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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을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 신명기 13:1-5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3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4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5 그런 선지자나 꿈 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지난 목요일에 우리 교회가 협력교회로 섬기는 베리타스 포럼에 다녀왔습니다. 지난 주일 광고시간에 알려드린 것처럼 베리타스 포럼은 진리의 상아탑에서 스펙쌓기를 위한 학원으로 변해버린 오늘날의 대학에서 진리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며 신앙에 대한 합리적인 변증을 해온 모임입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자리였습니다.

강연장에 들어서자 강당을 가득 채운 학생들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펙을 쌓으려는 스트레스로 대학의 낭만도 사라져버렸다는 캠퍼스에서, 학점과 관련없는 강의에는 학생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상황 속에서 주최측도 처음에는 얼마나 학생들이 모일지 회의적이었는데 23일과 24일 모두 500석과 보조의자까지 가득차는 성황을 이루게 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고 이땅의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이틀간의 강연의 주제는 “진리란 무엇인가”,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것이었고 특히 둘째 날 주제는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철학자와 과학자의 기독교적 사유”였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인생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기성세대가 그들로부터 배워야 하는 것은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젊었을 때에는 좀 더 고상한 생각, 형이상학적 생각, 근원적인 물음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우리가 지금 편안하게 살고 있는 것은 그 답을 찾은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를 잃어버린 것 아닐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지식은 교회 밖에도 넘쳐납니다. 어떻게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고, 어떻게 효율적으로 삶을 정리하고 시간을 관리할 수 있고, 어떻게 건강하게 살 수 있고, 우리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가져야 할 지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교회 밖에 더 많은 더 전문적인 지식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런 주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조언을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신앙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의 인생에서 신앙이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지난하지만 가치있는 여정에 들어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이끌어야 할 근원적인 질문 자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왜 사는지 모르고, 그냥 달리고, 경쟁하고, 버티고 살아가고, 결국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기에 자기의 자존심만을 위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오늘 설교를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근원적인 질문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왜 존재하는지, 다른 말로 하면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 이 세상에서 내가 찾고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 삶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질문을 찾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구약성경, 특히 신명기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배타적이라고 보일만큼 하나님만을 사랑하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기독교 신앙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부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공자님, 맹자님 말씀을 따라 살았지만 공자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궁극적인 존재, 초월적인 존재와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런데 무언가를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누누이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들었지만 쉽게 유혹에 빠져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찾고 섬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어떤 사물, 존재에 대해 가지는 가장 긍정적이고 가장 강렬한 반응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회의하는 사람들, 부정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존재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 것은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미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그 존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의 문제가 아닙니까?

여기에 신앙의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며 사랑이 하나님과 우리가 관계를 맺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이미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우리의 궁극적인 사랑의 대상을 찾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는 이미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에 다른 궁극적인 사랑의 대상을 찾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요즘 저는 한번 제대로 된 글을 써보고 싶어서 글쓰기 학교를 다니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해 본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첫시간에 자기소개를 할 때에 제가 목사라고 말하니까 그 중에 어느 분이 “저도 교회는 다니지만 저는 영성을 추구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교회를 다니면 다니는 것이지 영성을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 십자가, 구원,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뭔가 치우치고 편향된 것이으로 불편하게 생각하고 영성이라고 말하면 더 보편적이고 고상하게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어보면 영성이라는 것은 결국은 자기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찾고, 나를 이루고, 나를 완성하고, 내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고통많은 세상에서 다른 이들의 고통을 잊고, 누구에게도 신경쓰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의 마음에만 집중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은 이와는 다른 것입니다. 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고, 내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통해 온 세상이 더불어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기를 원하시기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고 그 속에서 우리도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신앙의 이름으로 결국은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자신의 뜻을 이루고 내 마음의 평화를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자녀가 소위 이름 있는 학교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아서 서러워했다는 이야기를 어느 분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왜 서러웠을까요? 자녀가 어떤 학교를 다니는가가 이 세상에서 남들한테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가치를 입증하는 기준이 되었기에 그것을 바라고 구하고 살았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 같아서 서러워하는 것은 아닐까요? 신앙이 삶의 더 높은 기준과 가치를 제시해 주어서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지 못해서 신앙이 있어도 세상이 정한 가치를 따라가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신앙이 우리의 삶에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은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신명기 13장 전체는 선지자든지, 심지어 가족이든지, 이스라엘의 어느 성읍이든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제거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거짓선지자에 대한 경고는 성경 여러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주보 내지에 “열두사도의 교훈집”이라고 불리는 디다케의 한 부분을 인용해서 정리해 놓았습니다. 디다케는 헬라어로 교훈, 가르침이라는 뜻인데 1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성경이외에 가장 오래된 기독교 문헌으로 초대교회의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디다케에 거짓선지자를 분별하는 기준이 나오는 것은 초대교회의 상황을 알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각 교회를 지도하고 섬기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을 장로, 혹은 감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도와 선지자들은 한 교회에 소속된 사람들이 아니라 사도행전에 나오는 것처럼 여러 교회들을 순회하며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지역 교회로 보면 그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지자들 중에는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여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진정한 선지자인지 아니면 거짓선지자인지 분별하는 기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디다케에서 말하는 거짓 선지자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무엇을 가르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아닌 것을 가르치며 복음의 진리를 파괴하는 자는 거짓선지자입니다. 또한 어떻게 사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은 거짓선지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예들을 들어줍니다. 자신을 위해 상을 차리라고 하는 자, 삼일 이상을 머물며 교회에 폐를 끼치는 자, 말씀을 전하고 돈을 요구하는 자는 모두 거짓선지자라고 가르칩니다. 거짓선지자의 기준은 결국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 선지자라는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결국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구하고 있는 자인가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말하고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말하고 겉보기에 신앙의 외양을 가지고 있더라도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은 어떤 말을 하든지 거짓선지자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성도들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으로 이끌기 보다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세상의 영광을 구하며 사는 삶으로 이끌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섬기도록 유혹하는 모든 것을 제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유혹의 목소리는 밖에서만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목소리는 우리 안에도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시간을 정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이유는 한 주간 살면서 어느새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된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기쁨을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을 잃어버리고 그 답을 얻지 못한다면,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수고하며 성취하며 살아가더라도,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날 우리를 맞아 주시는 분도 없고, 우리에게 칭찬하시는 분도 없고, 우리를 용서하시는 분도 없고, 모든 악을 심판하시는 분도 없다면 우리의 삶의 의미는 무엇이고 우리에게 무엇이 남아있겠는가?

오늘도 하나님 앞에 나와 우리의 인생의 궁극적인 질문과 답을 찾으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진실된 입술의 고백, 마음의 고백을 올려드릴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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