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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눈을 여는 엘리사의 기도 / 열왕기하 6:8-17

유럽의 역사의 전환점을 이루는 중요한 사건들 중에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이었던 훈족이 유럽으로 쳐들어오자 게르만족이 압박을 받고 대거 이동하기 시작했고이들이 로마제국의 영내로 침략하기 시작하여 결국 로마제국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제국은 기독교에 대한 박해를 멈추었을뿐 아니라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제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보호를 받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로마제국은 무너졌으니 당연히 로마제국의 국교였던 기독교도 쇠락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유럽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 후 1000년동안 유럽사회와 문화를 주도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여러 가지 역사적인 설명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당시의 교회가 로마제국의 멸망이라는 그러한 엄청난 역사적인 격변과 혼란 속에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시민들을 지켜주고 혼란 속에 질서를 유지하며 야만족들의 침략 속에서도 문화를 보존하며 사람들의 신망을 얻게 되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러한 혼란기에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 중에 당시 로마 교회의 주교였던 레오1세와 훈족의 왕 아틸라의 만남이 있습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불러일으킨 훈족의 왕 아틸라는 직접 로마제국을 침략하였고 북이탈리아를 초토화시키고 로마시로 진군해 왔습니다. 당황한 로마제국의 황제는 사절단을 보내서 어떻게든지 훈족의 진군을 막아보고자 했습니다. 이때에 다른 두 명의 로마의 고관들과 함께 로마황제가 사절단으로 파견한 사람이 로마 교회의 지도자인 로마의 주교 레오1세였습니다. 레오는 잔인하기로 소문난 훈족의 왕 아틸라에게 만행을 멈추고 자비를 베풀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틸라는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로마로의 진군을 멈추고 군대를 되돌렸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약탈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왜 훈족의 왕이 갑자기 마음이 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하들이 아틸라에게 왜 다시 돌아가야 하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아틸라가 내가 레오와 이야기할 때에 그의 곁에 큰 칼을 든 사람이 자기를 노려보며 위협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두려워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레오의 곁에 그런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틸라에게만 그 사람이 보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후대에 전설이 되고 발전이 되어서 그때 칼을 들고 로마를 지켜준 사람이 바로 베드로와 바울이었다는 전설이 등장하게 됩니다.

오늘 주보의 표지에 실어드린 그림이 바로 그 날의 사건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라파엘이 그린 것인데 오른쪽이 훈족의 왕 아틸라와 그의 장군들이고 왼쪽이 레오입니다. 그런데 왼쪽 위의 하늘에 칼을 든 두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바로 베드로와 바울입니다.

물론 많은 역사가들이 아틸라가 칼을 든 사람을 보고 두려워서 군대를 물렸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저지하지 못했던 잔인한 훈족의 왕 아틸라를 어떤 군대도 거느리지 않은 로마 교회의 지도자가 돌이켰고 아틸라가 돌아가서 얼마되지 않아 갑자기 죽어서 다시 로마를 침략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스라엘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군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초기에는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괴롭혔지만 다윗의 시대 이후로는 쇠락해갔고 그 후 왕국의 시대에는 아람이라는 나라가 가장 많이 등장하며 이스라엘과 갈등관계를 빚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람과 이스라엘의 전쟁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아람 왕은 여러번 이스라엘에 군대를 보내어 이스라엘의 왕을 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람왕이 군대를 보낸 것을 번번이 이스라엘 왕이 미리 알고 피해가거나 군대를 보내서 방비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아람왕은 분명히 내부에 첩자가 있기 때문에 작전정보가 새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신하들을 추궁합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신하가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어서 왕궁의 침실에서 벌어지는 일 까지다 다 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엘리사를 제거하기 전에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엘리사 한 사람을 잡기 위해 큰 군대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지금 엘리사는 도단이라는 성읍을 밤새 포위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엘리야의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입니다. 이름이 비슷한데 엘리야라는 이름은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뜻이고 엘리사는 나의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이름과 연결하여서 선지자들의 사역을 생각해보자면 엘리야는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가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선포한 사람이었기에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고 엘리사는 오늘 본문에 나오듯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대적으로부터 구원하는 역사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의 하나님은 구원이시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라고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엘리사를 불러서 선지자로 세우고 엘리야를 따라다니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엘리야 선지자를 부르셔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엘리야가 승천한 후에 엘리사가 엘리야의 권능을 이어받아서 선지자로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아람의 군대가 몰려와서 엘리사가 있던 도단성을 에워싸게 되었고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엘리사를 수종드는 시종이 일어나 나가보니 많은 군대가 성을 둘러 싸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람의 큰 군대를 보고 엘리사의 시종은 너무나 놀라고 두려워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탄식합니다. 그때에 엘리사가 그에게 말합니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그리고 그 젊은이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그러자 그 젊은 시종은 불말과 불병거가 엘리사를 둘러서고 도단 성을 지키며 온 산에 가득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엘리야가 승천할 때에도 당시에 엘리야를 따르던 제자였던 엘리사는 엘리야의 곁에 불말과 불수레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을 보면서 엘리야와 함께 있었던 하늘의 군대가, 하늘의 불말과 불수레가 그 후로 엘리야와 함께 하며 엘리사의 평생에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권세를 베푸셔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하나님의 능력을 이 세상 가운데에서 나타내게 하십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보이는 세계 속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지만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성경 속에 나타나는 기도의 자세는 우리의 일반적인 기도하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서서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며 하늘을 우러러 보고 기도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우리의 몸으로 내가 어디를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나타내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바라는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기도하는 자세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기도합니다. 두 손을 모으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모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차분히 가다듬고 집중을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는 것은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집중을 하는 것이고 고개를 숙이는 것은 우리의 겸손과 하나님을 향한 경외의 표현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과 눈을 감는 것은 모두 살아계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관하심을 믿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구하는 우리의 마음,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요즘 세상이 매우 혼란합니다. 그 가운데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표현들이 격해지기도 합니다. 어느 편에 서있든지 간에 사방에 악한 사람들이 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이 세상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 이 나라가 발전을 하고 이 사회가 더 나은 곳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우리는 깨어서 이 세상에 공중에 권세를 잡은 악한 세력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을 보는 것, 악한 세력을 보는 것, 마귀와 사탄의 나라가 하는 일을 보는 것은 아직도 영적으로 온전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이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는 것입니다. 아람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고 탄식하는 그의 시종에게 엘리사는 말합니다.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그 악한 권세보다도 크십니다. 이 세상에 불의와 악이 횡행하는 것같이 보여도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도 확장하고 계시고 곳곳에서 은혜와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며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악한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느냐도 중요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고 그래서 여러 가지 음모론들에 빠져들어갑니다. 그러나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무엇을 행하고 계시는 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다 선한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행하고 계시는 지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사방에 악한 사람들뿐이라고 생각하면 그 순간 나는 대단히 정의롭고 의로운 사람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그러니까 나도 별 수 없고 이 세상에서 살려면 나도 그들과 같아야 한다는 유혹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로는 정의를 이야기하면서도 사실 자기 자신은 불의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는 사람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그러나 사방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신실하게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 자비와 긍휼과 은혜를 베풀며 사는 사람들,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보는 사람들은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며 조금이라도 자신의 삶을 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드리려는 거룩한 감동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들 중에서 가장 작은 씨이지만 그 씨가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됩니다. 누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온 밀가루 반죽을 다 부풀게 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이 보이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보이는 세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게 되고 하나님이 이 세상에 베푸시는 은혜와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엘이사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기에 그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고 또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 군대에 에워쌓여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하나님의 능력을 이 세상에 드러내는 위대한 선지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고백 중에서 제가 매우 좋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삶 속에서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난을 겪었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도 그의 인생이 평탄하기는커녕 수많은 어려움들이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백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앞으로 나타날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이 세상에서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데 충성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생각건데라는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도 늘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느껴졌던 것은 아닙니다. 그의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해 볼 때에, 기도할 때에 깊이 하나님의 뜻을 묵상할 때에, 그에게 일어난 일들을 반추해 볼 때에 그는 깨닫게 되었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그냥 느끼는대로 살지 말고 묵상하고 생각하고 집중할 때에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압도되지 말고 이 세상의 유혹이 전부인양 생각하지 말고 우리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을 때에 우리는 믿음의 길을 갈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우리도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며 따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엘리사가 기도합니다.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그때 그 젊은이의 눈이 열려서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합니까?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기를 원합니까?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보여줍니까? 결국은 돈이 최고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까? 정직하게 살아도 쓸데없다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까? 우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들을 전하면서 살아갑니까? 사방에 악한 사람들이 깔려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까? 저놈도 나쁜 놈이고 저놈도 나쁜 놈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까? 모르겠습니다. 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현실적인 지혜가 될 수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는 사람들이고 또 이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사람들이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아들들에 대한 나쁜 소식들을 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엘리사는 기도를 통해 그의 사환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 세상에 매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고 있으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우쳐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예전에도 몇 번 들려드린 이야기라고 생각이 되는데 제가 어렸을 때에, 아마도 중학교때쯤 되었던 것 같은데 어느 책에서 읽었던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마시대에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얼음구덩이로 끌고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거기에 던져 넣었는데 그때 로마 군사들 중의 한 사람이 갑자기 영적인 눈이 열려서 하늘에서 천사들이 면류관을 가지고 내려오는 것이 보이더랍니다. 그런데 그때 그 얼음구덩이에 던져진 한 사람이 나는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나를 살려달라고 그 얼음구덩이에서 기어 올라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군사의 눈에 10명의 천사 중에서 한 천사가 면류관을 가지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더랍니다. 그것을 보고는 이 병사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조금만 참으면 저 면류관을 얻게 될 텐에 왜 지금 신앙을 포기하는가 안타까워하다가 자기가 외쳤답니다.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겠습니다. 그리고는 그 구덩이로 스스로 뛰어들었답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이 이야기가 어떻게 느껴지실지 모르겠습니다. 오래전에 읽은 이야기이고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도 잊어버려서 출처나 정확한 내용도 알지 못하지만 그 당시에 저에게는 너무나 큰 울림을 주었던 이야기였습니다. 눈이 열려서 천사들이 가져오는 면류관을 보게 되는 장면이 특히나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보는 이야기, 그 나라를 위해 기꺼이 고난을 당했던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저의 마음에는 큰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났고 과연 지금 나는 그 세계를 점점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위해서 이 세상의 고난을 이겨내는 그런 믿음이 내게는 있는가? 이 세상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순종하지 않으며 신앙의 겉모습, 겉껍데기만 남아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어떤 세계가 보입니까? 우리 모두가 깊이 기도하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순종하며 동참하여 이 세상 가운데 은혜와 평강의 나라를 오게 하는 놀라운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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