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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때까지 머뭇머뭇 하려느냐 / 열왕기상 18:20-24

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에게로 사람을 보내 선지자들을 갈멜 산으로 모으니라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22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23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영국 작가 윌리엄 골딩의 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파리대왕”은 무인도에 불시착한 아이들이 문명의 질서에서 벗어나 야만적인 삶으로 퇴행하는 모습을 그린 소설입니다. 인간 본성에 대해 탐구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제목이 파리대왕일까요? 파리대왕은 Lord of the flies, 파리들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히브리어로는 바알세불, 혹은 바알세붑이라고 하고 신약성경에서는 귀신의 왕, 사탄과 같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무인도라는 환경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한 상징이며 실제로 소설 속에서 돼지머리에 몰려드는 파리떼를 통해 제목의 의미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바알세불은 바알의 별칭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우상숭배는 대부분 바알에 대한 신앙을 의미기에 바알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유혹하는 악한 세력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파리는 더러운 곳에 꼬이기 때문에 바알세불이라는 말은 바알을 배설물처럼 더러운 존재로 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 숭배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까요? 본래 바알은 가나안에서 가장 많이 숭배되던 신입니다. 가나안의 주신이고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에 해당되는 신이었습니다. 가나안에서 바알은 하늘의 신, 천둥과 번개의 신, 특히 비를 내리는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강수량이 적고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게 구분되는 기후를 가지고 있기에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제때 우기가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우기의 시작을 알리는 “이른 비”와 우기의 마지막 비인 “늦은 비”가 언제 내리느냐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른 비”가 내려야 씨를 뿌릴 수 있고 “늦은 비”가 내려야 곡식이 잘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알을 숭배하게 되었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땅을 정복하게 된 것을 다 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고 광야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은 지금 가나안땅에서 살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인도해 주셨지만 지금 가나안에서는 가나안의 신을 섬겨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들 가운데 퍼져 가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이전에는 이동하며 목축을 하며 살았지만 지금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농사를 지어 풍족한 수확을 거두려면 비를 내리는 가나안의 신인 바알을 섬겨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바알을 섬기는 데에는 큰 차이가 존재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룩한 삶, 경건한 삶, 정의로운 삶, 이웃들을 돌보는 삶, 저울을 속이지 않고 양심적이고 정직한 삶을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바알은 그런 것은 필요없습니다. 바알을 기쁘게 하기 위해 많은 제물을 드리면 되고, 바알신이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해 성적으로 문란한 제의를 행하면 되었습니다.

게다가 바알이라는 말은 일반명사로는 주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아내들은 남편을 “나의 바알”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바알을 혼동하기 시작합니다. 누구를 섬기는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저 좋은 게 좋은 것, 누구든지 비만 내려주면 좋은 것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바알 숭배에 빠져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고 풍요와 번영이 우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시대에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엘리야는 당시의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아합 왕에게 하나님께서 앞으로 비를 내리지 않으실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선언은 누가 비를 내리는지, 바알이 참된 신인지 하나님이 참된 신인지 분별하라고 경고였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을 제안합니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을 모아놓고 송아지를 잡아서 나무 위에 올려놓고 불을 내려달라고 빌어보라고 도전합니다. 바알이 정말 참 신이라면, 바알이 하늘의 신이고 천둥과 번개의 신이라면 바알이 불을 내려서 제물을 태워줄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연 바알이 살아있는 신인지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인지,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 분명하게 깨닫고 결단하도록 촉구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하려느냐, 어느 때까지 양다리를 걸치고 어느 때까지 바알과 하나님을 구분하지 못하고 어느때까지 그렇게 우왕좌왕 머뭇머뭇거릴 것인가? 바알이 하나님인가 여호와가 하나님인가? 바알이 진정으로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고 너희에게 비를 위해 비를 내리는 신이라면 바알을 섬겨라.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우리를 위해 비를 내리시는 분이라면 하나님만을 섬겨라.”

우리 시대에 우상숭배는 어떻게 시작될까요? 교회에서는 성경을 배우고 은혜로운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지만 바깥 세상은 정글이 아닙니까? 성경대로 장사하고 성경대로 사업하고 성경대로 양심적으로 살아가면 나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닙니까? 로마에서는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는데 교회에서는 교회의 법을 따르지만 세상에서는 세상의 법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도 이렇게 머뭇머뭇하며 살고 있지않습니까? 두 세계를 오가며, 이것저것 다 뒤섞어 놓은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까?

어느 류마티스 전문가인 의사분이 하시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만난 환자들 중에 고양이를 먹으면 관절염이 낫는다고 고양이를 300마리까지 먹고 온 환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그 의사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관절염 환자 중에는 특별한 치료 없이 자연적으로 낫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 때 우연히 고양이를 먹은 환자는 자기가 고양이를 먹어서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300마리나 먹었겠습니까? 고양이를 먹어도 낫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나았다는 경험에 매여서 고양이를 먹어도 낫지 않으면 뭔가 약효가 없는 비실비실한 고양이를 먹었거나 고양이를 약으로 만드는 방법이 잘못되었거나 하면서 계속 먹어대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낫지 않아서 의사를 찾아 온 것입니다.

바알을 숭배하는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바알에게 기도하고 제물을 바쳤는데 비가 오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바알에게 기도한다고 비가 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바알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바알의 제사장, 선지자들은 제물이 부족하였거나 정성이 부족하였거나 제사드리는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모든 책임을 신자들에게 떠넘기게 되고 신자들은 점점 더 바알에게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상은 처음에는 많은 것을 주고 적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아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점점 더 적은 것을 주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결국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모든 것을 가져갑니다. 우리는 점점 더 불안해지고 점점 더 피폐해지며 우상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중독이라고 부르는 많은 현상들도 이와 비슷합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만족감, 쾌감을 느낍니다. 그런데 시간이 감에 따라 그 쾌감은 점점 떨어집니다. 그러면 그것이 허망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쾌감을 얻기 위해 더 많은 것을 쏟아 붓게 되고 만족감은 더 떨어지고 삶은 더 황폐해집니다.

지금 바알을 섬겨도 이스라엘에는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지 않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바알을 떠나지 못합니다. 오히려 더 바알에게 매달립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착각을 깨뜨리기 위해 오늘 엘리야는 누가 살아있는 신인지 깨닫도록 백성들에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뭔가 일이 풀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뭔가 하나님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불안감에 빠져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고 하고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께로부터 좀 더 많은 것을 얻어내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전능하시고 온 천하를 소유하신 하나님께 우리가 무엇을 드려서 만족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하고 경건하고 진실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삶을 원하시는 것은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신앙이란 우리가 모든 것을 희생하고 더 피폐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가 더 행복하게 살기를, 우리가 더 멋진 존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을 가졌느냐, 무엇을 더 가져야 하느냐에 매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고 기쁨으로 누리며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베풀고 섬기고 사는 아름다운 삶을 이루어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날에도 이 세상 곳곳에 바알들이 숨어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영역, 성경적인 원리가 통하지 않은 영역이 있는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양심적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을 어리석게 보이게 만듭니다.

예수 믿지 않고 양심적으로 성실하게 살지 않고도 돈을 벌기도 합니다. 남들이 그렇게 성공하는 것을 보면, 혹은 우리가 그런 경험을 하게 되면 우리는 이렇게 살아도 성공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이렇게 살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힙니다. 그런데 자신이 기대했던 결과가 오지 않았을 때에,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더 잘못된 방법에 매달리게 됩니다.

내가 이번에 실패한 것이 더 힘쎈 사람에게 청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하지 못했기에, 더 매몰차고 냉정하지 못했기에, 기회가 왔을 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기회를 차지했어야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기에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리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우상숭배의 덫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고, 이 세상에 도사리고 있는 악하고 더러운 귀신들, 우리의 양심을 더럽히고, 우리의 가치관을 더럽히는 오물들의 신, 파리들의 신의 유혹에서 벗어나 사랑과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투명하고 정직하고 진실된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거룩하게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더 감사하며 더 기뻐하고 더 이웃들을 배려하고 섬기며 함께 기쁨을 누리므로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우상들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더럽히고 깨뜨린다. 우리에게 거짓과 부정의 오물을 뒤집어씌웁니다. 그래서 우리를 더 추하고 별 볼일 없고 손가락질 받는 존재로 타락시켜 버립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선함과 온유함과 따뜻함과 사랑을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고 멋지게, 아름답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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