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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요새시요 나의 반석이시라 / 시편 94:16-23

16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행악자들을 치며 누가 나를 위하여 일어나서 악행하는 자들을 칠까
17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침묵 속에 잠겼으리로다
18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19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20 율례를 빙자하고 재난을 꾸미는 악한 재판장이 어찌 주와 어울리리이까
21 그들이 모여 의인의 영혼을 치려 하며 무죄한 자를 정죄하여 피를 흘리려 하나
22 여호와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반석이시라
23 그들의 죄악을 그들에게로 되돌리시며 그들의 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끊으시리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그들을 끊으시리로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독일의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종교개혁은 교회 안팎으로 큰 변화의 물결을 일으켰는데 그 중의 하나가 교회음악에서 일어난 변화입니다. 장로교를 창시한 칼빈은 가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찬송은 시편으로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음악은 가사를 전달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음악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루터는 음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학교에서 음악교육은 무조건 해야 한다. 또한 가르치는 자라면 반드시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음악이 뭔지 모르고 노래도 못하는 사람을 교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 녀석이 목사가 되려고 한다면 절대로 세우지 말라. 학교로 돌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배워오도록 돌려보내야 한다.”

루터 자신이 미성의 테너로서 어려서 교회 소년 합창단의 일원이었고 류트를 잘 연주했다고 합니다. 그는 예배를 개혁하여 회중들도 함께 찬송을 부르게 하였고 다양한 음악을 예배에 사용할 수 있게 하였고 자신이 직접 36곡의 찬송가를 작곡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찬송이 “내 주는 강한 성이요”(찬송가 585장)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찬송가, 복음성가, CCM등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게 된 것은 루터의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가 중심이 된 예배, 성찬식에서 평신도에게도 포도주와 빵을 함께 주는 것, 회중들이 다함께 찬송을 부르는 것은 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세상은 변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여기에 모여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 세상은 변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며 누군가가 수고하여 일궈놓은 개혁의 열매를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줍니다. 누군가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희생하고 수고했고 우리는 그 열매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이제 다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개혁의 몫을 저버리고 있고 그것이 불가능한 양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우리가 무지하고 비겁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500년 전에 독일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것은 과거의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영향이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많은 사건들이 잊혔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계속하여 기억한다는 것은 지금도 그 사건이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종교개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습니까?

오늘날, 특별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나라 교회에 필요한 것은 과거에 일어난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 한국교회를 개혁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종교개혁은 과거에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계승하고 이어가야 할 정신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 교회에는 개혁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서 사역했던 한 독일 목회자는 한국을 떠나면서 “한국기독교가 종교개혁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 제 2의 종교개혁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지만 그 보다는 첫째 종교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의 한국기독교와 마틴 루터가 심판했던 16세기의 천주교회의 문제점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라는 뼈아픈 충고를 남겼습니다.

개혁의 필요성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인정을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개혁이라는 말에 점점 회의적이 되어간다는데 있습니다. 늘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무언가를 개혁하겠다고 요란하게 떠들었지만 그 뒤에는 개혁을 명분으로 다른 꿍꿍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많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감동적인 구호를 순진하게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숨겨진 의도를 읽어내려고 하고 늘 의심하고 또 무슨 수작을 하려는 것인가 그 뒤를 캐어보려고 합니다.

또한 대부분 우리가 경험하는 선과 악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의 결단을 방해합니다. 어디에나 장점과 단점이 있고 보기에 따라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굳이 그렇게 개혁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그렇게 선과 악이 상대적으로 보이고 쉽게 양비론에 빠지는 이유가 어쩌면 우리들 스스로가 개혁의 대상이기 때문에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개혁의 필요성을 은근히 부정하고자 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지난 주 부흥회에 오셨던 강사님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을 때에 그 분들이 종교개혁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 한국교회를 개혁하는 것에 대해 강의를 하고 다니면, 많은 경우에 다 남들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에 감동은 받지만 자신들이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 거창한 이야기들을 하는 것에는 큰 부담감이 없지만 구체적으로 우리의 일상에서의 개혁을 이야기하고 변화를 이야기할 때에는 우리도 많은 경우에 거부감이 들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개혁이라는 말이 거부감이 드는 것은 개혁을 추진한다는 사람들이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들 스스로가 개혁의 대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개혁의 구호가 거북스럽게 들리고 쓸데없는 짓을 하려는 사람들처럼 보이고 다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돌리거나 양비론으로 만들어서 스스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상대적으로 여기고 싶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분명히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편에 있을까? 성경과 우리의 양심과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성경은 늘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우리의 양심이 깨어있을 때면 우리가 부정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무언가를 선택할 때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개혁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그것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면 많은 경우에 우리의 이익이 바로 그 개혁의 문제에 결부되어서 뭔가 우리는 개혁의 명분을 저지할 근거를 찾아내고자 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사람들이기에 우리의 삶의 기반이 되는 것이 흔들리고 비난을 받고 개혁의 대상이 된다면 나도 모르게 회피하고 저항하고 거부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하게 여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정신이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살아가는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내가 의지하고 있는 것이 흔들리므로 우리가 불안해하고 불쾌하게 생각하고 기분이 상한다면, 사실 그것이 점점 우리의 우상이 되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우리의 지위, 우리의 자존심, 우리의 인간관계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우리의 양심을 흐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듣지 못하게 하여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더 거룩하게 성장해야 하는 신앙의 과제를 따라가지 못하게 우리를 방해하는 우리의 우상들이 될 수 있습니다. 루터의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은 개혁을 부당한 것으로 여기며 여러 가지 논리를 갖다 대었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변화를 거부하려는 사람들이었을 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나를 지켜주시는 요새시오, 내가 의지할 반석이 되시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면 나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내려놓을 수 없고 익숙한 세계와 결별하고 새로운 변화의 도전을 향해 신앙의 모험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사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에는 많은 개혁의 과제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 보시기에 더 온전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변화해야 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고 익숙한 것과 결별할 수 있고 내게 낯설고 손해가 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교회에 유익이 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혁의 과제를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이루시는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변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일상의 작은 일에서부터 나를 거스르고 기분 나쁘게 하고 손해가 되더라도 그것이 옳은 말이고 옳은 일이라면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다른 어떤 것보다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려는 매일 매일의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어느 한 순간에 되는 것이 아니기에 많은 개혁들은 실패하기 쉽고 개혁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개혁의 대상이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진정한 개혁은 자기 스스로가 자신에게 익숙한 것으로부터 떠나고 자신에게 이익을 되는 것을 거부하고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며 자신이 옳다고 선택한 일들을 말뿐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명해내는 삶을 살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종교개혁을 기념할 수 있는 것은 개혁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에게 익숙했던 세계를 떠났고 대의를 위해 자신들이 살아온 삶을 부정할 수 있었고 자신들이 옳다고 믿게 된 것을 실천하기 위해 어떠한 수고와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매일 매일의 헌신의 훈련을 통해 우리 스스로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하는 새로운 역사가 바로 우리 교회로부터 시작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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