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교회 :::
현대교회 로고
신앙으로의 초대 현대교회 이야기 예배와 모임 나눔과 섬김 참여와 헌신
예배안내 양육과정 안내 매일묵상 교회학교 목장안내


서브메뉴 안내 - 섬기는 이들


댓글 0
레아와 라헬 / 창세기 29:21-30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12지파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혹은 민족은 12지파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구를 계수할 때에도 지파별로 계수를 하고 세금을 걷는 것도, 군대를 징집하는 것도, 지파별로 이루어 집니다. 지파별로 일정한 지리적인 경계가 있어서 일종의 지방 분권형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일종의 12지파 연맹체라고 볼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히 왕정시대에 들어와서 새로운 왕조가 시작이 되거나 새로운 왕이 등극을 하게 될 때에 12지파의 대표들이 왕으로 인정을 해주는 과정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새로운 왕이 정해졌다고 해도 그가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입증하게 될 때에 12지파의 대표들이 그를 왕으로 인정하게 되고 그때에 즉위식을 거행하며 진정한 왕으로서 활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12지파의 대표들에 의해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 동의하지 않는 지파들이 갈라져나가게 되고 그렇게 해서 나라가 분열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울의 경우에도 선지자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했지만 그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바로 왕으로 인정을 받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암몬 사람들이 길르앗 야베스라는 성읍을 공격해올 때에 사울이 군대를 몰고 가서 길르앗 야베스를 구원하게 되고 그것을 보면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모여서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며 즉위식을 거행하게 됩니다. 다윗의 경우에도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이 어렸을 때에 이미 기름을 부어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했지만 오랜 세월 고난의 시간을 보냈어야 했고 그리고 나서 먼저 그가 속한 유다 지파에서 다윗을 왕으로 추대했고 한동안 사울의 후손들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다윗을 지지하는 사람들 간에 나라가 분열이 되어 있다가 결정적으로 사울의 세력이 몰락하게 되면서 이스라엘 12지파가 모두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반대로 다윗의 손자인 르호보암의 경우에는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10지파가 그를 왕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갈라져 나가서 결국 나라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개관을 공부할 때에는 먼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외워야 성경의 얼개가 눈에 보이게 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12지파의 기원은 야곱의 열 두 아들들에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른 아브라함의 아들이 지난 주에 살펴본 이삭이고 이삭에게 두 쌍둥이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야곱에게 12명의 아들이 있었고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그 아들들의 자손들이 각각 하나의 지파의 조상이 됩니다. 

야곱의 12아들들이 초기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 이전까지는 영적인 계승이 오직 한 사람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는데 야곱에 와서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에는 성경의 기록을 보면 사실 아브라함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8명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이 있고 그리고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났고 사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이 후처를 얻어서 6명의 아들을 더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영적인 유산을 계승한 것은 오직 이삭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에게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야곱과 에서라는 두 쌍둥이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야곱만이 이삭의 영적인 계승자가 됩니다. 

그런데 야곱에게는 각각 다른 네명의 어머니, 즉 레아와 레아의 몸종인 실바, 그리고 라헬과 라헬의 몸종인 빌하를 통해서 12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 12명의 아들들 모두가 야곱의 계승자가 되고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아브라함에서 야곱으로 이어졌던 계보처럼 오직 한 사람만이 영적인 축복의 계승자로 이어지게 되었다면 지금도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밖에 없을 것인데 그렇지 않고 이렇게 수많은 성도들,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 있게 된 것은 야곱의 12아들들의 시대로부터 시작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한 가족이 한 민족이 되고 이 민족으로부터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만큼 12지파가 중요한데 그 기원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창세기 29장부터 30장까지의 이야기는 어떻게 야곱이 12아들을 얻게 되었는지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그러한 중요성에 비하자면 너무나 개인적이고 세속적이고 우연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로 펼쳐집니다.  

오늘 본문 이전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를 해보면 야곱은 자기가 장자로서 축복을 받기 위해 아버지와 형을 속였다가 결국 분노한 형을 피하여 도망을 가게 되었고 그래서 외삼촌이 살고 있는 하란이라는 지역을 찾아 오게 됩니다. 사실 야곱과 그의 외삼촌 라반의 촌수는 좀 복잡한데 관심이 없으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잠깐 정리를 해보면 아브라함에게는 나홀이라는 형제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라는 아들이 있고 나홀에게는 브두엘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에게는 야곱과 에서라는 아들이 있고 브두엘에게는 라반이라는 아들과 리브가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이 리브가가 이삭과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야곱과 에서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좀 항렬이 엉기게 되는 것인데 아브라함과 나홀이 형제지간이고, 그래서 이삭과 브두엘에 사촌 지간이고 그러니까 야곱과 라반은 6촌 지간이 되는 같은 항렬인 것인데 라반의 여동생 리브가가 야곱의 아버지 이삭과 결혼하는 바람에 라반은 야곱의 외삼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꼬이게 된 것은 이삭이 너무 늦게 태어나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같은 항렬을 따지고 동성동본의 결혼을 금기시 하던 유교문화가 없고 오히려 당시에는 친족들간의 결혼이 더 바람직한 것을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곱도 자신의 친족들이 살고 있는 하란으로 가서 그 곳에서 결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라반에게는 레아와 라헬이라는 두 딸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보고 반해서 라헬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야곱은 아버지의 집에서 빈털터리로 도망을 나온 셈이기 때문에 당시로서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신랑이 내야 하는 지불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신에 7년을 라반의 집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7년 후에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해서 야곱에게는 그 7년이 며칠과 같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7년이 지나고 결혼식을 하게 되었는데 라반이 여기서 야곱에게 속임수를 씁니다. 결혼식에 라헬이 아니라 레아를 데려간 것이고 야곱은 그것을 모르고 레아가 라헬인줄 알고 첫날밤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신부들은 베일로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고 밤이 되면 전기도 없는 세상에서 제대로 사람을 알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야 야곱이 라헬이 아니고 레아였다는 것을 알고는 외삼촌에게 항의를 하자 외삼촌은 이 지역의 법도가 언니를 제치고 동생부터 결혼을 시킬 수 없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별로 멀지도 않은 친족끼리 결혼을 하는 것인데 서로 법도가 다른 것을 몰랐다는 것도 이해가 잘 되지 않고 그러면 7년 전에 미리 이야기를 해주었어했는데 그렇지도 않았으니 사실 말이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뭐 굳이 이해를 해보려고 하면 7년 안에 언니가 먼저 시집을 가게 되지 않겠는가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순번에 따라서 언니를 먼저 보냈다는 이야기가 될 텐데 그 뒤에 라반의 행태를 보면 그보다는 이미 무슨 꿍꿍이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아무튼 이제 사태를 수습을 해야 하는데 라반은 이번에는 그러면 7년을 더 일하는 조건으로 라헬까지 아내로 주겠다고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야곱은 일종의 울며겨자먹기식으로 그 조건을 받아들입니다. 야곱으로서는 자신을 기망해서 이루어진 결혼이기에 무효를 주장하여 레아를 내보내고 원래 약속대로 라헬을 달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이게 오늘날 우리의 생각하고는 많이 달라서 뭐라고 쉽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야곱의 입장에서는 어찌되었든 레아는 자기 때문에 평생 결혼을 못하게 되었고 앞으로 레아와 라헬의 불편한 관계가 이어지게 될 것이고 잘못하면 자기 때문에 결혼 못했다고 생각하는 처형과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기에 그냥 자기가 다 떠 앉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렇게 해서 야곱과 결혼하게 된 레아와 라헬이 서로 경쟁을 하듯이 자녀를 낳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서로 경쟁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12명이나 되는 아들들이 태어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들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과정도 간단히 정리를 해보면 먼저 하나님은, 이 대목에서부터 하나님이 등장합니다. 그 앞에 야곱이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는 이야기에서는 전혀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았는데, 아무튼 하나님은 레아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먼저 레아가 아이를 낳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의 네 명의 아들을 낳습니다. 그러자 라헬이 시기심이 발동을 해서 야곱을 괴롭힙니다. 어떻게 괴롭혔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라헬로서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고 언니에게 밀리게 된다는 절박감에서 마치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게 되었듯이 자신의 몸종인 빌하를 통해 단과 납달리라는 두 아들을 얻게 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레아가 자신이 밀린다고 생각했지 마찬가지로 자신의 몸종인 실바를 야곱에게 들여보내서 갓과 아셀을 낳게 됩니다. 그리고나서 레아를 통해서 다시 잇사갈과 스불론이라는 아들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헬이 요셉과 베냐민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므로 모두 12명의 아들들이 태어나게 됩니다. 혹시 왜 딸이 없냐고, 딸을 낳은 것은 쳐주지도 않느냐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는데 그 가운데 레아가 디나라는 딸을 낳는 이야기도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라헬은 막내인 베냐민을 낳다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아이를 낳는 이야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하는 중요한 특징이 있는데 보통 성경에서 이름을 짓는 것은 하나님이 이름을 주시거나 아니면 주로 아버지들이 이름을 짓는데 이 열두 아들들의 이름은 모두 어머니들이 지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들에는 이 두 여인들의 절박함이 담겨 있습니다. 레아가 처음에 나은 네 명의 이름을 보면 르우벤은 보라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남편이 라헬을 사랑해도 내가 먼저 아들을 낳앗다는 뜻이되고 그리고 둘째는 시므온인데 그 이름의 뜻은 들으심입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이고, 셋째가 레위인데 그 뜻이 연합함입니다. 그러니꺄 이제 남편은 내꺼다 라는 뜻이 되고 그리고나서 유다는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네가 이렇게 네명이나 아들을 낳게 되었으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 다음에 라헬이 자기 몸종을 통해 단과 납달리라는 아들들을 얻게 되는데 단은 억울함을 풀다, 납달리는 경쟁에서 이겼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좀 나쁜 말로 해보면 이름을 막 짓는 것이지요.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좀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을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한과 답답한 처지, 그리고 그 가운데 받은 위로를 아이들을 이름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열두지파의 조상들의 탄생의 이야기가 하나도 거룩하지 않고 서로 자매였던 두 여인들이 사랑을 얻고 자신의 자존감을 세우고자 하는 경쟁의 과정에서 태어났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다르게 표현해보자면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미화되거나 신격화, 신화화되어 있지 않고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 그래도 기록되고 있는 것입니다. 

시기적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시대는 우리나라로 치면 고조선 시대에 해당합니다. 지금부터 대략 4000년 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개국신화들이 대략 지금부터 2000년 전을 전후한 시대를 배경으로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까마득한 옛 이야기인데 그 시절에 기록한 이렇게 종교적인 민족인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 사실 그야말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은 종교로 먹고 사는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민족의 조상들의 이야기가 이렇게 인간적이고 세속적이고 현실적이라는 것은 오히려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평범성이 오히려 이 이야기를 특별한 이야기로 만들게 되고, 그것이 성경의 매우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를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바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이 세상 대부분의 나라와 민족, 영웅들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에는 하나의 큰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원 그 자체에 이미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처음부터 씨가 다른 것이고, 피가 다르고, 될성푸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원이 중요하고 그래서 알에서 태어나고 하늘에서 내려오고 하는 특별한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신화로서, 전설로서 전승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의 경우에도 그 사람이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기록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브라함이 된 것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위대한 인물이 될 운명을 타고 난 영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는 그 순간에,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므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조상들의 이름을 레아와 라헬이 붙인다는 것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실 레아와 라헬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앞에서 죽 과정들을 살펴보았지만 이 이야기가 야곱의 입장에서는 로맨스이고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는 이스라엘의 근간을 이루는 12지파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정작 그가운데  레아는 물론 라헬의 입장도, 생각도 한 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여인들은 자신의 의지와, 감정과는 상관없이 오직 아버지와 남편간의 거래로 자신들의 처지와 운명이 결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들로서는 그러한 시대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자존감을 나타내는 유일한 방법이 어떻게 해서든 자녀를 낳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절박함과 간절함은 사실 우리의 조상들도, 우리의 어머니들, 할머니들도, 아니 어쩌면 아직도 우리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여인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이 여인들의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보면 이 여인들은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고 순응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많은 없습니다. 나중에 야곱과 라반의 갈등이 커지게 되고 결국 야곱이 일종의 야반도주를 생각하면서 아내들과 상의를 합니다. 이 때에 레아와 라헬은 야곱의 생각을 지지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야곱이 품삯을 치르고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게 된 것을 레아와 라헬은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린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 두 여인의 마음 속에 담겨 있던 아버지에 대한 한의 표현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아버지 집에서 모은 재산을 가지고 야곱이 떠나는 것은 자기들의 몫을 가지고 가는 것이기에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야곱을 지지해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들은 아무런 생각이 없이 순응하고만 있었던 여인들이 아니었고 그들의 마음속의 상처와 한을 안고 자기들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또 저항하며 살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한숨을 아시고 그들의 눈물을 아시며 그들의 지극히 평범하며 또한 힘겨웠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을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성경에 이와 유사한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룻의 이야기입니다. 지난번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룻은 위대한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여인입니다. 그런데 룻은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기근으로 이스라엘을 떠나 모압으로 피난온 가정의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합니다. 그런데 시아버지와 자기 남편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모압여인이 가진 것도 없이 찾아온 이스라엘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은 그 여인도 그 나라에서 오갈 데 없는 처지였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래서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이스라엘로 와서 그래도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남의 밭에서 추수하다가 떨어진 것을 주어서 먹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보아스라는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 두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다윗이라는 위대한 왕, 그리고 다윗 왕가라는 위대한 왕조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평범한, 아니 아주 주변부에 속한 가난한 이방 여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을 봅니다. 또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해 보자면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용비어천가라를 작품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한글로 기록하여서 잘 알려진 작품인데 그 첫 구절이 여러분들도 많이 들어보셨겠지만 해동 육룡이 나라샤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해동 육룡이라는 것은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그리고 그들의 네 명의 조상을 말하는 것인데 그 사람들은 왕이 아니었는데도 왕으로 추존해서 목조, 익조, 도조, 환조라고 시호를 붙였고 그들이 다 원래부터 위대한 사람들이었다고 칭송하는 노래가 바로 용비어천가입니다. 그러니까 이성계는 그 위에 4대조 할아버지 때무터 위대한 가문이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왕의 경우는 그 할아버지가 어디 이방에서 그야말로 빌어먹을 것도 없어서 이주해온 이방 여인에게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성경과 일반 역사와의 가장 큰 차이인 것입니다. 

그런데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는 장면에서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이 가정을 축복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이 룻이라는 이방여인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낳은 라헬과 레아와 같은 은혜를 받게 되리라고 축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낳은 라헬과 레아도 다 이렇게 평범한 여인들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조상들을 낳게 되었으니 너도 그리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장르가 무엇일까요? 신화일까요? 전설일까요? 도덕적인 교훈집일까요? 아마도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누가 그런 것을 믿는가, 혹은 그렇게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가 하고들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읽는 중요한 이유는 성경 속에 바로 레아와 라헬들의 이야기, 그 시대를 살아갔던 지극히 평범하며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극히 연약했던 사람들, 그러나 그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라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주인공들도 살아갔던 이들의 인생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 레아와 라헬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과, 우리가 지고 가는 삶의 애환들, 우리가 갈바를 알지 못하고 따라가고 있는 이 인생길이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붙들리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구원의 이야기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레아와 라헬의 한숨을 들으시고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던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성도님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주일 설교 영상   ADMIN 2020.04.19 52
공지 매일묵상 안내   ADMIN 2017.03.11 237
175 2020.5.10(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5.10 10
174 2020.5.3(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5.03 12
173 2020.4.26(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4.26 14
172 2020.4.19(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4.19 14
171 2020.4.12(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4.12 15
170 2020.4.5(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4.05 20
169 2020.3.29(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3.29 22
168 2020.3.22(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3.22 17
167 2020.3.15(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3.17 43
166 2020.3.8(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3.17 13
165 2020.3.1(주일) 주일설교 요약   ADMIN 2020.03.17 6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Next ›
/ 16
Designed by hikaru100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

SketchBook5,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