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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알게 되리라 / 요한복음 12:12-16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퍼즐맞추기를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1000피스 맞추기를 세 번 정도 해본 적이 있는데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짜릿한 경험 중 하나였습니다. 퍼즐맞추기는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져있는 그림을 맞춰가는 과정입니다. 퍼줄맞추기의 묘미는 도무지 어떻게 짝이 되는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럽게 뒤섞여있는 조각들을 가지고 하나 하나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전체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즐거움에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도 똑같은 퍼즐이 없지만 어느것 하나도 자기 자리가 없는 것이 없습니다. 특히 큰 윤곽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에는 어디에 소용이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조각들 하나 하나가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지 쉽게 알게 되면서 작업의 속도가 빨라지게 되고 마침내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이 되는 것을 보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의 인생도 퍼즐맞추기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의 인생의 여러 사건들, 경험들을 통해 어떤 그림을 맞춰 가는지를 잘 모르고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통해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혼란스러운 우리의 인생으로 그런 아름다운 그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우리 인생의 모든 경험, 사건들이 하나로 연결이 된 큰 그림을 깨닫게 됩니다.

신앙의 성숙이란 이제 내 인생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큰 그림을 깨닫고 그 안에서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다 소용이 있고 쓸모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의 인생이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통해 만들어 가시는 아름다운 예술작품과 같이 완성되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라고 불리는 것은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사람들의 환호의 장면은 모든 복음서에 다 나오지만 종려나무가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영접했다는 이야기는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시대에 종려나무가지는 전쟁에서 이긴 개선장군을 환영하는 것과 같은 승리의 축하를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무엇을 기뻐하는지가 모두에게 분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는 그렇게 모든 것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사람들의 환호는 이미 이루어진 승리 때문이 아니라 이제 이루어질 일에 대한 기대 속에서 이루어진 환호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지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앞으로 일어나리라고 기대하시는 것과 예수님을 곁에서 따라가는 이들이 기대하는 것과 예수님을 환영하는 이들이 기대하는 것이 다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한가운데 나귀를 타시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나귀는 힘은 좋지만 잘 달리지 못해서 전쟁에는 적합하지 않은 동물입니다. 그래서 말이 전쟁을 상징한다면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는 동물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과거에 이스라엘의 귀족들은 나귀를 탔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시대 왕들과 귀족들은 말을 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고 다시 재건하던 시대에 활동하였던 스가랴 선지자는 앞으로 나귀를 타고 오시는 겸손하신 왕이 예루살렘에 오셔서 전쟁을 그치게 하고 평화를 이루시리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예수님은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자, 우리의 질병과 상처를 치유하시는 치유자, 우리를 위로하시는 상담가, 혹은 모범적인 경영자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장 일관적인 이미지는 “왕”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늘 따라다니는 그리스도라는 말 자체가 히브리어로 메시아라는 말에 담긴 소망, 즉 하나님이 보내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시는 통치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전혀 왕 같지 않은 왕이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세상적인 권세도 누리신 적이 없고 그것을 얻으려 하신 적도 없음 왕에 걸맞는 어떤 대우를 요구하신 적도 없고 어떤 화려한 삶을 사신 적도 없습니다. 늘 섬김에 대해 가르치시고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왕이 아니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유는 예수님이 왕이 되셔서 이루시는 나라가 바로 그와 같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은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과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말씀은 주위의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수수께끼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큰 그림을 가지고 계시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시지만 다른 사람들은 각기 다른 그림을 가지고 예수님을 이해하고 곡해하고 자신들의 생각에 끼워 맞추려 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입니다.

예수님은 이 지상에서의 사명의 마지막 절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라보고 계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죄와 사망의 권세였습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의 권세와의 마지막 싸움터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세상의 나라의 회복이었고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혹은 그들 자신이 열망하는 각자의 소망을 이루기를 원하고, 그들의 삶에 장애가 되는 모든 문제들을 각각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능력으로 그들의 삶을 방해하는 힘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소망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며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나귀를 타신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환호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맞춰가는 과정으로 예수님의 예루살렘의 입성을 바라보고 또 그 자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이 환호는 착각에 불과한 것일 수 있습니다. 헛된 기대 속에 외치는 함성들이고 오히려 예수님이 가시는 길을 가로막는 소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예수님의 생애를 그린 영화마다 이 장면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그 가운데 가려진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그런 장면은 매우 우리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은 그 소리를 그대로 다 받으십니다. 그 소리들을 물리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환호와 외침 속에 담긴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십니다. 호산나를 외치며 구원을 바라는 그들의 마음은 진실된 것이었고 예수님은 실제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입성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무엇으로부터의 구원이 진정한 구원인지 그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 그들도 알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은 다 아시고 그들을 위한 가장 좋은 길을 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제자들도, 환호하던 사람들도 아직은 다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길이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길이었다는 것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메시야로서, 그 장엄한 대관식은 세상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바로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의 자리에서 이루어졌고, 백성들도 자신들도 모르는 가운데 바로 이제 이 땅의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시는 왕을 향한 환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임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불완전한 이해까지도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진심을 알지 못했지만 그들이 호산나라고 외치며 구원을 갈망하는 그 마음은 진실이었고 예수님도 바로 그 소망을 이루어주시기 위해 마지막 길을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잘못된 이해, 잘못된 기도까지도 다 받으시고 그 속에서 우리도 알지 못하던 우리의 진심을 받으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정호승 시인의 “시인 예수”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의 뒷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들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용서하는 들녘의 노을 끝
사람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워하는
아름다움의 깊이.

들풀들은 연약하기에 바람에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이 시에서 들풀들의 흔들림은 마치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향하여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과도 같이 보입니다. 예수님은 들녘의 노을 끝에서 그 흔들림마저도 아름다운 장관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고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불완전함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시고 그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퍼즐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맞춰 가십니다. 우리가 희미하게 보며 불완전하게 알고 바라고 행하는 것들까지도 하나님은 받아주시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 삶에 벌어지는 일들의 의미를 다 깨달아 알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조금씩 조금씩 그 의미를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가장 좋은 그림을 그려두시고 우리의 인생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우리의 인생을 맡기며 지금 다 알지 못해도 그날에는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가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음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복된 인생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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