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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도할 뿐이라 / 시편 109:1-4

1 내가 찬양하는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옵소서
2 그들이 악한 입과 거짓된 입을 열어 나를 치며 속이는 혀로 내게 말하며
3 또 미워하는 말로 나를 두르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하였음이니이다
4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기독교 신앙의 대표적인 가르침, 혹은 성경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대부분 “서로 사랑하라” 혹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직접 읽어보면 원수에 대한 좀 다른 말씀들을 더 많이 듣게 됩니다. 성경에는 원수라는 말이 290번 등장하는데 원수를 사랑하라는 구절은 단 세 구절 뿐입니다. 특히 시편에는 거의 전반에 걸쳐서 원수가 등장하는데 원수로부터의 구원을 탄원하거나 원수를 저주하는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이런 말씀을 읽다보면 당시에도 이렇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많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시편에서 가장 마음 아프게 고백하는 것은 가까운 친구가, 형제같이 지내던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였던 기억들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09편도 원수를 고발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요청하는 시입니다. 이런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은 우리의 억울함을 알아주시고 원한을 풀어주시고 정의의 심판을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원수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지만 실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원수라는 말은 잘 쓰이지 않습니다. 문어체이기도 하고 좀 오래된 말이기도 합니다. 옛날 어렸을 때를 돌아보아도 원수라는 말은 단 한 가지 경우에만 사용했었습니다. 바로 이 노래를 부를 때입니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처서 무찔러...”

바로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6.25의 노래입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이런 노래를 가르쳐 원수에 대한 적개심을 가르쳐야 했던 이유는 그만큼 우리의 역사에 아픔이 크고 받은 상처가 깊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우리는 우리 역사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제 그 원수가 다시 형제가 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는 희망도 설레임도 있지만 또한 우려도 있고 염려도 있고 불안함도 있고 두려움도 남아 있습니다. 그간에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다 덮고 갈 수도 다 해결하고 갈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좋은 기회가 온다 하더라도 앞으로 구체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일들도 산더미와 같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지혜를 얻고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이 문제들을 풀어나가야 하겠습니까?

저는 가능하면 설교에서 최근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건이 일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사람은 감정적이 되기 쉽고 사건의 사실 관계도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섣불리 언급했다가 실수를 저지르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좀 시간이 지나고 사실 관계가 분명해지고 생각이 정리된 후에 이야기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되고 그렇게 설교하시는 선배 목사님들의 지혜로운 모습들도 봅니다. 그러나 그렇게 흉내를 내어보려다 보니 막상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이야기를 꺼내려 해도 이제는 관심이 없어져서 중요한 일이었는데도 이야기할 기회를 놓쳐 버리기도 합니다. 설교는 시사해설을 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일단은 성경 본문에 집중을 하고 그 본문을 통해 얻게 되는 교훈을 전하면서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들을 말씀에 비추어서 해석해서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성경을 통해 미리 정해진 본문에 따라 묵상을 하고 설교를 합니다. 오늘 본문은 109편인데 앞에서 말씀드린대로 원수에 대한 시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의 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나는 사랑하나 그들은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요즘 화요일과 목요일에 팀 켈러 목사님의 “하나님을 말하다”라는 책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 불신자들과 회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변증하는 책인데 지난 주에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심판하실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다룬 장에서 미로슬라브 볼프라는 신학자의 글을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미로슬라브 볼프는 크로아티아 출신의 신학자입니다. 크로아티아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였는데 이 지역은 공산주의 붕괴 후에 오히려 분열되고 서로에 대한 적개심이 심각한 지경으로 표출되며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들어갔던 곳입니다. 그래서 볼프는 어떻게 진정한 평화가 가능할 것인가를 평생의 주제로 삼아서 연구를 해왔습니다.

“하나님을 말하다”에 인용된 볼프의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불의와 거짓에 분노하지 않고 폭력을 영원히 끝장내지 않는다면 그러한 하나님은 예배할 가치가 없을 것이다... 폭력에 의지하는 흐름을 스스로 완전히 차단하는 유일한 수단은, 폭력이 오로지 하나님으로부터 나올 때에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길뿐이다”

사람들이 심판의 하나님 보다 사랑의 하나님을 더 좋아하지만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억울한 일들, 불의하고 부정한 일들을 그대로 다 덮어버리시는 하나님을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덮어 버리고 잊어버리자고 하는 것은 정의의 원리에 어긋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손에 칼을 들고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고 더 큰 피를 흘리게 될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정의롭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그들이 옳고 우리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당했다면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주셔서 도우시지 않겠습니까?

볼프는 일방적인 용서와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정의가 구현될 것이라는 기대가 없이는 이 땅에서 폭력을 그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원수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로마서 12:19) 하나님이 가장 공평하고 정의롭게 심판하실 것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에 우리는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며 오히려 이 세상 가운데서 평화의 다리를 놓으며 이해하고 용납하는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믿고 사랑하며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시편에 그렇게 원수에 대한 고발의 기도가 많은 이유일 것입니다. 원수를 하나님께 고발하는 것은 내 손에서 칼을 내려놓으려는 믿음의 결단에 이르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가지 해보려고 합니다. 제 인생에서 딱 한 번 평양에 갈 뻔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공부하던 시절인 2004년 제 2차 세계한국학대회가 평양에서 열린다며 발표 논문을 모집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대학원생의 신분이었는데 그 공고문을 보면서 가슴이 뛰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이는 학회에서 발표의 기회를 얻으려면 평양에 대한 주제로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한국종교사에 있어서 평양의 상징적 위치”라는 제목의 초고를 써서 신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제가 정말로 채택되어 평양에서 발표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논문을 준비를 해서 제출을 하고 발표할 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당시에 남북관계가 틀어져서 결국 평양에서 세계한국학대회가 열리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북경에서 2005년에 열린 대회에 참석을 해서 발표를 하고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제가 썼던 논문은 겉으로는 한국 종교사에 대한 이야기이고 평양이 고조선의 수도로 역사에 처음 등장한 후로 지속적으로 우리의 전통문화의 역사에서 오랜 세월 차지했던 지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사실 정말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일제시대에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만큼 크게 부흥하였던 평양 지역의 교회의 역사였습니다. 제가 당시에 썼던 논문의 마지막 결론부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이상과 같이 평양은 수 천 년의 한반도의 역사의 풍상을 견디면서 고대적 신화적 상징을 현대에까지 이어주는 한반도의 대표적인 도시로 성장하였다. 한반도의 첫 국가의 탄생의 환호와 열망, 그러나 고조선의 멸망과 흩어짐의 비애, 고토회복의 이상과 좌절, 문명의 시원으로서의 자부심과 소외와 차별의 회한, 새로운 신앙과 문화를 향한 선구적인 개척과 전쟁의 비극이 이 한 도시 안에 담겨있음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가 평양이 안고 있은 모든 가능성을 예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선조들의 뜨거운 소망의 눈물에 담겨있는 씨앗을 싹틔워 새로운 열매로 가꾸어 나가야 할 의무가 후손들에게 남아있다. 감히 짧고 어그러진 글을 통하여 희망하는 것은 평양의 이야기가 더 이상 너희의 이야기거나 저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고 곧 나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다. '공자 앞에서 문자쓴다'는 세간의 속담이 가르치는 지혜를 무시한 채 무모하게 설익은 평양에 대한 단상을 평양에서 내어놓은 어리석음이 크지만 그 또한 모두 이러한 소망의 작은 발현이라고 변하고 선학들과 시민들께 아량을 베풀어 주시기를 구하고 싶다.”

윗글에서 “선조들의 뜨거운 소망의 눈물에 담겨있는 씨앗을 싹틔워 새로운 열매로 가꾸어 나가야 할 의무가 후손들에게 남아있다”라고 한 것은 평양에서 교회가 부흥하던 그 시절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던 성도들의 기도의 열매를 맺어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까지 불렸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주일이면 시장 가게들이 다 문을 닫았다는 그 시절, 한반도의 부흥의 역사의 시발점이었던 평양 대부흥운동, 그 시절의 은혜의 역사가 언젠가 다시 북한 땅에서 이어지기를 소망하며 조금이라도 그 이야기를 그 곳에서 해보고 싶었습니다. 언제 그런 기회가 다시 오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만 기도할 뿐입니다.

앞으로 한반도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기대와 소망도 있지만 불안과 근심, 의혹과 불신과 두려움도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라고 말한다해도 1950년 전쟁이 일어날 때도 그 전까지는 한 민족이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바는 이 땅의 미래가 인간들의 합의와 약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해야 할 바는 하나님의 은혜와 평화가 이 땅 가운데 임하기를 소망하며 기도하고 우리로서 감당해야 하는 평화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또 배신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다시 사랑하고 다시 기도할 뿐입니다.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을 때에 하나님이 이 땅에 정의를 세워 주실 것이고 이 땅에 진정한 평화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과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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