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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때가 되었습니다 / 예레미야서 8:4-7

4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5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6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고전입니다. 일리아드는 트로이 목마로 잘 알려진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로 많은 영웅들의 일화와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가득찬 책입니다. 그리고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중의 한 사람인 오디세우스가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의 모험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오디세우스는 인간 중에 가장 지혜로운 자라는 별명을 가진 전략가였고 트로이에 군인들을 숨겨놓은 목마를 들여보내는 계략을 제안한 사람이 바로 오디세우스였습니다. 그리스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의 편을 들었던 신들의 미움을 사서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풍랑을 겪고 괴물들을 만나는 등의 고난을 겪으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또 다른 모험담이 오디세이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모험을 떠나는 것도 큰 위험을 감내하는 것이지만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길 또한 그리 쉽지 않은 또다른 모험의 여정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추석을 맞이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가기 위해 분주한 시기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을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마음을 둘만한 고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가 어려서 살던 곳은 4-5층의 단층 아파트 단지였습니다. 두 동 사이의 공간이 제가 어려서 즐겨 놀던 장소였습니다. 그 곳에서 동네 친구들과 온갖 놀이를 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다시 그 곳을 찾아가 보았을 때에 생각했던 것보다 좁은 공간인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내 마음 속에 간직되었던 어린 시절 동네의 모습과 내 눈 앞에 있는 공간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서 아예 그 곳은 재개발이 되어 이전의 아파트들은 다 사라져버리고 새로 고층아파트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지도 위에서 사라져 버렸고 제 마음속에만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고향을 맞아 어르신들을 뵈러 갑니다. 그런데 어르신들도 더 이상 예전의 그 곳에 계시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고향은 내 마음 속에 있는 곳,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는 그 곳이 되어버렸지 더 이상 지상의 어느 특정한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자면 신앙이란 내 영혼의 고향을 찾고,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기다리시는 곳으로 돌아가는 여정입니다.

요즘은 생활 습관을 바꾸려고 노력을 해서 좀 달라졌지만 저는 한 동안 제 시간에 잠자리에 잘 들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되면 자리에 눕는 것이 아니라 어디든 피곤하면 쓰려져 자는 곳이 잠자리가 되곤 했습니다. 예전에도 그런 습관이 있어서 중학교 때에도 공부를 한답시고 버티고 앉았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내 불을 켜 놓은 채로 자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그 다음날이면 불켜놓고 잤다고 야단을 맞곤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저희집 뒤편에 고등학교를 다니던 형이 살고 있었는데 그 집에서는 불이 켜진 제 방을 보면서 “중학생도 저렇게 늦게까지 공부하는데 왜 그렇게 일찍 자냐”고 그 형을 야단치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미안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시간이 되면 일을 내려놓고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 건강한 습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언제든지 이 세상의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삶의 연습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때가 되면 하루를 감사하며 기도하고 안식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리고 매주일,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면 아무리 세상에서 바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잠시 일을 멈추고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찾아 갈 수 있는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부르시는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어느 때든지, 내가 원하는 때든지 그렇지 않든지 우리는 가야 합니다. 매일 매일의 삶에서, 매 주일의 삶에서, 늘 하나님이 부르시는 때에 돌아갈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에게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 부르심의 날은 두려움과 근심의 날이 아니라 진정한 평안과 안식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7절을 보면 하나님은 철새들의 예를 드시면서 “여호와의 규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철새들은 계절에 따라 삶의 자리를 옮깁니다. 제비와 같은 여름 철새는 우리나라에서 집을 짓고 살다가 겨울이 되면 더 따뜻한 남쪽으로 가서 겨울을 보내고 다시 여름이 되면 돌아옵니다. 두루미와 같은 겨울 철새는 더 북쪽에서 살다가 겨울이 되면 우리 나라로 와서 겨울을 나고는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철새들도 때가 되면 자신이 살던 고향으로 돌아갈 줄을 아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올 때를 알지 못한다고 하나님이 책망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것이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규례”라는 것은 우리 인생에 허락하신 참으로 신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가 잘아는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아버지가 집을 떠나겠다는 둘째 아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장면입니다. 이 아들이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아버지는 다 알면서도 아들을 떠나보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버지는 언젠가는 그 아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집을 떠나도록 허락하고는 다시 돌아올 그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결국은 세상의 허망함을 경험하고 아버지 집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를 깨닫고 이 세상의 헛된 수고를 그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기에 아버지의 또 다른 사랑이 있고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신뢰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베푸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다시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는 여정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그 허락의 의미를 우리는 바르게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곁을 영원히 떠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우리의 발로 다시 돌아오고 다시 하나님의 품 안에서 누리는 평안을 바라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보신 본문은 4절밖에 되지 않지만 이 안에 우리의 인생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유가 등장합니다.

먼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떠나도록 허락하십니다. 6절을 보면 그 떠나감이 “전쟁터를 향해 달리는 말”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전쟁터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 곳에서 승리하기를 원하고 그곳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달려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간다”(5절)고 말씀하십니다. 떠나간다 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어야 합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까지 나아가서는 안됩니다. 떠나갈 때가 있으면 돌아올 때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꾸만 더 멀리, 더 멀리 세상을 향해 떠나가 돌아올 줄 모르는 백성들을 책망하십니다.

4절에는 엎드려진 백성들의 모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싸움터에서 승리하고 만족을 얻기도 하지만 패배하고 상처를 입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헛된 기대가 무너짐을 경험합니다. 그때 우리는 돌아갈 길을 생각하여야 하고 아버지의 집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5절을 보면 사람들이 계속해서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넘어졌는데도, 실패했는데도, 그런데도 우리는 다시 일어나고 다시 돌이키기를 거부합니다. 넘어진 진창에서 계속해서 뒹굴면서 이것이 다인줄로 생각하고 벗어날 줄을 알지 못합니다. 한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세상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거짓된 가치관에 빠져서 아직도 뭔가 더 남아있다고 생각하며 우리를 찌르는 헛된 희망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떠나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우리에게 자유가 있고 내 마음껏 이 세상에서 뽐내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착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보내시는 하나님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심을 알지 못하고 떠날 때가 있으면 다시 돌아올 때가 있다는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종종 인생의 버킷 리스트, 즉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소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런데 버킷 리스트에 무엇이 들어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왜 여지껏 그것을 못했는지, 왜 지금도 못하고 사는지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금은 바빠서, 혹은 앞으로 여유가 생기면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그렇게 미루다가 결국 원하는 것은 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것에만 끌려다니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전에 시간경영에 대한 강의를 듣다보니 강사가 우리가 하는 일을 네 가지로 구분해보라고 합니다. 중요하고 급한 일,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 중요하지 않지만 급한 일,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계획을 세울 때에 이 네 가지 중에 무엇을 가장 고려 해야 하냐고 묻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요하고 급한 일”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강사의 이야기는 우리가 계획을 세울 때에는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에 가장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시간은 다급하지만 사소한 일들로 채워지고, 미뤄두었던 중요한 일들이 나중에 다급한 일이 되어서 우리의 스케줄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들을 먼저 해야 우리의 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시간을 다스리며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지금 하고 있습니까? 언제까지 미룰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언젠가는 돌이켜서 다시 믿음의 길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결단하지 못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여전히 세상에 미련이 많고 지금 눈앞에 보이는 신기루 같은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언제든지 돌아려고만 하면 돌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회개와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꼭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개만 하면 용서해주신다면 내 마음대로 죄를 짓고 살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천국가는 것이 인생을 가장 즐겁게, 효과적으로 사는 것 아닙니까?” 여기에 바로 중요한 착각이 있습니다. 내가 돌아가고 싶다고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가치관이 세상에 물들어 버렸다면, 왜 돌아가야 하는지,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립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났는데 너무 멀리 가버리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빠져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는 우리가 돌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어두운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우리의 귀를 가려서 우리가 되돌아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625전쟁의 흥남철수작전에 대해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함경북도 개마고원의 장진호 전투와 흥남철수 작전은 미 해병대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투, 그러나 또 가장 성공적이었던 작전이라고 평가됩니다. 북한군을 쫓아 북진하여 압록강을 코앞에 두고 있던 미해병대는 압록강을 건너온 중공군에 의해 포위되고 맙니다. 이제는 작전명령이 바뀌어서 퇴각 자체가 절대절명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적의 포위를 뚫고 개마고원의 한파와 동상과 싸우며 성공적으로 퇴각할 수 있었고 그것도 수많은 피난민들과 함께 성공적으로 퇴각할 수 있었기에 가장 성공적인 퇴각으로 불립니다. 오디세우스의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온갖 방해를 뚫고 돌아가는 길도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동명의 소설을 소재로 한 콜드 마운틴(Cold Mountains)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미국의 남북전쟁 시기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 남부에 살던 젊은이였는데 그는 남부에 대한 북부의 간섭을 부당한 것으로 여기고 혈기로 입대를 결정합니다. 그러나 동족끼리 싸우는 전쟁터의 참혹함을 보며 환상이 깨지고 인생의 길을 잃은 채 부상을 입고 야전 병원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고향에서 사랑하던 여인으로부터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 편지 속에서 그가 사랑하던 여인은 그에게 이렇게 간청합니다. “당신이 싸우고 있는 중이라면 싸움을 멈추세요. 당신이 행진하고 있는 중이라면 행진을 멈추세요. 그리고 내게로 돌아오세요. 당신이 내게로 돌아오는 것이 나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그는 허망한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이의 부름을 듣고 탈영을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영화의 내용은 그가 탈영병으로서 자신을 다시 잡아오려는 사람들을 피하며 온갖 난관을 이겨내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 어디로 행진하고 있습니까? 지금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나를 부르시는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나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고, 세상의 전쟁터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멈추고, 더 이상 거짓을 고집하지 않고, 아버지 집으로 이제는 돌아가야 합니다. 부르시는 음성이 아직 들릴 때에, 그 음성을 거부하지 말고, 결단의 시간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의 품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고향을 향하는 마음으로 분주한 시기입니다. 이때에 우리의 영혼의 고향을 함께 기억하고 우리를 돌아오라고 부르시는 그 음성을 듣고 돌이켜 하늘 아버지의 집을 향하는 우리의 영혼의 거룩한 결단이 함께 있는 행복한 명절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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