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교회 :::
현대교회 로고
신앙으로의 초대 현대교회 이야기 예배와 모임 나눔과 섬김 참여와 헌신
예배안내 양육과정 안내 매일묵상 교회학교 목장안내


서브메뉴 안내 - 섬기는 이들


댓글 0
먹여 살리는 자 요셉 / 사도행전 7:9-16

9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
10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그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통치자로 세웠느니라
11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12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13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14 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15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16 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우리 동네에서 교회를 섬기면서 같은 지역에 있는 목사님과 조금씩 교제의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두 분의 목사님들과는 꽤 친해져서 가끔씩 차 한 잔도 하고 식사도 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분 모두 개척교회 목사님들이신데 어려운 상황가운데서도 열정을 가지고 교회를 섬기시는 모습에서 제가 많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어느 목사님이 바로 우리 교회 옆에 개척을 하셨다고 인사를 오신 적이 있습니다. 그저께는 제가 아는 후배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했다고 연락이 와서 그 교회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만남들을 한 주간에 가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야흐로 개척의 시대가 왔다” 사실 현실적으로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의 임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개척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로 요즘 젊은 목회자들이 예전 보다 기성교회에 대해 더 큰 회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 가운데서 진정한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지기에 젊은 세대의 목회자들이 진정으로 온전한 교회를 세워보고자 하는 열정으로 개척에 도전하는 모습들도 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해진지 13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종종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과연 우리는 예수를 바로 알고 믿고 있는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던 요란했던 부흥의 시대가 저물고 교회 안팎에서 여러 가지 도전을 맞이하게 되는 이 시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조건 부흥하고 교회당 짓고 성장만을 추구하던 것을 잠시 멈추고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을 바꾸고 새롭게 해야하는 지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개인적으로도 올해는 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기독교신앙의 본질을 찾고, 신앙의 객관적인 근거들을 발견하고 어떠한 교회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인지를 찾아보는 해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사도행전을 묵상하며 교회의 탄생의 현장을 보게 하신 것은 하나님이 주신 크신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초대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인 스데반의 이야기의 일부이고 스데반이 재판정에서 순교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한 설교의 내용의 한 부분입니다. 이 설교의 내용 속에서 유대인들이 믿어오던 유대교 신앙과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이 어떻게 다른지,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림길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유대교 신앙에는 세 가지 근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수많은 민족들 중에서 오직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택하셨다는 선민의식이고 둘째는 그 선민의 증거이자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율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성전에 좌정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신다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며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을 뿐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하나님은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만나시고 우리를 구원하신다고 주장함으로 유대교와 다른 길을 갔습니다. 그 신앙의 내용을 잘 보여주는 것이 스데반이 재판정에서 행한 설교이고 그 설교의 결과로 격분한 유대인들에 스데반이 순교하게 된 것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통해 그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하고자 했던 진리의 내용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구약성경 전체를 조망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정리합니다. 여기에 아브라함과 요셉과 모세와 솔로몬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선민의식의 근거가 되는 사람이고 모세는 율법을 전해 준 사람, 솔로몬은 성전을 지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이에 요셉이 들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셉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미리 보여준 삶을 살았던 사람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가장 믿었던 형제들의 시기에 의해 배신당하고 죽음의 자리에까지 내려갔지만 큰 영광을 받았던 사람이고 자신을 팔아넘긴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벌어진 장소가 애굽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미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요셉은 꿈꾸는 자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그는 어려서 두 번의 꿈을 꾸었는데 자신의 곡식단에게 형들의 곡식단이 절을 하는 꿈과 해와 달과 별들이 모두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이었습니다. 철없는 소년으로 그 꿈의 이야기를 떠들어내다가 형들의 큰 시기와 질투를 받기도 했습니다. 요셉의 꿈 때문에, 그리고 그가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요셉은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 꿈을 꾸었을 때 그 꿈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요? 그가 자신의 야망을 달성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그것을 이룬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그가 앞으로 당하게 될 고난을 짐작조차 했을까요? 요셉이 꾼은 자신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구원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그 꿈을 위하여 고난받고 연단받으므로 지혜를 얻게 하시고 이 세상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하시고 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이 평생의 역작으로 16년의 세월을 거쳐 4부작으로 장편 소설을 저술했는데 그 책의 제목이 “요셉과 그의 형제들”입니다. 우리말로 6권의 책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토마스 만보다 몇 세대 앞에 있었던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성서 속의 요셉 이야기는 너무 짧다. 작가라면 이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세세하게 그려내야 할 것만 같은 일종의 사명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에 있었습니다. 토마스 만은 단지 성경의 이야기의 재판이 아니라 요셉과 그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고대사회의 모든 신화적인 상상력을 함께 엮어낸 대작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는 전체 이야기를 4부로 나누었는데 첫 권의 제목은 야곱이야기, 둘째 권은 청년 요셉, 세 번째 책은 이집트에서의 요셉, 네 번째 책은 먹여 살리는 자 요셉입니다. 이 네 번째 책의 제목이 바로 오늘의 설교의 제목입니다. 우리는 요셉을 꿈꾸는 자로 기억하지만 토마스 만은 그의 생애의 절정이 그가 백성들을 먹여 살리는 데 있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요셉은 어떻게 총리가 되었습니까?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번에는 그가 바로의 꿈을 해석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왕 바로는 밤에 꿈을 꾸었는데 그 뜻을 알 수 없어서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바로의 곁에 있던 측근이 자신이 바로의 노염을 사서 감옥에 갇혔을 때 그 곳에 있던 한 젊은이가 자신의 꿈을 풀어주었다고 이야기하며 요셉을 소개합니다. 요셉은 감옥에서 불려나가 애굽 왕이 꿈 이야기를 듣고는 앞으로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애굽의 왕이 아무리그래도 자신의 꿈을 풀어주었다고 그 사람을 총리를 시키겠습니까? 요셉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대목은 요셉이 꿈을 풀어준 다음에 나옵니다. 그는 바로에게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께서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 감독관을 두어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저장하여 앞으로 임할 일곱 해 흉년을 대비하소서” (창세기 41:33-35) 바로가 요셉을 총리로 임명한 것은 그의 꿈을 해몽해주었을 뿐 아니라 해법까지도 지혜롭게 제시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네가 말한대로 네가 책임지고 실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되지 않고 풍년도 흉년도 없으면 상관없지만 정말로 풍년이 와서 흥청망청하다가 7년의 흉년이 이어지면 굶주린 백성들의 원망은 하늘을 찌를 것이고 그 것은 다 애굽의 왕에게로 쏟아지지 않겠습니까? 이때에 누군가 희생양이 필요한 것입니다. 애굽의 왕이야 흉년에도 먹을 것이 있겠지만 결국 백성들의 원성을 해결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때 바로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이자가 바로 이 땅에 흉년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한 자다. 내가 전권을 맡겼는데 이 자의 무능함이 애굽을 이 곤경에 빠뜨렸다!”

요셉이 총리로서 누리게 된 모든 영화와 권세 뒤에는 무거운 책임이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자리에 따르는 책임의 무게를 알지 못하고 어떤 자리를 성취하고, 타이틀을 얻는데에만 매달려 있다가 그 자리에 따르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결국은 그 자리가 그에게 수치의 자리가 되어버리고 많은 사람들의 지탄을 받게 되는 것을 너무나 자주 봐 왔지 않습니까? 바로의 말 한마디로 감옥에서 총리가 되었다면 바로의 말 한마디로 총리에서 다시 감옥으로, 아니 죽음도 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셉에게 총리가 된 후의 14년이라는 세월은 그야말로 하루도 다리뻗고 살수 없는 노심초사의 세월이 아니었겠습니까?

꿈만 꾸고 말만 잘했기에 우리가 요셉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7년의 기근을 해결하여 애굽에 풍요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곳에 먹을 것이 떨어졌을 때 애굽을 찾아온 형들을 만나게 되었고 애굽의 총리가 자기들의 동생이라는 것을 모른 채 엎드려 절을 하면서 그의 꿈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가 애굽의 온 백성들을 먹여 살리지 못했다면 우리가 요셉의 이름을 알 수도 없고 우리가 보는 넉넉하고 은혜로운 용서의 장면도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된 것은 자기 자신의 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기근에서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한 나라를 먹여 살릴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우리들 각자는 또한 다른 이들을 먹여 살리는 책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한 가정의 가장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책임을 진 사람입니다. “살림의 반대말은 죽임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가정의 주부들의 수고가 사랑하는 가족들을 살리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에게는 타인을 위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폭을 조금씩 넓혀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을 먹여 살리는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이 세상을 먹여 살리며 누가 이 세상을 기근에서, 재난에서 환란에서 건져낼 것입니까? 우리도 이 세상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화려한 번영 속에 있는 것 같지만 그 속은 썩었다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 누군가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이 세상에는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

누가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책임을 가진 사람입니까? 요셉처럼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그의 사명으로 여기는 그 사람들,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아닙니까?

초대교회는 구제와 섬김이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당시에는 주민센터도, 복지기관도 없었습니다. 한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의 명부를 가진 곳은 교회밖에 없었습니다. 이웃사랑은 초대교회부터 이어온 교회의 거룩한 사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회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표적이었습니다.

작년 3월에 우리 교회는 기아대책을 통하여 캄보디아 아동결연을 했습니다. 담당하시는 목사님께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이미 해마다 선교약정을 통해 후원하는 기관들, 선교사님들이 있기 때문에 추가로 많은 아동들을 결연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20명 정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믿음이 있으셨는지 그 목사님은 40명에 가까운 아이들의 명단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리고 은혜롭게도 모든 아이들이 결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연말에 선교 약정을 하는 주일이 되었을 때 저는 이미 37명의 아이들을 후원 약정을 했고 그 후원액이 우리가 기존에 선교약정을 하여 후원하던 금액과 비슷하니까 올해는 선교 약정이 많이 줄어 들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약정 결과를 보니까 소폭이지만 오히려 그 전 해보다 더 많은 약정이 들어왔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서 저는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선교와 구제의 사역을 감당하시는 분들이라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큰 교회는 아니지만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세우신 이유가 이 지역사회에,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고, 구원의 기쁨을 전하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의 임재가 가득한 교회, 나눔과 섬김이 가득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올해 소원하시는 바를 이루시고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누리고 삶의 곤경에서 벗어나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내가 가진 것이 소중한 만큼 그 소중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더 커져서 함께 나누는 기쁨이 올해 한해 교회와 여러분 모두의 삶에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주일 설교 영상   ADMIN 2020.04.19 58
공지 매일묵상 안내   ADMIN 2017.03.11 239
140 2017.12.3(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12.05 39
139 2017.12.10(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12.11 49
138 2017.12.17(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12.17 43
137 2017.12.24(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12.24 53
136 2018.1.7(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1.14 41
» 2018.1.14(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1.14 50
134 2018.1.2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1.30 38
133 2018.1.2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1.30 45
132 2018.2.4(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2.04 51
131 2018.2.1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2.19 41
130 2018.2.1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2.19 63
129 2018.2.25(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2.25 64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Next ›
/ 16
Designed by hikaru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