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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표지 / 고린도전서 1:1-9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오늘과 다음 주는 교회에 대한 신앙고백을 다룹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신앙고백 안에 교회의 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믿습니다”라는 고백 안에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믿는다는 고백이 있을 뿐 아니라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는 고백이 같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우리의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믿는 것과 교회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신경 전체의 구조를 생각해보자면 교회의 위치는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에 대한 고백과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에 대한 고백, 즉 죄사함과 부활과 영생 사이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약하여 말하자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위해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2천년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완성된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는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이 됩니다. 성령님은 교회를 통해서 지금도 역사하시면서 우리에게 죄사함의 기쁨과 부활의 소망과 영원한 생명의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다시 밀하자면 삼위일체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라고 믿는다는 고백이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교회는 우리의 신앙에서 중요한 것이지만 오늘날 교회의 지위는 큰 위기 속에 처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선배의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대학교수로 일하는 대학 동창 한 명을 만났습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가 제게 한 말이 앞으로 교회가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서양중세사를 전공한 친구인데 교회는 다니지 않습니다. 중세사를 전공했으니까 기독교에 대해 알만큼 아는 친구인데도 교회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이었고 현대사회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길게 이야기할 수는 없고 그저 지금 이대로의 형태로는 힘들수도 있겠지만 교회가 2000년의 역사를 이어왔는데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다름대로의 방법으로 현대사회에 적응을 하고 변화하면서 계속될 것이라는 정도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하나의 경향은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가기 싫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2015년에 인구조사를 했는데 종교별 인구에 있어서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동안 각 교단별로 집계한 교인의 수는 줄어들고 있었는데 종교인구 조사에 대한 통계를 보면 지난 십년 간에 기독교 즉 개신교의 인구수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물론 조사 방법이나 통계의 신뢰에 있어서 여러 문제점들이 제기되기는 했지만 그동안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감소하고 있을 것이라고 다들 추정을 했는데 그 예상이 빗나간 것입니다. 이 현상에 대해 가장 단순한 결론을 내리자면 교회는 나가지 않으면서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기독교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근에 소위 가나안 성도에 대한 연구가 많습니다. 가나안 성도라는 것은 거꾸로 하면 “안나가”가 되는 데, 교회는 안나가는 그리스도인들, 교회 밖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기본적인 성격상 정확한 추정이 불가능하지만 대략 100만명 전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 상처를 받아서 교회를 떠났지만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니고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의 신앙을 유지하고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오늘날 교회의 존재의미가 심각하게 도전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가 싫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오늘날의 교회가 예수님이 세우신 그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고 가르치는데 교회가 예수님을 머리로 하는 공동체가 아니고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공동체가 아니라는 비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이 되지 않고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동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교회가 영적인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서 기피와 지탄의 대상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노회 일을 조금 돕게 되면서 저희 교회가 속한 서울강남노회 소속 교회들 중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교회들의 사정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회들의 문제는 대부분 신앙적, 교리적인 문제에 있지 않습니다. 결국은 다 사람들 간의 관계의 문제이고 또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많은 경우에 재정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가장 큰 문제는 교회가 전혀 세상과 다르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언론에도 보도된 어느 교회의 경우에는 교회가 갈등이 생겨서 법정까지 가게 되었는데 법원에서 교회의 분쟁을 중재하기 위해서 당회장을 임시로 직권파송을 했는데 목회자가 아니라 일반인 변호사를 파송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변호사협회에 판사가 추천을 부탁했는데 전제가 종교분쟁을 다뤄본 경험이 있는 비기독교인으로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법정에서도 교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신앙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이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도 교회를 다니면서 시험에 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험의 내용이 신앙에 회의가 들고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서 드는 시험도 있겠지만 결국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대부분입니다. 그럴 때 가장 자주 듣고 또 하게 되는 말이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고, 예수님을 보고 교회를 다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사람인 이상 사람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지만 또 여기에 해답이 있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교회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두 가지 고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거룩한 공교회라는 고백이고 또 하나는 성도의 교제라는 고백입니다. 간단하게 비교해보자면 거룩한 공교회라는 표현은 하나님 앞에서 교회가 어떠한 곳인가를 말하는 것이고 성도의 교제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회가 어떤 곳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차원은 교회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도 빠질 수는 없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거룩한 공교회라는 고백의 의미를 살펴보고 다음 주에는 성도의 교제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거룩한 공교회라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표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별로 익숙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교회의 표지(標識)를 영어로는 “Marks of the Church” 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여기에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참된 교회의 특징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이러이러한 특징들을 가져야 한다고 초대교회로부터 인정해온 속성들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교회가 여기 있다고 알려주는 표지판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전통적으로 교회의 표지는 네 가지를 말합니다. 하나됨, 거룩함, 보편성, 사도성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공교회라고 고백을 할 때에는 이 중에서 거룩함과 보편성을 강조해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표지를 통해 온전한 교회를 판별하는 기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어떤 곳이 되어야 하는지, 왜 오늘날의 교회가 문제가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교회의 첫 번째 표지는 “하나됨”입니다. 교회의 하나됨은 이 세상에 수많은 교회들이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교회는 하나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에베소서 4장에서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가 진정으로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공동체라면 이 세상의 모든 교회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문화적인 지역적인 시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사도들의 복음 전파를 통해 그 교회가 온 세상으로 확장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교회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하나였던 교회는 계속해서 분열하고 새로운 교단, 새로운 교파들이 등장해왔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근본적인 하나됨을 잃는다면, 같은 하나님을, 같은 예수님을, 같은 성령님을 한 마음으로 섬기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령의 전으로서의 정체성을 잃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분열이 된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의 하나됨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예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교회 안에 계셔서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같이 모든 믿은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 아래에서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성도들은 서로 하나로 연합될 것이고 이 땅의 모든 교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됨을 깨닫고 서로 연합하며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1부 예배에 웬 외국인들 두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한국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예배 끝까지 참석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네팔에서 오신 분들인데 결혼식 참석차 와서 1주일간 머무르고 오늘 돌아가는데 한국에 많은 교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예배를 드리고 가려고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설교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서로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지만 한 성령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함께 교제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곳에 있는 교회를 가든지 내 아버지의 집이기에 내가 들어갈 수 있고 나를 맞아주는 형제자매들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교회인 것입니다.

두 번째 교회의 표지는 거룩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수신자들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고린도전서를 읽어보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전혀 거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여러 분파로 나뉘어 다투고 있었고 영적인 문제들 뿐 아니라 심각한 도덕적인 문제들도 안고 있었고 성도들간의 갈등으로 법정에까지 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만일 진정으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서로 깊이 사랑으로 연합한 성도들이었다면 고린도전서라는 편지는 쓰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들을 향햐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부릅니다.

교회의 거룩함이란 성도들 하나 하나가 온전히 거룩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교회의 일원으로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령의 전이기에 교회는 거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오늘도 성령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도 나타나지만 우리는 서로 서로를 성도(聖徒)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무리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한 믿음의 고백이며 우리의 종말론적 소망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는 거룩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실 것을 믿으며 우리는 서로 서로를 성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교회의 표지는 교회의 보편성입니다. 이것이 공교회(公敎會)라는 말의 본래의 의미입니다. 예전 번역에서는 거룩한 공회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니까 교회라는 말이 없어서 거룩한 공회가 거룩한 교회라는 말인가 하는 혼란이 있기 때문에 거룩한 공교회라고 바꾸어서 번역한 것입니다. 원문에서는 영어로 말하자면 holy catholic church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있습니다. 영어로 공교회를 catholic church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catholic이라는 말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편적이라는 의미의 일반명사입니다. 그래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영어로는 universal church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보편성이란 이단들이 자신들만이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고백입니다. 가톨릭교회라는 말이 사용되게 된 것도 초기에 이단들에 대항하면서 정통교회가 우리가 보편적인 교회를 대표한다고 주장했던 것에 기인합니다.

교회의 보편성에 대한 고백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교회의 틀을 넘어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는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어 있는 것이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향해 전파되어야 하고 온 세상을 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로서는 너나 잘해라는 말을 듣기가 쉽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 세상 속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공의가 이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헌신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온 세상을 바라보며 이 세상의 고통과 아픔을 우리의 고통과 아픔으로 품고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사도성은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하며 초대교회로부터 전승된 믿음의 유산을 소중하게 여기는 신앙을 의미합니다. 사도들의 신앙은 바로 성경적인 신앙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는 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신앙의 표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사도신경을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교회가 사도들의 신앙을 바르게 계승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표지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다름아닌 우리가 사람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보라고 하는 그 의미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연합하며 성령의 권능으로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있는 거룩한 공동체가 교회의 본질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신비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지니지 못한 신비,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교회가 가지고 있지 못하면 도무지 왜 교회에 가야 합니까?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서 찾아온 것도 이 곳이 단지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곳임을 믿고 고백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몇년 전에 저는 제가 처음으로 다녔던 교회를 찾아가 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외할머니 손잡고 처음갔던 동네교회였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가면서 그 교회를 떠나고 나서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찾아가보게 되었습니다. 제 기억 속에 남아았던 옛 성전은 사라지고 새로 신축한 성전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그날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할머니를 따라갔던 한 꼬마아이의 인생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갔던 그 신비한 이끌림이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내가 보지 못한다고 없는 것이 아니고 들리지 않는다고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상한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남몰래 흐느끼는 눈물이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부르셔서 때로는 부딪히고, 때로는 용납하면서 우리의 모난 모습들을 드러내시고 다듬으시며 서로 연합하게 하시는 성령의 하나됨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성도들의 영혼에 흘러들어가서 우리의 모든 죄와 잘못을 용서하시고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시는 은혜의 역사가 있고 우리의 모남과, 상처와 실수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은혜로 덮으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섭리가 깃들어져 있습니다.

오늘도 예배당에 들어올 때에 우리의 눈에는 사람들이 먼저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오늘도 이곳으로 부르시고 이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 모두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함께 이루는 지체들이며 성령이 거하시는 전임을 함께 느끼는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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