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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 스가랴 14:11

7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10 온 땅이 아라바 같이 되되 게바에서 예루살렘 남쪽 림몬까지 이를 것이며 예루살렘이 높이 들려 그 본처에 있으리니 베냐민 문에서부터 첫 문 자리와 성 모퉁이 문까지 또 하나넬 망대에서부터 왕의 포도주 짜는 곳까지라
11 사람이 그 가운데에 살며 다시는 저주가 있지 아니하리니 예루살렘이 평안히 서리로다

이 세상의 많은 도시들은 저마다의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도 백제시대부터 중요한 도성이었다고 전해지지만 결정적으로 조선시대에 수도가 되면서 그 이후로 600여년동안 한 나라의 수도로서의 지위를 누려왔습니다. 세계의 많은 도시들 중에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관심을 끌어온 곳 중의 하나가 예루살렘입니다. 특히 최근에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고 미국 대사관을 옮기겠다고 하면서 다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갈등이 일어나고 그 땅이 큰 혼란과 소요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원래 이스라엘의 수도가 아니었냐고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과거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 동쪽지역은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할 때에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니었습니다. 이 지역은 1967년 6일 전쟁으로 알려진 3차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된 후 이스라엘의 지배를 지지하는 나라와 반대하는 나라들 사이에 계속적인 다툼이 있는 국제적인 분쟁지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높이 드시고 그 땅에 평화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선지자들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언의 시대적인 배경과 함께 이 말씀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전하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선지자들의 글과 구약성경 전체는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기록되었지만 구약성경의 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섭리를 말씀을 통하여 조금씩 깨우쳐 주시고 이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한 걸음 한 걸음 이루어 가십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와 폐허가 된 예루살렘의 재건을 간절히 바라던 시대였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예루살렘이 높이 들리고, 평안히 서리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그들의 믿음의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평화를 약속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는 길고도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처음 예루살렘이 등장할 때에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땅이 아니라 다른 가나안의 도성들처럼 가나안의 족속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성경의 기록을 보면 여부스족의 땅이었습니다. 여호수아서와 사사기에 있는 기록을 보면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한 공방이 여러번 이어졌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예루살렘을 정복한 사람은 다윗 왕이었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그 곳을 새로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전에 처음 다윗이 왕으로 옹립되어 다스리던 곳은 당시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유다지파의 중심지인 헤브론이었습니다. 헤브론을 수도로 삼게 되면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의 지지를 받기 어렵기 때문에 이전에 어느 지파의 땅에도 속하지 않았던 새로 정복한 성읍을 수도로 삼아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는 별칭들이 있는데 다윗이 정복한 성읍이기 때문에 다윗성이라고도 불리고 시온이라는 작은 산 위에 있기 때문에 시온이라고도 불립니다.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다른 곳에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 올 때에 다윗이 너무 기뻐서 춤을 췄다는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신앙적인 상징성이 더 해지게 된 계기는 솔로몬에 의한 성전건축이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왔지만 법궤는 왕궁에 비해 초라한 곳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아름다운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하고자 하였지만 하나님은 다윗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그의 아들인 솔로몬이 그 과업을 이어받게 되었습니다. 솔로몬 시대에 지어진 성전 때문에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임재하신다는 믿음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위상은 솔로몬의 시대가 지나면서 추락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했지만 말년에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 10지파를 떼어내어 다른 사람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의 이스라엘은 분열이 되어 북쪽의 10지파가 갈라져 나가게 되었고 그들은 우여곡절을 거쳐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게 되었습니다. 이 사마리아라는 도시의 이름에서 신약시대에 성경에 등장하는 사마리아라는 지역 명칭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한 작은 나라의 수도로 전락합니다.

그리고 후에 바벨론의 대군이 쳐들어 와서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가면서 예루살렘은 완전히 황폐하게 됩니다. 스가랴 선지자의 시대는 그 뒤에 이어지는 시대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스가랴 선지자의 격려를 받으며 다시 예루살렘성을 재건하고 성전을 새로 건축하였습니다.

신약시대로 오면 예루살렘이 다시 전 이스라엘의 중심지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되지만 또 한편으로 그 시대는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곳이었기에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도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예루살렘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예루살렘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많은 선지자들을 핍박하던 곳이었고 예루살렘이 다시 무너지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내다보셨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의 시대가 지나고 나서 이스라엘의 민족주의자들은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고 로마는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큰 군대를 보내어 다시 예루살렘을 함락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만큼 예루살렘은 철저하게 무너져버렸습니다. 예루살렘의 함락 이후 유대교와 기독교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그 후로 2천 년간 그들의 마음의 고향이었고 지금도 다시 예루살렘의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은 이제 과거의 모세의 율법과 제사를 통한 옛 언약의 시대가 끝났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새로운 은혜의 시대가 왔다는 확신을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첫 번째 순교자로 기록되어 있는 스데반은 이미 하나님이 사람의 손으로 지으신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증거했고 성전을 모독하는 그의 말에 분노한 유대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지만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들을 향하여 땅 끝까지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데 헌신하게 됩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신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예루살렘은 인간들의 정치적인, 군사적인 야심에 의해 새로운 비극의 진원지가 됩니다. 초대교회의 정신을 잃어버린 중세 유럽의 기독교 세계는 이슬람세계를 향해 팽창을 시도하면서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을 갖다붙였고 예루살렘의 회복을 신앙의 열정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십자군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예루살렘은 중동의 화약고가 되어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지역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은 이렇듯 국제적인 분쟁의 진원지이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에 대해 관대한 편입니다. 세계의 경제계를 지배하고 노벨상을 많이 탄 이유가 성경에 기반을 둔 가정교육 때문이라며 많은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유대교에 대한 애정은 일종의 짝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에 의해 많은 유대인들이 박해를 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유대교 신앙이 성경적으로 바른 신앙일까요?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신이 가장 괴로워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로마서 9:1-3)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이었고 율법의 전문가로 유대교 신앙 안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곳마다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고 오히려 바울을 핍박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로마서의 고백처럼 자신이 저주를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기를 원했지만 그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시내산과 예루살렘의 대비합니다. 땅에 있는 시내산은 모세가 전한 율법을 상징하는 곳이고 진정한 예루살렘은 하늘에 있는 곳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곳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은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손들이 아니며 어떤 민족에 속하든지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물론 바울은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원히 버리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었던 것은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다시 세워지기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서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성도님들이 일종의 영적인 버킷 리스트 중의 하나로 성지순례를 꼽고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분들이 받은 은혜를 간증하는 이야기들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저도 두어 번 기회가 있었는데 가지 못했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시고 고난을 받으셨던 곳, 구약성경의 사건들이 일어났던 장소들을 직접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목사님의 글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교회에서 성도님들이 성지순례를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주보에 “성지순례”라고 적지 않고 “유적지 탐방”이라고 적으셨답니다. 그것을 보고 어느 성도님이 왜 성지순례라는 말을 사용하시지 않았는지 물었는데 그 목사님은 루터의 이야기를 예로 들면서 루터가 사제들, 성직자들만이 거룩한 사람들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다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백성이고 제사장들이라고 가르치면서 성경적인 소명관을 일깨웠던 것처럼 이 세상의 어느 특정한 지역만을 성지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적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어떤 곳이 거룩한 곳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곳, 우리의 신앙의 추억이 새겨져 있는 그 모든 곳이 거룩한 곳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거룩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모든 곳,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 성령이 임재하시며 은혜베푸시는 곳이 모두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지역만이 다른 곳과 구분되는 성지가 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모든 세상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거룩한 땅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의 어느 특정한 곳이 더 거룩하다고 믿는 사람들에 의해 이 땅에 더 큰 고통과 전쟁이 시작되고 세 종교의 성지라는 곳이 더 평화롭고 거룩하고 경건한 곳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 지속되는 분쟁과 갈등과 참혹한 전쟁의 진원지이고 인류의 골칫거리가 되어버린 것은 신앙의 큰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종교가 과연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이루어지는 곳에는 진정한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진정한 예루살렘은 하늘에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모든 곳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가 우리 마음에서부터, 우리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분열과 갈등 속에 있는 한반도에서, 또한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온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의 삶의 자리를 거룩하게 하시며 우리가 속한 모든 곳을 하나님이 임하시는 거룩한 곳으로 변화시켜 가도록 모든 성도들을 부르시고 사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기억하고 기도하고 헌신하며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 세상 곳곳에 전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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