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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은 백성 / 민수기 16:12-19

12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13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14 이뿐 아니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 우리는 올라가지 아니하겠노라
15 모세가 심히 노하여 여호와께 여짜오되 주는 그들의 헌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 나는 그들의 나귀 한 마리도 빼앗지 아니하였고 그들 중의 한 사람도 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고
16 이에 모세가 고라에게 이르되 너와 너의 온 무리는 아론과 함께 내일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되
17 너희는 제각기 향로를 들고 그 위에 향을 얹고 각 사람이 그 향로를 여호와 앞으로 가져오라 향로는 모두 이백오십 개라 너와 아론도 각각 향로를 가지고 올지니라
18 그들이 제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불을 담고 향을 그 위에 얹고 모세와 아론과 더불어 회막 문에 서니라
19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우리는 매일성경을 따라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올 봄에 민수기의 전반부를 묵상했었는데 이제 다시 민수기로 돌아왔습니다. 민수기(民數記)는 백성들의 수를 세어서 기록한 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민수기에는 맨 앞부분과 뒷부분에 두 번의 계수 기록이 나옵니다. 첫 번 째 계수는 출애굽 후에 시내산에서 출애굽한 백성들의 수를 센 것이고 두 번째는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백성들의 전열을 정비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게 된 것을 감사하며 기록된 것입니다. 이 두 번의 계수 사이에 우리가 아는 이스라엘의 40년의 광야생활의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직선거리로는 400km 정도 됩니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이스라엘 남부 브엘세바까지 구글에서 길찾기를 해보면 도로를 따라 675km의 거리를 이동하는데 자동차로는 8시간 13분, 도보로 134시간이라고 나옵니다. 이 거리를 이동하는데 40년을 걸렸다는 것은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일 것입니다. 이 시간의 의미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14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을 거쳐서 가나안땅에 도착했었고 그 땅을 정탑하기 위해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냈지만 그들 중에 10명이 그 땅에 대해 악평을 하게 되고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다시 광야로 돌이켜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시 광야로 돌아가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16장의 도입부에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당을 짓고 모세와 아론을 거슬렀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3절)고 말하며 모세와 아론을 비방했습니다.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주장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도 아니하고 밭도 포도원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니 네가 이 사람들의 눈을 빼려느냐”(14절)

이들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그들은 가나안땅 남쪽에 도착하여 12명의 정탐꾼을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10명은 가나안땅이 좋은 땅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 땅의 주민들이 너무나 강성하여 도저히 싸워서 승산이 없고 이제 우리는 다 죽게 되었다고 불평을 합니다.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백성들은 악평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통곡합니다. 모세에게 우리를 가나안에서 다 죽게 하려고 여기까지 데려왔느냐고 따져듭니다. 그들의 원망과 통곡을 보시고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들을 돌이켜서 다시 광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합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않으려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는 것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데도 자기들 맘대로 군대를 조직하여 가나안으로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돌아오게 되었고 결국 광야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광야로 돌이키게 되자 백성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재앙적 상황을 진정시키려면 우리가 아는 인간적인 상식으로 볼 때 많은 경우에 희생양을 찾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게 됩니다. 바로 그런 일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벌어진 것입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불신앙이 원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상황 속에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책임자로 지목한 것은 바로 모세와 아론이었습니다. 그리고 250명이나 되는 지도급 인사들이 그들에게 동조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모든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원망하고 통곡했던 사실은 그새 다 잊은 것입니까? 지금 모세와 아론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다 자칭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아닙니까? 이들은 먼저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회개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은 백성들의 동요를 자신들이 모세와 아론의 자리를 차지할 기회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분란이 일어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 이스라엘의 가장 큰 문제는 리더십의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이 꿈을 잃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동안 모세와 아론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불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레위 지파의 여러 갈라진 계열 중 하나에 불과한 가정에서 태어난 형제들이었습니다. 모세가 정치지도자가 되고 아론이 종교지도자가 되어 형제가 모두 주목을 받게 되는 상황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전까지 모든 사람이 모세와 아론에게 순종했던 것은 그들을 따르면 곧 가나안땅에 이를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렇게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된 것은 결국 그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길을 잃은 이유는 그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곳을 향할 믿음과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싸워야 할 적들과 싸울 용기가 없었던 사람들이 화살을 내부로 돌려서 협력해야 할 사람들을 적으로 만드는 비겁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한 공동체에서 리더십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국가적으로도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가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 비판하고 협치에 대해 기대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 교회들도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목회자의 권위가 교회를 이끌어가는 기본적인 원리였고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이끄는 교회가 크게 부흥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한 세대가 지나면서 오늘날 그 후유증을 크게 앓고 있는 교회들도 많습니다. 신앙적으로 볼 때에 리더십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회라는 신앙공동체의 비전에 대해 공동체가 얼마나 바르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분명하면, 그곳에 가기 위해서 어떤 조직이 필요하고 어떤 운영 원리를 세우는 것이 그 비전을 이루는데 더 도움이 되는가를 함께 결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자체가 불분명하다면 리더십의 문제는 자칫 잘못하면 내부적인 힘겨루기의 문제가 되어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으로 가는 사명을 가지고 애굽을 떠났지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명하시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열정과 용기와 믿음을 잃게 되었을 때에 분란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중요한 문제는 교회가 선교적 공동체라는 사실을 얼마나 절실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서로 합의해서 세운 목적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교회에는 리더십에 대한 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절대적인 유일하신 리더, 지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 다른 직분들은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각각의 은사에 따라 다른 역할을 맡는 것뿐입니다.

교회가 가진 모든 재원, 자원, 관심, 역량이 이 세상 속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는데 집중이 되어 있어야 하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어떻게 기도하고 서로 협력할 것인가에 모든 성도들의 관심이 모여져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사명을 잃으면,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게 되면, 결국은 인간적인 공동체가 되어버리고, 인간들의 모든 조직,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온갖 추한 일들은 다 일어나게 됩니다.

흔히 “교회도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틀린 말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일 뿐이라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고 성령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시작하신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어가는 거룩한 선교적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사람들이 모인 곳이 되어 버리는 것은 교회를 인도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고 그분의 손을 놓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사명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종종 “우리끼리 편안하게 지내면 좋을 것 같은데”라는 유혹이 교회에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끼리”라는 말과 “편안하게”라는 말은 서로 모순이 되는 말입니다. 과연 “우리끼리 편안하다”라는 것이 가능합니까? 사람과 사람이 모인 곳에는 늘 갈등이 있습니다. 가족들 간에도 이해관계가 얽히게 되면 서로 화평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평안하려면 우리끼리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교회가 평안한 것은 우리끼리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들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사람들, 어떤 공동체에 임합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크게 역사하십니다. 선교 현장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고 복음을 전할 때 간증이 넘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목적, 어떤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떤 기도가 먼저 응답되어야 합니까? 성도들이 무조건 내 기도가 먼저 응답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교회는 이 세상에 진정한 구원과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오히려 이 세상을 각자 자기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경쟁적 갈등의 도가니로 만드는데 일조하게 되고 말 것 입니다. 교회가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은혜와 사람을 베풀기 위하여, 다른 이들을 위하여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섬기고 살아가는 사람의 기도가 우선적으로 응답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교회는 새가족을 환대하고, 지역사회에 열려있고, 가까운 곳,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기회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전하고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데 우리는 턱없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믿음도 부족하고 그렇게 사교적이지도 않고 사랑이 많지도 않고 넉넉하게 베풀지도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이고 그런 기도를 통해 우리의 삶이 바뀌고 우리의 교회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 삶에, 그런 교회에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나타나며 그 때 우리는 우리가 기대한 은혜, 넘치는 은혜,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의 주인공들이 될 것입니다.

가나안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백성들의 분란, 그것은 꿈을 잃은 교회, 사명을 잃은 교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명을 소중하게 여겨서 우리의 삶이,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는 현장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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