도 지난 주처럼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의 의미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그런 눈을 가지고 살면서 죄를 짓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눈을 빼버리는 것이 낫다는 극단적인 말씀을 하셔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드십니다. 이 말씀을 듣고 인간에게 다 성적인 욕망이라는 것이 있는 것인데 무슨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생각도 못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잘못된 행실들이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음욕을 품고 이성을 보지 말라는 말씀은 우리가 어떤 에로틱한 감정을 갖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성을 볼 때에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왜곡된 시선을 바로 잡으라는 의미입니다.  

근본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내 감정과 욕망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하며 이해하고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도 있지만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두 사람을 서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며 서로 동등한 존재로 여기게 합니다. 

킹스 스피치(King’s Speech)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지금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2세의 아버지인 영국 국왕 조지 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조지 6세가 된 영국의 왕자 알버트는 왕위 계승 서열 2위였고 그에게는 왕위계승 서열 1위인 형이 있었습니다. 그는 말을 더듬는 버릇이 있었지만 당연히 그의 형이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크게 걱정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형이 에드워드 8세로 즉위를 했다가 왕위를 포기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어서 갑자가 예상치 못하게 그가 영국의 왕이 됩니다. 그 당시는 2차세계 대전 발발 직전이어서 국왕으로서 연설을 통해 국민들을 통합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한 때였고 그의 상대편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연설의 달인이었기 때문에 말을 더듬는 그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 언어 치료사의 도움과 우정을 통해 말을 더듬는 버릇을 고쳐 가게 되는 이야기가 영화의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에드워드 8세가 왕위를 포기한 이유는 한 미국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슨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여인은 이혼 경력이 있는 평민이었기 때문에 왕실에서 결혼을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자 에드워드 8세는 11개월만에 왕위를 버리고 심슨 부인과 결혼을 강행합니다. 그래서 에드워드 8세는 세기의 로맨스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는 왕위를 포기하고 심슨 부인과 결혼한 후에 윈저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상당히 로맨틱한 멋쟁이어서 넥타이를 매는 방식 중에 원저노트라고 불리는 방법을 창안한 사람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사랑은 서로 신분이 다른 사람들 간에도 서로 동등한 존재로 만듭니다. 왕과 평민이 사랑을 하게 되면 평민이 왕비가 되거나 왕이 왕위를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와 같은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날에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성차별, 성희롱과 여러 성범죄들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성차별적인 시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날에는 특히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하여 중요한 기여를 하며 남성과 동등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기고 남성의 의지와 욕망에 종속된 존재로 여기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에, 그래서 여성을 하나의 존중받아야 하는 인격으로서, 함께 협력하며 이 세상을 함께 책임져가는 동반자로서가 아니라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때에 남녀간에 여러 가지 부당하고 잘못된 행위들과 범죄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왜곡된 사랑을 바로잡아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남성과 여성 간에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며 온전한 사랑을 이루게 하심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더 풍성하게 누리게 하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채우며 우리의 모든 관계들을 통해 그 사랑을 나타내고 우리의 가정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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