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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희망의 근거/창세기 6:5-12

오늘은 먼저 제가 자동차를 처음 운전하게 되었을 때에 경험했던 에피소드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비교적 일찍 면허를 딴 편이어서 대학교 2학년 때 면허를 땄습니다. 그때만 해도 대학생 중에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물었을 때였는데 면허는 땄지만 집에 차는 한 대뿐인데 그 차는 늘 아버지께서 출퇴근할 때 타시고 또 가끔씩 저 보다 먼저 면허를 따신 어머니께서 운전을 하셨기 때문에 저에게는 순번이 별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종의 장롱면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제 친구가 제게 교회 대학부에서 문학의 밤을 하면서 을지로에서 조명기구를 빌려온 조명기구를 오늘까지 반납해야 하는데 차는 빌렸는데 운전할 사람이 없다고 운전을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차는 교회 선배형의 차였는데 그 형이 자기가 차는 빌려줄 수 있는데 다른 약속이 있어서 시간이 없어서 운전은 못해준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 면허를 땄다고 자랑을 하고 다녔기 때문에 그 친구가 제 생각이 난 것이겠지요. 그런데 그 친구는 면허만 있으면 운전을 할 줄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저로서는 시내 운전을 해본 적이 없었고 그런 주제에 남의 차를 함부로 몬다는게 참 위험한 일이었는데 그때에는 운전할 기회가 왔다는 것 하나만 생각하고 덜컥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같이 가서 교회 앞마당에 세워둔 차를 보니까 제 기억에는 포니2였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게 차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는 좀 오래된 차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게 신경이 쓰일 리가 없었고 그저 젋은 패기 하나만으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둘 다 길을 잘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면허만 달랑 있지 별로 운전을 해본 적이 있어서 길을 잘 몰랐는데 운전면허도 없는 친구가 을지로까지 가는 길을 제대로 알 리가 없지않겠습니까? 그래도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갈 때는 어떻게 어떻게 찾아가서 반납은 했는데 문제는 갔던 길을 그대로 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강북이 길이 복잡한데다가 운전도 처음하고 주의력도 없고 차에 지도하나 없어서 돌아오면서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강남으로 와야 하는데 지금 앞에 표지판에는 이대로 직진을 하면 마포라고 써있었습니다. 이거 어떻게 하지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서강대를 다니는 친구였는데 자기가 그 동네에 가면 길을 잘 아니까 일단 직진을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을지로에서 강남으로 가야하는데 마포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만 믿고 마포까지 갔는데 길을 알기는 무슨, 거기서 또 헤메는 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니 이번에는 표지판에 김포라고 써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차를 돌리려고 하는데 바깥 차선에 있다보니까 유턴할 생각도 못하고 일단 오른쪽으로 꺾어서 골목길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길이 일방통행이라 제 앞에 차들이 제가 운전하는 차를 바라보면서 줄을 서 있는 것입니다. 너무 당황해서 길을 비켜주려고 돌리려는데 그야말로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갑자기 펑 소리가 나더니 차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입니다. 요즘은 그런 일이 별로 없는데 옛날에는 라지에타가 오바히트를 한다고 오래된 차의 경우에 냉각수가 돌고 있는 라지에터가 문제가 생기면 과열되어 뚜껑이 터지고 증기가 올라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는 뭐 아무것도 모르니까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엔진이 터져버린 줄 알았습니다. 길도 모르고 차도 퍼지고 길이 막힌 차들은 빵빵거리고 정말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갑자기 제 친구가, 있잖아 사실 내가 지난 주일에 십일조를 안했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와 그 친구가 그 자리에서 서로 한 가지씩 회개하며 둘이서 부흥 집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앞에서는 차들이 빵빵거리는데 그럴수록 우리는 더 많은 잘못들을 고백하면서 함께 참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무튼 제 기억으로는 누군가가 상황을 파악하고 이거 심각한 거 아니니까 너무 놀라지 말고 저기 카센터가 있으니까 냉각수 보충해서 넣고 천천히 차를 몰고 가서 라지에타 교환하면 된다고 알려주어서 어떻게 어떻게 차를 수리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도 차를 카센터에 맡기고 버스 타고 오고 차 주인인 선배형이 차를 찾아 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철부지 대학생 둘이서 선배에게 빌린 차가 폭발한 줄 알고 놀라서 온갖 죄를 다 고백하며 자기 탓이라고 서로 은혜의 집회를 했던 일은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 옛 추억입니다. 

우리가 어떤 재난을 당하게 되면 그동안 덮어두었던 많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그게 꼭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대학생들이 용돈 아껴서 십일조를 안했다고 우리를 벌주시려고 서울 변두리까지 가게 하셔서 거기서 라지에터를 터뜨리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보자면 길도 잘 모르고 운전도 잘 못하면서 무모하게 운전대를 잡은 것, 차가 오래되어서 상태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나 또한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특히 신앙인의 입장에서 뭔가 문제가 생기게 되고 안좋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을 때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계기로 그동안 가볍게 여기고 무심코 지나갔던 많은 일들에 대해 생각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그러면서 여러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그런 교훈들이 우리가 당한 어려운 일들을 통해 오히려 우리의 삶을 반전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은혜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그날 제 친구와 가졌던 부흥집회도 나름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는 계속되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 속에서 국가에서 유래 없이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만큼 어떤 면에서 국가적인, 전 세계적인 재난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두 달 반 전에 십계명에 대한 설교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십계명 시리즈를 마칠 때쯤 되면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이제부터가 전국적인 확산이 시작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합니다. 

그래서 7월과 8월에는 아예 작정을 하고 좀 더 재난과 신앙의 의미에 대해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이 상황의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 성경 속에서 재난과 관련된 본문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성경적으로 해석을 해야 하고 또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구하고자 합니다. 굳이 제목을 붙여보자면 “재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정도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노아의 홍수의 이야기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재난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노아는 홍수라는 엄청난 재난을 예고 받고 유일하게 대비한 사람이고 이 재난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사람이며 재난 이후에 인류의 새로운 출발을 담당했던 사람입니다. 재난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며 믿음의 길을 갔던 노아가 바로 홍수라는 거대한 재난 속에서 희망의 근거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재난 속에서 여러분들 한분 한분이 새롭게 각성하여 앞으로 변화될 세상 속에서 새로운 희망의 근거가 되는 그런 분들이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노아의 홍수를 관계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홍수 이전의 세상에 대한 묘사를 보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른 모든 인간들은 죄에 물들어 악한 생각 속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노아의 관계는 은혜의 관계였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죄악과 심판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면 노아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저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노아가 느꼈을 감정을 외로움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홍수에 대해 미리 알기 전에도 노아는 그 세상에서 외로운 존재였습니다. 노아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연연하지 않았고 이 세상이 불의한 길을 갈 때에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홀로 따라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외로움을 거부하지 않고 고독을 회피하지 않았던 사람이었기에 그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롭고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외로움이란 피하고 싶은 감정입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남과 다르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좀 더 심한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젊었을 때에는 나름 자기 주관대로 살아가고 싶어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느새 조직에, 공동체에 적응을 하고 그 속에서 자기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찾을 때에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기 멋대로 살려는 것을 보면 어떻게든 제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을 하지요. “나는 뭐 좋아서 이러고 있는줄 아나.” 

사실 우리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삶의 방식을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의 용기를 칭찬하게 되기보다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남들에게 맞춰가며 살지 않았어도 되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되니까 그것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그런 사람들의 삶을 부정하고 고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무언가 의미있는 발자국을 남기려고 한다면 고독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그저 남들처럼 되려고 남들이 가는 길만을 정신없이 쫓아가면서 우리의 인생을 허송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 앞에서의 고독을 삶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러한 신앙인의 모습을 “하나님 앞에서의 단독자”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관계를 맺고 살아가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에게는 외로움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내 모습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교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만의 세계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당혹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더 정확하게 깨닫게 됩니다. 

한 사람의 신앙의 척도를 객관적으로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주관적으로는 내가 하나님 앞에 홀로 있는 시간을 얼마나 자주, 깊이 가질 수 있느냐가 중요한 신앙의 척도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결국은 인간관계에서 시작해서 인간관계로 끝나는 수가 많습니다. 물론 친교도 중요하고 봉사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친교와 봉사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들 이전에 하나님과의 은밀한 시간, 고독한 시간, 하나님 앞에서 내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이 없다면 신앙이라는 것도 그저 또 다른 인간관계의 연장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상황은 우리에게 친숙했던 모든 관계들을 잠시 중단하고 점검하고 홀로 있는 시간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교제와 봉사보다는 예배와 기도에 더욱 집중하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내면을 살피고 어느새 돋아난 복잡한 삶의 잔가지들을 쳐내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코로나19가 교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들 중에서 교회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각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교회는 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다가가고 세상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서 차고 넘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소통의 단절을 막연히 두려워하고 세상에서 인정받는 것에  너무 큰 비중을 두다보면 신앙의 선후가 뒤바뀌게 됩니다.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교회의 사회적인 영향력은 이전보다 줄어들고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점점 부정적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그런 경향은 더 심해질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든지 뒤집으려고 이 세상 속에서 교회의 존재감을 더 어필하고 세상 속에서 인정을 받으려고 애를 써야 할까요? 꼭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상이 원하는 것을 교회가 더 많이 해준다고 교회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는 이 세상과 다른 뭔가가 있다는 것을 드러낼 수 없다면, 교회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나타낼 수 없다면 교회가 이 세상에 대하여 영향력을 가지고, 권세를 가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먼저 소위 내공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중심이 서있어야. 내 내면이 꽉 차있어야 모든 관계들을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나의 내면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내가 누군지 더 혼란스러워지고 혼자 있는 시간을 더 견디지 못하게 되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노아는 홍수가 끝나기 까지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노아가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준행하였다고 반복하여 알려 줍니다. 그는 앞으로 닥치게 될 일들을 알게 되고 방주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게 된 이후에도 묵묵히 그가 살아오던 대로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나 판단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자기가 가야 하는 길을 갔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왕 큰 방주를 만들었는데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려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안간힘을 쓸만도 한데 성경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는 고독을 벗하여 침묵하며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으로부터 벗어나있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시면서 노아에게 상기시켜 주신 또 다른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과의 관계, 동물들과의 관계였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하나님이 방주를 만드신 것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방주에 탈 자격이 있는 사람은 노아와 그의 가족이면 족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셨던 것은 저 큰 방주 안에 다양한 동물들을 태우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바이러스의 확산에 대한 염려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을 때에 우리가 좀 더 눈을 들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지구라는 공간 속에 있는 또 다른 존재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심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눈에는 사람들이 먼저 보이고 또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먼저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선을 좀 더 넓히게 되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심 한 복판에도 구름이 보이고 달이 보이고 별이 보입니다. 

저는 여행을 가서 아름다운 자연에 감탄을 하고 특히나 뭉게 뭉게 흰 구름이 하늘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게 될 때마다 왜 서울에서는 이런 구름을 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교회 앞마당에서 하늘을 바라보면서 뭉게구름이 펄쳐 있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내가 사는 곳에 아름다운 구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빌딩의 숲에 가려서 내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인간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관계를 맺고 일을 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정의하고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 대자연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맺어야 하는 또 다른 관계들이 있습니다. 이 광대한 자연과의 관계를 깨닫게 될 때에 그 속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로서의 내 자신의 모습을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위에서 살아가지만 그러나 우리가 딛고 서있는 곳을 조금만 파고 들어가면 여전히 대지는 그 곳에서 우리를 받쳐주고 있고 빌딩 숲에 가려져 있지만 더 높이 올려다 보면 우리의 머리 위에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 인간들은 물론 수 많은 생명체들이 온 지구에 가득합니다. 

외계에도 생명체들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적막한 우주에 오직 지구에만 수많은 생명들이 그야말로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푸른 지구는 생명으로 가득찬 경이로운 행성입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선물을 받은 존재로서 여러 동물들, 식물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모든 생명들을 소중히 여기시고 우리가 그 속에서 다른 피조물들과 선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노아는 어떤 면에서 동물들의 구원자로 택함을 받았습니다. 노아의 사명의 대상은 사람들이 아니라 동물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서두에 자동차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말씀드렸지만 얼마 전에 자동차에 대한 기사를 보니까 요즘 사람들이 앞으로 어떤 자동차를 사겠냐고 물어보면 예전보다 전기자동차를 사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자연과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친환경 자동차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기사를 보신 분들이 많이 계실텐데 유럽에서는 사람들의 이동이 금지되고 불가피한 몇가지 경우에만 허락을 해주었다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애완동물과 함께 산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밖에 나가려고 아이디어를 짜내어서 개나 고양이가 없는 사람들 중에서는 어디서 구했는지 닭을 가지고 나온 사람도 있고 가장 재미있었던 것이 어항 속의 금붕어를 가지고 산책하겠다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뭐 금붕어도 애완동물이라면 애완동물이겠지요. 우스개소리로 할만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이 될 때에 내가 다른 동물들과 맺고 있는 관계가 그만큼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로 경제가 안좋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잘 팔리는 물건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자전거입니다. 자전거는 혼자 타는 것이니까 대중교통이 꺼려지는 사람들, 운동을 하고 싶은데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기가 꺼려지는 사람들에게 자전거가 좋은 선택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캠핑용품들도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휴가를 계획하면서 좀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자기 만의 시간을 가지려는 사람들이 늘고 자연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이렇게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여러 가지로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변화들 속에서 새로운 의미, 새로운 가능성들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관계가 가족들과의 관계입니다.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유일한 사람들은 노아와 그의 아내, 노아의 세 아들과 그들의 배우자들, 이렇게 모두 8명이었습니다. 방주를 만드는 동안 유일하게 노아에게 말이 통하는 사람들은 노아의 가까운 가족들뿐이었습니다. 그만큼 가족들이 그에게는 더욱 소중해졌을 것입니다. 

요즘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이 부담스러워지면서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면 만남 자체를 서로 부담스럽게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이미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같은 집에서 살지 않는다고 해도 형제자매들, 가까운 친지들 간에 서로 안부를 묻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분주하게 사느라 다른 관계들 때문에 소원했던 관계들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진 것입니다. 물론 그러다 보니 부작용들도 있습니다. 집에만 갇혀 있다 보니 더 갈등이 커져서 여러 나라에서 이혼 건수가 늘었고 가정 폭력이 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애매한 인간관계들이 중단되면서 만들어지는 시간이 소중한 사람들의 소중함을 더 많이 느끼고 표현하는 시간으로, 그리고 가족들간의 갈등이 커지는 계기가 되기보다는 그동안 쌓였던 오해와 갈등을 좀 더 진지한 대화를 통해 해소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입니다. 

올 여름은 아마도 이전과는 좀 다른 특별한 시간들이 될 것같습니다. 여러분들이 휴가를 계획하신다면 아마도 이전과는 좀 다른 휴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코로나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고 교훈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상황과 시간들을 통해 우리들 각자가 하나님 앞에 홀로 있는 시간을 찾고, 자연 속에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새롭게 느껴보며 가족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좀 더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므로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희망의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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