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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 학개 2:6-9

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한해가 지나가고 이제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얻는 중요한 유익 중의 하나는 매 주일 잠시 분주한 일상을 떠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를 점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해야 하는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답을 주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먼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질문이 없는 사람들에게 답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질문을 가진 사람들이 답을 찾게 되고 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답이 인생을 더 풍성하게 변화시켜가는 것입니다. 올해 한해 여러분들의 삶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새로운 경험을 했으며 어떤 기대를 가졌고 어떤 변화를 경험했고 얼마나 더 성숙해졌습니까?

제가 올해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에 “12가지 인생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 조던 피터슨 교수가 쓴 책인데 그 책 중에 알렉산더 솔제니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솔제니친은 구 소련의 장교로 근무하면서 스탈린을 비판하는 편지를 친구에게 보냈다가 들통이 나서 악명높은 강제노동수용도에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그는 많은 시간을 의미없는 강제 노동에 시달렸고 동료들이 고통 중에 덧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심지어 수용소 안에서 암에 걸리기까지 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솔제니친은 의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삶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이 모두 정직함과 진실함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정직하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는 ‘나에게 닥친 재앙에 내 책임은 없는가’ 스스로 질문해보며 자신에게도 이 악독한 수용소를 만든 공산당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거짓말을 했던 기억들을 찾아냅니다. 그는 이 지옥같은 수용소에서 자신의 삶을 바로잡기 위한 최고의 덕목은 정직임을 깨닫고 그는 펜을 들어서 자기 자신과 수용소의 현실에 대한 정직한 기록인 “수용소군도”라는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공산주의의 환상에 빠져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훗날 공산주의가 붕괴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솔제니친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12가지 인생의 법칙”의 저자는 “12가지 법칙”중의 하나로 “세상을 탓하기 전에 방부터 정리하라”는 조언을 합니다. 체제를 비판하고 적들을 욕하기보다 먼저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주변의 작은 일상의 변화에서부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은 늘 합리화하면서 모든 책임을 남들에게, 이 세상에게만 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위의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자신이 가진 나쁜 습관들을 당장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것을 권면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것도 어렵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비판하는 이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은 아닐까요? 게다가 나이가 먹어갈수록 몸과 마음이 다 점점 더 굳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세상을 보는 눈도 눈 앞에 보이는 사물을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기억과 경험으로 형성된 틀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고 익숙한 것을 먼저 인식하고 낯선 것에 점점 더 주의를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며칠 전에 오랜만에 예전에 교회의 중고등부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옛날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치 바로 그 시절로 돌아간 것같은 느낌을 받곤 합니다. 그러면서 너는 하나도 안변했다고 서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변하지 않았을까요? 누가 곁에서 우리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다면 그들의 눈에는 우리들이 십대, 이십대의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평생을 같은 장소에서 여러해 동안 사진을 찍어 놓고 그 사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진을 보면 십대에서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외모가 크게 변화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인간의 외모는 세월을 따라 변화하는데 왜 내 친구들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느껴질까요? 저는 그 이유가 우리가 눈앞에 있는 사물이나 사람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것을 눈앞에 꺼내어 놓고 그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섬뜩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상을 보는 눈이 닫혀가고 바깥 세상의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들 자신도 잘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은 새로운 세대를 통해, 용감한 젊은이들을 통해 변화합니다. 우리들 모두도 한때는 새로운 세대의 용감한 젊은이들이 아니었습니까?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에 신세대가 들어왔다고 구경하러 왔던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퇴근시간이 되었을 때에 찾아와서 정말로 칼퇴근을 하는지 보러왔다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도 한때는 부모와 스승들의 길을 비판했고 이 세상이 바뀌어야 하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고 나는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던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사실 이 세상이 바뀌는데 기여했고 크고 작은 변화들을 이루어 왔습니다. 오늘날 세대 간의 갈등이 크지만 지금의 기성세대가, 우리의 어르신들이 이 나라를 얼마나 크게 변화시켜왔습니까? 새해에 여든이 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이 태어나셨을 때에 이 땅은 일본의 식민지였지만 그 80년의 세월동안 상전벽해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고 또 그분들이 그 변화를 직접 이루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일시적이 아니라 항구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새로운 사상, 새로운 가치관을 습득하고 실천하고 그 가치관을 지속적으로 견지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은 함께 조화를 이루어 이 세상을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충분히 변화하지 않은, 우리 스스로의 기대를 저버린 우리 자신들에 대해 좀 더 너그러울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자신을 용서하고 자기 자신과 화해하고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주위의 일들을 작은 것 하나 하나 점검하고 다듬어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여유와 너그러운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바라보고 품어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변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학개 선지자의 시대는 마치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해방직후와 같은 시대였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 70년의 세월을 보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고향으로 돌아와서 다시 나라를 일으키던 시대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에게는 변화에 대한 열망,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고향 땅에서 그들이 보게 된 것은 과거에 영화롭던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져 폐허가 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성전을 짓기 위해 기초를 놓았지만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갔던 사이에 그 땅의 주인 행세를 하던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 달갑지 않았기에 그들을 괴롭히고 성전을 짓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당시에 그 땅을 지배하던 페르시아의 왕실에 고발장을 보내어 이 백성들이 다시 일어서면 과거와 같이 큰 나라에 반역을 일삼게 될 것이라고 모함을 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민원이 들어가 건축이 중단되듯 성전을 계속 짓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게다나 내부적으로도 하루 하루의 생활조차 안정되지 않았던 시절에 성전공사라는 큰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매우 버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성전은 기초만 놓은 채 16년 간 중단되어있었고 그러한 시대에 학개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절감해야 했고 그들이 처음에 가졌던 희망을 지속하기가 어려웠고 그들의 기대를 현실로 바꾸기에는 역부족임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백성들의 삶은 다시 과거로 퇴보하는 듯했고 폐허보다 더 흉측한, 세우다 만 성전은 처음에는 안타까운 현실의 상징이었지만 점점 그들의 삶에서 잊혀져갔습니다. 이런 시대에 학개 선지자는 그들의 무력감에 도전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무능하기에, 그들이 가진 것이 없기에, 그들의 삶의 형편이 여의치 않기에 성전을 세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성전을 먼저 세우려 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삶에 구심점이 없고 믿음을 잃었기에 삶이 더 무기력해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여 그들이 아무리 수고하여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정말로 가진 것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어느 집에서 소가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소의 주인은 기분이 좋아서 그 중에 한 마리를 하나님께 감사의 표시로 드리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마리가 병이 들어서 비실비실 앓다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송아지의 주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어떻하지? 하나님께 드릴 송아지가 죽어버렸어.”

물론 우리 하나님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송아지를 달라고 요구하실 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성전을 짓는 것은 근본적으로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어디에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학개서는 교회 건축을 할 때에, 건축헌금을 작정할 때에 자주 인용되는 본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려한 성전을 무리해서 짓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삶의 영적인 질서, 삶의 가치관, 우선순위를 점검하도록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은 우리의 손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며 우리의 가치관이, 우리의 의도와 계획이,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하나님의 나라에 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에 그들은 먼저 교회를 짓고, 그 다음에 학교를 짓고, 그 다음에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정말 그랬는지, 그러면 집을 짓기 전에는 다들 노숙을 했다는 말인지, 교회에서 살았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한 정신이 한 나라를 일으키는데 중요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헌신의 이야기이지만 또한 가치관의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워가는 원동력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다” 하나님이 이 땅을 흔드십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권자이시며 하나님이 이 세상 모든 것을 흔드시고 변화시키십니다. 온 세상을 흔드셔서 견고하지 못한 것들을 무너뜨리실 것이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헛된 것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하실 것이고 우리가 무엇을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날 것이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변화를 거부해도 이 세상은 변한다 놀라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1차도 아니고 2차도, 3차도 아니고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시대는 찾아오고 이전의 질서는 흔들리고 무너지고 대체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변화가 일어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변화를 일으키시는 사람으로 살아서, 그 변화의 주역이 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변화가 아닌 세상의 풍조를 따라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인가에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건축을 포기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의 손으로 지을 수 있는 성전의 초라함에 있었습니다. 도저히 솔로몬 성전과 같은 화려한 성전을 다시 지을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서 이런 성전을 지어서 무엇하나 하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이 성전이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씀하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지어진 성전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성전이 될 수 있고 아무리 소박하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 예루살렘에 화려한 성전이 서있을 때에도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듯이 금과 은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금과 은이 부족해서 성전을 짓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믿음과 헌신의 결단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어떤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납니까? 어떤 인생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인생이 됩니까? 교회의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보고, 우리 교회의 성도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믿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향한 헌신과 순종이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도들을 하나 되게 합니까? 복음증거의 열정이 성도들을 사로잡고 있습니까?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리가 위로부터 어떤 은혜를 경험하고 있는가, 세상을 향한 어떤 선포와 섬김을 감당하고 있는가, 우리 안에 어떤 공동체를 이루어가고 있는가의 문제가 될 것이고 이것이 우리 교회의 표어에 담긴 정신이기도 합니다.

지난 주일의 성경퀴즈대회를 통해 성도님들의 말씀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이 열정이 이어져 기도의 열정, 선교의 열정이 된다면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큰 은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행하지는 못한다 해도 말씀에 대한 열정이 있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망이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한해를 돌아보며 우리 자신에게 실망한다고 해도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고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믿으며 오는 새해에도 새로운 믿음의 도전을 하는 도전하는 성도님들이 되셔서 이 성전과 하나님의 성전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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