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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족하는 마음 / 디모데전서 6:3-10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오늘 본문은 돈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경고와 자족하는 마음에 대한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은 성경을 읽으면서 자주 접하는 주제이고 저도 이미 여러 번 설교를 해본 적이 있지만 실제로 자족하는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오늘 본문의 7절과 8절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저는 어렸을 때에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외할머니 방에 이 말씀이 적힌 작은 족자가 걸려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제가 태어나서 가장 처음 접한 성경말씀입니다. 지금도 이 말씀을 읽게 되면 왜 우리 할머니는 다른 말씀이 아니라 이 말씀을 벽에 걸어놓고 사셨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물어봅니다. 나는 정말 이 말씀을 좋아하는가? 나는 이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읽으면서 두 가지 질문이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정말 우리는 돈을 사랑하며 사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그렇게 큰 욕심이 없지 않습니까? 돈을 그렇게 사랑하며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별로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대부분 무슨 황금만능주의에 빠져서 대단한 돈을 벌기 위해 애쓰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저 유지하고 버텨내고 해야 할 도리를 하고 살아가는 것도 힘에 부쳐서 고민을 하는 것이 우리의 경제적인 고민의 이유가 아닙니까? 그런데 왜 우리가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사도 바울은 어떤 사람들을 생각하며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망의 말씀을 전하고자 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가 흔히 오늘날 황금만능주의의 사회가 되었다고 말할 때에 전제는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우리의 조상들이 살던 시대에는 돈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지금부터 2000년 전입니다. 그 당시의 경제는 농경과 목축 위주의 단순한 자급, 교환경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신약성경의 배경은 대부분 농촌이 아니라 도시였기에 당시로서는 상당한 상업화가 이루어져있던 지역이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시에는 아직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자리 잡기 훨씬 전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대부분의 부는 노력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신분에 따라 태어나면서 결정이 되었습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부를 얻었지 평범한 사람이 많은 돈을 모아서 권력을 얻게 되는 경우는 매우 희소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세계의 부자들의 리스트들이 발표되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고대 로마의 사람들은 대부분 황제, 정치가, 군인, 철학자들입니다. 오직 부자이기 때문에 알려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벤 허”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벤 허는 상당한 부자였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고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이렇게 한 세대 안에 정치적인 이유로, 전쟁으로, 큰 재난으로 노예로 전락하고 몰락하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한 세대 안에 신분의 극적인 상승을 보여주는 사례는 고대에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본문은 부하려는 사람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런 사람들을 책망하고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삶의 태도가 등장합니다. 첫째는 자족하는 마음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은 그리스-로마 철학의 주요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들도 자족하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오히려 신약성경에서 자족이라는 말은 단 두 군데에만 등장합니다. 유교에서도 안빈낙도(
安貧樂道)의 삶을 가르치고 불교의 스님들도 무소유와 같이 자족하는 삶에 대한 글을 써서 잘 알려지기도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며 사는 삶에 대해서는 불교가 오히려 기독교보다 더 강조할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모든 종교가 다 거기서 거기고 가르치는 것이 다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 스토아학파가 말하는 자족하는 마음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자족하는 마음은 이런 것입니다. “나는 소중하다, 나는 이미 완전하다, 나에게 이 세상의 다른 것은 필요 없다, 내가 이 세상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의 유혹에 흔들지지 않는 자신의 강한 의지를 자랑하고 이 세상을 경멸하며, 세속적인 삶에 매여서 분주하게 살아는 사람들을 멸시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 안에 자기중심적인 교만이 자리잡기 쉽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무엇보다도 상처받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족하는 마음은 늘 쉽게 흔들리게 되는 역설이 찾아옵니다.

두 번째 삶은 자족하는 마음을 통해 경건을 추구하는 삶입니다.(6절) 궁극적인 삶의 목적을 경건에 두는 것입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세상의 호흡을 허락하셨기에 우리가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오늘 본문 외에 자족이라는 말은 빌립보서 4장에 한번 더 나옵니다. 빌립보서 4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어렸을 적에 부흥회에서 유명한 부흥사 목사님이 위의 인용구의 마지막 말씀만을강조하면서 “I can in Jesus!!”를 외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을 다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렇지만 빌립보서에서 바울의 고백은 한 때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버리고 비천하고 빈곤한 삶을 선택했던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며 얻은 교훈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비천한 삶이나 풍족한 삶을 너머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으로 모든 것을 견뎌내고 모든 것을 선하게 가꾸어 가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교훈에 따르자면 하나님이 우리를 빈손으로 이 세상을 보내셨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살아가게 하시고 때가 되면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족하는 마음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보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을 추구하는 삶의 근본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한 가지 삶의 태도가 더 나타납니다. 그것은 이익을 추구하는 방도로서 경건을 추구하는 것(5절)입니다.

얼마 전에 제 친구 목사가 절을 다니다가 교회에 온 성도님이 있는데 교회에 너무나 적응을 잘해서 고민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사실상 자신이 궁극적으로 섬기는 신은 바뀌지 않았고 오직 방도만을 바꾼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절에서 연등도 사서 달고 기와장도 올리고, 108배 절도 많이 했 데도 이뤄지지 않아서 교회로 옮긴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따로 있고 그것을 얻는 방법으로 외면적인 경건을 추구한다면 그런 신앙은 잘못된 것입니다. 만일 내가 이렇게 기도했는데, 봉사했는데, 헌금했는데 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가 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역시 그런 신앙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예배가 기쁘고 말씀을 읽는 것이 즐겁고 섬기고봉사하는 삶이 보람이 있기 때문에, 경건한 삶을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엇이 삶의 목적입니까? 경건이 목적입니까? 이익이 목적입니까? 우리가 책을 읽을 때에, 영화관에 갈 때에 무슨 다른 목적이 있습니까? 그냥 책을 읽는 시간이 즐겁고 영화보는 것이 좋은 것 아닙니까? 경건한 삶에 무슨 다른 목적이 있어야 합니까? 그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까?

“너는 더 잘나갈 수 있다, 너는 할 수 있다, 네가 저 사람보다 못할 것이 무엇이냐, 기도해라, 구해라, 응답받을 것이다. 너는 모든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 이렇게 경건을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욕망을 신앙으로 정당화하는 것은 오히려 신앙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탐욕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그럭저럭 자족하며 살았는데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저차타고, 저 사람은 저 집에서 살고 저 사람은 저 옷을 입고 저 가방을 들고 다니는데 나는 뭔가, 왜 하나님은 나를 도와주시지 않는가 원망하는 마음만 생긴다면 신앙이 우리의 삶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아닙니까?  신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얻는 것입니까?

바울이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고하는 것은 당시에 에베소 교회 안에 잘못된 교훈을 가르쳐서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오히려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삶이 오늘날에도 비일비재하지 않습니까?

저는 20년 전에 중국 연변에서 잠시 평신도 선교사로 사역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후로 그 때에 함께 섬기던 분들과 연락이 거의 끊겼었는데 얼마 전에 그 때에 함께 같은 집에서 살았던 선교사님 한 분을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분을 통해서 그 때 연변에서 사역했던 다른 분들의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 들 중에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온 분들도 있지만 지금도 많은 분들이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더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더 오지로 떠난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큰 도전과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잠시 헌신하여 뭔가 다른 대가를 구하지 않고 세상에서는 잊혀진 사람들, 그분들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구하지 않고, 더 불편한 삶의 자리를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그들을 그런 삶을 추구하게 만들었을까요? 이익이 경건의 목적이라면 결코 그런 삶을 지속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추구하는 것은 여러분의 삶을 얼마나 평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까? 우리의 삶에 오늘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경건의 삶이 우리의 삶의 유일한 소망이며 기쁨임을 발견하는 귀한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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