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교회 :::
현대교회 로고
신앙으로의 초대 현대교회 이야기 예배와 모임 나눔과 섬김 참여와 헌신
예배안내 양육과정 안내 매일묵상 교회학교 목장안내


서브메뉴 안내 - 섬기는 이들


댓글 0
재정 / 사무엘상 25:4-13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주제는 재정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경제문제, 돈 문제이고 또 다른 말로 하자면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다윗도 돈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었을까요? 

다윗 하면 먼저 생각나는 것이 시편 23편입니다. 그리고 시편 23편에서 우리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다윗의 고백을 듣습니다. 그러면 다윗은 평생 아무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았을까요? 그렇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습니다. 재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우리 인생에서 시련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부족함과 결핍의 문제는 늘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은 다윗의 인생이 완숙에 이르렀을 때의 고백입니다. 모든 고난의 때가 지나가고 돌이켜 보니 결국 하나님이 도우시고 인도하셨다는 은혜의 고백으로 자신의 삶을 다시 해석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왕이 된 이후에도 다윗의 인생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안정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윗도 왕이 되기 전까지는 경제적인 면에서도 매우 험한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왕이 되기 이전에 다윗이 가장 여유로운 삶을 살았던 때는 골리앗을 죽인 때로부터 사울에게 쫓기는 도망자가 되기 전까지의 시기일 것입니다. 그때 다윗은 백성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사울에게도 신임을 얻었습니다. 그러다가 사울이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 사람이라고 의심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를 위험에 빠뜨리려는 방법으로 그를 자신의 사위를 삼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지난 번에 살펴 본바가 있지만 사울은 다윗에게 자신의 딸과 결혼하려면 블레셋 사람 100명을 죽여서 그 증거를 가져오라고 요구합니다. 그 제안이 되려 다윗의 무공을 더 쌓게 만들고 더 많은 인기를 얻게 만들고 다윗은 사울 왕의 사위가 되어서 경제적인 여유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결국 사울은 직접 다윗을 죽이려 나서게 되고 다윗은 왕의 미움을 받고 도망을 다니는 신세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다윗의 고난이 시작됩니다. 

갑자기 도망자 신세가 된 다윗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는지 다윗은 제사장을 찾아가서 감히 제사장들이 먹는 하나님께 드렸던 빵을 얻어먹은 적도 있습니다. 그랬다가 그것을 사울에게 밀고한 사람이 있어서 다윗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제사장의 일가가 몰살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윗은 쉽게 다른 사람의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처음에 다윗은 혼자였지만 사울에게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이 다윗에게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400명 정도 모였다가 나중에는 600명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당장은 먹을 것이 있고 세력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또한 다윗에게 자신을 의지하러 온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도 중동지역에는 이렇게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유목민들의 소부족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했을까요? 성경의 기록을 보면 이 600명은 단순한 유목민이 아니라 무장을 한 일종의 군사집단이었기에 두 가지 생계의 유지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약탈이고 또 하나는 그런 약탈자들로부터 보호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두 가지 모두를 시도합니다. 다윗이 도망을 다니면서 종종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공격하여 나름 정의를 실현하며, 실제적으로는 자신의 공동체를 유지할 음식과 자원을 확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약탈의 대상을 만나고 또 승리를 거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가능성은 그런 잠재적인 약탈자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주며 그 대가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실제로 그런 일들을 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나발이라는 큰 부자가 등장합니다. 나발의 이름은 어리석은 자라는 의미인데 성경에서 나발의 어리석음은 다윗이 왕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멸시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큰 양떼를 거느린 나발이 양털을 깎는 날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날 다윗의 부하들은 양식을 얻으러 나발을 찾아 갔습니다. 목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양털을 깎는 날은 일종의 추수를 하는 날이었기에 큰 잔치가 벌어졌고 이웃의 곤궁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부하들은 나발에게 가서 거저 먹을 것을 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목자들이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우리가 그들을 해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이 갈멜에 있는 동안에 그들의 것을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나니” 이것은 해치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와 보호해 준 것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끄는 사람들이 백성들의 양떼를 해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 어떤 사전 계약 없이 선의로 보호해 준 것에 대해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염치가 없는 일은 아닐까요? 여기서 다윗의 모습에서 자기 구역에서의 보호를 명분으로 일종의 자리세를 징수하러 다니는 무슨 조직의 보스를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다윗의 부하들의 요청과 이에 대한 나발의 반응을 보면 당시에 다윗은 유다지파의 일부 지역에서 점차 일종의 세력을 구축하고 보호자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그러나 그것이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호의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다윗의 부하들은 정중하게 양식을 요구했었고 당시의 유목민들의 관행으로는 이 정도의 상호 선의에 대한 대가의 요구는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발이 다윗의 요구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을 모독했다는데서 시작됩니다. 나발은 양식을 구하는 다윗의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즘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나발의 이러한 태도를 보면 한편으로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나발이 어리석은 자여서 다윗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또한 다윗이 어떤 면에서 상당히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요청받거나 어떤 계약을 맺은 적도 없이 먼저 자신이 나발의 양떼를 그동안 보호해주었다는 명목으로 양식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생각해도 무리한 요구가 되지 않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어디서 장사를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찾아와서 내가 여기서 장사를 잘 하도록 지켜주었으니 나와 나의 조직이 먹을 것을 달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누가 보호해달라고 했냐고 당연히 항의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혹시 무슨 해꼬지를 할까봐 두려워서 적당히 먹을 것을 주어서 보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나발이 어리석은 자라면 그러한 정도의 계산이 서지 못한 사람이었다는 의미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발은 다윗의 요구를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앞에서 본 것처럼 아예 다윗을 멸시하고 다윗을 주인에게서 떠난 종이라고 생각하며 다윗의 부하들을 근본도 없는 무법자의 무리 취급을 합니다. 

나발이 다윗을 경멸한 것이 다윗의 분노를 촉발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무장을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21절을 보면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아침까지 남겨두면 하나님은 다윗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 400명을 이끌고 진짜로 나발을 죽이러 갑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구차하게 양식을 구하는 다윗,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분노하는 다윗, 자신의 분노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다른 이에게 그 분노를 쏟아내는 다윗, 이 사람이 진정 이스라엘의 구원자, 믿음의 모범이란 말입니까?

여기서 당시 다윗의 처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왕이 될 기약은 언제일지 알 수 없고, 사울은 집요하게 자신을 괴롭힙니다. 자신이 거느린 사람들을 어떻게든지 먹여 살려야 하는데 능력은 부족하고 결국 지역의 부자들을 보호해준 대가로 호의를 얻는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의 현실, 무능함에 대해 이미 자신이 스스로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발의 말이 다윗의 내면의 상처와 불안에 불을 붙였고 그것이 이렇게 나발을 향한 분노로 폭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기록을 보면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에 대해서는 자신의 분노를 절제하고 참을 수 있었고 심지어 사울을 죽일 수 있었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나발에게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누적된 스트레스 때문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들 때문에 분노조절장애의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조절장애는 꼭 자기보다 힘이 약한 사람을 향해 일어날까요? 정말로 조절이 안되는 것이라면 힘이 있는 사람이든 누구든 가리지 않고 분노를 표출해야 할 텐데 우리가 분노조절장애라고 말하는 많은 경우에서 그 분노가 표현되는 대상은 가족들이기도 하고 노약자들이기도 하고 아무튼 자신보다 힘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노조절장애라고 부르는 현상 뒤에 있는 인간의 비겁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나발도 다윗을 무시했지만 사실 다윗도 나발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사울에 대해서는 인내하던 다윗은 나발 따위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을 도저히 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발의 일족을 다 죽여버리겠다고 맹세하며 무장한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나발의 집으로 찾아간 것입니다.  

이 다윗을 누가 멈출 수 있겠습니까? 다윗의 부하들 중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도 다윗과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여기서 나발의 일족을 다 죽여버린다면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할 정당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다윗을 도왔다고 85명의 제사장들을 죽여버린 사울과 다를 바가 무엇입니까? 이 사건은 다윗의 그동안의 고난과 인내의 의미를 다 무너뜨리고 덕을 베푸는 선한 왕으로서의 미래를 내던져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결국 어리석은 나발을 만나서 다윗이 나발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은 다윗의 궁핍함에 있었고 다윗의 궁핍함은 그의 자존심과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하는 말 중에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말도 있지만 다윗은 돈도 없고 가오도 없는 그야말로 경제적인 위기와 정체성의 위기를 함께 겪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돈의 문제라는 것은 단지 경제적,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자존감이 걸려있는 문제가 되고 정체성이 걸려있는 문제가 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될 때에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외적인 문제들, 즉 불경기, 세계적인 경제의 침체, 무역전쟁, 경제정책의 실패, 유행의 변화와 내가 종사하던 산업의 쇠락 등으로 책임을 돌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고 실제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재정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가운데서 사람들은 자신의 무능을 탓하게 되고 자신의 판단 착오, 경영능력의 부재, 불성실함, 인간관계의 실패, 애시당초 돈이 없이 태어난 것에 대한 좌절감,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상실 가운데 자신의 자존감마저 상실하게 되고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에까지 내몰리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에 나발을 죽이러 가는 다윗의 모습은 또 다른 면에서의 극단적인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다윗의 인생에 닥친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다윗이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사명을 가졌는지를 잃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 마당에 왕이 된다는 예언은 다 뭐고 이스라엘의 구원자라는 사명은 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목구멍이 포도청이었고 다윗은 그 포도청의 서슬퍼런 위세에 끌려다니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이 대목에서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 등장하게 됩니다. 아비가일은 남편인 나발과는 달리 상황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여인이었고 그래서 다윗이 나발을 죽이기 전에 먼저 다윗을 만나서 다윗을 만족시킬 만한 양식을 제공하고 또 상당히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다윗의 자존감도 충족을 시켜 줍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왕이 될 사람인데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지않겠느냐며 다윗을 설득하게 됩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로 정신을 차리게 되고 칼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나중에 전해들은 나발은 그제서야 자신이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만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었다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아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뜻밖의 로맨스가 나오는데 다윗은 남편을 잃은 아비가일을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게 되는 이상한 해피엔딩으로 이어집니다. 

이 사건을 다시 생각해보면 당시에 다윗은 자신의 경제적인 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었고 다윗이 택한 방법도 먹혀들지 않는 잘못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가운데에서도 은혜를 베푸셔서 아비가일을 만나게 하셨고 사실 다윗의 어리석음을 아비가일의 지혜로 덮으셔서 다윗을 위기에서 건져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점점 먹고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불만을 말할 수 있지만 가장 큰 위기는 희망의 상실입니다. 과거에 대한민국은 가진 것이 없는 나라였지만 그러나 그때에는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70년대, 80년대에 대한민국의 경제는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그 결실을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다릅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자신의 부모들의 세대보다 더 나아질 가능성이 없는 아니 더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살아갑니다. 부모를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런 부모가 없는 사람들은 어디 손을 벌릴 데도 없이 절망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자신감의 상실이 자기 자신의 자존감의 위기로 이어지게 되고 삶의 의욕과 기대의 상실 속에서 결국 사람들이 추구하는 최선의 가능성은 일종의 소확행으로, 삶에 위안을 주는 작은 행복들에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미안하게도 이런 우리의 상황 속에서 다윗에게서는 별로 배울 것이 없습니다. 다윗이 별반 우리보다 나을 것이 없을 뿐아니라 우리에게는 다윗처럼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도 없고 그래서 조금만 더 버티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근거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다윗을 위기에서 건져준 것은 아비가일과의 만남이었고 아비가일을 통해 하나님이 다윗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고 그의 사명을 다시 확인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윗의 인생을 보며 거듭 발견하게 되는 것은 세상적으로 말하면 다윗은 사실 억수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고 성경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힘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위기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었던 때에도 하나님이 다윗을 도우셨습니다.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봅시다. 다윗에게 있어서 그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그가 왕이 될 사람이라는 자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우리들에게서는 나는 왕이 될 사람이 아니라는 자각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글쎄요, 누군가는 잘 나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일 뿐입니다. 누군가는 부모를 잘 만났는지도 모릅니다. 그 잘난 부모는 그 사람의 부모일 뿐입니다. 한때 유행하던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꿈은 재벌 2세가 되는 것인데 아버지가 노력을 안해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괜히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 위축되고 자신을 더 무능한 존재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각자의 손에 주어진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앞에서 말씀을 드린 것처럼 경제적인 문제라고 보이는 것 밑에는 자존감의 문제가 있고 정체성의 문제가 있고 더 나아가서는 사명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힘든 일들이 벌어졌을 때에 자기 자신을 돈의 문제와 분리를 하면서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이 내가 무능하다는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무가치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돈 그까지꺼 있어도 좋고 없어도 그만이라고 큰 소리 한 번 쳐볼 수 있는 그런 자존감, 그런 배짱을 가져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수많은 다양한 가치들이 돈이라는 단일한 척도에 의해 평가되고 또 획득될 수 있다고 믿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돈이 우리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돈을 얼마를 버느냐와 상관없이 내가 수입이 있느냐 없느냐와 상관없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믿음의 길을 가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존귀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합니다. 

돈이 가치의 척도가 되면서 우리는 인생을 매우 단순하게 바라보곤 합니다. 내가 불행한 이유는 돈이 없기 때문이고 저 사람이 행복한 이유는 돈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며 타인과 사회에 대해 분노하게 만듭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의 노동과 수고에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고 돈이 가치의 척도가 되어버린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돈이 공평하게 각 사람의 기여와 수고에 따라 분배되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사회와 제도 속에서 살아가며 어떠한 대접과 금전적 보상을 받든지 간에 우리의 삶과 수고 자체가 귀하고 가치있는 것이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는 경제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인생의 잔가지들을 쳐내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우리의 삶은 복잡하고 어지러워지고 우리의 인생의 허무함은 더 커집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는 우리에게 우리의 소득의 여부와 상관없이 더 많은 소비의 유혹으로 이어집니다. 

다윗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었고 그의 운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의 실수와 잘못을 덮어주시고 그의 삶을 다시 일으키시며 다시 기회를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그는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일뿐 아니라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을 뒤돌아볼 때에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함께 하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사람, 나의 수고와 노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손길이 오늘 나를 이 자리까지 이끄셨다는 고백이 있을 때에 우리는 돈의 문제에 끌려다니지 않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의지하며 겸손하게 하시고 낮아지게 하시고 또 공급하시고 채우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또한 우리 교회 창립 43주년을 기념합니다. 우리 교회의 역사 속에서도 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동행하시며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을 우리 교회를 통해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가 진실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따라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길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전심으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느냐를 늘 물으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베푸시고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축복이 우리들 각자의 삶과 우리 교회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주일 설교 영상   ADMIN 2020.04.19 63
공지 매일묵상 안내   ADMIN 2017.03.11 245
56 2019.7.2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07.21 29
55 2019.7.28(주일) 주일설교 요약   절대사랑 2019.07.28 19
54 2019.8.4(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08.04 25
» 2019.8.1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08.11 28
52 2019.8.1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08.18 20
51 2019.8.25(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08.25 36
50 2019.9.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09.01 23
49 2019.9.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09.08 26
48 2019.9.15(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09.15 29
47 2019.9.22(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09.22 24
46 2019.9.29(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09.29 21
45 2019.10.6(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9.10.06 39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Next ›
/ 16
Designed by hikaru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