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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2 / 마태복음 6:9-15

오늘은 2019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한 학년 올라간다는 것이 엄청난 변화처럼 느껴지지만 학창시절이 지나고 나면,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 해가 바뀐다고 진학이나 입학이나 진급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더 많아지게 되고, 그러면서 시간은 더  빨리 흘러가고 한 해 한 해의 변화와 차이는 별로 그렇게 즉각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문뜩 달라져 버린 자기 자신의 모습, 다른 사람들의 모습, 이 세상의 모습을 깨닫게 되곤 합니다. 

저희 집 식구들은 해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나서는 새해의 계획을 같이 세워봅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무슨 계획을 세웠는지 조차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 해를 마감하게 될 때에 연초에 무슨 계획을 세웠었는지 찾아보게 되면 내가 그때 그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고 당황하게 되기도 합니다. 시간이 점점 빨리 흘러서 한 해라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게 느껴지기 때문에 무슨 계획을 세우고 성취를 하고 결산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도 않고 그렇게 큰 의미를 두게 되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또 그렇고 그런 한 해가 지나갔고 또 그렇고 그런 한 해가 다가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그렇고 그렇게 우리의 인생도 지나가게 되는 것일까요?

이렇게 혹은 저렇게 되더라라는 말은 사실은 참으로 무책임한 말입니다.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한 것이지요. 그러면서 슬쩍 책임을 돌려버리는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러나 시간이 우리의 인생의 주어가 아닙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우리들입니다. 한해가 지나가고 또 새로운 한해가 옵니다. 그러나 2019년과 2020년 사이에서 지구는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습니다. 시간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갑니다. 그러한 자연의 순환과 흐름에 우리가 인위적으로 단위를 만들어서 측정을 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신앙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우리에게 찾아오는 새 해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소중하고 가치있게 사용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그렇게 되더라”는 말과 함께 시간의 흐름에 모든 것을 흘려보내기 시작합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모든 것은 변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원치않는 변화에 저항하며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전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자 했는데 그렇게 잘 되지 않는 것을 경험하면서 그냥 그렇게 흐르는 시간에 자기 자신을 내어맡기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의 유일한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의 세계 속에서 시간을 바라보면서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내가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삼던 것에서부터 이제는 하나님이 원하시고 원하시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살아가도록 가치관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정치가 혼란스러운 것을 보면서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무책임함이나 무모함에 대해 분노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지금 내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의식적으로 느끼고 교정하고 변화시켜가며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중에 뮤지컬을 영화화한 캣츠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세계 4대 뮤지컬 중의 하나라고 불리는 작품을 영화화 한 것이라 많은 관심을 모았는데 원작 자체가 영국의 시인 T.S.엘리엇의 시를 바탕으로 한 오묘한 내용인데다가 고양이들이 주인공인데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그 위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고양이의 분장을 덧입히는 새로운 방식을 사용을 했는데 그 효과에 대해 여러 가지로 비판이 많으면서 별로 흥행에는 성공을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뮤지컬 캣츠에서 가장 유명한 메모리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When the dawn comes, tonight will be a memory too
새벽이 오면 오늘 밤도 추억이 되겠죠.
And a new day will begin
그리고 새로운 날이 시작될 거예요.

메모리라는 노래는 유명한 노래일뿐 아니라 가사도 매우 예술적이고 감동적인데 이 대목은 사실 우리나라의 대중가요하고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누구나 다 알고 표현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가사를 보는 순간에 뭔가 번뜩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지금 내 과거를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새벽은 미래이고 오늘 밤은 현재이고 추억은 과거입니다. 우리는 과거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이미 일어난 일들의 결과의 영향 속에서 살아가고, 나의 과거라는 짐을 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과거가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 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볼 때에도 그 사람의 과거를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 그 과거는 확정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과거로 쌓여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과거는 계속 새로워지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추억을 만들고 과거를 만들고 과거를 변화시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지금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고 앞으로도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오늘 하나님의 은혜로 감화를 받아서 참으로 용서하기 어려웠던 누군가를 용서하면 이제 나는 그런 사람까지도 용서한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런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인색하게 평생을 살아왔다고 해도 나는 오늘 그러한 나의 모습을 변화시킬 수 있고 이제 베푸는 사람이 되어서 나의 인생의 남은 날들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밤이 지나고 찾아오는 새로운 날은 오늘 밤이라는 새로운 추억을 가진 날,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날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통해서 과거를 바꾸고, 그렇게 해서 또 새로운 미래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올 가을부터 계속해서 기도에 대한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이 18번째 시간이며 마지막 시간입니다. 기도는 소망의 언어이며 우리의 삶의 변화의 현장입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정체성을 날마다 새롭게 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지난 주에 이어서 주기도문의 뒷부분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지만 주기도문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앞 부분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기도이고 두 번째 부분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간구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간구이고 두 번째 간구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간구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주기도문의 뒷부분에 우리의 영적인 순례가 담겨있습니다. 

그 출발점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간구입니다. 

목사님과 신부님과 유대교의 랍비가 같이 돈을 모아서 복권을 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복권이 1등으로 당첨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신부님이 그래도 다 우리가 성직자인데 하나님께 헌금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서 여기에 이렇게 원을 그리고 돈을 던져서 이 원 안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갖고 원 밖으로 떨어지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자고 말합니다. 목사님이 생각해보니까 아무래도 원 밖에 떨어지는 것이 많을 것 같은데 신부님은 가족도 없고 혼자사니까 괜찮을지 몰라도 목사님은 가족들도 먹여살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별로 탐탁치 않게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시겠냐고 그냥 원 안에 떨어진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원 밖에 떨어 진 것은 우리가 가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대교의 랍비가 원을 그릴 것도 없이 그냥 이 돈을 있는 힘껏 하늘로 던져서 하늘에 속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땅에 속한 것은 우리가 나눠갖는 것으로 하자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 유대인들이 돈을 좋아한다고 비꼬는 그런 유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의 현실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땅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의 두 번째 부분에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여기는 땅의 시간과 공간입니다. 그러나 이 곳에서 우리가 무엇을 구하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를 통해 우리의 인생이 형성이 되고 또한 변화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의 어느 날 저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곳에서 시작이 됩니다. 우리의 영적인 순례도 오늘 이곳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또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에 표현된 영적인 순례의 과정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데에서 시작해서 죄용서로 이어지고, 유혹으로부터 승리하여 궁극적으로 모든 악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와 구원에 이르는 것으로 마치게 됩니다. 여기에 우리의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양식”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양식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 아르토스는 예수님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말씀하실 때 떡이라는 말에 사용된 단어하고 같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시면서 우리에게 오늘 먹을 떡을 위해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인생의 모든 고통을 외면하시면서 하늘을 바라보라고 설교만 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수많은 병자들의 육신을 고쳐주셨고 심지어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떡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가장 놀라운 일은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도 배고파하는 무리들에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라고 설교를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그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놀라운 이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떡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떡이 없어도 살 수 없습니다. 여기서 떡은 우리의 육신의 모든 필요를 대표하는 것이며 또한 떡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떡은 인간의 적나라한 현실이며 실존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현실을 알고 계십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해야 하고 하늘에 속한 것을 구해야 하겠지만 아무리 그럴듯한 기도라고 할지라도 우리의 진심이 담겨있지 않으면, 간절함과 진실함이 없으면 진정한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에서부터 이미 그런 기도는 거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적인 기도에 대해 생각할 때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우리의 신앙적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연약한 현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러나 또한 우리는 우리가 진정으로 우선순위를 둘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이 한 구절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떡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떡을 더 많이 얻기 위해 기도하고 내 떡을 지키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기도는 출발점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우리의 기도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자면 그 다음 방향은 바로 우리의 죄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떡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떡으로만 사는 존재도 아닙니다. 떡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우리의 영혼의 문제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반드시 우리의 영혼을 살피는 기도가 되어야 하고 먼저 자기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은 특별히 다른 이들의 죄를 용서하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치시고나서 바로 이어지는 말씀은 바로 이 구절을 다시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는지 예수님이 너무나 잘 알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떡만을 구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이 스스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며 또한 서로 서로의 죄를 용서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경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서로의 죄를 고백하고 또 용서하는 공동체는 그것이 교회이든지 가정이든이 그 어디이든지 바로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공동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죄용서를 받으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시험과 유혹입니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죄짐을 지고 살아가던 순례자가 곧 심판받을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여행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서 그의 죄의 짐을 벗는 것은 이 여정이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서 그의 모든 죄짐을 벗어버린 후에 바로 천국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까지 수만은 시련과 유혹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천로역정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교회에서도 아무리 은혜를 받고 아무리 회개하고 거듭났다고 해도 결국 시험 때문에 넘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으면 그 다음에는 유혹과 시험이 찾아온다는 것은 영적인 공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유혹과 시험은 우리를 다시 우리의 과거로 돌이키려는 힘입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유혹과 시험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유혹과 시험이 찾아오는 이유는 이 세상에 아직도 악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악에서 구원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모든 악의 심판과 이 세상의 구원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줄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악의 실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며 인간을 좌우 하려는 영적인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와 악은 미워하지만 그 사람은 이해하고 용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직은 이 세상에 악이 횡행하고 있지만 언젠가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악한 권세를 심판하시고 주기도문의 앞부분에서 기도한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이 되고 우리를 모든 악에서 구하여 주실 그 날을 소망하고 바라보며 우리는 유혹과 시험과 싸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자신의 죄를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내게 주신 사명을 생각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영적인 고민과 갈등의 결과는 우리의 과거가 되어서 우리의 미래를 바꾸어 갑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며 어떤 가치의 기준을 세워나가느냐를 통해 나는 여전히 변화하고 새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매일 매일 나의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자리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이 땅의 권세에 매여서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분명하게 결단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2019년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새해에 우리의 기도를 진실하게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며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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