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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 예레미야서 17:24-27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순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어떤 일이라도 하지 아니하면
25 다윗의 왕위에 앉아 있는 왕들과 고관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원히 있을 것이며
26 사람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에 둘린 곳들과 베냐민 땅과 평지와 산지와 네겝으로부터 와서 번제와 희생과 소제와 유향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성전에 가져오려니와
27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나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되게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시니라

성경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나눠집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사건과 신약성경의 첫 번째 사건 사이에는 약 40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 시대를 신구약 중간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시대의 역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흔히 외경이라고 부르는 책들이 이 시대에 기록이 되어 이 시대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몇몇 역사책들을 통해서 이 시대의 대략적인 이야기를 알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마지막 기록은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을 정복하고 새로 등장한 페르시아의 고레스왕의 칙령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을 세우고 신앙공동체를 회복하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첫 장면은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이에 페르시아 제국이 다시 무너지고 마케도니아 제국이 새로 등장하며 또 마케도니아가 분열하여 서로 경쟁하는 나라들이 등장하다가 결국 로마제국이 이 모든 나라들을 무너뜨리고 대제국을 건설하는 역사가 이어집니다.

이 시대는 신약시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여러 변화들이 일어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하여 예수님께 도전하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구약성경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바로 이 신구약 중간시대에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페르시아는 우리가 잘 아는 알렉산더 대왕이 세운 마케도니아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알렉산더는 그리스 북쪽의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는데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통합하고 동쪽으로 진군하여 정복전쟁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인도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인도에서 패전하고 돌아오다가 도중에 세상을 떠납니다.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가 없습니다. (그의 아들은 그가 죽은 후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가 죽어가는 병상에서 그의 부하장군들은 누구에게 이 제국을 물려줄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알렉산더는 “가장 강한 자에게”라고 대답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이후의 역사는 자신이 바로 그 “가장 강한 자”라고 생각한 알렉산더의 부하 장군들이 각자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여 4개의 왕국으로 분열하여 각축을 벌이게 되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성경의 무대가 되는 예루살렘과 유다 지역은 당시에 서로 경합하던 두 왕조의 사이에 있었습니다. 남쪽에는 이집트를 차지하고 북상하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있었고 북쪽에는 시리아와 그 북쪽의 땅을 차지한 셀레우코스 왕조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예루살렘을 차지했지만 후에 셀레우코스 왕조가 예루살렘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셀레우코스 왕조에서 안티오쿠스 4세라는 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에 “에피파네스”라는 별칭을 붙였는데 이것은 신의 현현(顯現)이라는 뜻입니다. 즉 자신이 바로 신이라고 생각한 것이고 그와 같은 위세를 갖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는 그의 통치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유대교라고 생각하고 철저한 박해에 나섭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폐지하고 할례를 금지하고 할례를 받은 아이나 그 부모를 다 사형시켰고 율법서를 발견하는 대로 찢어버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의 제단을 만들어서 유대인들이 부정한 짐승으로 꺼려하는 돼지를 희생제물로 바쳐서 성전을 모독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유대 땅의 모데인이라는 곳에 마타디아스라는 제사장이 살았습니다. 그가 살던 곳에도 왕이 보낸 관리가 와서 이곳에도 이교의 제사를 드리라고 강요했을 때 마타디아스는 왕의 말을 거부하고 제사를 강요하는 왕의 관리를 죽이고 피신합니다. 마타디아스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도 광야로 떠나 동굴에서 은신을 하며 살았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는 군대를 보내서 이들을 응징하게 했는데 왕이 보낸 군대는 이들이 율법을 철저하게 시키는 사람들임을 알고 일부러 안식일을 골라서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동굴에 피신한 사람들은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저항을 하지 않고 1,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희생당했습니다. 안식일을 어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다른 곳에 피신해있다가 이 소식을 들은 마타디아스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대적들에 의해 몰살을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방인들과 싸우는 것도 거룩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의 다섯 아들과 함께 본격적인 저항운동을 시작합니다. 마타디아스가 죽은 후에 그의 아들인 유다 마카베오(Judas Maccabeus)가 지도자가 되어 독립운동을 이끌어서 결국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몰아내고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정화하여 하나님께 봉헌을 합니다. (후에 다시 로마에 의해 속국이 되는 역사가 이어지지만 그 시대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의 경건한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그들의 목숨과 바꿀만큼 소중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들이 이렇게 안식일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선포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시대는 아직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이었습니다. 예레미야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고 불의한 일을 일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행을 고발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대로 이루어져서 나라를 빼앗기고 큰 고통을 겪게 되면서 그들은 다시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지 말고 어떻게 해서라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열심을 계승한 사람들이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두려움이 있었고 그래서 안식일을 어기지 않기 위해 세세한 규정들을 덧붙여서 일체의 노동을 금하므로 혹시라도 자신들이 부가한 규정을 어길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율법은 지켜질 수 있도록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안식일에도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일종의 노동이라고 본 병자들을 고치는 이적을 일으키시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배가 고파서 길 가다가 밀 이삭을 잘라 먹어서 그들이 생각하기에 추수라는 노동을 하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은 율법을 어기고 이스라엘을 위험하게 만드는 집단이라고 여기며 비난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안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우리가 좀 더 깊이 생각해보아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은 십계명에 들어있는데 구약성경에 보면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됩니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이 육일 동안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신명기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 두 가지 이유는 크게 보면 하나의 가르침으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모든 것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기뻐하시며 우리도 그 기쁨을 누리도록 하나님의 안식으로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창조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으로 그 안식이 파괴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인간들 간의 끊임없는 다툼과 갈등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안식을 회복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은 매번의 안식일마다 하나님이 베푸신 최초의 안식을 기억하고 그 안식이 다시 회복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이 이루어질 날을 사모하며 기다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일을 맞아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그러면 유대교에서는 어느 요일에 안식일을 지킬까요? 여러분들이 다 아시는 대로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서 전 세계의 유대교 회당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유대교인들이 함께 모입니다. 요즘은 여러 이단들이 기독교를 공격하면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자신들이야말로 안식일을 지키는 참된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안식일과 주일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안식과 구원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믿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고 장차 우리에게 이루어질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람은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룰 수 없기에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게 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일에 모이는 것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돌아가셨고 3일째 되는 날, 즉 안식일인 토요일 다음 날에 부활하셨다고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로부터 성도들은 안식 후 첫날, 즉 안식일 다음날에 모였고 그 날의 주의 날이라고 부르고 그날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찬송을 부르고 성찬식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경축했습니다.

초대교회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로새서 2:16-17)

율법은 장차 이루어질 구원의 그림자입니다.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았을 때에는 그림자만 보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구원과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토요일에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축하는 주일에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어느 날을 지키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날에 누구를 기념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루터의 대교리문답의 십계명편에서 안식일에 대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이날이나 저날을 지켜야 한다’며 특정한 절기와 시간을 정하여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특정한 하루가 다른 요일보다 선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고 감사로 응답하는 예배는 날마다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할 수 없기에 적어도 일주일 중 하루를 떼어놓게 됩니다. 제 생각에 예로부터 일요일은 이런 목적을 위해 이용되었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변경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루터는 일주일 중에 어느 하루만 거룩한 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매일 매일을 거룩하게 여기고 하나님을 경배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생업으로 주신 또 다른 거룩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주일 중에 하루를 정하여 그날에 집중하여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의 삶에 가득 채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안식일과 주일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미신을 없앨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성일을 제쳐놓았고, 교회의 예절과 질서와 평화를 유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 목적을 위해서 다른 날을 제정한 것이다. 고대의 안식일이 대표한 저 진정한 안식은 주의 부활에서 그 목적이 실현되었다. 그러므로 그림자를 끝낸 그날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그림자였던 의식을 고수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가 된다.”

칼빈은 우리가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게 되면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안식일로 지키는 날을 피해야 하고 안식일이 의미하는 진정한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른 신앙을 갖게 해준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율법적인 사고와의 복음적인 사고의 차이를 발견합니다. 형식적으로 어느 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다시 새롭게 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매일,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를 정하여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우리의 믿음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예배를 드리기에 가장 합당한 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날이기에 우리는 매 주일 함께 모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 주일은 작은 부활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 주일 함께 모여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나누는 일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주일에 우리가 하는 봉사와 헌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말씀의 실천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주간은 우리가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의 이웃들을 사랑으로 섬김으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살아가는 삶을 계속하여 이어가는 시간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로워지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순종하므로 한 주간이 거룩해지고 우리의 온 인생이 거룩해지는 복된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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