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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 신명기 5:28-33

28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29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30 가서 그들에게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라 이르고
31 너는 여기 내 곁에 서 있으라 내가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네게 이르리니 너는 그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내가 그들에게 기업으로 주는 땅에서 그들에게 이것을 행하게 하라 하셨나니
32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33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리라

신명기는 40년의 광야의 여정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명기(申命記)의 신(申)자는, 신신당부(申申當付)라는 말에서 사용되는 것처럼 ‘거듭해서’, ‘다시 한번’의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그래서 신명기는 “두 번째로 선포하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라는 것은 첫 번째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후에 시내산에서 처음으로 십계명을 선포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40년의 광야생활을 거친 이스라엘 백성들의 다음 세대에게 다시 하나님의 언약을 상기시켜 주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준비를 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5장은 십계명을 다시 기록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에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22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가운데, 구름가운데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감당할 수 없어서 모세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무슨 말씀이든지 다 순종할테니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들어서 전해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이 이런 생각 속에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있음을 보시고 그 말을 받아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모세를 가까이 부르셔서 하나님의 율법을 전해주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면서 그들이 약속했던 데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라고 당부합니다.

오늘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를 새겨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여러 가지 경구들이 등장하지만 쉽게 기억이 되는 말씀이 있고 그렇지 못한 말씀이 있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신명기에 자주 반복이 되는데 우리에게는 익숙하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우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이념의 대립이 심해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좌파에도 우파에도 속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생각 보다는 본래의 말씀의 맥락을 염두에 두어야 오해를 피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좌”와 “우”에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에는 그런 의미는 없었습니다. 오늘날 말하는 소위 “좌파”와 “우파”라는 표현은 프랑스대혁명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프랑스대혁명 때에 국민의회로 모인 사람들 중에 과격한 정파가 의사당의 좌측에 온건한 정파가 우측에 앉았던데서 이런 표현이 시작되었습니다.

좌와 우는 문화와 전통에 따라 다른 의미들을 갖습니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방위를 이야기할 때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라는 상징을 사용합니다. 이때에 좌는 동, 우는 서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남쪽을 바라보며 방위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동쪽을 기준으로 합니다. 왕은 남쪽을 바라보며 통치한다는 전통에 따라 경복궁이나 북경의 자금성은 모두 남쪽에 정문이 있지만  성경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정문은 동쪽에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동쪽이 태양이 뜨는 곳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비취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좌는 북쪽 우는 남쪽을 말합니다.

우리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중용(中庸)”이라는 말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극단적인 것은 좋지 않고 적당하게 두루두루 원만하게 사는 것이 좋다는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이런 전제를 가지고 이 말씀을 듣게 되면 어느 편이든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성경의 번역도 그런 생각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좌와 우는 특정한 삶의 길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좌측에 있는 길과 우측에 있는 길이 있는데 그 사이 어중간한데서 적당하게 원만하계 살아가라는 뜻이 아니라 좌우에는 길이 없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곧고 바른 길만이 있으며 우리가 그 길을 따라 흔들림없이 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좌와 우라는 것은 “조금도”라고 이해해야 하고 치우치지 말라는 것은 “벗어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본문의 맥락과 원문의 의미에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그대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로 보일수도 있고 좌로 보일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초대교회부터의 기독교의 역사는 세상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하든지 하나님의 뜻에 철저하게 순종했던 사람들의 믿음의 길을 보여줍니다. 초대교회의 순교자들이든지 마르틴 종교개혁 시대의 루터와 같은 개혁자들은 당시의 다수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치우친 길을 걷으며 믿음의 길을 열어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타고난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한편으로 의견이 쏠리면 다른 편을 들고 또 그 편으로 의견이 쏠리면 다른 편을 드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면 당신의 생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반대편을 들어주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요즘은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소신이 없이 다만 치우치지 않으려다가는 어디로 가는지를 잃어버립니다. 아무 편도 들지 않으면 적도 없고 친구도 없습니다. 치우치지 않는다는 생각은 자신의 삶의 기준을 자신의 밖에 두는 것입니다. 치우치지 않고 두루 두루 이 사람 저 사람 다 만족시키며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의 변덕에 따라서 오히려 좌우로 정신없이 흔들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소신도 없고 삶의 기준도 없고 추구하는 가치도 없고 그저 두루두루 원만하게 치우치지 않고 살아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남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과 나 사이의 곧고 바른 길을 찾아 그 길을 따르는 여정입니다. 처음 인생을 시작할 때에는 이러저러한 경험도 하고 여기저기 기웃기웃하며 남들이 자랑하는 삶의 모습들을 배워가기도 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도 자기 길을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고 아무리 화려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같은 사람들의 삶의 실상도 그리 대단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인생의 과제는 얼마나 삶을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가, 그 단순한 곧은 길을 찾기까지 어떻게 우리의 잔가지를 쳐낼 수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면 늘 듣게 되는 질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알수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뜻은 이미 우리 앞에 있습니다. 성경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다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나를 위한 말씀, 오늘 내게 주시는 말씀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찾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가며 씨름하며 기도할 때에 우리는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들 모두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내게 주신 말씀을 찾고 깨닫고 은혜를 받고 결단했던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한 구절이라도 붙들고 평생을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이미 주신 말씀을 더 이상 기억하고 순종하지 못하면서 늘 새로운 음성을 듣고 새로운 말씀을 찾고 새로운 뜻을 원한다면 새로운 말씀을 들려주신다고 해도 우리의 삶에 무슨 변화가 있겠습니까?

저는 요즘 개인적으로 “진실하게 사는 것”을 제게 주신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는 나도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일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신뢰를 주고 믿음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서 특히 가족들 사이에,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말과 행실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마다 받은 은혜가 다르고 하나님 앞에서의 결단이 다를 것입니다. 단 한 가지라도 내가 받은 은혜, 내가 받은 도전, 내게 주신 결심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나는 내게 주신 말씀을 따라 이렇게 살았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그런 길을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곧고 바른 길을 찾아가므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받아 누리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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