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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빛 / 에베소서 5:8-14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10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11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12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13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은 어둠과 빛, 빛과 어둠이라는 비유로 영적인 진리를 가르쳐 줍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시겠지만 저도 일출이나 일몰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인상적인 일출은 중국에 있을 때에 연길에서 북경으로 가는 28시간 걸리는 기차 속에서 처음으로 지평선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았을 때였습니다.

해는 날마다 뜨고 지지만 빌딩 숲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을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일부러 찾아다녀야 합니다. 특히 신년에 처음 뜨는 해를 보기 위해 동해안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새벽에 길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길이 막혀서 결국 강원도 어느 산간에서 새해의 첫 일출을 맞이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동해안 한적한 해변을 찾아서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해뜰 시간이 지났는데 해는 뜨지 않고 주변이 환해지더랍니다. 알고보니 동해안이라고 다 동쪽을 향한 것이 아니기에 엉뚱한 방향을 보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일출을 보기 위해 동해안을 찾기란 쉽지 않아서 저는 종종 일몰을 보기 위해 서해안을 향하곤 합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재촉해서 서해안으로 차를 몰고 앞서가는 해와 경주를 하며 달립니다. 해질녘에 서쪽으로 운전하는 것은 해를 마주보고 운전하는 것이라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시간이 대개는 퇴근시간과 겹치기 때문에 결국 해가 진 후에 바다가에 도착해서 다음에는 더 일찍 떠나야지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왜 한 낮이나 한 밤보다 해가 뜨고 지는 순간이 더 아름다울까요? 아마도 한 낮이나 한 밤의 단조로움보다 완전히 밝지도 않는 때에 태양빛이 자연과 어울어져 만들어내는 다양한 빛깔이 우리 눈의 미적인 감각을 더 자극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히 해가 뜨게 되면 아름다운 장관이 사라져버린 아쉬움을 느끼고 완전히 해가 지게 되면 무언가 허무함을 느끼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빛과 어둠이 혼재되어 있기에 여명이나 황혼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혼란과 비애를 상기시켜주는 일종의 비장미를 안겨주는 것은 아닐까요?

시간을 정지시켜놓고 본다면 해가 뜨는 장면과 해가 지는 장면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느날 월요일 오후에 잠깐 거실에서 잠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문득 깨보니 사방이 어둡고 시계는 5시 40분경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새벽기도에 늦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놀라서 양복으로 갈아입으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시계를 보았더니 오후여서 가슴을 쓸어내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빛과 어둠이 혼재되어 있기에 이 어슬녘이 빛이 사라지는 과정인가 아니면 어둠이 사라지는 과정인가를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결론을 내리든지 그 결론은 그것이 우리의 가치관을 결정하고 우리가 지금 이 혼돈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오늘 본문은 과거는 어둠, 미래는 빛이라고 선언합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분명한 방향을 보여줍니다. 이 세상은 죄악의 어둠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위한 구원의 역사를 예비하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이 땅에 은혜의 빛이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 빛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 빛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하나님의 구원은 완성되지 않았고 어둠의 권세는 여전히 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빛을 보았고 빛의 권세를 경험했지만 여전히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스름풋한 빛을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혼란을 느낍니다. 여러 가지 흉흉한 이야기들을 듣고 이 세상에 만연한 불의한 모습들을 경험하게 되면 과연 이 어둠이 사라지기는 할 것인가, 점점 더 어두워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와 근심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판단을 해야 합니다. 만약에 어둠이 더 깊어진다고 생각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둠의 세계에 길들여지고 어둠을 핑계로 우리도 어둠 속의 일에 점점 더 빠져 들어갑니다. 그러나 만약에 빛이 더 환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좀 더 희망을 갖게 되고 어둠에 저항할 수 있고 빛을 사모하며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습니다.

“인터스텔라”는 영화를 감동적으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에서 재앙에 휩싸인 지구를 대신할 인류의 새로운 정착치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실낱과 같은 희망을 품고 암흑과 같은 우주를 향해 주인공이 탑승한 우주선이 발사될 때에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저 어두운 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마세요.)라는 싯구가 낭독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시는 딜런 토마스라는 영국의 시인이 다가오는 임종을 맞이하는 아버지를 위해 지은 시라고 합니다. 이 시에서 반복되는 또 다른 인상적인 구절은 Rage, rage against dying of the light(사라지는 빛에 대해 분노하고 분노하세요)라는 구절입니다.

시인은 우리가 어둠을,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말고 저항하고 분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경도 우리가 어둠과 악, 불의와 거짓, 죽음과 절망에 순순히 굴복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빛과 선함, 의로움과 진실함, 생명과 희망의 세계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첫 번째 말씀은 “빛이 있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말씀과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빛이 사라진 세상, 어둠이 지배하는 세상은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빛으로 이 세상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이 세상의 빛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들이며 빛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어둠에 굴복하지 않고 빛의 세계가 다가옴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빛에 대해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신앙의 여정 속에서 그 빛을 경험했고, 성령 안에서 그 빛이 우리 안에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을 기억해보면 큰집에는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습니다. 명절이 되거나 다른 여러 기회에 큰집에 가면 사촌 형들이 신기한 것들, 전에 보지 못하던 것들을 이것 저것 보여주며 자랑을 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큰집에 갔을 때 형들이 방의 불을 다 끄고 캄캄한 가운데 무언가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제 기억으로는 작은 불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상은 어두운 가운데서도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야광 불상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한두 번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야광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중에 가장 일반적인 것은 축광이라는 방법입니다. 특별한 도료나 소재들은 빛을 비추면 그 빛의 에너지를 저장을 했다가 빛이 사라지면 저장했던 빛을 발산합니다. 그러나 그 빛은 저장된 빛이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약해지고 야광의 효과를 내려면 다시 빛을 비춰주어야 합니다.

비유해 보자면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축광을 통해 야광이 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둠에 대해 불평만 하고 앉아있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우리 안에 담아서 어두운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이 빛의 근원이 될 수 없기에 우리는 늘 우리가 스스로 빛을 낼 수 있다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빛으로 우리를 채우기 위해 말씀과 기도의 삶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에는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재우는 것도 힘들었는데 아침에 조금만 환하면 먼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밤에 늦게 자서 좀 더 자고 싶은데 아이들이 먼저 일어나서 칭얼대니까 어떻게 해서든 좀 더 재우려고 두꺼운 커텐을 달아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빛이 비추면 깨어나는 것이 정상이 아닙니까? 자는 자와 죽은 자는 겉보기에 비슷해도 전혀 다릅니다. 자는 자는 빛이 비추이면 일어납니다. 아침을 기다리는 사람들, 빛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밤이 무한히 계속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그마한 빛의 희망을 보아도 그것을 환영하고 일어나서 사람들을 깨워 그 빛을 맞이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희망을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들은 빛이 비추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빛을 부정하고 그 빛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빛을 거부하고 자신들에게 익숙한 어둠의 세계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헛된 믿음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잠시 어둠에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잠들 수는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있습니까? 혹시 인생의 어두운 밤에 희망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어두움에 절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 그 어두움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빛에 대한 감각조차 사라져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잠에 취하고 어둠에 취하지 말고, 우리에게 비췬 은총의 빛을 기억하며 어둔 세상에 핑계를 대지 말고 우리의 작은 빛으로 이 세상을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에 새벽을 깨우고 빛의 소식을 전하는 빛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받은 자로서 그 은혜를 전하며 이 세상의 어둠에 굴복하지 않고 새로운 승리의 이야기를 기록해 가는 믿음의 한주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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