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교회 :::
현대교회 로고
신앙으로의 초대 현대교회 이야기 예배와 모임 나눔과 섬김 참여와 헌신
예배안내 양육과정 안내 매일묵상 교회학교 목장안내


서브메뉴 안내 - 섬기는 이들


댓글 0
오해와 편견 / 사도행전 11:1-9

1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4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5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8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10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영문학의 역사상 대표적인 소설들을 뽑을 때 늘 상위에 랭크되는 소설 중에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여러 번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 각색되었던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1800년을 전후한 시기 영국의 한 가정의 딸들의 연애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심오한 사상을 담고 있거나 기발한 전개를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가지는 편견에 대해 그리고 그 편견이 어떻게 극복되는 지를 다양한 인물들의 설정과 섬세한 심리묘사를 통해 탁월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주로 여성들의 관점에서 본 남성들에 대한 평가가 등장을 하는데 사람들이 가진 편견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경우, 진실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교활한 인물이었던 경우, 오만한 속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순수한 사람이었던 경우 등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 소설의 작가인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이 처음 이 소설을 구상했을 때의 제목은 첫인상(First Impressions)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면접을 보러 가게 되면 좋은 첫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단정한 옷, 자세, 말투 등을 갖추고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전달할 수 있는 준비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해 갖게 되는 첫인상은 그 사람 자체로부터 형성되기도 하지만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경험, 편견 등에 의해 형성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백이면 백, 다 다른 성격과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 다 개별적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나름의 분류의 기준이 되는 특징들을 중심으로 가능한 한 빠른 시간 안에 사람과 사건을 판단해서 사람들에 대한 우리들의 반응과 태도를 준비하고자 합니다. 이런 본능적인 작용은 때로는 매우 유용하지만 충분한 시간이 없이 만들어지는 판단은 사람과 사건을 바로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에게는 모순되는 두 가지 경향이 형성됩니다. 한편으로 첫인상이 별로 믿을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경험이 쌓여가지만 그러나 또 한편 사람들에 대한 편견은 더욱 고착화되어 잘 바뀌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경험은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 사건들을 만날 때 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첫인상도 중요하지만 조금 시간을 가지고 찬찬히 살피고 판단을 해야 실수를 피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방인인 로마군대의 장교였던 고넬료의 가정이 구원을 얻게 된 사건 이후에 벌어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고넬료의 회심은 사도행전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그 과정이 매우 상세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방인 선교가 시작이 됨을 알려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고넬료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된 곳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항구도시인 가이사랴였습니다.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것은 베드로였는데 베드로가 아직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전에 먼저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보면 예루살렘에 있던 할례자들, 즉 유대인으로 율법을 중요시 여기면서 그리스도인이 된 성도들의 반응은 “베드로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고넬료의 회심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고넬료가 회심한 사건을 가지고 베드로가 무할례자, 즉 이방인의 집에서 함께 먹었다고 비방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에서, 어쩌면 성경 전체에서 가장 기가막힌 이야기입니다. 그 은혜로운 초대교회에서, 성도들이 서로 자신의 재산을 내어놓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고 박해 가운데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던 그 아름다운 초대교회 속에서 자신들이 가진 편견에 의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고 수고한 사람에게 흠집을 내고 부정적인 말들을 돌렸던 참으로 안타깝고도 슬픈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은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한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현실과 동떨어진 은혜롭게 채색된 이야기들이 아니라 실제로 당시에 일어났던 사실에 대한 정직한 기록이라는 반증이 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은혜로운 사건들이 실제로 일어났었고, 그 사건들은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도 놀랍고 당황스러운 일들이어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로웠던 초대교회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견에 사로잡혀서 살아가고 있었고 의혹과 성급한 판단과 오해와 비난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고넬료의 회심 앞에 나오는 바울의 회심의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회개하고 복음전도자가 되었을 때에 한때 바울과 같은 편이었던 사람들은 바울이 그들을 배신했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고 바울을 죽이려 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기쁨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서 성도들을 만나고자 했을 때 사람들은 박해자가 그렇게 한 순간에 회개하고 전도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하여 바울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가이사랴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가이사랴(Caesarea)는 헤롯왕 시대에 지어진 항구도시로,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기념하여 Caesarea, 즉 가이사(Caesar)의 도시라고 명명된 도시입니다. 가이사랴는 이후에 로마제국이 유대 땅을 다스리기 위한 중심도시가 되었습니다. 총독은 가이사랴에 관저를 두고 예루살렘을 오가며 유대땅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 곳에는 로마군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그 중에 고넬료라는 장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 예수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점령군으로서 유대인들을 위압적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존중하며 어려운 유대인들을 돕고 있었던 이미 준비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기도하고 있을 때 천사가 나타나 욥바라는 곳에 있는 베드로를 모셔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편 베드로도 욥바에서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구약성경의 율법에서 부정한 짐승으로 분류되어 먹어서는 안되는 짐승들이 담긴 큰 보자기를 보았는데 “잡아 먹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은혜의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었지만 그 자신도 유대인으로서 어려서부터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 자라났기에 이렇게 부정한 것을 잡아먹을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베드로가 이 음성의 의미가 무엇인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에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와서 베드로가 와주기를 청하자 그는 바로 이 환상이 이방인들에게로 찾아가는 것을 꺼리지 말고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그들을 따라가서 고넬료를 만나고 복음을 전합니다. 이때 마치 처음에 제자들이 오순절에 경험한 것처럼 이방인들도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어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됨을 선언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사건에 대한 세 가지 기술이 등장합니다. 18절에서는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되어있고 1절에서는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돌아다닌 말은 “베드로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3절)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문을 여셨고 그래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면 그 사이에 들어가야 할 말은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고 이방인들에 대한 그들의 편견을 그대로 가진 채 베드로를 부정한 일을 저지른 사람으로 몰아갔습니다.

이런 반응을 접한 베드로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베드로는 고넬료에게 세례를 주면서 그 자신도 큰 은혜를 받았고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신다는 기쁨의 확신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환대와 기쁨과 감사가 아니라 의혹과 비난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만나서 식사를 한 것은 요즘 유행하는 표현대로 말하자면 일종의 팩트(fact)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유일한 팩트도 아니며 이 팩트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고 사건의 진실이 결여된 팩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는 한 두가지 팩트만 가지고 전체적인 맥락을 왜곡하며 자신의 잘못된 주장을 펼치는 모습을 봅니다.

누가 문제입니까? 성령의 인도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베드로가 잘못입니까? 아니면 예수를 믿고도 여전히 선민의식에 사로잡혀서 이방인을 향한 선교의 문을 열지 못하고 부정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사람들이 문제입니까?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부정적일까요? 왜 꼭 안 좋은 것만 보고 말을 만들고 문제를 삼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이런 일로 마음이 상했던 경험이 없습니까? 아니 여러분들도 무심결에 이런 말을 돌리게 되었던 경험은 없습니까?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저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가 알던 어느 목사님이 미국에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서 바로 신학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에 미국에 유학중이던 친구가 잠시 귀국을 해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유학중이던 그 친구도 부러운 마음이 들어서였는지 어떻게 그 목사님이 그렇게 빨리 교수가 되었는지 저에게 물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한국에 있으니까 뭔가 들은 이야기가 있지 않겠냐고 생각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그 목사님 아버지가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이라고 하던데 누가 뒤를 봐주니까 그런 것 아니겠냐고 무심코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그 목사님을 초청해서 특강을 갖게 되어 그분을 직접만나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알고보니 그 목사님의 아버지는 큰 교회의 담임목사가 아니었고 시골 교회를 섬기시는 장로님이었는데 아버지의 기도로 어려운 형편에서도 공부를 마치고 하나님의 은혜로 가르칠 수 있는 자리를 얻게 되어 감사하다는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혼동을 해서 잘못된 이야기를 만들어서 친구에게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저도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며 잘못된 이야기를 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에도 여러 가지 인간적인 연약한 모습들이 있었지만 사도들은 그때마다 성도들을 야단치고 훈계하기 보다는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소통하며 성도들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는 인내와 지혜를 보게 됩니다. 초대교회는 여전히 인간적인 모습들이 있는 공동체였지만 그러나 은혜 안에서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이 땅에 등장한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 공동체였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경청하며 함께 하나님의 뜻을 함께 구하는 과정을 여러 번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베드로가 기도 중에 감동을 받아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 사도의 권위로 사람을 정하여 임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함께 했던 사람이어야 한다는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고 성도들로부터 추천을 받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추천을 받고 기도하며 제비를 뽑아서 새로운 사도를 세웠습니다. 전혀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이 들어갈 여지를 없앤 것입니다. 초대교회 내에서 히브리파와 헬라파가 구제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에도 구제를 담당할 사람들을 세우기 위해 성도들의 추천을 받았고 헬라파 성도들 중에서 구제를 담당할 7명의 집사들을 세우게 됩니다.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이방인들의 선교가 본격화되면서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된 이방인들이 율법을 지켜야 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갈등의 소제가 되었을 때, 이제는 성도들이 늘어나서 모든 성도들이 다 모이지는 못했지만 사도들과 교회의 여러 의견을 대표하는 장로들이 함께 모여서 다양한 의견들을 함께 나눕니다. 성경의 표현을 보면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 서로 의견을 나눈 후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정해진 결론에 함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는 종교적인 권위를 가지고 성도들을 위압하거나 은혜라는 이름으로 모든 소통을 막는 공동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연약함 안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서로 경청하고 토론하며 함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 안에서 성숙해가는 공동체였습니다.

베드로는 율법을 중시하던 성도들의 비난을 경청하고 자신도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이 자신의 편견을 깨닫게 하시고 어떻게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을 넘게 하셨는지 그 과정을 소상하게 설명하여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합니다. 18절을 보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다 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자신들의 생각을 바꾸어 더 이상 부정적인 말을 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는 다른 어떤 이적들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사실 관계를 새롭게 알게 되어도 계속에서 말의 꼬리를 물고,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며 새로운 사실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초대교회는 비록 여러 가지 인간적인 부족함이 있는 교회였지만 그러나 진실을 받아들일 줄 알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함께 깨닫고 순종할 수 있는 공동체였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였지만 그러나 아름답고 성숙한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어떤 교회,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주목하여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 비전, 사명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함께 그 목적, 비전, 사명을 나누기 위해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경청하고 배려하고 설득하고 대화하며 함께 성장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흔히 목회자가 소신껏 목회할 수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소신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결국은 자신의 경험과 편견에 근거한 소신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마음을 열어 경청하고 순종하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가 더 온전한 공동체를 이루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들 각자도 늘 스스로 살펴서 부정적인 편견에 쉽게 사로잡힐 수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주목하고 마음을 열고 순종하고 참여할 수 있는 겸손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주일 설교 영상   ADMIN 2020.04.19 63
공지 매일묵상 안내   ADMIN 2017.03.11 245
140 2017.12.3(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12.05 40
139 2017.12.10(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12.11 50
138 2017.12.17(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12.17 44
137 2017.12.24(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12.24 54
136 2018.1.7(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1.14 41
135 2018.1.14(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1.14 50
134 2018.1.2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1.30 38
» 2018.1.2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1.30 46
132 2018.2.4(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2.04 51
131 2018.2.1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2.19 42
130 2018.2.1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2.19 63
129 2018.2.25(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2.25 65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Next ›
/ 16
Designed by hikaru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