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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로 살아가는 삶 / 에스더 9:1-4

1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2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 각 읍에 모여 자기들을 해하고자 한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3 각 지방 모든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4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

일반적으로 교구라고 번역이 되는 parish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교구라는 말로 사용될때는 교회에서 행정적인 편의를 위해 정한 일정한 지역, 혹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교인들의 모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parish라는 단어에는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본래 이 단어는 헬라어(그리스어)에서 기원한 말인데 라틴어와 불어를 거쳐서 영어가 되었습니다. 이 단어의 헬라어 어원은 paroikos인데 “나그네”라는 뜻입니다.

교구와 나그네라는 말은 언 듯 보아서 잘 연결이 안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 이 단어가 사용되었을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여서 그들이 이 세상 속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로마제국에 속해있었고 한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며 하늘에 시민권이 있고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나그네로 살아간다고 생각했기에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paroikos, 즉 나그네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유럽이 기독교화되고 한 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나그네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parish라는 말은 일정한 지역을 의미하는 말로 뜻이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오늘날 잊어버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다시금 일깨워줍니다.

에스더서는 바로 이 세상 속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어떠한지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포로로 끌려왔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은 다시 돌아가서 신앙공동체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 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은 계속 이방땅에 남아서 삶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앙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여 그들을 적대시하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소수자로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에스더서는 부림절이라는 명절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만이 모든 유대인들을 다 죽이려고 작정을 하고 제비를 뽑아서 날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에스더가 왕의 마음을 바꾸어서 오히려 하만은 죽임을 당하고 그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의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비라는 뜻의 “부르”에서 부림절이라는 절기의 이름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부림절은 오늘날에도 성대하게 지켜지는 유대교의 명절입니다. 부림절에는 회당에 모여서 에스더서를 읽는데 그 때 그레거(gregger)라고 불리는 기구를 가지고 갑니다. 이것은 흔들어 돌리면 소리가 나게 만든 것인데 에스더서에서 “하만”이라는 말이 나오면 소리를 내서 그 이름이 들리지 않게 하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만의 주머니” 혹은 “하만의 귀”라고 불리는 삼각형 모양의 과자를 만들어 먹으며 큰 축제를 벌입니다. 성경에서는 유월절 같은 다른 절기들과는 달리 부림절은 에스더서에만 한번 등장하지만 오늘날까지 부림절을 성대하게 지키는 이유는 부림절이 2000년간 나그네로서 살아가야 했던 유대인들의 경험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명절이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린바와 같이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의도적인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을 때에는 “하나님”을 부르는 일이 일상화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 문화가 오래된 나라들은 심지어 욕을 할 때에도 “하나님” “예수님”이 등장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에스더서는 그들의 신앙이 전혀 일상에서 표현될 수 없었던 낯선 세계 속에서 기록되었습니다. 과연 이곳에도 하나님이 계신지, 하나님이 도우시고 역사하시는지 확신할 수 없었던 상황 속에서 에스더서는 그 곳에도 하나님이 계셨고 도우셨음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러기에 에스더서는 약한 자들의 책이며 지혜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힘있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하면 되고 힘 없는 사람은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는 힘의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내가 비록 약자이지만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있을 때에, 우리는 지혜를 찾게 됩니다. 이 세상의 빈틈을 찾아내고, 때로는 양보하고 타협을 하지만 또 도전하고 용기를 내면서 이 세상 속에서 신앙의 가치를 지키는 지혜를 얻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전래될 때에는 상당한 위세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서구 열강들과 조약을 맺고 개항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선교가 시작이 되었고 기독교는 서구문물, 병원, 학교, 과학 지식과 함께 들어왔고 이런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문물들과 동일시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도 개방적이고 진취적이며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이 민족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공동체가 처음 시작될 때에는 이런 위세가 전혀 없었고 다만 소수의 박해받던 사람들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시로서는 이해되기 어려운 독특한 신앙의 체계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당시의 문화, 풍습을 일방적으로 따라가지 않는 고유한 가치체계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에 종교는 대개 사회적인 통합, 공통의 가치관에 대한 의례적인 표현이었기에 한 가문, 한 지역, 한 국가의 신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들이 한 가문, 한 지역, 한 국가에 소속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임을 나타내는 표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는 다신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으면 신뢰할 수 없는 사람, 반사회적인 존재로 낙인이 찍히게 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시에 로마제국내에 광범위한 곳에 퍼져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다른 민족, 다른 문화에 속해 있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하는 공통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시에 일반화되어 있었던 영아유기에 대해 반대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당시에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며 오락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검투사경기에 대해서도 반대하며 노예들의 인격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극단적인 금욕을 추구하지 않지만 당시의 기준에서 보았을 때에 어디서나 절제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보수, 혹은 진보로 나뉘어져 있듯이 기독교인들도 자신들이 지지하는 가치에 따라 마찬가지로 보수, 혹은 진보로 나뉘어져서 서로 대화하기 거북해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도 당시에 극좌파라고 할 수 있는 혁명주의자들인 열심당원들부터 그 열심당원들이 가장 증오했던 대상들 중의 하나인 세리들까지 다 속해있었기에 교회 안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의 의미를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교회 밖에서 얻은 가치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만 죽어서 천국가는 그런 신앙생활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스스로를 인정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하는 가치의 질서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근본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말하는 대로의 진보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다만 체제와 제도를 변화시켜서 인간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낙관적인 인간관을 성경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근본적인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말하는 대로의 보수주의자가 될 수 없습니다. 보수주의라는 것이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고 기득권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 속한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는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지키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가르침을 진리로 따르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공유하고 지켜야 할 가치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를 쉽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느슨한 정의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C.S.루이스가 쓴 “순전한 기독교”에 나오는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의 회개와 결단을 중시하고 윤리적인 삶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면에서는 보수적이지만 그러나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보호와 구제와 복지에 있어서는 매우 진보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은 한결같이 그러한 삶을 추구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메뉴판에서 무엇을 고를까 고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과는 다른, 그러나 더 풍성한 잔치상을 차리고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세상의 이념에 따라 편을 가르지 말고 성도들을 하나되게 만드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관을 따라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이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우호적이 될지 그렇지 않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이해를 구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을 먼저 생각하며 이 세상에서 구분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그네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가는 믿음의 여정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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