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교회 :::
현대교회 로고
신앙으로의 초대 현대교회 이야기 예배와 모임 나눔과 섬김 참여와 헌신
예배안내 양육과정 안내 매일묵상 교회학교 목장안내


서브메뉴 안내 - 섬기는 이들


댓글 0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리이까 / 에스라 9:11-15

11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12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 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13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14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에스라의 시대는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 역사의 마지막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를 일반적으로 포로 귀환 시대라고 부릅니다.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성경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남의 나라의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셔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시고 그 곳에서 나라를 이루며 번영하며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에 순종하지 않다가 나라는 남과 북으로 분열이 되고 북왕국은 먼저 앗시리아에, 남 왕국은 150년 후에 바벨론에 각각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마케도니아가 연이어 일어나던 대제국의 시대에 많은 민족들, 나라들이 지도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만일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가 끝이 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로 역사에서 사라졌다면 여러분은 그런 하나님을 믿고 싶으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더라도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심판으로 멸망하고 말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애굽에서 탈출하는 출애굽의 장면도 감동적이지만 구약성경의 하이라이트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이 시대에는 대단한 기적도 없고 화려한 번영의 이야기도 없지만 자기 죄로 심판받은 백성이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는 감동적인 이야기,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경이 어떠했는지는 시편 137편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보니엠의 노래 “By the rivers of Babylon”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 시편은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는 구절로 시작됩니다. 포로로 끌려가서 고향땅을 생각하며 애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모습을 쉽게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137편에는 우리를 당황스럽게 할만큼 적나라하게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절망감과 분노를 표현하는 구절이 마지막에 있습니다.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어떻게 성경에 이런 글이 있는가 당혹스러울 만큼 강한 분노와 저주의 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구절들을 통해 바벨론 포로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얼마나 강한 고통과 상처를 안겨주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오던 시대에는 또한 얼마나 큰 기쁨이 있었는지는 시편 126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시편 126편은 이런 구절로 시작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과연 이런 날이 다시 찾아올 수 있을지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마치 꿈꾸는 것 같은 귀환의 날을 맞이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놀라움과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시편 126편은 이렇게 마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그들의 눈물을 헛되게 하지 않으시고 추수의 기쁨과 같은 은혜의 날을 허락하신 감사와 감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오던 시대는 하나님의 은혜로 삶이 회복되는 것을 경험하던 시대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고 신약시대가 예비되는 시대입니다. 

에스라는 바로 이 포로 귀환기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3차에 걸쳐 귀환합니다. 1차 귀환은 에스라 시대보다 80년 먼저 일어났습니다. 1차로 귀환한 사람들이 가장 많아서 약 5만명 정도였는데 그들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고향으로 돌아가서 성전을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신앙공동체를 회복하게 됩니다. 에스라는 그 후 80년이 지난 때에 2차 귀환을 이끌었습니다. 에스라의 귀환이 중요한 것은 에스라가 이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보다 먼저 귀환을 한 사람들은 성전을 다시 세우고 신앙 공동체를 회복하기 시작했지만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두지 못했고 이전에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던 삶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진정한 회개운동을 일으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다시 세우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유대교의 전통에서는 처음에 율법을 전해준 모세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회복시켜 준 에스라를 제2의 모세로 여길만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에스라의 회개기도가 담겨 있습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신앙의 핵심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죄에 대한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신앙의 여정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때 회개라는 말은 죄를 고백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 그러므로 변화를 받아 삶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말에서도 회개(悔改)는 뉘우치고(悔) 고침(改), 즉 이전의 삶이 잘못되었고 자신의 죄가 자신의 삶을 망치는 것이었음을 깨닫고 이제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도록 마음을 고치고 삶을 고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우리들 자신의 믿음의 삶에서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뭐든 적당하게 하면 되는 것이고 부정한 일을 하게 되더라도 들키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 뭐 그렇게 유별나게 깨끗한척하고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 자체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신앙의 능력을 동원하는데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영적, 도덕적 기준에는 관심을 갖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과 원만하게 어울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해도 더 민감한 신앙적 양심을 갖게 되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의 추구와 사회적인 성공이 목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삶을 신앙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회개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회개란 신앙인이든 아니든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죄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은폐하고자 했던 잘못한 일들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에, 그래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게 되었을 때에 더 큰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마지못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지탄이 누그러지고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일들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나면,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고, 억울하고, 이게 다 음모고, 보복이고 하며 말이 바뀌게 되고, 결국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유혹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에스라의 시대도 이런 유혹이 있던 시대였습니다. 에스라의 시대는 포로로 끌려가서 고통스럽게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던 시절도 지나가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고향땅을 처음 밟았던 때의 감격도 지나간 시대였습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전을 세우고 신앙공동체의 외형은 회복했지만 그 마음은 다시 하나님을 저버리던 때의 삶의 습관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에스라를 마음 아프게 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의 이방인들과 서로 통혼하던 모습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우상을 다시 찾게 되는 어리석음에 빠져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아보면 솔로몬이 이방의 공주들과 통혼하면서 우상숭배가 시작되어 결국 나라가 남과 북으로 분열되었고 아합 왕이 시돈 왕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면서 이스라엘에 바알숭배가 퍼져갔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라는 특히 이방백성들과 통혼하는 것에 대해, 더군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아무런 의식이 없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참담하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앙적인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던 시기에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특히 그들의 지도자들이 이방인들과 통혼하며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아”(3절) 있었습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모여 왔습니다. (4절)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6절) 그리고 그의 기도는 이렇게 마칩니다.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업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14-15절)

사실 에스라는 누구보다도 깨끗한 신앙적인 양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 그는 무뎌진 신앙 양심으로 죄악의 유혹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보고 안타깝게 여기며 그들의 잘못을 그들을 위하여 대신 회개하며 “우리의” 죄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적당하게 타협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이들의 삶을 일방적으로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도 아니고 죄를 죄로 알지 못하고 불의한 삶에 빠져들어가는 이들의 삶을 위하여,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며 회개운동을 이끌게 되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란 죄를 인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 그리고 삶의 행실을 온전하게 바로 잡는 것, 그리고 다시 죄악된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 결단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은 죄를 거듭지어도 봐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건져주시고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으로 변화시켜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이전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며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는 충분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성경은 인간의 힘과 의지로 새로워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죄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죄로부터 돌이키며 회개하고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진정한 회개에 이르게 하여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 은혜를 구하며 그 은혜를 경험하며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가며 그 은혜를 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 자신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이 나라 이 백성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가 있고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며 그 은혜의 능력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들 스스로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며 우리의 죄가 우리와 이 세상을 망치는 것이라는 절절한 깨달음이 있어야 하며 이 시대의 불의함을 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기도하며 새로워지는 믿음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이전에 어떤 실수가 있었든, 잘못이 있었든, 어떤 유혹과 어떤 넘어짐이 있었든, 어떤 악한 생각과 행동이 있었든,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기를 원하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진정한 회개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간절한 간구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에, 그리고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새로운 은혜의 때가 시작되어 진정으로 이전의 삶에서 벗어나고 모든 부정과 불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글 옵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주일 설교 영상   ADMIN 2020.04.19 31
공지 매일묵상 안내   ADMIN 2017.03.11 217
76 2018.6.17(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6.17 29
75 2018.6.10(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6.10 28
74 2018.6.3(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6.03 19
73 2018.5.27(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5.27 31
72 2018.5.20(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5.20 29
71 2018.5.13(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5.13 26
70 2018.5.6(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5.06 24
69 2018.4.29(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4.29 37
68 2018.4.22(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4.22 30
» 2018.4.15(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4.15 35
66 2018.4.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4.08 36
65 2018.4.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8.04.08 24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Next ›
/ 16
Designed by hikaru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