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교회 :::
현대교회 로고
신앙으로의 초대 현대교회 이야기 예배와 모임 나눔과 섬김 참여와 헌신
예배안내 양육과정 안내 매일묵상 교회학교 목장안내


서브메뉴 안내 - 섬기는 이들


댓글 0

칼을 칼집에 꽂으라 / 요한복음 18:10-11


10 이에 시몬 베드로가 칼을 가졌는데 그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 ‘전쟁과 평화’, ‘부활’을 저술한 문학가이기도 하지만 또한 비폭력 평화주의의 주창자로서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나이팅게일의 활약으로 유명한 크림전쟁에 참전하여 전쟁터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그는 이후 점차 비폭력 사상을 발전시켜 가면 러시아라는 국가가 이념으로 삼고 있는 기독교 정신의 핵심은 비폭력 평화주의인데 국가와 제도화된 교회가 오히려 폭력을 정당화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톨스토이의 비폭력 사상을 담은 “하나님의 나라는 네 안에 있다”를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사람들 중에 우리가 잘 아는 인도의 간디가 있습니다. 그는 이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아서 “톨스토이 농장”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평화주의를 실천하고자 하였고 말년의 톨스토이와 서신교환을 하여 인도의 상황을 알리고 톨스토이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톨스토이의 평화주의는 성경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에서 폭력적인 장면들을 발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근거로 평화운동에 헌신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근거로 그들의 적을 악으로 규정하고 온갖 저주와 폭력을 주저없이 퍼붓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성경의 모든 사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향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로부터 흘러나오는 진리가 우리의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정신의 핵심이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에서 읽어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폭력에 대해 어떤 교훈을 주셨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체포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가 무기와 횃불을 든 군인들, 여러 하수인들을 거느리고 예수님을 찾으러 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가 반항을 하면서 가지고 있던 칼로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쪽 귀를 베어버립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하시고 그 자리에서 체포되셔서 끌려가셨습니다.


그 상황에서 베드로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칼을 휘두른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베드로는 그 날 그 시간에 칼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오늘날이나 그 시대에나 칼은 무기고 흉기이며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지니고 다니는 휴대용품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그날 칼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성에 들어갈 때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바라보고 계셨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 나라가 해방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무력을 동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들 12명이 힘을 합쳐 로마군대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이 뭔가 대단한 계획을 가지고 계실 것이고 다만 그들은 만일에 대비하여 칼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도 출신이 다양했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당시에 열심당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실제로 칼을 가지고 다니며 로마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사람들에게 백주에 테러를 가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열심당이라고 공개적으로 불리는 시몬과 같은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은 그가 돈 때문이라고 단언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룟 유다 역시 혁명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예수님을 배신한 것이라는 해석을 합니다. 그 해석이 맞다면 베드로는 조금 둔하여 아직도 예수님의 생각을 헤아리지 못하여 여전히 칼을 지낸 채 예수님 곁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그러한 위험한 상황 속에서 칼을 소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 불가피한 것, 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압도적인 로마의 무력 앞에서 베드로의 칼이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앞서 간디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영국이라는 작은 섬나라가 인도 전체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압도적인 무력이 아니라 도덕적인 우월에 있었습니다. 광대한 인도땅을 얼마 되지 않는 관리들, 그리고 인도인이 주축이 된 군대로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인도인들은 무능하고 열등하기에 영국인의 지배를 받아야만 개화될 수 있다는 논리를 전파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인도를 지배하고 영국 문화를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벤 킹슬 리가 주연한 “간디”라는 영화를 보면 간디의 사상에 동조하던 인도인들이 평화의 행진을 하는데 군인들이 그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장면을 취재하던 영국의 기자가 기사를 송고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서구가 누려왔던 도덕적 우월성을 오늘 잃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은 누가 더 도덕적으로 우월한 것인지, 누가 더 야만적인지에 대한 기존 관념을 전복하고 영국의 작은 무력보다 더 큰 인도의 정신의 힘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인도인들의 자부심을 깨우고 영국으로부터 자유를 얻어내는 여정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게 됩니다.


예수님은 왜 칼을 칼 집에 꽂으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에게 평화주의는 편안한 안락의자에 앉아서 구상하는 하나의 관념, 사상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자신을 잡으러 오는 무력 앞에서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에게는 곧 고통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셨던 것을 여러 곳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능력을 당신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셨고 무기력하기 끌려가셔서 빌라도의 불의한 재판정에 서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상의 핵심을 평화주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성경을 보면 평화주의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평화주의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이 선택하신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악한 권세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도구는 죽음의 두려움을 흔들며 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폭력을 행사하여,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마찬가지로 죽음의 두려움을 흔들며 그들을 이기신다면 결국 승리하는 것은 죽음의 권세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폭력으로 폭력에 맞서시지 않고 담담히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죽음에서 승리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권세가 결코 억압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능력이 예수님에게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평화를 위한 많은 노력이 있지만 오늘날 복잡한 국제정세속에서 폭력의 힘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습니다. 먼 나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사는 이 땅은 가장 높은 수준의 무력이 서로를 겨누며 대치하는 곳입니다. 과연 우리가 우리의 칼을 칼집에 꽂을 수 있을까요?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며 미사일을 쏘아대며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데 우리가 칼을 칼집에 꽂는 것은 우리보고 다 죽으라는 것 아닙니까? 우리의 칼이 없이 현실 세계에서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에게는 죽음의 길을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제자들의 생명을 살리시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제자들은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의 칼이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을까요? 칼은 칼을 부르고, 큰 칼은 더 큰 칼을 부릅니다. 결국 이렇게 될 때에 너와 나 모두의 패배 외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마저 평화와 화해의 정신을 외면한다면, 대립과 갈등 외에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 길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과연 이 땅에는 어떤 희망이 있겠습니까? 거창한 정치와 군사적인 해법들은 우리에게서 멀겠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의 손에도 크고 작은 칼이 들려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손에서 칼을 내려놓는 일, 우리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일, 나의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우리의 부당한 논리가 부당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일상화된 타인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무례를 시정해가는 일, 다른 이들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하고 우리의 편견들을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조금씩 폭력의 권세에 금이 가게 하고 평화로 가는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상영중인 영화 중에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미국 나사(NASA)에서 일하던 흑인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던 이야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실력이 있지만 피부색 때문에 인정을 받지 못하던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자신의 실력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준비하고 설득하며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관철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에서 흑인들의 권리주장도 아름다운 것이지만 주위의 백인들이 처음에는 그들에게 익숙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조금씩 자신의 편견, 잘못된 관심을 깨닫고 함께 고쳐가는 과정에도 주목하게 됩니다.


내가 부당한 힘의 행사에 희생이 되는 것도 억울한 것이지만 내가 힘이 있어서 그 힘으로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호소는 다만 우리의 위선과 이중성의 표현이 될 것입니다. 힘이 있는 사람들이 그 힘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을 때에 진정한 평화로운 대화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폭력은 우리의 매우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사에 반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하여 내가 행사하는 모든 부당한 힘이 곧 폭력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향해 가해지는 폭력을 고발하고 그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또한 내가 가하는 폭력이 어떠한 것인지를 깨닫고, 내가 지금 휘두르고 있는 칼이 어떤 것인지를 깨닫고 그 칼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눈에는 칼이 우리에게 현실적인 대안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국 대화와 화해와 평화의 길이 결국 우리 모두가 바라는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오늘 내가 내 손에 들고 있는 칼이 어떤 것인지 깨닫고 그 칼을 내려놓고 우리를 평화의 길로 부르신 우리 주님을 함께 따라가는 은혜로운 한주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주일 설교 영상   ADMIN 2020.04.19 35
공지 매일묵상 안내   ADMIN 2017.03.11 225
28 2017.7.9(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7.09 56
27 2017.7.2(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7.02 50
26 2017.6.25(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6.25 45
25 2017.6.1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6.18 53
24 2017.6.1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6.11 58
23 2017.6.4(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6.04 49
22 2017.5.2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5.28 51
21 2017.5.2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5.21 57
20 2017.5.14(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5.14 61
19 2017.5.7(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5.08 67
18 2017.4.30(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4.30 67
17 2017.4.23(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4.23 53
Board Pagination ‹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Next ›
/ 16
Designed by hikaru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