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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 민수기 30:1-5

1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 지파의 수령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명령이 이러하니라
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3 또 여자가 만일 어려서 그 아버지 집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 서원한 일이나 스스로 결심하려고 한 일이 있다고 하자
4 그의 아버지가 그의 서원이나 그가 결심한 서약을 듣고도 그에게 아무 말이 없으면 그의 모든 서원을 행할 것이요 그가 결심한 서약을 지킬 것이니라
5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그것을 듣는 날에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의 서원과 결심한 서약을 이루지 못할 것이니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사하시리라

오늘 본문은 서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서원은 하나님께 드린 약속입니다. 성경에서 공동체가 하나님과 맺은 약속은 언약, 개인적으로 드린 약속은 서원으로 표현합니다. 사람과 맺은 약속도 지켜야 하는데 하나님께 드린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여기에 예외가 있습니다. 여성의 경우에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가, 결혼 한 후에는 남편이 그 서원을 듣고 아무 말이 없으면 지켜야 하지만 아버지나 남편이 반대하면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의 난제가 있습니다. 이런 본문을 보면 대부분 한국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여필종부(女必從夫)”라는 말이 떠오를 것입니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 후에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따르는 것이 여성의 도리라는 것이 여필종부라는 말에 담긴 넓은 의미입니다. 물론 성경에는 남편이 없는 경우에는 서원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9절) 차이는 있습니다만 여성이 남성의 지도 아래에 있어야 된다는 의미로 읽게 되면 오늘 본문이 근본적으로 서원에 대한 본문이라는 것을 잊게 됩니다. 그리고 남녀를 차별하는 말씀이라는 생각 때문에 서운한 마음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문자적인 의미에만 매이게 되면 본래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구약성경 전체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이라는 틀 안에 있습니다. 그러면 언약을 맺은 주체는 누구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고 구체적으로는 야곱의 열두 아들의 자손들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규정에 이방인들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총회에 속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은 율법을 지킬 의무도 없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끼리는 종을 삼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은 종으로 사올 수 있습니다. 동족끼리는 이자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받아도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유대인입니까? 아니면 이방인입니까? 우리는 율법에 따르면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구약성경의 율법에 구애받아야 합니까?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이 없어지고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는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분이 없어진 것은 받아들이면서 남자와 여자의 구분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자기 편의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서원이란 무엇입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서원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맺은 약속입니다. 서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는 공동체, 전통, 규범의 세계 속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접할 때에 전통과 규범과 의무로 시작합니다. 유치부에 아이들이 처음 올 때 자기 믿음의 고백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이 아이도 자신과 같은 신앙을 갖기를 원하기 때문에 데려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서 성경이 처음 쓰이던 시대로 가면 신앙이 전통과 규범이 되기 이전의 신앙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까다로운 율법들에 먼저 주목하게 되지만 오히려 구약성경 속에서 그 옛날, 한 개인이, 공동체가 처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 어떤 전통이나 규범이나 의무가 없이 하나님을 만나면서 경험한 놀라움과 은혜의 고백을 듣게 됩니다.

오늘 예배의 부름으로 낭독한 시편 27편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시편 27편은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그는 후대의 여러 왕들처럼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종교의 힘을 빌어서 권위와 전통과 의무를 강제하는 그런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시편의 고백을 보면 그는 한 개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이 개별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주시며 도우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개인이 하나님께 자원적으로 서원하는 여러 가지 경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처럼 개인이 자유롭게 하나님께 자신이 원하는 헌신의 약속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평생을 드리고자 하는 서약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나실인이라고 부릅니다. 제사장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나면서부터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위지파, 아론의 자손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실인은 누구나 자원적으로 헌신하여 제사장들처럼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또한 레위기를 보면 율법으로 규정된 제사들이 있지만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서원제, 낙헌제, 감사제의 경우들을 허용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원의 장점이면서 단점은 바로 의무가 아니라 자원적으로 드리는 헌신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원이야말로 자발적이고 진정성있는 신앙의 표현이 됩니다. 그러나 외적으로 부여된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서원을 드렸는지 본인 외에는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서원은 했지만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키지 못할 서원을 남발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 스스로 인격적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자신의 행동으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에 더 큰 불신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원에 대한 대부분의 성경구절들은 지키지 못할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좋고 서원을 했으면 반드시 지킬 것을 요구합니다.

오늘 본문의 특이한 점은 서원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경우를 말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말씀이 지금부터 3000년도 더 전의 사회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보면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서구의 선진국들도 성인 여성들 전체가 투표권을 얻게 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입니다. 처음에는 소수의 귀족들만, 그다음에는 일정한 재산을 가진 사람들만, 그 다음에는 모든 남성들만이 투표권을 가졌고 그 다음에 여성들이 투표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들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각각 당시의 사회적인 규범 속에서 책임있는 판단력을 갖추는 데에는 일정한 조건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일정한 신분과 재산을 가지고 일정한 교육을 받아서 사회적인 식견이 있는 사람들만이 자신들의 의무와 권리를 알고 책임감있는 판단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아직도 만 19세이상이라는 나이의 규정은 남아있고 대부분 사람들이 청소년들은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에 선거권에 제한을 받아야 한다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이 여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미래를 왜 자신들이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정해야하냐고 반문하는 아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교육과 경험이 없는 사람의 판단이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에는 많은 분들이 동의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여성을 예로 든 것은 스스로 책임있는 판단을 하지 못하며 서원을 하게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꼭 여성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불완전한 사람들이며 말에 실수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온전하지 못한 판단을 가지고 한 서원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도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것이고, 신앙의 공동체는 불완전한 서원을 바로잡아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서원을 잘못 이해하면 마치 사기꾼이 내민 계약서에 잘 알지도 못하고 도장을 찍었다가 낭패를 당하게 된 사람처럼, 하나님 앞에서 서원 한번 잘못했다가 하나님이 내가 한 말을 꼬투리 잡으셔서 평생을 괴롭히시는 것처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자니 능력이 없고 지키지 않자니 하나님이 두렵고, 평생을 이도저도 못하며 살아가는 것을 진정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구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신명기 6장에 있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서원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헌신을 자발적으로 표현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시적인 감정으로 헌신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우리가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인격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다 불완전한 존재들이며 신중하지 못하고 말에 실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온전한 믿음으로 서원을 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 공동체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앙의 공동체는 서로 서로에게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공동체가 하는 일이 신앙을 강요하며 윽박지르고 지옥의 불로 위협하는 것이 전부라면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신앙은 근본적으로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것이지만 신앙공동체는 함께 하나님 앞에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는 동반자들로서 서로를 돕기 위해 모인 사람들입니다. 은밀한 믿음의 고백도 소중하지만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고 내 믿음의 결단을 함께 나누면서 분별하고 도와주는 신실한 영혼의 친구들이 있을 때에 우리의 신앙은 더 온전하고 진실된 신앙이 됩니다.

교회학교에서 교사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일반 학교의 교사와 교회 학교의 교사의 역할은 다릅니다. 일반 학교의 교사들은 이미 자신들이 끝마친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돕는 것이지만 교회학교의 교사들은 믿음의 여정을 마치고 천국의 보좌에 앉아서 뒤에 오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가 어린아이들과 같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성인들이나 어린이들이나 다 한 마리에 어린양일 뿐입니다. 우리는 함께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는 동반자로서 아이들과 함께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다른 이들의 격려와 도움이 필요하고 우리는 내가 지고 있는 짐을 그 사람도 지고 있고 그가 지고 있는 짐을 나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사랑과 연민으로 서로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함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함께 연약한 믿음을 온전하게 세워주며 믿음의 여정에 동반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에 굳이 조언을 듣지 않아도 공동체 안에서 나누기만 해도 스스로 많은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숙한 사람일수록 인격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배려하며 사려깊게 조언을 해줄 수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더 성숙했다고 생각하면서 듣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나이와 지식과 경험과 권위에만 의지하여 상처주는 말들을 함부로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맺은 약속은 소중합니다. 서원을 지키면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의 고백과 헌신과 실천을 통해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공동체가 한 사람의 믿음의 고백과 서원이 더 온전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도우며 함께 은혜를 나눌 때 더 큰 은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더 온전한 사랑의 고백을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더 성숙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돕고 격려해주는 성숙한 믿음의 공동체를 함께 이루어가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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