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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다  / 사도행전 16:6-10

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1989년에 개봉한 영상미가 뛰어난 예술 영화인데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처럼 불교적인 인생관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오늘 이 영화에 대해 말씀드리는 이유는 예전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에 이 영화의 제목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달마 대사는 인도사람인데 동쪽인 중국으로 가서 불교를 전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바울이 서쪽으로 간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에 저는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서쪽으로 진행하여 팔레스타인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한국으로 전해졌고,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다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명을 받았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근거가 오늘 본문입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고 유럽이 먼저 복음화되도록 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그런 주장의 근거로 오늘 본문을 사용하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대사를 비롯한 역사 연구에서 주의할 것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지명, 개념과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아시아라는 지명은 여러 시대동안 여러 사람들에 의해 각각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한 지역을 가리키던 말이 나중에 의미가 확장되어 아시아 대륙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 된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봉고차의 예를 들어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원래 '봉고'라는 것은 어느 자동차 회사에서 만든 승합차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의미가 확장되어서 승합차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와 봉고라는 자동차가 처음 시판되었을 때의 의미는 다릅니다. 하나의 단어는 그 단어 자체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에서 아시아라는 말에는 세 가지 용례가 있었습니다. 먼저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아시아는 오늘날의 터키 서부에 있는 당시 로마제국의 한 행정구역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지역의 중심지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에베소라는 도시입니다. 그 외에도 소아시아와 대아시아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소아시아는 대아시아라고 불리는 지역과 대비되는 말이었는데 지금의 터키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대아시아는 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유럽과 중동지역이 기독교와 이슬람교라는 종교에 의해 구분되고 언어와 문화에 있어서 분명한 구획선이 그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기독교도 아직은 확산되지 못했고 당연히 이슬람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유럽과 오늘날에는 아시아라고 여기는 중동지역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로 같은 문화(헬라문화), 같은 언어(헬라어)권 안에 있었고, 당시에는 지중해 지역 전체가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지난 주에 묵상하신 본문에 보면 오늘날의 터키 남부 지역에 있는 루스드라라는 도시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했을 때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걷게 되는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보고 그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바나바를 제우스신이라고, 바울을 헤르메스신이라고 부르며 경배하려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에 그리스만이 아니라 오늘날의 터키 지역에도 그리스 신화가 널리 퍼져있었고 그리스의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에 바울이 아시아를 떠나 그리스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러 간 것을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아시아라고 부르는 지역에서 전혀 복음을 전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3차 선교여행 때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며 2년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사도행전 19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19:10)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19:26) 여기서는 또 모든 아시아 사람들이 다 복음을 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의 아시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아시아와 다른 한 지역의 명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거창한 선교비전이 아니라 구체적인 당시의 상황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이 처음 2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에는 1차 선교여행 때 갔던 지역을 다시 돌아보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여정 중에 하나님이 새로운 곳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곳이 바울은 서쪽에 있는 에베소라고 생각해서 에베소가 있는 아시아 지역으로 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길을 막으는 것을 깨닫고 북쪽으로 진로를 틀어서 드로아라는 항구도시로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환상을 보고 하나님이 바다 건너 마케도니아로, 더 나아가 그리스 본토로 가게 하시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위대한 바울도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분명하게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선교여행중에서도 늘 하나님의 뜻을 묻으며 기도하고 기다리고 계획을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소아시아와 그리스와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셨고 바울도 하나님이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셨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바울이 넓은 지역에서 복음을 전한 담대한 전도자로 생각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모험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매우 신중하고 철저한 사람이었기에 현실적으로 자신이 확실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지역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방인 선교를 위해 파송을 받았지만 어느 지역을 가든지 늘 먼저 유대인들이 모인 회당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1차 선교여행과 2차 선교여행 초기 사역지는 바울의 고향이었던 길리기아와 가까운 지역이었습니다. 바울도 자신이 익숙한 지역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의 방향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제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청소년기나 대학, 청년시절에도 늘 교회를 중심으로 살았고 믿음의 확신은 있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학계획도 세웠다가, 고시도 봤다가, 결국은 일반 직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직장 생활 중에 청년부 수련회에 가게 되어서 기도하다가 공부하고 가르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하고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 후에 청년부 형제자매들과 함께 중국에 단기선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말이 선교지 그때는 중국에서 사역하는 후배를 방문하고 그 참에 중국여행도 하는 그런 정도의 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사역하는 청년들을 보고 감동을 받고 돌아온 후에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에는 목회를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고 굳이 신학교를 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미 교회에서 많은 훈련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예수 믿는다고 다 신학교를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결국 연변에 가서 사역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1년 반만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연변에서의 사역에는 많은 시행착오와 실수가 있었고 그 결과로 제 자신에 대해 많이 실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과 갈등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신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신학공부를 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들어가게 되었고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지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십니다. 왜 하나님은 처음에 바울이 선교여행을 떠날 때에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분명히 알려주시지 않은 것일까요? 그때까지 바울도 아직 준비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대부분 3인칭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요한이, 바울이, 바나바가 어떻게 복음을 전했는지를 기록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부터 “우리”라는 말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 “우리”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유력한 해석은 바로 이 시점에서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바울의 선교여행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누가가 겸손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그 자리에 있어서 직접 경험한 것이기에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위대한 바울도 혼자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2차 선교여행을 준비하면서 바울과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다투다가 갈라서게 됩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떠났고 바울은 바나바와 갈라져서 따로 선교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먼저 디모데라는 신실한 청년을 만나게 하셔서 동역하게 하셨고 또 누가를 보내주시고 그리고 실라를 보내셔서 새로운 팀을 이루어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도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인격적으로도 더 성숙해야 했고 함께 동역할 사역자들이 필요했고 자신에게 익숙한 지역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제가 제 부족한 경험을 말씀드렸고 또 성경에서 바울의 부르심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에게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을 어디로 부르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셨고 지금 하나님은 어디로, 어떤 삶으로 여러분을 부르십니까?

우리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달랐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늘 큰 꿈을 찾아 다니지만 하나님은 소박한 삶으로 부르시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소박한 삶에 만족하고자 하지만 하나님이 새로운 기회로 도전하시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가게 하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체적인 부르심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일반적인 소명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조금만 읽어보아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며 어느 곳에서나 복음을 증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첫 번째 문을 들어서지 못하면 그 다음의 구체적인 부르심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런 삶의 증거들이 이웃을 향한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을 기꺼이 하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길은 그들에게 가장 좋은 것,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나라의 소망과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이런 선교적인 삶으로의 부르심을 먼저 우리의 삶의 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에 그 다음의 구체적인 부르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을 향한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을 때 그 부르심을 따라 살기위해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선교적인 삶에 대해 고민을 할 때 많은 교훈을 주었던 책이 있습니다. “선교사 열전”이라는 책인데 제목 그대로 선교적인 삶을 살았던 여러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위대한 이름을 가진 남성 선교사들의 그늘에 가려진 여성 선교사들의 이야기가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마지막에 있는 저자의 후기였습니다. 그 글에는 두 여자아이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 글을 보면 같은 학교, 같은 교회를 다니던 사촌지간의 두 여자아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두 아이 모두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해외선교의 소명을 강하게 느끼고 헌신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두 여자의 일생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두 처녀는 똑같이 해외선교의 소명을 느꼈다. 한 아이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에콰도르로 가서 오늘날까지 선교사로 사역을 하고 있다. 또 한 아이는 이렇게 남아 지금 이 책을 쓰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같지만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길은 각자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바울과 같이 넓은 지역을 다니며 위대한 역사를 이루게 하시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삶의 영역 안에서 신실한 믿음의 삶으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낯선 곳에 나아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고 어떤 사람들은 익숙한 곳에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게 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모두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을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우리를 부르시는 그 자리를 찾아 나가가는 믿음의 여정을 계속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을 깨닫고 순종하며 오늘도 한걸음 한걸음 도전하고 성찰하고 준비하며 더 성숙하고 더 온전한 믿음의 길을 걸어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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