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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씨름한 야곱의 기도 / 창세기 28:10-19

9월부터 계속해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정을 하고 설교를 준비하다보다 염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한 가지 주제로 여러 달을 설교를 하다보면 아무래도 중복되는 내용들이 많게 되겠지요. 그렇게 되면 들으시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집중도도 떨어지고 기대감도 적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 가을에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다른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정말로 기도하는 교회, 기도하는 인생을 만들어보자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완벽한 여건 속에 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여러 면에서 참 좋은 교회이고 또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늘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는데 그것이 기도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결국 신앙생활이란 말씀읽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연초부터 말씀, 기도, 선교가 신앙의 세가지 요소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삶의 결론이 선교적인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교회 안에, 우리의 인생 속에 말씀과 기도가 가득해야 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지식적이인 면에서 성경말씀은 교회에 나와 앉아만 있어도 어느 정도 배우는 것이 있고 또 내면적으로도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 더 나아가서 여러분들이 직접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지만 적어도 주일에 교회에 오기만 해도, 혹은 여러분들이 시간이 나실 때에 기독교 채널들을 시청하시기만 해도 최소한의 성경에 대한 지식과 영적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여러분들이 직접해야하는 것입니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위한 여러분의 기도는 여러분들이 직접 해야 하는 것이고 우리 교회를 위한 기도는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이 직접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심도 신앙의 중요한 척도가 되고, 얼마나 봉사하고 헌신하는지도 중요한 신앙의 척도가 되지만 무엇보다도 기도에 대한 열심이 진정한 신앙의 가장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내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다 믿지 않아도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저도 이러저러한 책들을 읽지만 그렇다고 저자의 생각이나 입장에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책을 읽든지 유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진실로 살아계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한 두번은 기도해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꾸준히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꾸준히 기도할 수 있는 것, 일정한 시간을 내어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신앙에 대해 외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입니다. 나는 기도하는 사람인가 여러분들 스스로 질문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올해 이렇게 계속해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전하기로 한 것은 그야말로 이래도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일종의 권면, 강요, 협박을 하려는 것입니다. 목사가 강요한다고 기도하게 되실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는데 나도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정도는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주저하게 되는 이유는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으시는지, 기도하면 상황이 변화될 수 있는지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들 한두번은 진지하게 기도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면 그 다음부터는 굳이 왜 기도해야 하는지 확신이 없어집니다. 

우리 애들도 예전에는 순진하게 잘 믿었는데 어느순간 아이들이 달라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봅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을 이야기하지만 그 중에서 제 마음에 많은 인상을 남긴 것은 자기들도 한 때 정말로 열심히 기도해보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하고는 같은 반이 되게 해달라고도 기도하고 왕따당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도와달라고도 기도하고 나름 간절하게 기도를 해보았는데 별 쓸데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신앙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또 하게 되면 점점 이야기의 수준이 올라가서 아이들로서는 아직 이해하기 힘든 인생의 고난의 의미라든가 하나님의 섭리라든가 그런 이야기까지 나아가게 되는데 그것이 어떻게 생각하면 더 깊은 신앙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그냥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에게도 기도했지만 응답받지 못했으므로 더 이상 그렇게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고 그냥 하루 하루 되어지는 대로 받아들이고 살면서 내 작은 믿음이라도 지키며 살기로 했다는 경험이 있으실수도 있습니다.

저로서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제 기도를 들으시고 또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지 않으셨다면 제가 여기 이 자리에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제가 목사로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지만 제가 기도하고 응답받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가장 격하게 경험했던 것은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고 저도 그저 예수 잘믿어보려는 한 사람의 평신도, 한 사람의 청년이었을 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제가 느끼는 것은 제가 뭔가 제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기도하며 응답받고 성취해가는 그런 인생이었다기 보다는 오히려 뭔가 뒤틀려진 것을 느꼈을 때에, 뭔가 내 몰리게 되었을 때에, 그래서 기도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하지 않은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되는 그런 일들이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기도라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이루고 성취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 삶의 주도권을 내어놓는 그런 과정, 그러면서 내 삶을 내가 아닌 하나님이 인도해 가신다는 것을 깨닫는 그런 과정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가 갈망하던 것을 얻지 못하는 순간, 나의 기대와 계획이 깨어지고 인생의 방향을 잃게 되고 혼란을 경험하게 되는 그 순간이 오히려 진정한 기도의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이라는 사람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야곱은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중에 가장 인간적인, 그래서 가장 인상적인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야곱이야말로 성경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야곱이 바로 이스라엘 민족의 직접적인 조상이고 그래서 지금도 사용되는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이 바로 야곱의 이름에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시대, 좀 더 넓게 보아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야곱의 열두 아들들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읽어가다 보면 거의 우리나라로 보면 단군시대의 역사나 마찬가지인 그런 시대에 너무나 현실적인 삶의 이야기들, 전혀 미화되지 않은 신화화되지 않은 적나라한 삶의 이야기들을 대하게 됩니다. 한 민족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주인공들은 전혀 거룩하지 않습니다. 신비하지 않습니다. 그냥 지금도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것 같은, 그냥 우리가 길을 가다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성경 안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의 인생의 여정을 보면 뭔가 늘 채워지지 않은 갈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약속된 것이 주어지지 않고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기 힘들고 속고 속이며 업치락 뒤치락하며 살아가는 현실 속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야곱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아직 성경의 내용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을 드리자면 야곱은 지난 주에 말씀드린 아브라함의 손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이고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의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었는데 에서가 간발의 차이로 먼저 태어나서 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고 야곱은 어머니의 사랑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에서와 야곱이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에 어머니는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게 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더욱 야곱이 더 큰 축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후에 이삭이 나이가 들고 이제 가문의 전통에 따라 자식들을 축복하며 일종의 후계자를 결정하게 되었을 때에 이삭이 선택한 것은 야곱의 형 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때에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털이 많은 에서처럼 꾸미고 눈이 어두운 남편 이삭을 속여서 야곱이 에서 대신에 축복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가 받아야 하는 축복을 가로챘다는 것을 알고 분노한 에서를 피해서 야곱은 저 멀리 외삼촌이 사는 곳으로 도망을 갑니다. 

참 이상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받았느니 받지 못했느니 하는 것에 구체적인 실체가 없습니다. 무슨 재산권도 아니고 무슨 상속의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고들 있는 있 축복 때문에 속이고 분노하고 하는 모습, 그것은 사실 뭔가 막연한 삶의 기대와 소망, 우리의 인생에 대한 갈망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어찌되었건 갑자기 폭풍과 같은 난리법석에 휘말린 야곱은 낯선 길 위에서 하룻밤을 청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상황, 온 집안이 난리가 난 가운데 딱히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도 없고, 그러면서도 갑자기 형의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삶의 익숙한 자리에서 떠나와야 했고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는 그 때에 야곱은 그 어느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해야 했고 그곳이 그에게는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한 체험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꿈속에서 땅에서부터 하늘까지 잇닿는 사다리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다리를 타고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것을 봅니다. 이 환상, 이 꿈은 지금 그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잇닿아있다는 것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우연적이고 혼란스럽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자리가 하나님이 그를 붙드시고 이끌어가시는 과정 속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야곱을 택하셨고 야곱을 통해서 이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당시에 야곱이 이 약속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오늘 이 순간에 우리는 야곱에게 주신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져서 야곱의 자손들을 통해 전 세계에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으 증거되고 오늘 우리도 지금 야곱의 이야기를 여기 한반도에 모여서 하고 있다는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저 자기 집안에서 일어난 소동 속에서 피난길을 오른 것인데 그의 위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은 그의 인생에 주신 사명을 보여주시고 지금 그의 인생이 그 하나님의 크신 손길과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만큼이나 인상적인 또 한 가지의 사건이 나중에 야곱이 외삼촌의 집에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때에 일어납니다. 야곱은 외삼촌 집으로 가서 외삼촌의 딸들과 결혼을 하고 열심히 수고하여 많은 재산을 모읍니다. 야곱은 그에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거듭해서 외삼촌에게 속고 정당한 품삯을 받지 못하고 많은 수모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내들과 함께 외삼촌을 떠나기로 하고 그동안 모은 모든 재산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들은 소식은 그가 속이고 떠나온 형이 지금 400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나아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이건이 매우 부정적인 사인으로 보였고 결국 형이 아직도 자기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자기를 죽이려 한다는 두려움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 대목도 매우 야곱과 또 그의 이야기를 함께 읽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장면입니다. 야곱은 어찌되었든 고생을 해서 그래도 어느 정도 재산을 모았고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실체였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에서는 무엇일까요? 야곱이 에서 대신 받은 축복의 실체가 그가 모은 재산이라면 지금 에서가 이끌고 있는 400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룬 모든 것이 그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에서의 사람들을 감당할 만한 것도 되지 못하면 무엇을 얻고 또 얻지 못했다는 것일까요?

야곱은 자기의 모든 가족들, 모든 재산들을 먼저 강 건너 보내고 혼자 남습니다. 처음에 원래 혼자였는데 그동안 얻었던 것을 다 앞서 보내고 마치 외삼촌 집을 향해 처음 찾아가던 그때처럼 혼자 남게 되고 그 때에 누군가가 그를 찾아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밤새 씨름을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씨름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야곱이 그 사람을 꼭 잡고 놓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무슨 싸움을 한 것이 아니라 야곱은 이 사람이 뭔가 자신의 인생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직감을 가지고 밤새 몸싸움을 벌였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그의 불안, 염려, 근심, 혼란을 다시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알 수가 없고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가 없습니다. 뭔가 붙들어야 하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지금 뭔가를 붙잡고는 있는데 이것도 뭔지는 모르겠습니다. 잡지 않을 수 없고 보내버릴 수 없는데 뭘잡아야 하는지 뭘 잡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혼란과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의 인생에 찾아온 불안, 두려움, 혼란, 그것이 바로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인생이 평안할 때에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느끼고 그 평안함 속에서 내가 뭔가를 알고 있고 내가 뭔가를 가지고 있고 내가 인생을 이렇게 평안하게 유지할 만한 그런 능력이 있다는 막연한 착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러한 평범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생, 당연히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관계들, 당연히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물질적인 기반들이 어느 날 흔들리게 될 때에, 나의 벌거벗은 현실이 드러나고, 나의 무능력이 드러나고, 나를 가려왔던 여러 가지 우연적인 가식들이 벗겨지게 될 때에, 그 혼자있는 시간, 그 혼자있을 수밖에 없는 시간을 견디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들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들은 우리에게 찾아온 불행의 시간 고통의 시간, 우리가 피해야 하지만 우리를 짓밟아버리는 그런 시간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부르시는 시간이고 바로 우리를 기도로 부르시는 시간,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시간입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큰 부담입니다. 말은 많이 하지만 그렇게 기도하게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게 만드십니다. 우리의 평안을 흩어 버리시고 우리의 관계를 깨뜨려 버리시고 내가 딛고 있는 물질적인 기반을 흔들어 버리십니다. 내가 갑자기 허공 가운데 있다는 것을 느끼고 무엇하나 의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어느날 갑자기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언가를 잡아야 하겠지요. 뭔가 끝도 없는 나락으로 꺼져가기 전에 뭔가 잡아야 하는 그 때에 하나님의 손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일상 속에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그런 경건의 삶에 대해서 당연히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또 우리의 삶의 믿음의 훈련을 더 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렇게 기도하라고 몰아가시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그 당혹감 속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절망 속에서, 다른 이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더 속으로 움츠려 들어가고 감히 손을 내밀어 그 허공 속에서라도 나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구원의 동아줄을 찾아보려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것이 저를 참으로 안타깝게 합니다. 

사실 여러분, 우리 다 그런 사람들입니다. 혹시 여러분들 눈에 열심히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기도하는 사람들이 대단해보이십니까? 아니 그럴 것 하나 없습니다. 우리도 다들 그 인생이 허물어져가는 절박감 속에서 그래도 뭔가 구원의 손길을 찾아서 허우적 거리다가 하나님의 은혜의 손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제는 그것을 놓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뿐입니다. 

어쩌면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들이 위선적으로 보이는 분들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죠. 위선적입니다. 이중적, 삼중적인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게 뭐 누구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으니까, 그렇게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살수 없으니까, 내가 뭐 잘나고 내가 뭐 거룩하고 경건해서, 그렇게 보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지금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처한 상황이 여러분에게 기도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주저하고 계십니까? 갑자기 기도하는 것이 남사스럽게 보이십니까? 참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의 눈에 살고 남의 눈에 죽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남들이 어떻게 보고말고, 그런 걱정 할 때면 아직은 살만한 때입니다. 그런 여유라도 있으면 좋은 것이지요. 

우리가 매일 새벽기도회를 갖습니다. 새벽 5시반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새벽에 누가 오냐고.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런 과거에 농경사회의 문화라고.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녁 기도회로 바꾼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새벽이 가진 장점이 있습니다. 저녁 시간은 사회적인 시간입니다. 일도 있고 약속도 있고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차도 많이 다니고 내가 어떻게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새벽은 오직 나와 하나님과의 시간입니다. 누구도 그 사이에 없습니다. 약속도 없고 교통 체증도 없습니다. 그저 나 혼자 마음을 먹으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나와의 약속,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은 신앙의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거나 그만큼 다급한 사람들입니다. 때로는 밤에 도무지 잠을 자지 못하다가, 혹은 선잠에 들었다가 새벽을 맞이하게 되기도 합니다. 예전에 어느 유명한 강사가 자기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새벽 4시에 일어나보지 못한 사람은 아직 인생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다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깨닫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나를 찾으시는 사인이라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자리를 찾고,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때에도 하나님을 못만나면 언제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때 만난 하나님이 그 후로도 여러분들의 인생을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시는 것을 느끼십니까? 그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을 하고 계십니까? 아직은 여유가 있고 아직은 기도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습니까? 그러면 그 여유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를 부르시는 그 음성에 기도로 응답하며 우리 인생을 우리 주님의 능하신 손에 맡기며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모든 성도님들이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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