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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하시는 이유 / 예레미야서 2:29-35

29 너희가 나에게 대항함은 어찌 됨이냐 너희가 다 내게 잘못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린 것이 무익함은 그들이 징계를 받아들이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 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31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캄캄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이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아니하겠다 하느냐
32 처녀가 어찌 그의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의 예복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셀 수 없거늘
33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34 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 때문이니라
35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저는 지금도 좀 그렇지만 예전에는 더 자세가 안좋았습니다. 그래서 군대 훈련소에서도 오자세라고 수류탄 던지는 것도 면제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금은 정신과 의사로 유명해진 한 교회선배와 이야기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네가 자세가 안 좋은 것은 공부를 잘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다가 허리가 굽었다는 말이 아니라 공부를 제법한다고 별로 사람들이 간섭을 안 하고 그냥 내버려두었고 남들이 뭐라고 해도 지가 뭐 잘난 줄 알고 고집이 있어서 무시하다가 잘못된 자세를 고칠 기회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생각할 때마다 책망을 받고 간섭을 받고 고침을 받아야 하는데 자기 자신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내버려두게 되면 결국 자신의 삶을 교정할 기회를 잃게 된다는 교훈을 다시 새기게 됩니다.

지난 주간부터 예레미야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 이어지는 말씀을 선지서 혹은 예언서라고 부릅니다. 우리말로 선지자(先知者), 혹은 예언자(豫言者)는 앞날을 내다보고 전해주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하지만 본래 히브리어에는 그런 뜻이 없습니다. 히브리어로 선지자를 나비(navi)라고 하는데 그 말은 하나님의 영감에 사로잡혀 말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대언하는 사람이 선지자이며 예언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언자라고 할 때에 미리 예(豫)자가 아니라 은행에 돈을 맡긴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예금(預金)의 예(預)자를 써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예언이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려주시는 것일 수도 있지만 지나간 일들에 대한 영적인 교훈을 깨우쳐 주고, 지금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잘못된 행실을 책망하고 지금 우리의 삶의 자세가 계속될 때에 우리에게 앞으로 다가올 일을 경고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예언의 근거는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체험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율법, 다시 말해 하나님과 맺은 언약입니다.

구약시대에 종교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제사장과 선지자입니다. 두 사람 모두 율법을 근거로 활동합니다. 제사장은 율법에 지시된 대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립니다. 이 때에 제사장은 신앙의 예측가능한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사람입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 매일 드려지는 제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주는 외적인 보장입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그 외적인 안정성을 깨뜨렸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면의 불신과 교만을 지적하며 하나님 앞으로 이스라엘을 돌이키려 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들이 알려주는 미래의 기준은 지금 내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얼마나 충실한가에 달려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내 삶을 대입하면 내 미래가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면 지금 어려운 형편에 있다고 할지라도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 내가 세상적으로는 형통하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떠나있다면 내 앞에는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해석해주고, 지금 우리의 행할 바를 깨우쳐주며 우리가 믿음의 길을 바르게 갈 때의 소망과, 하나님을 떠난 삶에 다가올 환란에 대해 경고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키시기 위해 하나님은 선지자들에게 그들의 지난날의 과오를 깨닫게 하고, 지금 그들의 그릇된 행실에 대해 책망하며 앞으로 다가올 심판에 대해 경고하는 역할을 맡기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언자들은 성경의 전반에 걸쳐 등장하지만 특별히 왕정의 시대, 특히 기원전 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기원전 8세기는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후, 아직 어느 나라도 멸망당하기 전, 특히 북이스라엘의 전성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점점 더 마음이 떠나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번영하고 있었고 그래서 전혀 영적인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에게 다가올 재난에 대해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들이 선지자들에 귀기울이기 보다는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그들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였기에 결국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심판이 임하였던 것을 보여줍니다.

그들이 선지자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은 것은 선지자들은 사회적인 권위를 누리기 어려웠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선지자들 중에는 왕족이나 제사장 출신도 있었지만 많은 선지자들이 출신성분을 알 수 없는 사회 계층 도처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도 네가 감히 무슨 자격으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 중에서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이 따라다닙니다. 자신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아야 했던 선지자의 비통함을 안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언대로 이루어져야 선지자가 성공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성경의 예언은 확정된 미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도록 돌이켜서 오히려 예정된 심판을 피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를 담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의 남유다의 백성들은 그가 전한 예언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했습니다. 결국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나라가 멸망하고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재앙과 수모를 당했습니다.

어렸을 때 동생들과 싸우게 되면 누가 잘못했든지 모두 함께 벌을 받았습니다. 벽을 보고 손을 들고 서 있다가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면 용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잘못을 저지르면 그때 그때 야단을 맞고 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언제 마지막으로 야단을 맞고 벌을 받았습니까? 성인이 되어서는 더 이상 애정을 가지고 우리를 야단치고 벌을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직도 우리는 사리 분별이 부족하고 지혜가 없고 실수투성이인데 누구도 우리를 꾸짖어주지 않습니다. 아니 꾸짖어준다해도 이제는 더 이상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반성하려 하지 않습니다.

종종 우리가 속한 조직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징계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우리가 징계를 받는다면 우리는 대부분 억울하고 생각합니다. 사실관계가 잘못되었거나 혹은 제대로 알려졌더라도 나만 그런 것은 아니고, 설령 그렇다해도 내가 잘못한 것에 비해서는 너무나 과한 처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요? 사실 그 반대의 경우도 많지 않을까요? 잘못을 했는데 가려지고, 슬쩍 넘어가고 솜방망이같은 처벌을 받은 적은 정말 한 번도 없습니까?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보면 우리가 보기에 모든 처벌은 다 형식적이고 너무 가볍고 제식구 감싸기를 한다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당사자가 되면 늘 억울하고 지나치게 처벌을 받는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여기에 밖에서 보는 시선과 내 자신의 판단 사이의 불일치가 있습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 점 점 더 주위에 불만스럽게 보이는 일들이 많아지지만 요즘 세상에 누가 말한다고 들어주지도 않을 것이기에 그저 참고 지내는 일들도 많습니다. 그러면 남들이 나를 보면서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요? 혹시 내가 어른이기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것은 없을까요? 내가 참고 있듯이 누군가도 나를 보고 참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내 나이 때문에, 내 사회적인 지위 때문에, 혹은 교회에서의 직분 때문에, 때로는 내 성질머리 때문에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일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사람의 말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의 삶을 교정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나 다른 이들에게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우리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고 자신의 삶을 교정해가고 있습니까? 다른 이들이 우리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기도하도록 얼마나 진심을 가지고 권하고 있습니까?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면서 여러 번 그 시대의 의미를 나누고 있습니다. 루터는 어떤 면에서 당시의 시대에 보내신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당시에 익숙한 기존의 질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특히 당연하게 여겨지던 교회의 영적인 권위에 도전하고 부당한 관습들, 비성경적인 가르침들을 거부하고 개혁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의 많은 사람들, 특히 그의 말에 귀기울여야 했던 교황들, 황제들,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의 말에 귀기울여 듣지 않았고 그를 파문하고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우리는 개신교인이기에 루터의 편에 서서 그 시대를 이해하고 루터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일 루터가 오늘 우리 앞에 있다면 우리는 과연 루터의 지지를 받을까요 아니면 루터의 비난을 받을까요? 우리는 과연 그런 비판을 받아들이고 그를 지지할까요, 아니면 세상을 어지럽히는 질서를 흔드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돌을 던질까요?

오늘날에도 우리의 신앙의 양심과 사회적 양심을 깨우는 책망의 소리는 도처에 있습니다. 물질과 욕망이 우상이 되어버린 잘못된 신앙에 대해 경고하고 이 시대의 자본주의의 모순과 매정함에 대해 경고하고 환경의 오염이 가져올 재앙에 대해 경고하고 사람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지 못하는 부당한 경쟁체제에 대해 경고하고 아직도 성별로, 학력으로 이루어지는 부당한 차별에 대해 경고하고 다른 이들의 고통에 둔감하고 매정한 우리의 매마른 양심에 대해 경고하는 소리들이 오늘날에도 있지 않습니까? 과연 우리는 얼마나 우리 귀에 들리는 경고의 소리들을 귀담아 듣고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습니까? 성경적 가치에 따라 자신의 가치관을 바로잡고 삶의 방식을 고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는 무죄하다고 외치며 징계를 거부하고 선지자들을 박해하다가 결국 그들의 예언대로 그대로 이루어지는 재앙을 그대로 겪고 말았습니다. 오늘 나의 삶에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 시대에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지하고 지혜없는 자가 되어 경고의 소리에 귀를 닫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의 음성을 경청하며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과 경고와 권면에 순종하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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