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교회 :::
현대교회 로고
신앙으로의 초대 현대교회 이야기 예배와 모임 나눔과 섬김 참여와 헌신
예배안내 양육과정 안내 매일묵상 교회학교 목장안내


서브메뉴 안내 - 섬기는 이들


댓글 0
정직함과 온전함 / 열왕기상 15:9-15

9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제이십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10 예루살렘에서 사십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
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13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14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15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열왕기는 성경 66권 중에서도 역사서라고 불리는 책들에 속합니다. 열왕기는 이스라엘의 왕들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적인 교훈을 얻기 위해 성경을 읽지만 구약성경 특히 여러 왕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남의 나라 역사까지 알아야 하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역사를 생각하며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어가다 보면 한국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섭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고 북이스라엘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경배하게 되고 또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북이스라엘을 떠나서 예루살렘으로 내려오는 이야기를 읽게 되면 우리나라가 해방 후에 남과 북으로 갈라지고 북쪽에서 김일성 가문을 우상화하고 김일성 동상을 절하는 모습과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찾아 월남했고 또 탈북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역사하신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고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소중한 영감과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역사서들이 있고 그 중에서 조선왕조실록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된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인데 중국의 수 천 년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의 공식 사서 25권을 모은 25사(25사) 전체를 합한 것보다 더 분량이 많을 만큼 상세하고 또 객관적으로 서술한 역사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열왕기와 조선왕조실록을 비교해보면 물론 어느나라의 다르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서는 과거에 일어난 모든 것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정한 관점을 가지고 과거의 사건들을 선별하게 되는데 그 관점을 사관이라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유교적인 사관을 가지고 기록되었기에 왕을 평가할 때에도 유교적인 덕목을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우리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라고 생각하는 세종대왕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은 이렇게 평가합니다.

“임금은 슬기롭고 도리에 밝으매, 마음이 밝고 뛰어나게 지혜롭고, 인자하고 효성이 지극하며, 지혜롭고 용감하게 결단하며,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되 게으르지 않아,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았다. 친척들과 도탑게 화목하였으며, 두 형에게 우애하니, 사람이 이간질하는 말을 못하였다. 신하들을 예의를 갖춰 대하고 대국을 섬기기를 정성으로써 하였고, 이웃나라를 사귀기를 신의로써 하였다.”

효성이 지극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며 예의범절에 바른사람, 외교관계에서도 대국을 잘 섬기는 왕이기에 훌륭한 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우리에게 별로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유교적인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교적인 사관으로 기록된 역사서를 읽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배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유교적인 인생관, 세계관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기록한 관점은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성경 가운데 있는 역사서들은 역사서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신앙적인 입장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해석하는 일종의 신앙서적입니다. 유대교 전통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깨우쳐주는 책들이기에 선지서라고 부르며 다른 선지자들의 글들과 함께 분류합니다. 선지자들의 선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듯이 역사적인 사건을 통해 깨우쳐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왕기에 실린 왕들에 대한 평가는 치적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들의 신앙에 대한 평가입니다.

구약성경의 역사서에서 왕들을 평가하는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이 바로 정직함과 온전함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11절에서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라고 평가하고 14절에서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서 온전하여” 라고 평가합니다.

성경에서 악한 왕이라고 평가받은 왕들이 사실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았을 때에 큰 업적을 쌓은 왕들인 경우도 있고 정직하고 온전한 왕이라고 평가된 왕의 시대가 늘 번영하고 평화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한결같이 정직함과 온전함을 기준으로 왕들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정직함이란 어원적으로는, 평탄하다, 바르다, 곧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정직하다고 번역될 때에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는데 있어서의 정직함,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그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꼼수를 부리거나 편법을 쓰지않고 자의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해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율법을 그대로 준행하는 삶에 있어서의 강직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온전함이라는 말도 근본적으로 정직함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온전함이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들어온 “샬롬”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샬롬은 화평, 평화로 번역되지만 본래 샬롬의 뜻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믈 말하는 것이고 태초에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의 온전함이란 하나님이 지으신 자기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삶, 균형잡히고 절제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그려줍니다.

그렇지면 여기서 온전함이라는 것이 모든 면에서의 완벽함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모든 면에서 완벽한 사람이 있다한들 그야말로 인간미가 떨어지는 사람,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그런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에서 온전하다고 평가되는 왕들에게도 불완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아사 왕도 국내외적으로 여러 실책도 그렇게 모든 면에 있어서 완벽하고 철저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온전함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조화와 균형이라는 것은 절대 깨어지지 않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다시 회복하는 힘, 복원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이란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그 병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체력,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까?

인간은 유혹을 받고 흔들리며 지혜가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고 범죄하여도 회개하며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온전한 삶입니다.

정직하고 온전한 삶을 산 대명사로 다윗과 욥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삶에도 많은 허물이 있었고 큰 죄를 짓기도 했고 욥도 큰 재앙 앞에서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잃지 않았고 다시 은혜의 자리를 회복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의 정직함과 온전함을 드러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왕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과 온전함을 일관되게 요구하는 것일까요? 왕은 성직자가 아니고 선지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왕의 사명은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고 내적으로는 국가를 통합하고 번영을 가져오고 외적으로는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더 나아가 영토를 확장하여 나라의 위세를 떨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왕이 어느 나라에서나 위대한 왕으로 불리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 다른 지역의 역사를 보면 왕들에게 있어서 종교적인 신앙은 부차적인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교란 정치적인 권력을 강화하고 백성들을 통합하는 수단의 의미를 갖습니다. 특히나 다양한 종교를 믿는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왕이 자신의 신앙을 배타적으로 강요하지 말고 그들의 종교를 인정해주는 유연함을 갖는 것이 오히려 더 좋은 덕목이 됩니다. 그런 신들과 함께 왕을 그 신들처럼 섬기는 것을 함께 요구할 뿐입니다. 고대 중동의 대제국들이 그랬고 로마제국도 그러했습니다. 한 나라의 발전과정에서 왕실에서 새로운 종교를 들여오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에 각국은 앞 다퉈서 불교와 유교를 수입하여 나라의 체계를 잡고 선진문물을 도입하는 통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왕의 신앙이 얼마나 진실되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얼마나 충성되게 지켰느냐를 가장 중요한 왕의 사명이며 평가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역사서가 기록된 이유가 이스라엘이 어떻게 세워졌는가, 그리고 왜 멸망했는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왕건이 고려를 세우고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듯이 어떤 영웅이, 어떤 가문이 세운 그런 나라가 아니라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보잘 것 없는 백성을 하나님이 건지시고 은혜로 세워주신 나라라는 깨닫고 그래서 그들이 멸망한 이유는 이 나라를 세우시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를 기록한 이유는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겼는지 돌이켜보며, 왕들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정직하고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반성하고 회개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지 못했던 왕의 역사를 되새기며 반성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온전했던 왕들을 통해 모범을 발견하며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나라를 새롭게 일으키기 위해 기록된 책입니다.

멸망의 이유를 찾게 되면, 미래의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못한 것이 멸망의 원인이라면 이제 다시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과 온전함을 회복하므로 이 나라, 이 민족에 다시 새로운 미래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와 소망을 갖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렇다면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떠합니까? 저는 최근에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는데 그 책에는 일제 말에, 그리고 해방 후에 활동한 여러 애국지사들, 지식인들의 면면에 대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었고 또 우리가 목회자라고 알고 있는 여러 사람들도 등장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기독교에 대해 많은 비중을 두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가 자기 책에 대해 설명하면서 “내 책에 기독교 이야기가 많은 것은 사실상 기독교가 대한민국의 설계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을 알고는 큰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조선왕조를 그저 다시 복원한 그런 나라가 아니라 나라를 잃은 후에 우리가 이제 다시 어떤 나라를 세워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기독교인들이 제시한 새 나라의 열망에 의해 새롭게 설계된 나라였던 것이 한 양심적인 학자의 증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가지고 왕들을 평가하며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지표를 삼았듯이 우리도 우리나라를 세우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를 세워가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한 나라의 역사의 근본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개인의 인생의 근본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지난달까지 주기도문 공부를 마치고 함께 공부하던 분들과 하루 시간을 내어 기도하며 자신의 인생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신앙의 힘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준으로 여러분의 지나온 인생을 평가합니까? 무엇 때문에 자랑하고 무엇 때문에 수치스러워합니까? 과거는 지나간 것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어떤 관점으로 과거를 돌아보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과거는 달라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우리의 미래도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우리 자신의 선택과 결단에 의해 이루져왔고 예기치 못한 사건들에 의해 어지러진 삶이었다면 우리의 미래의 소망의 근거는 무엇입니가? 실수 투성이의 내 자신,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 속에 우리 미래에 대한 소망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설계자이며 인도자이심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연약하고 죄의 유혹에 흔들리는 사람들이지만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인생을 인도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의 인생에 소망이 있습니다.

지금도 경제적인 문제가 늘 우리를 힘들게 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판에 흔들리며 살아가지만 신앙인으로서 우리의 질문은 우리 인생의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했는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온전한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에 우리가 넘어졌어도 일으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되며 그 사랑이 영원토록 끊어지지 않는다는 놀라운 약속을 듣게 됩니다.

함께 역사서를 읽으며 그 속에서 우리의 인생을 다시 보는 신앙의 관점, 은혜의 관점을 깨닫고 앞으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온전하게 세워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주일 설교 영상   ADMIN 2020.04.19 65
공지 매일묵상 안내   ADMIN 2017.03.11 245
32 2017.8.6(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8.06 56
31 2017.7.30(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7.30 43
30 2017.7.23(주일) 주일설교요약   ADMIN 2017.07.30 48
29 2017.7.16(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7.17 57
28 2017.7.9(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7.09 56
27 2017.7.2(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7.02 52
26 2017.6.25(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6.25 47
25 2017.6.1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6.18 55
» 2017.6.1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6.11 60
23 2017.6.4(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6.04 50
22 2017.5.2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5.28 53
21 2017.5.2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5.21 59
Board Pagination ‹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Next ›
/ 16
Designed by hikaru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