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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본질 / 사도행전 3:11-16

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2)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3)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되었을 때 사람들은 야소교(耶蘇敎)라고 불렀습니다. 야소(耶蘇)는 예수의 한문식 표기입니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耶蘇라고 쓰고 예수라고 읽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한문식 표기를 가져왔기 때문에 예수를 야소라고 부르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야소교, 야소교인라고 불린 것은 맨날 예수, 예수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예수쟁이라고 부르며 비아냥거리기도 했습니다.

이에 반에 가톨릭교회는 지금도 그렇지만 천주학(天主學) 또는 천주교(天主敎)라고 불렸습니다. 천주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일종의 선교전략이었습니다. 예수를 내세우면 거부감을 갖기 쉽지만 중국과 동양에서도 예로부터 하늘의 뜻을 이야기하고 하느님이 계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별 거부감 없이 선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개신교가 전파될 때 선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바르게 전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사람들이 보기에도 예수를 강조하는 점에서 다르다고 생각했기에 개신교인들을 야소교인, 예수쟁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초대교회가 무엇보다도 예수를 전하는 교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예수를 믿는 것을 강조했는지 그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첫 번째 이적의 의미에 대한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이 설교를 베드로의 “솔로몬 행각 설교”라고 부릅니다. 솔로몬 행각은 예루살렘 성전 주위에 있는 기둥이 늘어서고 지붕이 있는 건축물인데 비를 피하고 햇볕을 가려주기 때문에 성전을 찾아온 사람들이 모임을 갖고 기도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베드로가 설교를 했기 때문에 솔로몬 행각 설교라고 불립니다. 

오늘 본문의 앞의 내용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제 9시 즉 오후 3시의 기도시간이 되어 성전으로 올라가서 미문(美門), 즉 아름다운 문이라고 불리는 문으로 들어가다가 걷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은 그가 구걸을 하도록 사람들이 그를 그 곳에 두었다고 말합니다. 무슨 물건도 아닌데 걷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그를 놓아두는 곳에 있어야 했던 그런 아픔이 있는 인생이었습니다. 그에게도 성전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기도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지만 들어갈 수 없었고 그는 그저 그곳에서 구걸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이 사람을 보면서 특별히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어떤 면에서 우리들의 삶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이 세상에 던져진(being thrown, geworfen)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 살아갑니다. 그 속에서 세상의 불공평을 경험하고 내 의지가 좌절되는 것을 경험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속에 갇혀있는 존재로 살아간다면 우리 또한 그저 이곳에 놓여있는, 내던져진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구걸하도록 그를 놓아둔 그 곳이 그에게 구원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내던져진 그런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의 손길이 함께 하시는 인생임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보았을 때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그에게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성경은 그 말을 듣고 그가 일어나 걸었고 그가 성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치유의 이적 이후의 장면을 보여줍니다. 그는 기뻐서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가 정신이 들고나니 의지할 것은 자신을 고친 사도들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베드로와 요한을 붙들었습니다. 어디 의지할 곳도 없고 곁에서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도 없었기에 그를 고쳐준 사람을 의지하며 그들을 붙들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로 달려와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 행각에 모였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매우 중요한 말을 합니다.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사람들은 베드로가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쳤다고 생각하며 베드로에게로 몰려들었지만 베드로는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자기에게는 이 사람을 고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왜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걸으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도행전의 앞부분에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들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시면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성령의 강림은 성령충만이라는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지금 살아계시고 지금도 역사하시기에 약속을 지키시고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를 떠나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성령을 보내주시고 이 땅에서 행하시던 구원의 역사를 우리를 통해 지금도 계속이어가신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된 베드로와 요한이 예전처럼 기도시간이 되어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그곳 문 앞에서 걷지못하고 구걸하던 사람을 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간 것도 처음이 아니었을 것이고 이 사람이 성전 문에서 구걸하던 것도 처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전에도 이 사람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날,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문앞에서 이 걷지 못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라면 이 사람에게 어떻게 하시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았던 여러 가지 경험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면 이 사람을 고치기를 원하실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예수의 이름으로 그에게 걸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걷게 되었을 때에 물론 걷게 된 사람도 놀랐고 그것을 본 사람도 놀랐지만 사실 더 놀라고 가장 큰 은혜를 받은 것은 베드로였습니다. 이 사건은 베드로에게 그가 이전에 고백했듯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고 지금도 이 세상 사람들을 죄와 악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확신하는 바를 지금 사람들에게 지금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슈퍼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들이 시리즈로 연이어 제작되고 있습니다. 슈퍼 히어로들 중에도 여러 부류가 있지만 그 중에서 우리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류는 평범했던 사람이 특별한 경험을 통해 초능력을 갖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은 원래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특별하게 변형된 거미에게 물려서 초능력을 갖게 되어 거미줄을 쏘고 벽을 기어다니며 엄청난 힘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성령을 받아서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되고, 처음에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고 그 능력을 잘 사용하지 못하다가 정말로 자기에게 능력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 사람도 고치고 저 사람도 고치면서 활약을 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령을 받기 전이나 그 후나 그들 자신에게는 아무런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고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고 그들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왜 우리에게 무슨 능력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느냐 당신들이 지금 본 이적은 예수님이 행하신 것이다. 예수의 이름에 능력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사건의 본질입니다. 베드로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지만 예수의 이름에 능력이 있다, 예수님이 그를 고치신 것이다.”

복음서에도 많은 이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시고 많은 이적을 행하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당신자신도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하나님께로 올라가셨습니다. 만일 이렇게 이야기가 끝난다면 이것은 일종의 신화가 될 것입니다. 이런 특별한 사람이 과거에 있었다고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다 과거의 일이고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이적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지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베드로나 우리나 인간적으로 보면 다를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만일 사도들의 시대에 그러했다면 오늘날에도 이런 역사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그 시대에 역사하셨다면 지금 우리들의 시대에도 예수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오늘도 역사하실 수 있다는 표적을 우리는 사도행전의 이적을 통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연결시켜 줍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게 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을 확신하게 되고 그분의 능력이 나타날 것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지금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지만 그러나 또한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던 경험도 가득합니다. 간절히 기도해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해, 병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도 이루어지지 않고 고침을 받지 못하는 때도 많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 체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항상 기도한다고 응답을 받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의 능력이 항상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우리의 기도, 우리의 간절함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고 우리의 간절함을 외면하시는 듯이 보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심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고침을 받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이 다 예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함께 믿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면 고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시지 않으면 고쳐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다리게 하시고 때로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더 좋은 길을 보여주시며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예수님의 뜻과 능력이 신앙의 본질임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 교회의 표어 중 첫 번째는 “성령의 임재가 가득한 교회”입니다. 성령의 임재가 가득한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확신하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는 교회, 이 세상의 죄악의 권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의 증거들이 가득한 교회가 바로 성령의 임재가 가득한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으로 사랑하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봉사하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부모들은 산타클로스의 역할을 맡아서 자녀들에게 몰래 선물을 가져다 줍니다. 산타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부모들이 산타의 역할을 하는 것은 산타클로스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확신을 하고 평생을 산타클로스를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이들의 동심을 깨뜨리지 않고 어린 시절에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희집 아이들이 어렸을 때 어느 성탄절에 아이들이 물어봅니다. “왜 엄마아빠는 선물을 안줘요?” 그때 “줬잖아”라는 말을 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산타할아버지가 준 것이라고 선물을 줬지만 제가 직접 선물을 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애들도 산타클로스를 믿는 척해야 선물을 두개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구나, 그래서 아이들이 믿는 척하는구나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살아계신 것은 아닌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너무 사랑해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게 하려고 거짓으로 이적을 꾸며댄 것이라면 2천년을 지나 한반도에서도 예수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걷지 못하는 사람을 자기들이 어떻게든 일으켜 보려고 했다고 그 사람이 고침을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아무도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데 교회나 성도들이나 서로 그런척 하며 지내는 것이 더 유익하기에 그냥 그런척들 하면서 다들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교회에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목회자로서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마다 그런 유혹을 받습니다. 우리 교회가 부흥되기 위해서,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믿음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 내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늘 느낍니다. 그러나 사실 목회자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밤새워 설교를 준비한다고 교회가 부흥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목사가 예수님을 감히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없이 봉사하면, 예수님의 능력이 없이 우리의 힘으로 봉사하고 섬기려 하면 결국은 지치고 실망하고 상처받고 시험들고 그래서 원망하고 섭섭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수고하는데 왜 저 사람들은 봉사하지 않는지 원망하게 되고 내가 이렇게 봉사하는데 왜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지 원망하게 됩니다. 잘되면 교만해지고 안 되면 시험드는 사이에서 오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모든 봉사와 섬김은 사람들이 모인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맡아서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신앙의 훈련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봉사와 섬김보다 중요한 것은 먼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과 그 능력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올해 한해 예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표적이 나타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모든 악에서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를 통해 우리의 이웃들에게 증거되는 복된 한해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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