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교회 :::
현대교회 로고
신앙으로의 초대 현대교회 이야기 예배와 모임 나눔과 섬김 참여와 헌신
예배안내 양육과정 안내 매일묵상 교회학교 목장안내


서브메뉴 안내 - 섬기는 이들


댓글 0
한 영혼을 구하기위하여 / 갈라디아서 4:12-15

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계속해서 갈라디아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에 교회를 세웠고 바울이 떠난 후 갈라디아 교회에서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갈라디아서라는 서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선교 사역은 대부분 사도행전에 기록이 되어있지만 갈라디아에 어떻게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사도행전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2차선교여행때에 갈라디아 지역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2차선교여행은 바울의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여행이었습니다. 바울은 선교 초기에 소아시아, 즉 지금의 터키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을 했는데 2차선교여행 중에 많은 난관을 맞이하게 되었고 결국은 하나님이 소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심을 깨닫고 유럽으로 넘어가서 빌립보에서부터 아테네와 고린도까지 내려가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여러 가지 여러움 중에서도 갈라디아에서 최선을 다하여 복음을 전했음을 알려 줍니다.

바울이 겪었던 고난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는 영적인 문제들도 있었겠지만 바울을 힘들게 했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그의 외모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외모가 사람들에게 그리 호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에는 “그들의 말이 그의 편지들은 무게가 있고 힘이 있으나 그가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그 말도 시원하지 않다 하니”(고린도후서 10:10)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바울의 서신을 보고 바울의 깊은 신앙과 통찰력에 감탄을 하던 사람들도 직접 바울을 만나보고는 실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외모는 어땠을까요? 바울의 외모에 대한 성경상의 기록은 없지만 초대교회에 널리 읽혔던 일종의 초대교회의 야사(野史)라고 할 수 있는 “바울과 테클라 행전”(The Acts of Paul and Thecla)에 바울의 외모에 대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는 테클라라는 여인이 바울을 만나고 회심하여 헌신하게 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책에 의하면 바울은 “키가 작고 머리는 벗어졌고 다리는 휘었고 몸은 다부진데 눈썹이 서로 붙어 있고 코가 컸다”고 묘사되어 있습니다. 후대의 성화들은 사도들을 미화하는 경우가 많지만 초대교회의 기록들은 비교적 사실적인 묘사를 보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외모 비호감이었을뿐 아니라 바울은 육체의 질병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병이었는지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이 되어있지는 않지만 사역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만큼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 번 간절하게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없애달라고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이 고린도후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질병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데 간질이었다는 설도 있고 안질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설의 근거가 모두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의 14절에 보면 바울은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버린다는 말은 의역한 것이고 직역하면 “침을 뱉는다”는 의미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침을 뱉었습니다. 그것은 부정한 것이 옮지 않도록 하는 의미이기도 하고 일종의 치료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을 보면 당연히 사람들이 침을 뱉었어야 했는데 갈라디아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바울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에게는 정말로 큰 짐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바울이 간질병 환자였다면 정상적인 선교활동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기에 다른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15절을 보면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6장에 보면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눈이 좋지 않았다고 봅니다. 바울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갈라디아 사람들이 자신의 눈이라도 빼어주고 싶을 만큼 안타까워했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어느 설이든 구체적인 병명은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질병이었든지 간에 오늘 본문을 보면 갈라디아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할 만한 육체의 연약함이 바울에게 있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지만 나면서부터 로마시민이 되는 대단한 집안의 출신이었고 학식으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자존심이 상해서까지 낯선 곳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헌신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인생의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렇게 간절하게 열정을 가지고 희생하며 도전하며 살았던 것일까요?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갈 때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십니까?

인생의 단계를 여러 가지 기준으로 나누어 볼 수 있지만 오늘은 신앙적인 관점에서 세가지 단계를 구분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첫 번째 단계는 받는 단계입니다. 유아기적에 우리는 전적으로 무력한 존재로 태어나기에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성인이라도 유아기에는 다른 사람을 돕기는커녕 자기 자신이 도움을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런 존재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첫 경험을 합니다. 유아기에는 그저 방긋방긋 웃기만 해도 가족들이 자신이 필요한 것을 공급해줍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그냥 방글방글 웃기만 해도 모든 것을 공급해주던 사람들이 이제는 눈살을 찌푸리고 내게 무엇을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성장을 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인지하게 되고 이제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나도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거래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철이 들었다는 말을 듣게 되고 비로소 사회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두 번째 단계는 받는 단계의 연속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내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대가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래를 하지만 가능한 유리한 거래, 적게 주고 더 받는 그런 거래를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사기의 위험이 존재합니다. 따지고 보면 적게 주고 더 주는 경우가 존재하기는 쉽지 않지만 우리는 늘 남들이 나를 그렇게 대우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어이없는 일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게다가 정당한 댓가를 주고받는 거래에서도 당사자가 다 만족을 얻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받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에 받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주는 것은 크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거래의 세계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내가 치러야 하는 댓가는 늘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같이 원하는 사람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기대보다 적은 것을 준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삶은 더 지치고 피곤하게 됩니다. 늘 세상에서 받는 대우 때문에 상처를 받고 열심히 수고해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허무함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거래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마지막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베푸는 단계, 주는 단계가 시작됩니다. 거래가 타자의 존재를 인지하므로 시작된다면 주는 단계는 먼저 죽음을 인지하면서 시작됩니다. 결국 인생의 마지막에 모든 것이 0으로 돌아가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 어떤 종교적인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내가 무엇을 위해 받고자 했는지, 어차피 언젠가는 모든 것을 다 두고 가야 하는 인생인데 내가 왜 그렇게 악착같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찾아오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주는 세계는 또 다른 타자, 그러나 우리에게 무한히 무엇을 요구하는 존재들, 내가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는 거래를 해야 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이미 우리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주시는 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내가 은혜받은 존재임을 깨닫게 됨으로 시작됩니다. 거래의 세계에는 받은 만큼 내놓지 않을 때에 우리를 책망하는 존재들 사이에 우리가 둘러싸여있음을 깨달으면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주는 세계는 거저주고 베풀고 섬기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시는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때때로 베푸는 것이 보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막상 그렇게 쉽게 베풀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다들 받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에 내가 큰마음을 먹고 베풀어도 내가 기대한 감사나 존경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도 뭔가 주고 나면 어떻게든지 내가 준 것에 대한 대가를 받고자 하는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고 그러다보면 결국 상처를 받고 실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근본적인 가치관을 바꾸지 않고 여전히 받는 세계, 거래하는 세계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주고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베푼다는 것은 일시적, 예외적인 사건이고, 그 결과가 그다지 우리에게 큰 감흥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는 세계는 우리가 경험해온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이지만 그러나 오히려 우리 자신의 내면 더 깊은 곳에 형성되어 있는 우리의 정체성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베푸시고 기쁨을 느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에 베푸고 나눌 때 더 큰 만족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인간이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면, 받는 것보다도, 거래하는 것보다도 주는 삶을 살아갈 때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일단 내가 주는 세계를 경험하게 되면, 그래서 내 안에 천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제야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천사와 같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게 됩니다. 이전에는 사람들이 다 받기를 원하고 서로 경쟁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이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고 베푸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래서 내가 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한 것임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전에는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영적인 세계를 깨닫게 된 후에는 베푸는 삶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육체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굴하지 않고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세계 속에 있는 기쁨을 발견하면서 그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고 더 깊은 헌신을 할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헌신의 삶의 도전을 하게 될 때에 자신의 그 순수함을 발견하고 자신을 천사와 같이 대해주는 정말로 천사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4절에서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는 감격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하나님께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커서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선교사가 되었는데 선교지를 가니까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주시더라는 고백을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고자 할 때, 내가 받고자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더 큰 은혜를 느끼게 되고 그동안 받은 은혜가 얼마나 컸는지를 더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공급하시고 베풀어 주시지를 더 많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도 편애를 하실까요? 저는 하나님도 편애를 하신다고 느끼곤 합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을 더 사랑하셔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베푸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한 가지를 베풀어 주시면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하며 열 가지를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나누는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더 사랑스럽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자신의 본성이 요구하는 대로 충실하게 살았는데 왜 행복하지 않습니까? 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려고 하는데 왜 인생은 허무하고 답답합니까?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눈앞에 어떤 세계가 펼쳐져 있습니까? 여러분의 눈앞에 사람들이 각자 자기 자신만을 위해 아우성을 치고 있는 세계만이 보인다면, 아직은 우리가 받는 세계, 거래하는 세계 속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영적인 존재이고 하나님을 닮게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에게 덮어 씌워 놓은 겉껍데기를 벋어버리고 우리의 진정한 영적인 자아를 되찾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거래의 유혹에서 벗어나서 무조건적으로, 나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에게,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주어보는 경험을 조심씩 쌓아 가야 합니다. 거래에 익숙해진 내 모든 계산을 내려놓고, 내가 착한 일을 하면 뭔가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을 얻게 되겠지하는 계산까지 버리고 그저 무조건 주고, 무조건 베푸는 그런 도전을 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끔씩 나의 마음에 작은 음성을 들려주셔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보게 하시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섬김의 자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순간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바람에 그 좋은 기회들을 놓쳐버리곤 합니다. 하나님의 그 작은 부르심에 한번쯤은 무조건적으로 반응해 보는 경험을 해봅시다. 그리고 그런 도전을 통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주면 줄수록 더 많은 은혜를 누리게 되는 신비한 세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영적인 자아를 깨닫고 나누고 베풀므로 더 큰 은혜를 누리는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주일 설교 영상   ADMIN 2020.04.19 66
공지 매일묵상 안내   ADMIN 2017.03.11 245
32 2017.8.6(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8.06 56
31 2017.7.30(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7.30 43
30 2017.7.23(주일) 주일설교요약   ADMIN 2017.07.30 48
29 2017.7.16(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7.17 57
» 2017.7.9(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7.09 58
27 2017.7.2(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7.02 52
26 2017.6.25(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6.25 47
25 2017.6.1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6.18 55
24 2017.6.1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6.11 60
23 2017.6.4(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6.04 50
22 2017.5.2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5.28 53
21 2017.5.2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17.05.21 59
Board Pagination ‹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Next ›
/ 16
Designed by hikaru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