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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행할 일 / 스가랴 8:14-17

14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조상들이 나를 격노하게 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으나
15 이제 내가 다시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16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17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내가 미워하는 것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주보의 표지에 실은 그림은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가 1874년 겨울 자신이 살던 마을에 내린 눈을 보며 그린 “아르장퇴유의 눈”(Snow at Argenteuil)라는 작품입니다. 그 그림을 그린 후 너무나 만족한 나머지 그 이후로 다시는 눈 덮힌 풍경을 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보를 만든 것은 어제이지만 마침 오늘 아침에 눈이 내려서 마치 눈이 내릴 것을 예견하고 만든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눈 덮인 정경을 보면 여러분들 각자 가지고 계신 여러 가지 추억들이 떠오르실 것입니다. 요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드물기는 하지만 늘 성탄절을 준비하는 절기가 되면 눈 내리는 정경을 연상하곤 합니다. 첫 번째 성탄절,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날에도 눈이 내렸을까요? 성경에는 성탄과 관련하여 눈에 대한 기록이 없고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짜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도 부족합니다. 교회의 탄생은 성탄절이 아니라 부활절과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 신앙의 중심은 부활절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로 따르던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낙심하고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이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서 그 기쁨과 감격 속에서 시작된 것이 초대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는 부활을 경험하고 경축하고 증거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과 관련하여 초대교회부터 내려오는 전승 중에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서 성령으로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가 3월 25일이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이날을 하나님의 은혜가 연약한 인간의 몸에 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날로 기념하는 것이 성탄절 보다 더 먼저 있었고 이 수태고지 전승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12월 25일이라는 전승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탄절과 눈을 함께 연상하게 된 것은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문화가 북유럽의 문화와 결합하여 새롭게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가 유럽 전체를 지배하던 때에는 신앙의 중심지가 남유럽의 로마였기 때문에 성탄절과 눈이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지 않았지만 독일과 영국을 중심으로 개신교 문화가 형성되면서 눈 내리는 성탄절에 대한 여러 가지 문화적인 상징들이 함께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기념하며 세우는 크리스마스 트리도 마르틴 루터가 성탄절 전야에 길을 가다가 눈덮힌 상록수를 보며 추운 겨울에도 푸르른 생명의 능력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게 되어 상록수를 장식하여 집에 세운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새롭게 시작되는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기념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므로 심판을 자초하고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은 은혜로 다시 부르셔서 고향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이제 그들에게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행할 바를 말씀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성경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심판받은 것에서 끝나고 그들의 멸망을 본보기로 삼아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정으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심판 이후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자신의 죄로 심판을 자초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고 새로운 소망을 주신다는 것이 구약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의 형벌을 면하게 하시는 것 뿐 아니라 불순종했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심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심으로 거룩하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시는 것에서 더 크게 나타납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비로우심을 따라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감히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십니다.

이제 한 해를 정리하며 새해의 계획을 세우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어떤 목표를 세우고 어떤 기도의 제목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도전을 하려고 합니까? 우리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약속하신 것,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우리도 원하고 그 뜻을 이루고자 할 때에 우리는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것을 우리가 이루고자 할 때에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될 때에 처음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에 성경이 인간을 죄인이라고 가르친다는 데 있습니다. 멀쩡하게 살던 사람을 교회로 데려와서 죄인이라고 강조하며 자존감을 한껏 낮춰놓은 다음에 그렇지만 예수 믿으면 용서받고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의 전부라면 이것은 일종의 사기성이 있는 협박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존재감을 낮춰놓고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독재자들이나 폭군들이 하는 일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다가 약간의 은혜를 베풀면서 자신들이 대단한 자비를 베푼 듯이 과장하며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가정폭력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유력한 분석은 아내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는 남편들이 아내를 폭행하며 인격을 파괴하고 무기력하게 만들어서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악한 사람들과 같은 분이 아닙니다. 성경이 우리를 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보다 더 높은 표준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가 그 거룩한 하나님의 표준을 따라 살아가도록 우리의 인격과 삶을 고양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구약성경 전체를 예수님이 요약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그리고 그 사랑을 이웃들을 향한 사랑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서도 하나님은 이웃들을 해치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25:40)

성탄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 그러므로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절기입니다.

지난 주에 강남구청 신우회에 가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잠시 직장생활을 할 때에 신우회를 통해 받은 은혜가 크기 때문에 신우회에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기쁜마음으로 가려고 합니다. 주일에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도 소중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의 은혜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통해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삶의 자리에서의 예배도 소중합니다. 예배이든 기도이든 묵상이든 삶의 자리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가지는 경건의 시간들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기억하고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생활하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삶의 사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연말이 되면서 여러 가지 통계자료들에 대한 기사들을 보게 됩니다. 그 중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여러분들도 많이 보셨겠지만 내년이면 드디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이 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그런데 1인당 소득 3만불을 달성하면 선진국이 되는 것일까요? 진정한 선진국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진정으로 다른 나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나라란 어떤 나라입니까?

저는 적어도 두 가지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시민의식입니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갖추고 있는 시민들이 있는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둘째는 그 나라가 가장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하는가입니다. 자신의 출신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해주는 사회가 선진국입니다.

한 나라에서 가장 잘사는 사람들의 수준은 선진국이라고 더 높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가난한 나라라고 알고 있는 나라들에서도 상류층은 상상을 초월하는 호사스러운 삶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자가 더 부자가 될 때에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 전체를 배려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따뜻하고 정의로운 가치관을 가진 나라가 선진국이 아니겠습니까?

경제계에서 열심히 노력을 하여 경제성장을 이루면 더 많은 소득을 만들 수 있고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이 열심히 노력을 하면 여러 가지 선진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겠지만 한 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은 경제계나 정부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는 신앙과 가치관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스가랴서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8장 16절과 17절에서는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마음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앞에서 7장 9절과 10절에서는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주보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대한 말씀을 정리해서 실어 놓았습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말씀들이 있어서 우리가 위로도 받고 평안과 축복의 약속을 듣게 되지만 오늘 주보에는 특별히 하나님이 “오직”이라는 강조어와 함께 명하신 말씀들을 찾아 보았습니다. 그 말씀들에는 모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공의롭고 은혜로운 삶으로의 부르심이 담겨 있습니다.

먼 남의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최근에 미국에서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반복되는 논쟁이 있습니다. 연말에 주고받는 인사말에 대한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성탄절이 가까워오는 때에는 “Merry Christmas”라는 말로 인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이런 인사말이 특정종교에 치우친 것이라는 비판과 함께 “Happy Holidays”라고 하는 것이 다종교 사회에서 더 올바른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리스도인들이 마음이 상해서 “Merry Christmas”라는 인사말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Merry Christmas”라는 인사말이 널리 사용되게 된 기원은 대개 찰스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캐롤”이라는 소설에서 찾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구두쇠의 대명사격인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의 영혼을 만나게 되고 그 친구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여행하며 자신의 삶을 반성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탄절 아침이 되었을 때에 온 세상이 새롭게 보이게 되었고 그 기쁨을 표현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Merry Christmas”를 연발하게 됩니다. 이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그 후로 많은 사람들에게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Merry Christmas와 Happy Holidays중에 어떤 인사말이 더 옳은지에 대해서는 각각의 정당성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Merry Christmas”라는 인사말은 일종의 문화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서구사회의 선진적인 의식과 문화는 기독교 신앙에 뿌리를 둔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점점 서구 사회가 세속화되고 비기독교화되면서 그 근원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과연 근원을 잃어버린 문화가 지속될 수 있을까요? 뿌리를 잃어버렸는데 문화적인 표현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얼마나 성공적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성탄절의 의미를 아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지도록 헌신을 하고 삶으로 증거를 할 때에 문화적인 영향력이 생기고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올해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면서 각 목장별로 찬양을 준비해서 함께 기뻐하는 시간을 가진 후에 2부 순서로 지역 사회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선물을 함께 포장하고 사랑을 전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우리교회는 이미 매번 성탄절 헌금을 지역사회의 불우이웃돕기를 위해 기부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웃들에게 우리가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마음과 정성을 함께 담아보려는 연습과 훈련을 하는 시간을 함께 갖는 것이 더 뜻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올해는 조금 다른 방법을 택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그렇게 살아갈수 있도록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은혜로우신 성품을 닮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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