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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깨뜨렸도다 / 예레미야서 11:9-13

9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 중에 반역이 있도다
10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으로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따라 섬겼은즉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도다
11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그들이 내게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할 것인즉
12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주민이 그 분향하는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을지라도 그 신들이 그 고난 가운데에서 절대로 그들을 구원하지 못하리라
13 유다야 네 신들이 네 성읍의 수와 같도다 너희가 예루살렘 거리의 수대로 그 수치스러운 물건의 제단 곧 바알에게 분향하는 제단을 쌓았도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큰 기업을 일군 한 기업인이 설립한 사립학교였습니다. 그분이 졸업식에 축사를 하러 오셨을 때에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내가 장사를 해보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입니다. 신용을 얻을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그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은 의례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진실된 충고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용이란 무엇입니까? 경제적인 면에서 신용은 거래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자산과 부채를 평가하여 신용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이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의 인간관계에서의 신용은 그렇게 쉽게 평가할 수 없습니다. 장기간 관계를 하면서 신뢰를 쌓아야 하고 결국은 이 사람은 약속을 하면 지킬 것이라는 확신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능력 못지않게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함께 있어야 진정한 신용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특징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언약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여러 가지 관계로 표현되고 있지만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틀은 구약과 신약, 즉 옛 언약과 새 언약이라는 틀로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언약이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 아니기에 그 의미가 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님과 맺은 거룩한 약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언약을 이해할 때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감히 언약을 맺을 자격이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계약관계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계약을 맺기 위해서는 서로 필요한 것을 교환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필요하신 것이 없고 우리는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스스로 낮아지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 입장에서는 손해가 되는 계약을 자발적으로 맺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도 일종의 계약이기에 조건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여러 가지 율법의 규정들이 일종의 조건으로 등장하지만 간략하게 요약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땅과 하늘의 은혜로 우리를 채워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언약에는 일종의 부가규정이 딸려있습니다. 신명기의 뒷부분에 보면 만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순종하지 않으면 이 언약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순종하여 복을 받는 것도, 하나님께 불순종을 하여 징계를 받는 것도 다 계약의 일부가 됩니다.

그러나 이 약속의 본질은 근본적으로는 사랑의 언약입니다. 결혼식의 식순에는 서약의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에 서로 교환하는 서약은 그 구체적인 조건 하나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가 전적으로 서로를 위해 용납하고 사랑하고 헌신하겠다는 다짐 그자체가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유일무이한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적으로 나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약속이며 또한 놀랍게도 하나님이 당신을 우리에게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은혜의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다는 약속을 함께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약의 문제는 하나님은 이 계약이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든지 임의로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이 계약을 가볍게 여겼다는 데 있습니다. 다른 사랑의 대상이 생기면 언제든지 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언약이 영원한 것임을 깨우치시고 그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대상에게 유혹이 되어 하나님의 편을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시고, 징계하시고, 다시 불러오시는 이야기가 구약성경 전편에 걸쳐 펼쳐집니다.

우리가 앞에서 신용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앙과 신용은 모두 믿는다는 것과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신앙을 가진다고 할 때에 내가 무언가 의지할 대상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대상은 무슨 부적이나 우상처럼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대상이거나 우리가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신앙의 대상은 우리와 대화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을 갖는 것은 쌍방간의 관계를 발생시키는 것이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과 사랑의 언약을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신앙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느냐에 더 관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신앙을 언약을 맺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언약을 얼마나 신실하게 지켜가느냐에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영적인 신용의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흔히 신용의 문제를 하나님께 제기합니다. 구하면 주신다고 하는데 왜 주시지 않는가, 내 처지가 이렇게 힘든데 왜 길을 열어주시지 않는가, 원망하며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시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신실하셨는데 사실 우리의 신용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삶이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며 그 약속에서 하나님의 몫이 있다면 또한 우리의 몫이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지만 우리는 언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까?

우리가 받은 세례가 바로 언약을 맺던 시간이었고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은 청소년기에 했던 입교서약이 바로 그 언약의 자리였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먼저 신앙의 내용에 대해 교육을 합니다. 그리고 당회에서 주관하는 문답을 통해 분명하게 의사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나서 예배시간에, 하나님 앞과 모든 성도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서약을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가 세례 받을 때에 서약하는 서약문에 따르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세례교인들은 하나님과 다른 성도들 앞에서 다음 질문에 “예”라고 대답을 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 되심과 죄인의 구주가 되심을 믿으며 복음에 말하는 바와 같이 구원하실 이는 오직 예수님 뿐이라고 알고 믿으며 오직 그에게만 의지하기로 서약합니까?”
“여러분은 지금 성령님의 은혜만 의지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고 모든 죄악을 버리고 그의 가르침과 본을 따라 살기로 서약합니까?”

우리는 모두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본을 따라 살겠다고 약속한 사람들 입니다. 그리고 결혼식에서는 눈에 보이는 예물을 교환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언약의 징표로 삼지만 세례식에서는 서약에 이어 물을 뿌려서 우리의 이전에 지은 모든 죄가 사함을 받았고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으로 거듭났음을 선언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깨뜨렸다고 책망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언약을 폐하지 않으시고 새로운 언약을 허락하셨습니다. 이 언약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맺어진 언약입니다. 옛 언약은 유대인들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새 언약은 이 세상 모든 만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옛 언약은 글로 쓰인 율법을 지키는 조건이었지만 새 언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은혜로운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새언약을 따라 믿음을 갖고 서약을 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으며 어떤 언약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 자리에 우리와 언약을 맺기 위해 함께 계셨던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언약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와 맺은 언약 속에 있는 놀라운 축복을 우리에게 이루어주시기 위해 우리의 삶을 오늘도 인도하고 계십니다.

오늘날 신앙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는 것은 신앙이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은 사람들에게 주목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저사람에게는 저것을 주셨고 이 사람에게는 이것을 주셨는데 왜 나의 삶에는 허락하시지 않는지 불만을 가지고 다른 이들과 비교하며 시험에 들고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이래로 신앙의 영웅들, 사람들이 존경하고 본받기를 원했던 사람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실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믿고 그 약속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가장 위대한 신앙의 영웅들이었습니다.

지금 터키 지역에 있는 서머나에서 감독으로 사역하던 폴리갑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의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에서도 박해가 시작되었고 황제숭배를 강요하고 황제를 숭배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형에 처하게 됩니다. 폴리갑은 황제숭배를 거부하여 재판정에 섭니다. 재판관은 그의 나이와 좋은 평판을 고려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줍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황제를 숭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그런데 그는 재판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86년 동안 내가 예수님을 섬겼는데 한 번도 그분이 나를 모른 채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를 구원하신 왕을 욕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나에게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기 때문에 나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나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고 주장하고 순교의 자리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요즘 수요예배에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글을 함께 읽으면서 종교개혁의 정신이 어떠한 것인지를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 읽은 글에 세례에 대한 가르침이 나오는데 그 중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우리가 어떠한 종류의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그 삶이 육신을 죽이고 영을 살리는 데 기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세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생을 빨리 떠나면 떠날수록 더욱더 빨리 우리의 세례는 완성된다. 그리고 우리의 고통이 심하면 심할수록 우리는 더 온전하게 우리의 세례와 합치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순교자들이 날마다 죽임을 당하고 도살장의 양과 같이 여김을 당했을 때 교회는 가장 건전하였다. 바로 그 때에 세례의 효능이 교회에서 온전히 능력을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례의 의미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세례는 육신의 욕망을 따르지 않고 하늘의 영광을 바라는 새사람이 되는 예식이며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며 살겠다고 서약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만 따르겠다는 그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약속에 신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약속을 지키면 지킬수록,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이미 모든 약속을 지키셨고 우리를 위해 더 은혜로운 삶을 예비하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의 삶 속에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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