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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평화 / 사도행전 21:27-32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그가 급히 군인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천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평창 동계올림픽이 오늘로 폐막합니다. 여러 가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건들 속에서도 2월 9일부터 시작된 16일간의 잔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위로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개최 전에는 추운 날씨와 북핵으로 인한 안보 위기, 그로 인해 일부 국가들이 참가를 유보할지 모른다는 소식 등으로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 역대 동계올림픽 중에 최대의 국가들이 참가하고 대체적으로 평화롭고 원만하게 운영되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많은 국민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특히 아마도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 대표팀의 컬링경기를 흥미롭게 보셨을 것입니다. 컬링은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한 경기지만 생각보다 오랜 역사를 갖는 게임입니다. 컬링의 기원은 스코틀랜드설과 네덜란드설이 있는데 오늘 주보의 표지에 실어드린 그림은 네덜란드 설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주 증거로 드는 그림입니다. 네덜란드의 화가 대 피터 브뤼헬(Pieter Bruegel the Elder)이 1565년에 그린 겨울 풍경화인데 여기에 보면 좌측 아래쪽에 빙판 위에서 돌을 가지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컬링 경기의 초기의 모습이라고 합니다.

올림픽 같은 국제적인 대규모의 행사가 열릴 수 있으려면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몇 가지 기본적인 조건이 갖춰져야 합니다. 먼저 선수단이 단시간 내에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예전처럼 지구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까지 가는데 여러 해를 위험한 경로를 통해 이동해야 한다면 이런 대회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모인다고 해도 공통의 경기의 규칙과 운영을 협의할 수 있는 언어적 소통이 불가능하다면 이런 대회를 개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교통과 언어의 장을 통해 여러 다양한 국가들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가 형성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근대올림픽은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 경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올림픽이 열릴 수 있는 기본 조건을 미리 탐색해 본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프랑스의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입니다. 그는 1873년에 “80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유명한 작품을 저술해서 누구나 세계를 일주 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철저하고 꼼꼼한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가 80일 안에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는데 자신의 친구들과 자신의 전 재산을 걸고 내기를 하고 모험의 길을 떠납니다. 쥘 베른이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된 것은 1870년에 이르러 세 가지 중요한 교통의 혁신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수에즈 운하의 개통, 인도 횡단 철도의 연결, 그리고 미대륙 횡단 철도의 완성입니다.

그런데 왜 프랑스 작가인 쥘 베른은 주인공을 영국사람으로 했을까요? 쥘 베른의 시대에 이런 루트가 완성되게 된 배경에는 당시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리던 대영제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루트를 통해 세계여행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영국, 혹은 적어도 미국사람이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쥘 베른 자신은 프랑스 사람이었지만 소설이 설득력을 갖게 하기 위해 주인공을 영국사람으로 정했고 그 대신 프랑스 사람인 하인 파스파르투가 동행하는 이야기를 구상합니다. 당시에 이 소설에 묘사된 여정이 너무나 현실적이었기 때문에 이 소설이 연재될 때 실제로 필리어스 포그라는 사람이 여행 중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지만 이 소설을 읽고 감동을 받은 사람 중에 미국의 한 신문사의 여기자였던 엘리자베스 제인 코크레인(Elizabeth Jane Cochrane)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여정을 따라 여행을 하며 기사를 쓴다면 큰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편집장을 설득해서 실제로 그의 여정과 유사한 여정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1889년 11월 14일 오전 9시 40분에 뉴욕에서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올라탄 그녀는 프랑스에서 쥘 베른을 직접 만났고 마침내 1890년 1월 25일 오후 3시 51분에 다시 뉴욕에 도착합니다. 72일 만의 실제로 세계를 일주한 것입니다. 그후 그녀는 “72일간의 세계일주”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은 당시에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묵상하고 있는 본문도 일종의 여행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당시로서는 광대한 영역인 오늘날의 터키와 그리스 전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첫째로 그의 선교적인 열정을 들 수 있겠지만 또한 헬라어라는 공용어, 그리고 로마제국의 도로의 존재를 들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선교사가 새로운 선교지에 가면 적어도 2년은 꼼짝없이 그 지역의 언어를 배워야 비로소 간단한 설교라도 하며 복음을 전할 수 있지만 로마제국 이전에 이미 알렉산더 대왕이 마케도니아 제국을 세우면서 지중해 동부 각 지역에 그리스의 언어인 헬라어를 퍼뜨렸기에 헬라어에 능통했던 바울은 큰 어려움 없이 각처를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지만 예수님의 행적, 말씀, 사도들의 가르침을 담은 신약성경이 당시의 공용어인 헬라어로 기록되었기에 지중해 세계 전역에서 읽혀 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로마제국이 제국 내 주요지역을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고 치안을 유지해주었기 때문에 바울이 물론 오늘날과 비교하면 큰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선교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제국이 선교에서 담당했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이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선교여행을 마치고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증언과 함께 예루살렘에 도착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안타깝게도 율법주의자들의 의혹과 비난이었습니다. 각지를 다니면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키는 것을 훼방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것입니다. 이방인을 향한 복음의 문이 열리고 바울과 여러 사도들이 선교적인 사명에 헌신하고 있었지만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여전히 율법주의에 매여 있었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유대교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의 선교사역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았고 여러 가지 소문들이 휘둘리며 바울을 비난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난처함을 느낀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일종의 중재안을 내놓습니다. 즉 바울이 율법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실인으로 서원을 했던 네 사람이 서원의 기간이 끝나고 머리를 깎고 성전에서 예물을 드려야 하는데 그 비용을 담당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7일간 정결예식에 참여하여 이방 땅을 다니며 부정해진 것을 씻어달라고 요청합니다.

바울로서는 억울한 누명이고 자신이 율법을 훼방하고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 반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 자신이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존중했고 율법으로 볼 때 흠이 없는 삶을 살았지만 그것이 그를 구원하는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이방인들이 그들에게는 낯선 율법, 특히 할례라는 장애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온전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며 이방 땅을 다니며 부정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그를 통해 나타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일언반구의 말이 없이 교회의 평화를 위해 그 제안을 따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제안이 그리 지혜로운 것이 되지 못했음을 알려줍니다. 복음의 진리에 충성되었던 바울을 지지하기 보다는 잘못된 신념에 빠져있는 사람들과 타협하기를 원했던 결정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소요를 일으키게 한 것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7일간의 정결예식을 마치고 바울이 자신이 부탁받은 역할을 위해 성전에 들어갔을 때 예루살렘에는 바울이 그동안 복음을 전할 때 쫓아다니며 바울을 박해하던 유대인들이 바울을 쫓아와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이방인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모독했다고 소란을 피웁니다.

바울이 그의 선교동역자들인 이방인들과 동행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맞지만 바울은 유대인들의 정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방인들을 데리고 성전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내에서 바울이 이방인들과 함께 있었던 것을 본 유대인들이 당연히 바울이 성전에도 그들과 함께 갔다고 억측을 하며 소란을 피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카더라 통신, 가짜 뉴스(fake news)였습니다.

이 유대인들과 그들의 말에 휘말린 사람들이 성전으로 몰려가 바울을 끌어냅니다. 그들은 그 곳에 이방인이 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겠지만 분을 그치지 않고 바울을 죽이려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을 성전에서 끌어 낸 후에 문이 닫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는 사람을 죽일 수 없기 때문에 바울이 그들을 뿌리치고 다시 성전으로 피신할 수 없도록 바울의 퇴로를 차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간 바울의 생명을 구한 것은  이 소요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긴급히 출동한 로마의 군대였습니다.

바울을 죽이려 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종교적인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전을 거룩한 곳이라고 확신하고 율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철저하게 종교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이 믿는다고 생각한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있던 바울을 죽이려 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목숨을 구한 것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종교적인 열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세속적인 로마제국의 치안을 담당하는 군대가 오히려 바울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이후로 바울의 재판의 과정이 이어지는데 그 기회를 통해 바울은 자신을 변호함과 동시에 고관들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통해서 역사하십니까?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을 다스리십니다. 신앙적 열정도 중요하지만 또 한편 이 세상에 있는 상식과 양심의 세계에도 하나님이 베푸시는 선함이 있습니다.

바울의 시대에 유지되었던 질서를 로마의 평화(Pax Romana)라고 부릅니다. 로마제국의 무력이 그 평화의 바탕이 되었지만 또한 그 질서와 평화가 복음전파의 도구가 된 것도 하나님의 또 다른 섭리의 역사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세상 속에서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중요한 두 가지 가르침을 전합니다. 첫째로 그는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주셨고 이방인들에게는 양심을 주셨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양심을 통해 이방인들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복음전파의 현장의 체험을 바탕으로 로마서 13장에서 권세에 순종하라는 가르침을 전합니다. 세상의 권세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맡은 역할이 있고 복음의 전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세상의 권세자들을 존중하며 세금을 낼 것을 강조합니다. 로마제국이 그 세금을 가지고 도로를 만들고 치안을 유지하고 일정한 정의를 구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전파되고 이렇게 부흥하게 되기 위해서도 몇가지 기본적인 조건들이 필요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조선 땅으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해준 교통의 수단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단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기 위해서는 한글로 번역된 성경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와서 한글이라는 배우기 쉬운 문자가 있어서 교육을 별로 받지 못한 사람들도 쉽게 익힐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른 시기에 성경을 번역해서 전파했습니다.

조선소에서 선교사들이 타고 들어온 배를 만든 사람들이 선교에 사용되도록 기도하며 만든 것도 아니고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물론 세속의 권세는 양날의 칼입니다. 로마제국은 한편으로는 도로와 치안을 통해 바울의 선교를 도왔지만 우리가 아는 대로 또한 바울은 네로 황제의 박해로 인해 순교하게 됩니다. 로마제국이 스스로를 절대시하며 황제숭배를 강요하게 되었을 때에는 오히려 교회를 탄압하며 복음의 적대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에서는 로마제국에 대해 우호적으로 기술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로마는 사탄의 왕국으로 묘사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종종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과도한 열정 속에 건전한 상식과 양심적인 판단능력을 잃어버리고 거짓 뉴스에 휘둘리며 쉽게 흥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려면 적어도 저녁 뉴스나 아침 신문을 볼 때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이제는 실시간으로 근거없는 이야기들이 순시간에 전파되고 사람들이 분별력없이 옮겨 나릅니다. 그리고 후에 잘못된 소식임이 들어나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흥분한 사람들이 앞뒤 관계를 잘 살피지도 않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들고 기독교인들도 분별력을 잃고 휘말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로 성경에 나타난 바울을 죽이려 했던 유대인들의 모습이 그러하지 않았습니까? 오히려 당시에 하나님의 역사에 보탬이 되었던 사람들은 군인으로서, 치안과 질서를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였던 지극히 상식적이고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대에 어떤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까? 물론 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선교의 사명의 중요한 역할중 하나는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밝히 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은혜가 어디서 온 것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증거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또한 건전한 시민으로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사회적인 책임을 감당하고 불편부당한 정의의 원칙에 따라 공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야는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리에서 순종하며 헌신하여 건전한 시민으로 살아가며 옳고 그른 것을 지혜롭게 분별하고 이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고 부정한 것을 드러내며 성실한 삶의 열매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위해 우리에게 맡기신 역할들을 온전히 감당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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