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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제와 포용 / 신명기 23:3-8

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6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
7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네 형제임이니라 애굽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네가 그의 땅에서 객이 되었음이니라
8 그들의 삼 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할때에 성경시험의 기출문제를 보고 당황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성경을 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들의 이름들을 알아야 맞출 수 있는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특히 이스마엘과 에서의 자손들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보고 의문을 가졌습니다. 왜 이런 이름들까지 외워야 하나? 하나님은 이삭을 택하시고 야곱을 택하셔서 그들이 믿음의 계보를 잇게 하셨는데 우리가 이스마엘과 에서의 자손들까지 알아야 하는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성경에 그들의 자손들의 이름이 실려 있다는 것은 믿음의 계보에서 배제된 것같은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이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보의 표지에 실어드린 작품은, “이스마엘에게 작별을 고하는 아브라함”이라는 제목의 조각상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갈등, 사라와 하갈의 갈등 때문에 이스마엘을 떠나보내지만 여전히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의 아버지이기에 마지막 사랑의 정을 나누며 축복하고 있고 그 사랑을 외면하는 하갈, 멀리서 바라보는 사라의 모습이 함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오늘날 증오와 갈등으로 찢어진 세상 속에서, 특별히 이스마엘의 자손들이라는 아랍인들과 이삭의 자손들이라는 이스라엘과의 갈등 속에서 화해의 가능성을 찾아보는 작품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스마엘의 자손들과 에서의 자손들도 크게 번성하는 민족이 되게 하셨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배제와 포용의 이야기가 함께 등장합니다. 에서의 후손인 에돔사람들도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고 이스라엘이 종살이를 했던 애굽도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사람들이 본래 형제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한 때 애굽사람들이 비록 그들의 자유를 빼앗고 억압했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보면 가나안 땅에 먹을 것이 없어서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을 찾아 갔을 때에 그들을 받아주고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요청을 받습니다. 그러나 모압과 암몬 사람들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환대하기를 거부하고 저주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어떤 면에서는 선택과 배제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이삭을 선택하셨고 야곱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이스마엘은 버림을 당했고 에서도 버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경의 모든 이야기가 배타적인 선택의 연속이라면 지금 이 지구상에 하나님을 알고 믿음의 길을 가도록 부름받은 사람은 극 소수의 사람들에 불과하거나 어쩌면 단 한 명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또 한편으로 성경은 포용의 이야기, 선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창세기의 야곱의 이야기에서 이미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아브라함은 하갈의 아들을 떠나보냈고 사라가 죽은 후에 후처로 삼은 그두라의 아들들을 떠나보냈지만 야곱은 자신의 모든 아들들, 어머니도 다르고 서로 미워하고 갈등을 빚던 12아들들을 모두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 영적인 유산을 물려받을 자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탄생하고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구원의 역사가 이제 하나의 민족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경륜의 때가 되었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열방에 구원의 빛을 비추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지금 성경을 읽고 있는 우리도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이방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은 언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던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때에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경을 읽을 때, 특히 구약성경의 율법들에는 수많은 차별과 배제와 심지어 폭력의 이야기들을 봅니다. 우리 시대는 비록 우리들 자신이 그리 너그럽지 못하고 관용적이지 못하지만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누구도 배제해서는 안된다는 생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오늘날 특히 종교인들이 앞장서서 혐오를 유발하고 배제의 논리들을 전파하고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물론 우리가 있는 그대로 성경을 읽어간다면 그 속에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극단적인 포용의 가르침이 있는 반면에 하나님 앞에서 정결해야 하고 이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을 멀리하고 더 나아가 제거해야 하는 사명의 말씀을 함께 듣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나라도 급속하게 다원화하고 다문화사회가 되어가고 있지만 우리들 대부분에게 미움과 갈등은 다른 인종,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가까이 있는 사람들, 나와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르지 않은, 소통의 문제가 기본적으로 없을 뿐아니라 오히려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집니다. 우리가 그들을 용납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의 피부색이 나와 다르고 다른 인종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내게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들이 옳지 않고 부당한 일을 행하면서도 아무런 가책이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 아닙니까? 그러면 정의의 이름으로 그들을 책망하고 판단하고 그들의 잘못을 드러내야 할가요? 아니면 사랑의 이름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까요?

우리의 신앙은 늘 부족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갈등 속에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 성경 자체가 우리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기억나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똑똑 하고 원만한 가정을 가졌지만 고1때는 힘께나 쓰는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말썽을 피우다가 고2가 되어서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이 그 친구를 제 짝으로 정해서 잘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둘은 처음에는 좋은 관계로 시작했습니다. 그 친구가 놀던 이야기를 경이롭게 듣기도 했고 그 친구가 마음을 잡고 공부하도록 경려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친구가 어떤 콤플렉스 때문이었는지 다른 친구와 같이 아침마다 저에게 일종의 성추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일종의 장난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수치스럽기도 하고 참아야 하는지 화를 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수 없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어쨌던 참기는 했지만 그 참음이라는 것이 진정으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저 바라는 것은 빨리 고2가 끝나는 것이었지만 하필이면 고3때도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제 기억에는 고3 1년동안 그 친구와 단 한마디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그 친구가 내게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나의 소심한 복수였습니다. 나중에 졸업을 하고 몇 년 후에 우연히 길가에서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멋진 코트를 입고 상당히 잘나가는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를 보는 순간 고개를 돌려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늦어서 어쩔 수 없이 아무 표정없이 의례적인 인사만을 하고 자리를 피했던 적이 있습니다.

내게 수치를 안겨주고 고통을 안겨준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의는 우리의 감정을 절제하고 참는 것, 참기 힘들면 피하는 것뿐 아닙니까? 용서할 수는 없는 것이고 사랑한다는 것은 도통 불가능한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시지만 하나님도 모든 것을 사랑하고 포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모든 악과 불의와 거짓과 폭력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또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우리 안의 모든 죄와 악을 제거하는 것이고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새롭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배제와 포용의 두 가지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우리들 자신의 죄를 버리고 악을 버리고 교만을 버리고 자기중심성을 버릴 때에 우리는 비로소 다른 이들을 위한 자리를 우리 안에 마련할 수 있고 그래서 다른 이들을 포용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의 삶을 기꺼이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랑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어떤 본문을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 여러 다른 교훈들을 얻는다고 해도 늘 먼저 마음에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우리에게 매우 낯선 것입니다. 누구도 십자가와 부활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신앙의 현장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결국은 내가 잘사는 것,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내가 더 착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시험에 드는 것은 예수를 믿어도 내 소원, 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아닙니까? 그리고 예수를 믿어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 내 자신에 실망하고,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행하는 부정한 일들을 보고 실망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게 되는 것이 우리가 반복해서 경험하는 신앙의 길이 아닙니까?

오늘날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이유는 예수 믿어봤자 더 잘살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예수 믿어봤자 더 착하게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은 아닐까요? 예수 안 믿고도 잘 사는 사람도 많고 예수 안 믿고도 착하게 사는 사람도 많기 때문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되는 무슨 마술 램프를 얻게 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크리스천이라고 불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가해자들에게 자신을 무력하게 내어맡기고 죽음의 순간에 까지 가해자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용서의 대상에 바로 나 자신이 포함된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줍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 십자가가 내가 따라 살아야 하는 삶의 모범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본래 하나님 보시기에 불의한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용납하시고 용서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우리가 다른 이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대신 용서하시고 사랑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사랑을 우리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서 우리가 받은 사랑과 우리가 베풀어야 하는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과 모범이 우리의 삶 속에 나타나도록 도우시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 친구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나에게 수치를 안기고 나를 해치는 사람들, 나에게 피해를 안기고 내가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빼앗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나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셨다는 것을 믿고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우리 안의 불의를 인정하고 내가 이미 용서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고 조금씩 내 안에 다른 이들을 용납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 그리고 그들이 깨닫고 회개할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하는 유일한 믿음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이 우리가 가야 하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음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그리고 우리들의 이웃들을 향하여 조금 더 가까이 나아가는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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