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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부어주신다 / 디도서 3:3-7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지난 시간에는 성령에 대해 교리적, 이론적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성령의 역사의 현장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도행전 2장에 나타난 성령강림사건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강한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성경에 단 한번만 나오는 사건이 아닙니다. 특히 사도행전에서는 여러 번 성령이 임하는 장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어리석고 순종하지 못하고 정욕에 빠져있고 미움에 빠져있던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하셨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바로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졌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성령을 지금도 풍성히 부어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은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오늘 날에도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반겨 듣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부감과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뭔가 성령충만이라는 것은 어떤 황홀경에 빠지는 것, 일종의 열광주의, 반지성주의와 연관지어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어떤 목회자들이나 신학자들은 방언과 예언과 신유와 같은 성령의 은사와 이적들은 초대교회에서만 일어났던 일이라고 단정을 짓고 우리 시대에는 더 이상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소위 은사중지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믿기 힘들고 내가 마음에 안들면 안드는 것이지 성경에 기록된 것을 그런 것이 없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부정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게 되면 각 시대마다 교회를 새롭게 하는 부흥운동, 각성운동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에서 성령의 강한 임재를 경험하는 사건들이 이어져 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부흥운동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시대는 18세기였습니다. 이때에 대서양의 양편에서,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적으로 큰 부흥이 일어났는데 영국에서는 복음주의 부흥운동 혹은 감리교 부흥운동이라고 불리고 미국에서는 대각성운동이라고 불립니다.

이 시대의 부흥운동의 특징은 지성과 감성, 더 나아가서 사회적인 실천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에는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만 하고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만 하고 운동하는 사람은 운동만 합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뛰어난 학식을 지닌 사람들이었을뿐 아니라 뜨겁게 기도하는 사람들이었고 사회적인 의식에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시대의 지도자로서 대표적인 인물로서 영국에서는 감리교를 창시한 존 웨슬리(John Wesley)를 들 수 있고 미국에서는 장로교 목회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를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존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의 국교회인 성공회의 목회자로 사역을 시작하였고 조나단 에드워즈는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예일대 강사를 역임하기도 한 장로교 목사였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에 설교학을 가르치던 교수님이 원고를 꼭 작성해서 설교를 해야하지만 성도들과 교감을 하며 설교하기 위해서는 원고를 철저하게 숙지해서 원고를 보지 않고 설교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어떤 학생이 조나단 에드워즈는 원고를 읽으면서 설교를 했는데도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았는데 왜 설교 원고를 보고 읽으면 안되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자네, 지금 자신을 조나단 에드워즈와 비교하는가? 조나단 에드워즈는 눈이 나빠서 원고를 코 앞에 대고 읽기만 했는대도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참회를 하고 큰 은혜를 받을만한 영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네는 안되네.”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의 설교는 매우 체계적이고 설득력있고 성경적인 내용을 가진 지성적인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이들이 인도하던 집회에서는 뜨거운 기도가 동반되었고 놀랍고 역동적인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의 감정을 인위적으로 자극해서 은혜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대로 복음을 증거할 때, 그리고 사람들이 은혜를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할 때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놀라운 회심이야기”라는 책에서 은혜를 받고 회심을 경험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때, 갑자기 그들의 눈이 열려 그 분의 광대하신 은총, 그리스도의 충만하심과 구원의 신속함이 마음속에 스며든다. 과거의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두려움으로 망가졌고 죄의식 때문에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기쁨에 찬 놀라움으로 가슴이 뛰어서 웃음을 터뜨릴 준비가 되었다. 때로는 동시에 눈물이 홍수처럼 쏟아져 커다란 흐느낌과 뒤섞였다. 그리고 종종 큰 소리로 우는 것을 참을 수 없었는데 이것은 엄청난 경외심을 표현이었다. 어떤 경우 그분의 은혜가 실현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주권이 나타나서 영혼이 엄청난 감미로움으로 놀라기도 하였다.”

웨슬리도 그의 일기 중에 집회 속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60여명의 형제들과 함께 사랑의 애찬에 참예하였다. 그 후에 새벽 3시경까지 우리가 즉석 기도를 계속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위에 강하게 임하셨으며 넘치는 기쁨으로 많은 사람들이 울음을 터뜨렸으며 땅에 엎드렸다. 그의 현존하시는 위엄의 경이에서 깨어나자마자 곧 우리는 한 목소리로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나이다. 우리는 당신이 주가 되심을 아나이다’라고 고백했다.”

여기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들에게 느끼질만큼 강력하게 일어났다는 것, 매우 감정적인 반응들이 동반되었다는 것, 그러면서 그것이 어떤 자신의 쌓인 감정의 해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이 나타난 것으로 느끼게 되어 더 큰 믿음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부흥운동에는 또 다른 차원의 사회적, 정치적인 중요한 결과들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대각성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미국에는 각기 다른 시기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세워진 13개의 식민지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서로간에 연대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 동부의 여러 지역에서 일어난 대각성운동은 사람들을 신앙 안에서 하나로 연대하게 하였습니다. 사실 각각의 식민지들 마다 신앙적인 배경도 달랐고 출신 지역도 달랐었지만 이 모든 지역을 아우르는 큰 부흥운동이 사람들에게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였고 이러한 연대의식은 미국 독립운동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영국에서 일어난 감리교 부흥운동은 당시 산업혁명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사회적인 갈등이 증폭되던 시기에 그들의 삶의 애환을 위로하며 삶에 긍정적인 희망을 불어넣어주어서 사회적인 갈등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일어나는 혼란을 겪었지만 영국은 그러한 정치적인 격변을 피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으로 부흥운동과 교회의 역할을 들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이 시기의 부흥운동이 중요한 이유는 18세기에 시작된 부흥운동이 바로 선교운동으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올해 초부터 말씀과 기도와 선교가 신앙의 핵심이라고 강조해왔는데 바로 부흥운동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심하며 뜨겁게 기도하게 된 사람들은 바로 복음 전파의 열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사가들은 19세기를 위대한 선교의 세기라고 부릅니다. 선교적인 열정은 양방향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적으로도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사회선교 운동으로도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당시 영국에서는 국가수입의 상당량을 차지하던 노예무역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로비와 청원으로 국회에서 폐지하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지구반대편 오지에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하려는 해외선교의 열정으로도 나타났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각성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 세계로 나아갔습니다. 그들 중에 영국 웨일즈의 토마스 선교사, 스코틀랜드의 존 로스 선교사, 미국의 언더우드 선교사 같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교회가 세워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믿음의 확신과 복음 전파의 열정이 없이 한 사람의 선교사도 헌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나라 교회는 바로 이런 부흥운동의 직접적인 수혜자였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19세기에 이은 20세기는 철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이성적인 사고가 발달하고 사람들이 신앙의 전통을 떠나는 세속화가 가속화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습니다. 물론 그런 측면들도 있었지만 20세기 초에는 그 후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성령운동, 부흥운동이 시작되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성령운동과 20세기의 현대문화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같지만 실제로는 묘한 연관관계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전세계적으로 전통과 권위가 퇴색하고 민주주의와 개인주의가 확산이 되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엘리트주의가 물러나고 대중들이 사회와 문화의 주된 행위자로 등장하던 시기입니다.

이런 시기에 전통적인 교회들은 퇴조하게 되었지만 성령운동으로 등장한 새로운 교회들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성령운동은 개인의 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내 아버지가 믿었기 때문에 나도 믿는 것이고 우리 지역의 영주가 믿기 때문에 나도 믿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통과 권위가 신앙을 뒷받침했습니다. 그러나 전통과 권위에 의존하는 신앙은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교회들은 쇠퇴하게 된 것입니다. 20세기에 성령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각각의 개인들에게 믿음의 확신을 얻게 하는 체험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체험했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내가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기 때문에 신앙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각 개인의 각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종교개혁운동이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이라고 가르치며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번역을 하고 개인의 신앙의 고백을 강조했지만 그후 오랜세월동안 교회는 목회자 중심, 신학자 중심, 엘리트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운동은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영적으로 각성을 시켰습니다. 이들이 신앙의 주체가 되었고 진정한 평신도 운동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각성된 사람들이 선교운동을 주도했고 과거의 사회 하층민의 전형과 같았던 무절제하고 부도덕한 삶을 벗어나서 도덕적이고 근면한 삶의 주체로 거듭나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성령운동은 사회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더 개방적인 교회를 만들어갔습니다. 배경이 어떻고 학력이 어떻고 인종이 어떻든지 간에 은사를 받은 사람이 지도력을 갖게 됩니다. 흑인이든지 여성이든지 어떤 사회적인 제약 속에 있는 사람이든지 성령운동으로 시작된 교회에서는 더 뜨거운 체험을 하고 더 큰 은사를 받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교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표적이 나타나게 되면 다른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의 체험과 영적인 각성을 강조하는 부훙운동은 오히려 20세기에 더 뜨겁게 일어나게 되었고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갖고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게 된 것입니다.

20세기 초에 전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의 아주사 스트리트(Azusa Street)에서 일어난 성령운동과 영국 웨일즈의 부흥운동, 그리고 우리나라 평양의 대부훙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먼저 미국의 아주사 스트리트의 부흥운동은 이후 20세기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오순절 운동이라고 불리는 중요한 흐름의 원류가 됩니다. 우리는 장로교회에 속해있고 우리나라는 장로교의 전통에 속한 교회가 여러 교파들 중에서 가장 큰 교세를 가지고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보자면 오늘날 개신교의 부흥을 주도하는 것은 오순절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오순절운동을 표방하는 교단들과 성령의 은사와 영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교단들을 합하면 전세계적으로 약 5억 정도의 성도들이 오순절 운동의 영향 아래에서 지금도 확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큰 부흥을 이끌고 있는 교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오늘날 선교학자들은 기독교의 중심지가 20세기 동안에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을 했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교회들이 쇠퇴하는 현상이 나타났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미에서 기독교가 확산되면서 새로운 원동력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흥운동의 선두에 오순절 성령운동이 있습니다.

미국의 아주사 스트리트의 부흥운동은 1906년에 일어났습니다. 부흥운동을 이끈 사람은 윌리엄 시무어(William Seymour)라는 흑인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당시에 유명한 부흥사였던 찰스 파럼(Charles Parham) 목사의 강의를 듣고서 큰 은혜를 받았는데 찰스 파럼이 신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에 그는 흑인이어서 강의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복도에서 청강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강의실 안에 있던 누구보다도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는 엘에이에 와서 부흥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부흥회를 열 장소를 물색하다가 아주사 스트리트라는 곳에 있는 한 작은 예배당을 얻게 되었는데 그곳은 원래 감리교회였다가 당시에는 창고로 사용되던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놀라고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바로 우리 교회가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예배당은 원래 감리교회가 있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분당으로 이전하면서 예배당을 팔았는데 우리교회가 압구정동에 있다가 새로운 성전을 찾아다니게 되었는데 삼성동에 좋은 장소가 있다는 소개를 받고 장로님들이 와 보셨을 때에 이 예배당이 술창고로 사용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교회에서 다시 교회로 회복을 한 것입니다. 예배당의 크기도 비슷합니다. 길이가 18미터 폭이 12미터였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 우리교회 본당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처음에 모인 성도들은 5-60명 정도였는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해서 기록에는 1300명이 모인 날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루 세 번씩 집회를 가졌는데 어떤 날에는 다음 집회시간이 시작되기까지 그 앞의 집회가 끝나지 않아서 하루 종일을 집회가 이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매일 매일 이어지는 집회가 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강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뜨겁게 기도하고 회개하고 방언을 하고 병고침을 받고 그야말로 울고 웃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받았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오순절 운동은 처음에는 기존의 교단들과 구별되는 새로운 교단으로 성립되었지만 점점 영향력이 확대되어서 기성교단들 안에서도 성령운동이 확산이 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아주사 스트리트의 부흥운동에서 특별히 주목할 만한 점은 열광적인 예배뿐만 아니라 이때 모인 사람들이 흑인, 백인, 여러 유색인종들이 그야말로 미국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에도 흑인과 백인이 함께 모이는 교회들이 많지 않는데 지금부터 100년 전에 그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영국 웨일즈의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는 에반 로버츠(Evan Roberts)라는 사람인데 그는 원래 광산에서 일하던 광부였습니다. 그는 어느 모임에서 한 장로님이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 여러분이 그 자리에 없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도마를 기억하세요. 그가 얼마나 큰 낭패를 겪었던 가요”라고 말한 것에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꼭 성령을 받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모든 예배와 집회에 참석하고 계속해서 부흥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기도는 놀랍게도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큰 은혜를 받았는데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도 새벽 1시면 깨어서 4시간을 기도했고 다시 잠이 들었다가 9시에 또 일어나서 12시까지 또 기도하는 일이 석 달을 계속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가만히 두시지 않았겠지요. 그래서 그는 설교자로서 사명을 받게 되었고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회자가 되어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에반 로버츠의 부흥운동은 1904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시대에 함께 사역하던 사람들과 함께 영국 웨일즈 지방 전역에서 당시에 큰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당시에 일어난 변화들을 당시의 기록은 이렇게 전합니다. “기도회가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많은 사람이 회심했다. 주점은 텅텅 비었고 사람들은 오랫동안 갚지 못한 빚을 깨끗이 갚았으며 질투도 자취를 감추었다. 교회와 집안 간의 불화가 치유되었고 지독한 술꾼과 현상금을 노리는 모리배와 노름꾼이 예배에 참석해 기도를 드리면서 자신의 체험을 간증했다. 모든 교회들이 한 몸이 되어 서로 협력했다. 부흥운동은 사회 전 분야와 영역에서 화제가 되었다.”

웨일즈 부흥운동의 소문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중에 미국의 하워드 존스톤(Howard Johnston) 목사는 직접 웨일즈를 찾아가서 부흥의 현장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이렇게 도전을 하였습니다. “이 웨일즈의 부흥은, 에반 로버츠 한 사람이 주님 앞에 온전한 굴복을 결단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조선 땅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소원하십니까? 여러분 중에, 에반 로버츠처럼 주님께 온전히 굴복하고, 주님께 온전히 쓰임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시간, 손을 들어 보십시오!” 그랬더니 그대 손을 번쩍 든 사람이 있었는데 그 분이 당시에 평양 장대현 교회의 길선주 장로였습니다.

길선주 장로는 당시에는 장로였지만 후에 신학교를 졸업하고 장로교에서 배출한 첫 번째 목사 중 하나가 되었고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의 하나가 되었고 우리나라 교회의 부흥을 이끌었던 명설교가였던 1세대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그날 이후로 평양 대부흥운동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평양에서 어떻게 부흥운동이 전개되었는지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에서부터 시작된 성령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성령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시고 서로 깊이 사랑하게 하시고 회개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시고 성령의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게 하십니다.

예수 믿고 사람이 변화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신앙의 큰 과제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리고 교회의 역사는 성령이 임재하는 곳,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는 곳에 놀라운 은혜와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내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우리 교회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예수 믿어도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충분히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 우리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성령을 풍성히 부어주셔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주시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날마다 경험하게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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