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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은혜 / 로마서 5:5-11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이제 사도신경에서 가장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습니다. 사도신경을 요약하면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 임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구원이라고 할 수 있고 구원의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죄사함과 부활과 영생입니다.

죄사함과 부활과 영생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6월달에 매주 암송하듯이, 죄의 삯, 즉 죄를 저지른 대가로 우리가 치러야 하는 값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기고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결과로 우리는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끊어지게 되어 사망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죄의 권세가 깨뜨려지고 하나님이 태초부터 주신 생명의 능력을 영원히 누리도록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므로 우리가 다시 생명을 얻게 되고 그 생명을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이 바로 죄사함과 부활과 영생에 대한 고백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매주일 이렇게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 죄사함과 부활과 영생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지만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은 그리 잘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활과 영생 보다는 예수 믿으면 죽어서 천국간다는 말이 더 익숙할 것입니다. 이 말을 조금 바꿔보면 예수만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지옥의 형벌을 당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이 우리에게 익숙한 구원의 내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도신경에 담겨있는 중요한 교리들이 있습니다. 특히 삼위일체의 교리,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교리는 우리의 믿음의 내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이것도 사실 잘 와닿지 않거나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 용서에 대한 교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부정하거나 또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대부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저는 세례 문답을 할 때에 꼭 성경이 우리를 죄인이라고 가르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또 그렇게 믿게 되었다고 대답을 합니다. 별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이라고 부르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예수를 믿으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다는 내용이 있다는 것을 모르거나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문제도 그리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하게 제기되는 질문은 정말로 무슨 죄를 지으며 살든지 간에 예수만 믿으면 다 용서받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예수만 안믿으면 그럼 지옥에 가는 것이냐고 묻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할 때에 대부분 내가 이렇게 큰 죄를 지었는데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냐고 묻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반대로 내가 이렇게 착하게 살았는데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지옥에 간단말입니까라고 묻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나는 어딘가 중간에 있는 사람이고 저렇게 나쁜 사람도, 혹은 저렇게 착한 사람도 라고 말하게 됩니다. 다 남들의 이야기, 혹은 가상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작 나 자신에 대한 판단은 슬쩍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면 좀 생각이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무슨 죄를 지으며 살던지 간에 예수만 믿으면 다 용서받는 것이냐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두 번째 질문, 즉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예수만 안 믿으면 지옥에 가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문제는 예수를 안믿으면 지옥에 간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라는 말에 있습니다. 성경은 착하게 산 사람을 지옥에 보내는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 보시기에 이 세상에 진정으로 선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책입니다.

로마서 3장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가르쳐 주고 오늘 본문 8절에서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고 멀쩡한 사람을 지옥에 보내시는 분이 아니라 죄를 범하여 죄의 짐의 지고 고통당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구원의 길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죄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 용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대표하는 핵심적인 가르침이지만 오늘날 점점 형식적이 되고 내용을 잃어가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성경, 신앙고백, 기도, 찬송, 설교 모두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기에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 자체는 우리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스스로 나는 죄인이라고 진정으로 느끼고 인정하느냐고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집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가해자라기 보다는 피해자로, 뭔가를 저지른 사람이라기 보다 뭔가를 당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상처를 주기 보다는 상처를 받은 사람으로, 그래서 회개보다는 위로와 치유와 격려, 칭찬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회개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수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죄의식 보다는 피해의식이 더 많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가끔은 사람들이 정말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믿는지 의문을 갖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정말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 다른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면서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에 진정성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목사이지만 나에게 정말로 분명한 죄의 기준이 있는지, 나도 죄의식 보다는 피해의식이 더 큰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될 때가 많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이기에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의 전제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무능한 죄인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죄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지만 그것이 모든 시대에 다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선언하고 있지만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해 별로 많은 논증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생각해보아라 우리가 많은 죄를 짓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 정도의 이야기면 충분히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의 고민의 시작은 어떻게 자기 같은 죄인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었지 왜 내가 죄인이냐는 고민이 아니었습니다.

지나친 일반화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근대 시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인 절대적인 표준이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표준에 비추어 볼 때에 불완전한 존재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시대에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해 부정적으로 정의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 커져 갑니다. 인간에게 씌워진 어떤 굴레도 속박도 인간 위에 있는 어떤 권위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선과 악의 기준은 충분히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일반화가 되고 있습니다. 죄의 목록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과거에는 분명히 죄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그것은 개인들이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이지 어떤 객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국가나 사회적으로 개입하고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인간이 죄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됨에 대한 고백이 사라지면 회개도 사라지고, 그러므로 용서받는 기쁨도 사라지고 그러므로 구원의 은혜도 사라지고 감사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신앙은 속이 텅 비어있는 겉껍데기만 남게 되고 신앙고백은 단지 역사적인 유물을 반복하며 보존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어떤 시대정신이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선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변화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고 진실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며 스스로의 욕망을 쫓아 살아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죄라는 개념, 죄인이라는 개념은 별로 환영받지 못하지만 죄의 개념을 부정하므로 벌어지는 문제가 더 큽니다. 죄에 대한 고백과 죄 용서에 대한 확신이 자신의 삶의 문제에 대한 자기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며 회개함으로 자신의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인간에 대해 부정적으로만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죄인이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을 닮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인간에게는 거룩함과 의로움과 사랑과 선함과 진실함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인간에게는 주체성과 책임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는 인간에게 저속함과 불의, 미움과 거짓과 추함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타율적이고 무책임한 존재로 만들어 버립니다.

죄의 결과로 우리에게 찾아오는 부정적인 결과들이 악입니다. 분명히 이 세상에는 악이 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어 있고 뒤틀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도처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테러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고 서로를 향한 미움과 증오가 들어나게 또는 감추어진 채로 사람들을 크고 작은 갈등의 자리로 우리를 밀어 넣고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면 손해를 보는 세계 속에서 나이듦이란 거짓의 세계와 적당히 친숙해 지는 것이며 또 속지 않기 위해 의혹의 눈으로 서로 서로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명히 문제는 있고 뭔가 잘못되어 있고 그 결과를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데 자기의 잘못이라고, 자기의 탓이라고, 인정하고 고백하는 소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모든 책임의 소재는 다 다른 곳에 있습니다. 국가의 문제, 정부의 문제, 계급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사회적인 구조의 문제, 교육의 문제, 심지어 인간의 무의식이나 본능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 다른 것같지만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악을 바라보는 우리들 각자는 점점 더 무력감을 느낍니다. 세상이 변화될 수 있고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얼마전에 칸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보신 분들도 많으시겠지만 아직 안 보신 분들도 계실 것이기에 스포일러가 되지 않은 정도에서 말씀을 드리자면 그 영화가 우리 사회의 계층간의 차별을 소재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리고 있는데 이 영화의 특징은 딱히 악하다고 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각자는 다들 자기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비극적인 결말이 찾아옵니다. 이 영화는 그런 면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잘 나타내 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분명히 어떤 악이 드러나는 곳에는 그것을 자신의 행동으로 저지르는 누군가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일을 저지르는 자기 자신의 책임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정말로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이 쓴 책중에 “거짓의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그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정말로 악한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악을 하나의 질병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가 진단한 악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악한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행동에 있는 가장 지배적인 특징은 책임 전가다. 악한 사람들이 파괴적인 이유는 종종 그들이 악을 퇴치하려는 데 있다. 자신을 미워할 줄 모르는 것, 자신을 거스르지 못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악하다고 부르는 책임 전가 행위의 뿌리요 핵심적인 죄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죄인됨을 부정하고 자기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면책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인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 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고백하고 참회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선하고 자유로우며 책임감이 있는 인간의 본래의 형상이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악한 영에 이끌리는 사람은 아무것에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사탄은 인격을 파괴하며 한사람의 영혼을 종속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거짓을 말하고 핑계를 대며 자신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더 나아가서 다른 이들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 과도하게 분노하며 돌을 던지며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려고 합니다.

제가 몇가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여기에 동의하시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1. 내가 성적인 유혹에 약한 것은 그게 원래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2. 내가 성격이 급하고 화를 못참는 것은 우리 집안의 내력이기 때문이다.
3. 내가 사업상의 필요에 의해 부정한 접대나 뒷돈을 건네게 되는 것은 다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 때문이다.
4. 내가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 수군거리고 험담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 실제로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5. 내가 가정에서 폭력적이 되는 이유는 이 세상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고 가족들마저도 나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6. 내가 진실을 이야기 하지 않고 덮어버리는 이유는 아무도 진실을 원하지 않고 그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7. 내가 소득보다 더 많이 지출을 하고 과시적인 소비를 하게 되는 이유는 남들이 내 겉모습만을 보며 나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정말도 다 남들 때문일까요? 정말로 나는 어쩔 수 없이 저지르게 되는 것뿐일까요? 정말로 어쩔 수 없었을까요? 모든 것이 남의 탓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이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고쳐지기까지는 원하지 않는 악을 계속저지를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결국 나의 무력함과 비참함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악과 싸워 승리하는 사람은 자신의 인격적인 책임감을 회복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행한 일의 결과를 알고, 회개하는 사람, 자신을 부인하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의 참회의 눈물이 자신의 인격을 회복시키고 신앙의 양심을 깨우며 영혼의 구원을 가져오고 잘못된 관행, 관습, 의식, 구조를 깨뜨리며 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우리 사회가 병들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지적을 하고 고발하는 목소리는 크고 권리의식은 나날이 높아져 가는데 내가 잘못했다는 고백을 듣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라고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은 있지만 나처럼 살면 안 된다는 고백록, 참회록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내 탓은 아무도 없고 다 니 탓뿐이면 모든 문제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죄인됨을 인정하는 것은 나 자신과 이 세상이 변화될 수 있는 첫걸음입니다. 이것이 나의 잘못이며 나의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악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앞에서 밀어 놓은 또 한가지 문제에 대해 마지막으로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죄 용서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해는 마치 인간이 죄인이기에 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데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어떤 죄를 짓더라도 다 용서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인생을 효과적으로 사는 것은 평생 마음대로 죄를 짓고 나서 죽기 전에 “하나님 죄송합니다” 한마디면 천국에 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죄를 짓다가 회개 한마디면 천국에 가는데 뭐 그렇게 평생을 예수를 믿고 힘들게 사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이라는 것은 한번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또 한번 인정을 하면 죄인이니까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며 죄를 짓는 것에 대해 정당화하게 되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습니다.

죄의 용서에 대한 가르침은 용서받을 수 있으니까 죄를 지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정죄와 심판이 아니라 용서와 사랑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가 저지르는 죄의 대가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큰 것인지를 우리 앞에 똑똑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정한 죄의 용서는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자신이 저지른 죄의 결과를 분명하게 깨닫고 책임을 통감하고 슬퍼하며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진실된 참회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죄의 용서는 죄의 결과로 당해야 하는 벌을 면제해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평생을 죄에게 끌려다니며 자기 인생을 허송하고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해도 다 용서받을 수 있으니까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이제 과거의 어리석고 무지한 삶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이 태초부터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선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인생의 본 모습을 되찾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축복과 능력을 힘입어 풍성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옥에 가지 않으려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우리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 안에서 새로운 삶의 소망을 얻고 이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의롭고 거룩하고 은혜롭고 기쁨으로 가득찬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이전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기에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을 피할 수 없었지만 이제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며 은혜와 기쁨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인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의 백성으로 새로운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하며 죄의 고백과 용서의 확신으로 온전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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